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救援論]구원.신앙.계시.

5. 죄사함과 거듭남은 다릅니다.

好學 2010. 7. 19. 21:14

 

5. 죄사함과 거듭남은 다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탈출 당시 이집트에서 장자의 죽음이란 화를 면한 것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피로써 그들의 죄들을 가려준 것이지 이스라엘 민족의 심성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죄사함만으로 구원을 마쳤다는 것은 마치 홍해를 가로질러 이집트(흑암)를 탈출했으나, 가나안을 향해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광야에서 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홍해를 건넜으면 광야를 가로지르며 갖은 연단을 받고 성장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동안 연단 받았듯이, 나도 일정기간을 가지고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죄사함만으로 구원을 마쳤다고 자만하다가 넘어지고 배교하거나 죄를 범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는 있어도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계시록 20/12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더라.

 

마지막 때 구원 받은 사람은 대환란 이전에 들림 받아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자신이 행한 것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또한 마지막 때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천년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하나님의 흰 보좌 앞으로 불려 나와 하늘 책에 기록된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자신의 행실을 깨끗이 하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말씀에 따라 구원에 관한 판결을 내리시는데, 어떤 판결을 내리시던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며,
인간의 의지나 단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구원을 단정 짓는 것은 재판이 진행 중인 피의자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 같이 아무 의미기 없고, 오히려 월권행위에 해당합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죄를 짓기 때문이라.
이 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으니, 곧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요한 8/11 그 여인이 말씀드리기를 “주여 아무도 정죄하지 않았나이다.”라고 하더라.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 가라,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니라.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죄를 짓는 사람은 마귀의 주관권 아래 들어가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 보혈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는 이유는 죄를 조건으로 나를 사로 잡는 사탄의 주관에서 벗어나 더 이상 죄 짓지 않고 살기 위함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진리와 성령으로 온전히 거듭나서 정욕에 따른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거룩한 새사람이 되어야 하며,
죽었던 내 영이 성령의 도움으로 살아나 육신을 주관해야 합니다.

 

고전 10/12 그러므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빌립보서 3/12 내가 이미 이르렀다 함도 아니요, 이미 온전해졌다 함도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 예수에 의하여 붙잡힌 그것을 나도 붙잡으려고 좇아갈 뿐이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서 있다고'(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배교하거나 타락)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사도들 중 가장 열심이었던 바울조차도 최종 목표인 구원에 이르렀거나 온전해진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님이 자신을
붙잡았으므로 자신도 그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갈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수 없이 뭇 매를 맞고 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조차도 자신의 구원을 자만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구원을 단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6/4~6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 만약 떨여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

히브리서 10/26~27 이는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받고 난 후에도 고의적으로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죄들을 위한 희생제가
남아 있지 아니하고, 다만 대적하는 자들을 집어 삼킬 심판과 맹렬한 분노를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만 남아 있기 때문이라.

 

사도 바울은 진리를 깨닫고, 은혜로 구원을 받고, 성령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세상을 다스리는 능력을 맛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으로 떨어져 나가 다시 큰 죄를 짓게 된다면 용서 받을 수 없어 회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진리를 받고 난 후에도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대신 벌을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므로 은혜구원 받은 사람은 절대 자신의 구원을 자만하지 말고 진리 말씀을 생명시하며 지키야 합니다

 

마태 5/16 그러므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선행을 보게 하고, 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디도서 2/7 매사에 네 스스로가 선한 일에 본을 보이고 교리에 있어서는 부패치 않음과 신중함과 진실함을 보이며

사도행전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성령님이 계신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노라, 하거늘

요한 12/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선한 행실로도 하나님을 증거해야 하는데, 일부 교인과 목회자들이 믿음은 있지만 '거듭나지 못함으로써'
(성령을 받지 못함으로써) 세상에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행실로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은 있으나 자신을 버리고 거듭나지 못함으로써 육신의 본능과 사탄의 주관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의 전제조건은 자신의 죄를 깨닫는 일이지만, 거듭남의 전제조건은 자신을 버리는 일입니다.

 

누가 22/42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시여, 원하시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시더라.

이사야 57/15 영원에 거하시는 높고 우뚝 솟은 분, 그의 이름이 거룩이신 분이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겸손한 영을 지닌 자와 함께 거하여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케 하고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케 하는도다.

마태 5/3~4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딤전 1/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속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of whom I am chief)

 

물컵에 담긴 더러운 물을 버려야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있듯이, 나의 모든 고집(마음, 영)과 관념(생각, 혼)과 욕심(감정, 육)을
버리고,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할 때 예수님은 내 안에 들어 오셔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구원을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고 애통한 마음과 죄인된 심정을 잃지 말아야 하며, 더 이상적으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 없이 자신을 질책하고 가다듬어야 합니다.

 

창세기 3/22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니,
이제 혹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서 생명 나무의 과실도 따서 먹고 영원히 살까 함이라.” 하시니라.

잠언 3/18 지혜는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의 나무니, 그것을 지니는 자는 행복하니라.

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한가운데 있는 생명 나무에서 나는 것을 주어 먹게 하리라.

 

죄사함 받는 것은 내 모든 죄들을 용서 받아 다시 죄 없는 상태, 즉 아담과 이브가 있었던 에덴동산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으로 복귀되었으면 내게 영생을 주는 생명 나무의 실과(은혜, 말씀)를 따 먹고 영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또 다시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죄를 멀리해야 하지만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다 보면 죄 짓는 것이 더럽게 느껴지고 싫어지게 됩니다.

 

요일 3/8~9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이는 마귀가 처음부터 죄를 짓기 때문이라.
이 목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셨으니, 곧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죄사함을 받아도 다시 죄를 지으면 죄를 조건으로 나를 사로 잡아 더 큰 죄를 짓게 하는 마귀에게 속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인간을 타락시켜 죄를 짓게 하고 지옥으로 인도하려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온전히 거듭나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새생명을 덧입은 사람(하나님의 아들)은 죄를 짓지 않는데, 그가 죄를 지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씨(진리)와 영(성령)이 그 사람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7~8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로 할 수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에베소서 2/3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데 이는 육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도 않고,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거듭나지 않아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은 육체의 본능과 욕심에 따라 육신과 마음에 원하는 것만 행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본래(by nature,천연적으로)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딤후 4/1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곧 그가 나타나실 때와 그의 왕국에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예수님은 재림하서서 그의 왕국에서 '산 자'(거듭난 자)와 '죽은 자'(거듭나지 못한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단순한 믿음만 있거나 죄사함만 받은 자가 아니라 '거듭난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년 대환난 이전에 들림 받는 성도도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기름(성령)을 준비한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따라서 '거듭남'(중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기독교의 핵심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거듭남은 영적 출생을 의미하지만, '영적 성장'(성화)과 '영적 완성'(영화)도 넓은 의미에서 거듭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구체적으로
'칭의'(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주임을 시인함으로 의롭게 여겨짐), '죄사함'(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내
모든 죄가 깨끗이 씻어짐),
'중생'(죽었던 내 영이 물과 성령으로 살아남), '성화'(내 영이 은혜와 진리 가운데 거룩히 자라감),
'영화'(온전한 예수님의 형상을 이뤄 성령의 열매를 맺음)의 단계를 거쳐야 온전한 구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