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救援論]구원.신앙.계시.

2. 자기 혼, 육신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好學 2010. 7. 19. 21:12

 

2. 자기 혼, 육신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거듭나기 위해 영적으로 살려고 하는데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내 혼과 육신입니다.
원래 영이 육신을 다스리는 것이 정상인데 영이 죽어 있으니 육신이 자기가 주인인 줄 알고 대신 왕노릇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영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죽어있는 영이 다시 살아나 성장하려면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악하고 게으른 육신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개역 한글)

로마서 8/13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 (킹제임스 흠정역)

 

그러나 인간은 육성이 영성보다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육신의 강한 본능과 욕망과 습관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본능대로 살면 세상적으로는 잘 살지 모르지만 결국 얻게 되는 것은 죄악과 사망과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내 영이 성령의 도움으로 성장해 더 강한 능력으로 내 혼과 육신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영은 혼과 육신의 다음 4가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a) 자기 고집, 고정관념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고집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철학 삼아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의 자아(혼)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고집과 고정관념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인 성령이 임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자신의 고집과 관념을 버리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차원 높은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6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화평이니라.

에스겔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한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그들의 육신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이 연한 마음을 주어

 

혼과 육신의 생각은 아무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 할지라도 내 영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망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들여 육신의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flesh)같이 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자신(고집, 관념, 욕심)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께 맡겨야 새생명을 덧입어 영생할 수 있습니다.

 

요한 12/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b) 육신의 본능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이 다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났음이라.

전도서 3/19 이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짐승들에게도 일어나기 때문이니 곧 동일한 일이 그들에게
일어나느니라. 참으로 그들이 다 동일한 호흡을 가졌으므로 짐승들이 죽는 것같이 사람들의 아들들도 죽는도다.
그러므로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날 것이 없나니 이는 모든 것이 헛된 것이기 때문이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동물과 같이 본능에 따라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으며, 생존본능과 생식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존본능은 죽지 않고 살려는 본능으로 이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마음의 근심과 불안이 끊이지 않습니다.
생존본능으로 인해 우리는 항상 먹고 사는 걱정, 사고 나는 걱정, 병 걸리는 걱정 등이 떠나지 않습니다.

 

마태 6/31~34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말하며 염려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런 모든 것이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그 날의 재앙은 그 날로 충분하니라.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도둑이 다 뺏어가면 그만이고,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노력해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도 늙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

 

생존본능과 관련된 육신의 욕망으로는 식욕, 수면욕, 배설욕, 소유욕, 권력욕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소유욕은 돈을 사랑하는 욕심(탐욕)으로 나타납니다.
아프리카의 육식 동물들도 먹이를 독차지 하기 위해 서로 싸우며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모든 악의 근원이 되며,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게 됩니다.

 

벧전 4/3 우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혐오스런 우상 숭배를 행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도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생식본능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이성에 대한 그리움과 성에 대한 탐닉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남성은 한가한 시간의 대부분을 여자랑 사랑하는 상상을 하면서 보낸다고 합니다.
수 많은 범죄와 타락과 가정파괴가 바로 이 생식본능으로부터 유발됩니다.

 

갈라디아서 5/17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정욕을 추구하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나니 이들은 서로 반목하여서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느니라.

 

마음으로는 선한 일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지만 육신은 자기 본능대로만 행하려고 합니다.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정욕(lust)을 추구하고, 성령이 충만하면 육신이 억제되니, 육신과 성령은 서로 화목할 수 없습니다.
내 몸 안에 동물적인 육신과 하나님의 심성을 닮은 거룩한 영이 함께 사니 매일 부부싸움 하듯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개역한글 성경의 '곤고'는 '괴로움'을 뜻하는데, 영어성경에서는 'wretched'로 '불쌍한' 또는 '비참한'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개역한글)

로마서 7/24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낼 것인가? (한글 킹제임스)

 

인간이 왜 비참한 존재입니까?
그건 육신이 동물처럼 본능대로 살다가 허무하게 늙어 죽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 건강하고 아름답고 부귀영화를 누리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고, 늙고 쇠약해지는 것을 보면 참담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전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지만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이라.

딤후 2/22 너는 또한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라.

 

동물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먹이를 찾고, 적을 피해 몸을 숨기며, 짝을 짓고, 새끼를 낳아 키웁니다.
본능이란 종족보존를 위해 잠재의식에 내장된 프로그램으로 우리는 나도 모르게 본능에 따라 산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선 영이야 어떻게 되든 본능대로만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내 육신과 처절히 싸워 이겨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속에 거하다 보면 더 이상 육신의 본능에 주관 받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 16/33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내 힘으로는 육신의 강한 본능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주로 믿고 내 안에 모시면 예수님은 세상(죄, 사망, 사탄)과 싸워 이기신 분이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진리)이 나를 죄와 사망의 법(본능)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해 육신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나를 사망으로 이끄는 죄성과 육신의 본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c) 육신의 감정(쾌락)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육신의 감정은 기쁨, 슬픔, 미움, 분노, 의심, 시기, 질투, 욕심, 허영심, 불안, 두려움, 좋아함, 싫어함, 쾌적함, 불쾌함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러한 감정들은 자극 받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운 것을 싫어하면서도 공포영화를 보고, 슬픈 것을 싫어하면서도 슬픈 멜로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사람들은 무섭고 불안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놀이동산에서 아주 위험해 보이는 놀이기구를 비명을 지르며 탑니다.

TV 드라마를 보면 우리의 미운 감정을 자극할만한 아주 못된 악역을 하나 꼭 만듭니다.
광고에서는 예쁘고 날씬한 여자와 못 생기고 뚱뚱한 여자를 함께 등장시켜 욕심과 시기심, 허영심과 수치심 등을 자극합니다.
청소년들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전자 게임으로 분노와 파괴적인 욕구, 우월감과 성취감 등을 즐깁니다.
육신의 감정은 자극을 받으면서 짜릿한 쾌감이 느껴지는데 이렇게 감정과 감각이 자극받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쾌락입니다.

 

전도서 2/1 내가 내 마음에 말하기를 "이제 가라. 내가 너를 환락으로 시험하리라. 그러므로 쾌락을 즐기라." 하였으나,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야고보서 5/5 너희가 땅에서 쾌락 가운데 살며 방탕함에 빠져 살육하는 날에서와 같이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우리의 뇌가 심심한 것을 참지 못하고, 끊임 없이 자극 받기를 원하는 이유는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기 위해서입니다.
도파민은 뇌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기분을 좋게 해 줍니다.
커피, 술, 담배, 마약 등은 인위적으로 도파민 분비를 증대시켜서 기분을 좋게 하지만 도파민 분비가 약물에 의존하게 되어 각종 중독을 일으킵니다.

 

전도서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이는 그것이 모든 사람의 마지막이며 살아 있는 사람이 그것을 자기 마음에 유념할 것이기 때문이라.

 

육신은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같이 영과 혼을 위한 도구일 뿐인데 사람들은 육신이 자신인 줄 알고 살고 있습니다.
육신의 쾌락에만 집착해 살면 아무 남는 것도 없고, 주위에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을 보면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뭔가 느끼는 것이 있으니 났다고 했습니다.
거듭나는 과정에서는 내 육신이 쾌락적인 것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야 영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시편 16/11 주께서 내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리니 주의 면전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편에는 즐거움이 영원 무궁토록 있나이다.

 

TV는 뉴스 이외에는 보지 않는 것이 좋으며, 술 담배도 자제하고, 전자 게임이나 채팅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쾌락적인 것에 노출되면 영적인 일은 재미 없게 느껴져서 하기 싫어지기 때문입니다.
거듭나고 나면 코메디 프로에서 남 망신주고 괴롭히면서 느끼는 기쁨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 오는 참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히브리서 3/12 형제들아, 너희 중에 아무도 믿음 없는 악한 마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딤전 5/6 향락에 빠져 사는 여자는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니라.

 

구원 받고 나서도 세상의 즐거움을 좇아 다닌다면 어렵게 회복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다시 끊어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상 향락(
pleasure)에 빠져 사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자라 했습니다.
마치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 먹어서 영이 죽고 육신으로 주저 앉은 것과 같습니다.
세상 유행이나 육신의 쾌락을 추구함은 사탄과는 가까워지지만 하나님과는 멀어지게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히브리서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나이가 들었을 때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기를 거절하고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주께서 보상해 주시는 일에 관심을 두었음이라.

 

d) 육신의 게으름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육신은 편안하고 쉬는 것을 좋아하고, 불편하거나 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타더라도 좀더 크고 편안한 중대형차를 선호하고, 집을 사더라고 넓고 편안한 집을 고릅니다.
아침 일찍 시계 벨소리에 일어나려면 게으른 육신과 일을 하려는 정신이 사투를 벌입니다.
게으른 사람의 나태와 안일은 끝도 없으며,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헛된 망상을 좇아 다닙니다.

 

잠언 24/33~34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자자, 하면 네 빈궁이 여행자같이 이를 것이요,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로다.

딤전 5/13 그들은 게으른 데 익숙하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게으름을 피울 뿐 아니라, 또한 수다를 떨고 말참견을 하며 마땅히 해서는 아니되는 말을 하나니

 

육신은 천성적으로 게을러서 좀더 자고, 좀더 졸고, 좀더 눕기를 원하나 이는 내게 가난과 실패만 안겨다 줍니다.
죽었던 내 영을 살려 자라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게으르지 말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육신이 게을러지는 이유는 육신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더 이상 활동할 의욕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프리카의 사자가 먹이를 실컷 먹은 후에는 나무그늘 밑에서 며칠동안 잠만 자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이란 확실한 소망과 목적을 가지고, 성령이 함께 하시면 게으른 육신을 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11 일에는 게으르지 말고 영 안에서 열심을 내며 주를 섬기라.

히브리서 6/11~12 우리는 너희 각자가 끝까지 소망의 온전한 확신을 향하여 같은 부지런함을 보여 주기를 바라노니
이는 너희가 게으른 자가 되지 아니하고 믿음과 인내를 통하여 그 약속들을 유업으로 받는 사람들을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