북한 주민을 돕는 인도주의이고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을 돕는 인도주의이고 궁극적으로 ‘서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안다’는 말이 있다. 내가 바로 그랬던 사람이다. 북한에 있을 때 대남공작 부서인 통일전선부에서 남한 잡지 몇 권 읽고 친구들에게 광화문 인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면 친구들은 나를 따라 서울관광이라.. 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2011.07.26
<1> 전주 안디옥 교회 <1> 전주 안디옥 교회 불편하게 삽시다’… 깡통교회에 넘친 ‘비움의 사랑’ 박진구 담임목사 “안디옥교회로 가주세요.” “아, 깡통교회요. 훌륭한 교회죠.” “깡통요?” 택시운전사에게서 들은 ‘깡통교회’라는 말에 궁금증이 생겼다. 게다가 ‘교회가 훌륭하다’는 얘기는 오랜만이라 낯.. 好學의 時事/[교회소식]본이 되는 교회 2011.07.22
‘아버지 효과’와 강한 자녀 ‘아버지 효과’와 강한 자녀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한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된 초등학교 2학년생의 시 ‘아빠는 왜’는 우리 사회의 아빠들을 슬프게 했다. .. 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2011.07.22
” 현대판 ‘노아의 방주’ ” 현대판 ‘노아의 방주’ 구약성경 창세기 편에 나오는 '검색하기">노아의 방주'를 그대로 재현한 네덜란드의 현대판 방주가 이번 달 말 주민들에 공개된다. 네덜란드인 사업가 요한 후이버스(52)는 지난 3년간 네덜란드 중부 도르드레흐트 메르베데 강가의 한 버려진 부두에서 50명의 인부들과 함께 .. 好學의 時事/[교회소식]본이 되는 교회 2011.07.18
대통령 부인 대통령 부인 구릿빛 ‘건강한 팔뚝’이 트레이드마크인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아동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의 초등학교 학생 3명 중 1명이 과(過)체중이고 2000년 이후 태어난 아이 중 3분의 1이 잠재적 당뇨병 환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동비만=.. 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2011.07.12
2018년 올림픽 축제 [평창 참 장하다] 2018년 올림픽 축제 [평창 참 장하다] 겨울올림픽 도전에서 두 번이나 분한 눈물을 삼켰던 강원 평창이 마침내 승리의 여신과 화려한 입맞춤을 했다. 평창이 2전(顚)3기(起) 만에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낭보가 전해지는 순간 그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소식을 기다리던 국민은 두 손을 번쩍 .. 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2011.07.08
6·25 전쟁觀 ‘커밍스의 앵무새’ 이제 사라져야 6·25 전쟁觀 ‘커밍스의 앵무새’ 이제 사라져야 6·25전쟁이 발발 61주년을 앞두고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를 다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혹한의 17일(17 Days of Winter)’의 촬영 준비가 한창이다. 국립극장에서는 6·25전쟁.. 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2011.06.24
[2011년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6·25의 교훈 [2011년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6·25의 교훈 30여 년간 군 생활을 했고 지금도 공직에 있다 보니, 경제가 주된 관심사였던 친구들의 눈에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안보와 남북관계, 전쟁과 평화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중에 빠지지 않는 것은 ‘이 .. 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2011.06.24
제3의 인생 ‘행복은 여행순’ 제3의 인생 ‘행복은 여행순’ 정년퇴직한 60대가 서울 북한산에 ‘출근’한 첫날. 노장 몇 사람과 어울려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던 중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주절주절 한참이나 이어진 건 왕년의 화려한 경력. 반면 좌중은 듣는 둥 마는 둥 무표정 일색이더니 소개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대뜸 묻.. 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2011.06.17
상속 록펠러·카네기에 이어 미국 역사상 세 번째 부자였던 철도왕 밴더빌트가 1877년 죽었을 때 그가 남긴 재산은 1억달러였다. 당시 미국 국립은행들의 총 예금액 8억3400만달러의 10%를 넘는 액수였다. 밴더빌트가 죽은 지 100년쯤 된 1973년 그가 세운 밴더빌트대에 후손 120명이 모였다. 그중에 재산이 100만.. 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2011.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