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8.

好學 2012. 3. 18. 07:34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8. 


나는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늦게 도착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여느 때와는 달리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집중을 해서
선생님이 내게 방과후에 남으라는 말씀을 절대로 할 수 없도록 하였다.
나는 대단히 진지했고, 집중했으며, 아주 의젓했고,
노력도 많이 해서 그야말로 훌륭한 모범생이 되었다.
단 한 번도 카롤리나를 쳐다보지 않았고,
그쪽을 미리 쳐다보지 않으려고 억지고 마음을 다졌으며,
너무 일찍 쳐다봤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는지도 모른다는
거의 미신에 가까운 생각이 나를 그렇게 하지 말도록 강요하였다.

수업이 다 끝나고 여학생들만 수업을 한 시간 더 받게 되었다.
수예 시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사내아이들만 수업이 끝났다.
그 돌발 사태를 나는 별로 언짢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것은 마치 내가 극복해야만 하고
또 반드시 극복해 낼 수 있는 보충 시험으로 생각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특별한 감동으로 카롤리나와 같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시간 내내 서로가 서로를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 문에서 겨우 2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길이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기다렸다.
그곳에는 바닥이 평평한 커다란 바위가 땅 위로 돌출되어 있었다.
바위 한가운데에는 말발굽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자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옛날 옛날에 사람들이 마을에 교회를 지어서
화가 난 악마가 그 자리에서 발을 굴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들 했다.
그 바위 위에 앉아서 악마가 움푹 파 놓았다는 곳에
고여 있던 물을 손가락으로 튀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등에 내려 쪼이는 햇볕이 따사로웠고,
하늘은 여전히 구름 한 점 없이 물처럼 투명한 파란색이었으며,
나는 앉아서 기다리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한 행복감에 젖었다.

마침내 여자 아이들이 학교 문을 빠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내 곁을 뛰어서 지나갔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그 애가 나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애가 가만 머리를 휘날리며 나를 향해 뛰어왔다.
이마 위 머리카락에 꽂힌 핀이 앞뒤로 흔들거리며 춤을 추었다.
그 애는 샛노란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그 애 앞으로 손을 내밀었고, 그 애는 내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우리는 전에 쉬는 시간에 그랬었던 것처럼 바짝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손을 잡고 내 쪽으로 잡아당겨서
그대로 포옹하고 얼굴 한가운데에 뽀뽀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얘! 너 나 기다렸니?"
"그래."
내가 말했다.
"얘! 나 오늘 너랑 같이 안 가. 엄마 친구가 아프대.
그래서 엄마가 거기 안 간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한참 동안 변명이 이어졌지만 갑자기 이상하게 귀가 멍멍하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것을 머리에 기억해 두기는커녕 제대로 듣지도 못하였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는
그 애가 말을 끝낸 다음 갑자기 돌아서더니
윗마을 쪽을 향해 샛노란 옷을 휘날리며
다른 여자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잽싸게 달렸다는 것뿐이다.

나는 언덕을 내려가 집으로 향했다.
숲 가장자리에 다다라 무심코 윗마을로 향하는 길을 쳐다보았을 때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날 내가 굉장히 천천히 걸었던 것 같다.
그 자리에 서서 몸을 돌려 내가 방금 걸어왔던 구부러진 언덕길을 쳐다보았다.
초원에 햇빛이 충만하게 넘쳐흘렀다.
풀 사이로 바람 한 줄기도 불지 않았다.
풍경이 마치 그대로 굳어 버린 것 같았다.
그때 조금씩 움직이는 작은 점이 눈에 띄었다.
그 점은 숲 가장자리 맨 왼쪽에서 가장자리를 따라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향하면서 학교 앞 언덕을 올라,
그 위에서 산등성이 모양을 그대로 좇으며 남쪽으로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하늘의 파란색 배경과 함께 그 점이 비록 개미만하여 작기는 하였지만,
그 위를 걸어가고 있는 것이 바람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좀머 아저씨의 다리 세 개를 찾아냈다.
마치 시계의 초침처럼 빠른 속도로 아주 작은 발걸음이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멀리 보이던 점은,
서서히 그러나 시계의 큰 바늘처럼 분명히, 지평선에서 멀어져 갔다.

그로부터 1년 후에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키가 벌써 1미터 35였고 몸무게는 32킬로그램에다가
신발은 32.5를 신었으니 그렇게 빠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사실 자전거 타기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가는 두 개의 바퀴 위에서 계속 움직인다는 것이
- 32킬로그램이나 되는 사람이 그 위에 앉아서
아무런 받침대나 의지할 것도 없이 달릴 때는 넘어지지 않으면서도,
받침대로 받치지 않거나 어디에 기대거나 누군가 잡아 주지 않으면
왜 넘어져 버리는지 그 이유를 아무도 내게 설명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
내 생각으로는 너무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 환상적인 현상에 가장 기초적인 자연의 법칙,
즉 원심력과 특히 소위 <기계적인 회전 충격 보존력>이 작용한다는 것을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그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기계적인 회전 충격 보존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혼란스럽고 어지러워서 뒤통수의 상처 자국이 근질거리거나 쿡쿡 쑤셔오곤 한다.

만약 꼭 필요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자전거를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배우러 가야만 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꼭 배워야만 했다.
피아노는 호수 윗마을의 끄트머리에 사는 선생님에게서만 배울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 걸어가려면 한 시간 이상 걸렸지만 자전거로는
- 우리 형의 계산에 의하면 - 13분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에게도 피아노를 가르쳤던 내 피아노 선생님은
우리 누나와 형과 아무튼 마을에서 건반 하나만 두드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 교회의 오르간 연주에서부터
리타 슈탕엘마이어의 아코디언에 이르기까지 - 다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