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世界文學感想]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0.

好學 2012. 3. 18. 07:36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0. 

아무튼 나는 자전거를 배운 이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 오후 세 시부터 네 시까지 불쌍하게도 달랑 혼자서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물론 형이 그 거리에 소요되는 시간으로 계산해 두었던
13분 30초는 내게는 어림도 없는 시간이었다.
형은 나보다 다섯 살 위였고, 자전거도 기어가 3단까지 있는 경기용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그런 반면 나는 내게는 너무나 큰 어머니 자전거를 타고
선 자세로 페달을 굴러야만 되는 정도였다.

설령 안장을 최고로 밑으로 끌어내린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앉은 채 페달을 밟을 수가 없어서 나는 밟다가 앉다가 하면서
교대로 움직여야만 했기 때문에 속도도 내지 못했을 뿐더러 금방 지쳤고,
스스로도 잘 알고 있듯이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타고 다녀야만 했다.
다리를 쭉 뻗거나 잔뜩 끌어올린 채, 바퀴가 한바퀴 돌고 나면
다시 돌아오는 페달을 밟고 힘껏 구르기 위해서,
선 채로 힘겹게 페달을 굴러 바퀴를 돌게 만든 다음 흔들거리는 안장에 앉아야만 했다.

그렇게 발로 구르는 방식을 이용해서 우리 집을 출발하여 호숫가를 따라 가다가
윗마을을 지나 풍켈 선생님의 대저택에 도착하는 데는 거의 20분이 걸렸다.
만약 정말로 아무 일도 그 사이에 일어나지만 앉는다면 그랬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가는 도중에 사소한 일들이 수없이 많이 일어났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타고 가다가 핸들을 꺾거나
브레이크를 밟고 내렸다가 다시 타는 따위는 할 수 있었지만,
누군가와 길에서 마주치는 것 등에는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앞이나 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의 작은 엔진 소리만 들어도
즉시 브레이크를 잡고 내렸다가 그 자동차가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
다른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습만 보여도 정지하고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행인을 앞지르고자 할 때는 내 앞에 가는 사람의 바로 뒤에서 자전거를 내린 다음
자전거를 끌면서 그 사람의 옆을 지나쳐 그 사람이
내 뒤쪽으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확신이 서야만 다시 타고 떠났다.

그래서 내가 자전거를 타려면 앞이나 뒤가 완벽하게 비어 있어야만 했고,
가능하면 내가 타고 가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아랫마을과 윗마을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에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못생기고 조막만한 것이
거리에서 촐랑대고 다니다가 바퀴가 달린 것만 보면
아무것에나 다 멍멍 짖어대며 달려들곤 했다.
그 녀석의 공격을 피하려면 하르트라웁 박사 부인이 그 개를 다시 불러들일 때까지
자전거를 길가 쪽으로 몰아서 울타리 곁에 노련하게 정지시키고는
안장 위에서 다리를 잔뜩 끌어올린 채 울타리 꼭대기를 잡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윗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선생님 집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종종 20분 가지고도 모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제시간에 미스 풍켈 선생님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
일찌감치 2시 반에 미리 집을 나서곤 했다.
앞에서 내가 미스 풍켈 선생님이 자기 어머니를 보고
학생에게 과자를 주라고 말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그런 일이 아주 굉장히 드물다는 것을 강조해 두었었다.
미스 풍켈 선생님은 성격이 원래 매우 엄격했고
만족시키기가 대단히 어려운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절대로 흔한 일은 아니었다.

숙제를 시원찮게 해 왔다거나, 악보를 보면서 연주할 때 다른 건반을 눌렀다든가 하면,
선생님은 얼굴이 온통 시뻘개지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가
팔꿈치로 학생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삿대질을 하다가
갑자기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하였다.

최고로 나빴던 경험을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지 일년쯤 되었을 때 겪었다.
그때 선생님이 어찌나 나를 혹독하게 혼냈었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선생님에 대한 서운함을 삭이지 못한 채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히 10분 늦었다.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오소리개가
나를 한참 동안이나 울타리 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도중에 자동차를 두 대 만났으며, 네 명의 행인을 앞질러야만 했었다.
미스 풍켈 선생님 집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은 얼굴이 이미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방안을 왔다갔다하다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삿대질을 해대고 있었다.

"얼마나 늦었는지 알고 있기나 하니?"
선생님이 다짜고짜 물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는 시계가 없었다.
손목시계는 그 후 한참이 지난 다음 열 세 번째 생일에 처음 선물로 받았다.
"저기 좀 봐!"
그러면서 선생님은 추가 달린 시계 밑에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풍켈 할머니가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조금만 있으면 벌써 3시 15분이야!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 온 거야?"

나는 하르트라웁 박사님 댁 개 이야기부터 더듬거리며 하기 시작했지만
선생님은 내게 변명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개라구!"
선생님이 이내 내 말을 끊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개하고 놀았겠지!
얼음 과자도 하나 사 먹었을 테고!
너 같은 애들은 내가 잘 알고 있어.
히르트 아줌마네 구멍가게를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면서
얼음 과자나 사 먹을 생각말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그건 정말 너무한 처사였다.
내게 히르트 아주머니네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었다고 하다니!
용돈도 한푼 받지 않았던 나한테 말이다!
형과 형 친구들이 그런 짓을 하기는 했다.
그 형들은 용돈을 몽땅 히르트 아주머니네 구멍가게로 갖다 바쳤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런 내가 피아노를 배우려고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온갖 시련을 겪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왔건만
고작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으려고
히르트 아주머니네 구멍가게를 기웃거렸다는
누명을 뒤집어써야만 된단 말인가!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눈물 그쳐!"
미스 풍켈 선생님이 소리를 꽥질렀다.
"가방이나 열고 악보나 꺼내서 뭘 배웠는지나 해 봐!
보나마나 연습도 안 했겠지!"
그 말은 공교롭게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