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올림픽 축제 [평창 참 장하다]
겨울올림픽 도전에서 두 번이나 분한 눈물을 삼켰던 강원 평창이 마침내 승리의 여신과 화려한 입맞춤을 했다. 평창이 2전(顚)3기(起) 만에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낭보가 전해지는 순간 그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소식을 기다리던 국민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만세를 불렀다. 2010년과 2014년 대회 개최지 선정 때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2차에서 역전패를 당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1차에서 강적 독일과 프랑스를 밀쳐내 버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을 접촉하며 마지막까지 공을 들인 정치 경제 체육계 인사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은 여름과 겨울올림픽, 월드컵축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올해 8월 대구 개최) 등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는 세계 6번째 국가가 됐다. 평창 올림픽이 유발하는 직접적인 경제적 가치는 29조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연구원은 23만 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낼 것으로 추산했다. 국가 브랜드 제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도 크다.
평창의 2018년 대회 슬로건은 ‘새로운 지평’이다. 겨울스포츠의 뿌리가 깊지 않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남은 과제는 유치 과정에서 보여준 국민적 에너지를 7년 남짓 남은 대회 준비에 쏟는 일이다. 우리는 겨울아시아경기를 비롯해 쇼트트랙 스노보드 컬링 스키점프 등 겨울스포츠 종목의 세계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바 있다.
겨울스포츠가 생활화한 유럽, 북미지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관중 동원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주∼강릉 복선전철, 제2영동고속도로, 동해·동서고속도로 등의 교통망 확충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인구가 많은 수도권 등 외부 관람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짓는 경기장들을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경제성 효율성 및 환경친화성을 갖춘 실속 대회를 지향하기 바란다.
미국의 보잘것없던 광업도시 레이크플래시드는 두 차례 겨울올림픽을 치른 뒤 세계적인 휴양도시로 탈바꿈해 연 200만 명의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평창엔 훌륭한 역할모델이 될 수 있다. 미숙한 운영과 불편한 숙박 수송체계로 체면을 구긴 지난해 밴쿠버 겨울올림픽은 반면교사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개최는 우리 국력과 국가 이미지를 한 차원 높였다. 평창 올림픽은 선진 한국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세계인이 함께 활강하는 백설(白雪)의 축제가 될 것이다.
나라 이름에 도시란 뜻의 시티만 붙이면 수도가 되는 중앙아메리카의 과테말라시티. 4년 전 지구 반대편 이곳에서 다 큰 어른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2014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한승수 위원장과 당시 김진선 강원도지사. 각각 고희와 환갑을 넘긴 두 사람은 현지에서 임차한 유치위 사무실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넋을 놓고 있었다. 수장들이 이 지경이니 유치위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이를 보고 울컥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나. 마감을 해야 되는데. “왜 졌다고 보십니까?” “푸틴이 그렇게 셉니까?” “이제 어떡합니까?” “세 번째 도전을 할 계획입니까?” 무례한 질문은 계속됐고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어쨌든 인터뷰 기사는 무사히 들어갔다. 그날 기자실에는 급하게 송고를 하는 와중에도 눈시울을 붉히거나 소리 죽여 우는 사람이 많았다.
평창은 1차 투표에서 38표를 얻어 러시아 소치(34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25표)를 앞섰지만 과반수에는 모자랐고 결선 투표에서 소치에 47-51로 역전패했다. 평창에 비해 인프라와 인지도에서 절대 약세였던 소치는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 와 영향력을 행사했다. 평창은 2010년 겨울올림픽 유치전 때도 2003년 체코 프라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1차 투표에서 캐나다 밴쿠버와 잘츠부르크를 51-40-16으로 압도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밴쿠버에 53-56으로 고배를 마셨다. 패인으로는 이어 열린 IOC 부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김운용 당시 대한체육회장이 지목돼 곤욕을 치렀다. ‘두 개의 파이를 한 국가에 동시에 주지 않는다’는 IOC의 불문율에 따라 주위에선 그의 출마를 진작부터 말려왔다.
기자들 역시 사람이다. 국제대회 취재를 갔을 때 좋은 성적표가 나오면 덩달아 신이 나게 마련이다. 기자는 그런 점에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순수 아마추어로 구성된 1997년 야구 대표팀은 사상 최약체로 평가됐지만 대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당시 멤버였던 김동주 조인성은 두산과 LG의 중심타자가 됐고 김선우 서재응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올림픽과 아시아경기 등 동행 취재한 종합 국제대회에서도 한국은 항상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투표에선 유난히 약했다. 200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IOC 총회가 시발점이었다. 김운용 위원은 동양인 최초의 IOC 위원장에 도전했지만 현 위원장인 자크 로게를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어 두 번에 걸친 평창의 좌절을 목격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비롯해 1986년 서울, 1999년 강원, 2002년 부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유치 등 각종 선거에서 동방불패였던 한국 스포츠가 세 번 당한 패배를 현장에서 겪은 셈이다.
한국 시간으로 6일 밤 12시 남아공 더반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선 평창의 세 번째 운명이 결정된다. 본보 황태훈 차장은 1일 유치위 본진과 함께 대한민국 전세기를 타고 현지 취재에 나선다. 황 차장은 기자와는 달리 2007년 쿠웨이트시티에서 열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유치전에서 승전보를 보내온 행운아다. 닷새 후 그가 기사를 쓰면서 유치 관계자들과 함께 흘릴 눈물이 좌절이 아닌 환희의 눈물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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