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7.

好學 2012. 2. 24. 20:14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7. 


그런데 어느 날 - 토요일이었는데 - 기적이 일어났다.
쉬는 시간에 카롤리나가 내게로 와서, 그
것도 아주 바짝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얘! 너 아랫마을로 맨날 혼자 가지?"
"응."
"있지,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
그런 다음 그 애는 자기 엄마의 친구가 아랫마을에 사는데
거기에 가 있으면 자기 엄마가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이고,
그러면 엄마랑 같이, 아니 엄마 친구랑 같이,
아니 엄마와 엄마 친구랑 같이… 가겠다는 등의 말을 한참 종알댔다.
무슨 말이었는지 잊어 먹어서 생각은 안 나는데,
생각해 보면 그 애가 말을 하고 있을 때 이미 난 그것들을 다 잊어버렸던 것 같다.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라는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말들은 들을 수도 없었다.
다만 그 말만을 기억해 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
그 순간 이후 그날 하루 종일,
아니 그 주일 내내 내 귓가에는 그 말만이 들려왔고,
그 말은 너무나 - 아, 어떻게 표현한담! - 달콤하게 들렸다.
그림 형제 동화책에서 읽었던 어느 것보다도 달콤했고,
<지금부터 내 음식을 먹어도 좋아, 내 침대에서 자도 돼>라고 말했던
'개구리 왕'에 나오는 그 왕자님의 약속보다도 더 달콤했다.
<오늘은 빵을 굽고, 내일은 고기를 굽고,
모레는 왕비님께 아기를 갖다 바쳐야지!>라고 말했던
룸펠스틸첸 요정처럼 조바심을 내며 날짜를 세었다.
마치 내 한 몸 안에 행복에 젖어 있는 한스와 루스틱 형과
황금 산의 왕이 다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

나는 그 애를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가장 적당한 산책로를 골라 두려고 하루 종일 숲속을 헤맸다.
사람들이 보통 지나 다니는 길을
카롤리나와 함께 걷지 않으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작정해 둔 점이었다.
나만의 비밀 길을 알려 주고, 숨겨진 볼 거리들을 그 애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내 계획은 아랫마을로 함께 걸어가면서 보게 될 모든 것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카롤리나가 윗마을로 가는 길에서 본 것들을
카롤리나로 하여금 기억 속에서 모두 퇴색시켜 버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한참의 저울질 끝에 나는,
숲 가장자리를 돌아서자마자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
소나무 보호 구역에 휑하게 뚫려 있는 길을 지나,
호수 쪽으로 꺾어 내려 가기 직전
활엽수림에 이끼가 잔뜩 낀 길로 돌아가는 코스를 하나 마침내 정했다.
그 코스에는 내 박식한 지식으로 설명하면서
카롤리나에게 보여 줄 볼 거리가 여섯 개나 포함되었다.
자세히 하나하나씩 설명하자면 이런 것들이었다.

1) 길 가장자리쯤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서
   끊임없이 윙하는 소리를 내고, 출입구에는 빨간색 번개 표시 위에
  <고압선 주의 - 위험>이라는 노란색 푯말이 걸려 있는 발전소의 작은 변전소.
2) 잘 익은 딸기가 달려 있는 일곱 포기의 산딸기 나무.
3) 사슴 구유 - 비록 볏짚은 없지만 그 대신 커다란 소금 덩이가 그 안에 들어 있다.
4) 전쟁 직후 어느 늙은 나치가 목을 매달고 죽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는 나무 한 그루.
5) 높이가 거의 1미터에 직경이 1미터 50으로서 산책로의 마지막 코스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볼 거리가 될 개미굴.
6) 높이가 10미터쯤 되는 튼튼한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기가 막히게 멋있는 호수 풍경을 만끽하고,
   그 애에게로 몸을 기울여 목 언저리에 가만히 입을 갖다 대기 위해서
   함께 올라가기로 계획한 멋진 너도밤나무 고목.

부엌 싱크대에서 과자를 조금 훔쳐 내오고,
냉장고에서는 요구르트 한 병을,
또 지하실에서 사과 두 개와 딸기 주스 한 병도 꺼내 왔다.
먹을 것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준비한 그것들을 모두
구두 상자에 넣어 가지고 일요일 오후에 한 나뭇가지 위에 숨겨 두었다.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서는 카롤리나에게 들려 주어서 그 애를 웃게 만들 이야기를,
하나는 걸어가면서 또 하나는 너도밤나무에 앉아서 할 것으로 생각해 두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다시 불을 켜고
다음날 그 애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작별의 선물로 줄 생각으로
서랍 안에 들어 있는 드라이버를 찾아 책가방 안에 넣었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서 두 가지 이야기를 다시 연습해 보고,
미리 예정된 내일의 일정을 세밀하게 검토하였다. 수도 없이
1)번에서부터 6)번까지 거쳐가야 할 장소를 생각해 보았고,
드라이버를 건네줄 순간도 되뇌어 보았으며,
이미 바깥 숲 속 한 나뭇가지 위에서
우리를 고대하고 있는 구두 상자 안의 물건들도 머리 속에 떠올려 보았다.
그보다 더 철저하게 랑데뷰를 준비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런 다음에야 나는 달콤한 말을 기억하며 마침내 잠에 빠져들었다.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

월요일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햇빛은 부드러웠고, 하늘은 물처럼 투명한 푸른빛이었으며,
숲에는 지빠귀들이 노래불렀고
딱따구리들이 나무에 홈을 파는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쳐 울렸다.
그날 학교로 가면서 그제서야 나는 만약에 비가 내린다면
카롤리나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되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1)번부터 6)번까지의 코스는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많이 분다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 것이 뻔했다.
마구 헝클어져 있을 딸기나무들, 눈으로 볼 수 없게 된 개미굴,
미끈미끈하게 젖어 있을 이끼 낀 길,
미끄러워서 올라가지도 못할 너도밤나무,
밑으로 떨어져 나뒹굴거나 물에 젖어 물컹물컹해졌을 간식들.
그런 참혹한 광경에 대한 상상이 내게 더없이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
승리의 쾌감까지 주면서 나를 달콤한 행복감에 젖게 하였다.
눈곱만큼도 날씨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날씨가 내 걱정을 맡아서 해 준 셈이었다
그날 나는 단순히 카롤리나만 동행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 아니라,
덤으로 그 해에 최고로 화창한 날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야말로 행운아였다.
내 위에서 마음씨 좋은 하느님이 따스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런 은총을 받은 처지에 그날 하루만이라도
경솔한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동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거만함과 자만심으로
실수를 범해 이미 간직하고 있던 행복마저도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