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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오래된 것들의 향기

好學 2010. 6. 24. 21:34

 

[ESSAY] 오래된 것들의 향기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얻을 것도,잃을 것도 없는,이 무심한 세상
멋지게살아보자고 마음속의 현자를 깨울 수도 있는일이다

잘 나이 든 어른들에겐 빛이 있다.

젊은 것, 생명 있는 것을 축복해주는 신성한 빛이다.

내가 불교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여전히 교회에 가는 이유는 10여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그 어른들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이제 겨우 팔십이다'를 저술한 부부도 있고 결혼 50주년을 감사하며 금혼식을 올린 부부도 있다.

이름하여 일소(一笑)회! 이름처럼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어른들의 모임이다.

나는 깍두기고 마스코트다.

내가 거기에 깍두기로 끼어 있는 이유는 그 어른들이 좋아서다. 나는 젊음을 부러워하지도, 흉내 내지도 않고, 젊음에 아부하지도 않는 당당한 어른들이 좋다.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아니 벌써 이렇게 나이 들었음을 받아들이고 내보이면서 헛헛하게 웃을 수 있는 어른들이 좋다.

나이가 들었으니 또 세상을 떠나신다.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고 서늘해진 그곳에서 젊음을 축복해주는 이의 신성을 아끼게 되고 오래오래 품게 된다. "이 선생, 지난주, 그 칼럼 잘 읽었어! 우리는 읽는 즉시 잊어버려서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참 잘 썼어!"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말 속에 들어 있는 편안한 사랑을 안다. 1%의 질투도 섞여 있지 않은 사랑보다 깊은 축복! 그래서 흡족하게 웃으면 그것이 우리들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작은 화석을 건네준 어른이 있었다. 사방 20cm쯤 되는 바다나리 화석이다. 돌이라 무거운데도 들고 오신 것이었다. 주시면서 말씀하신다. 이 선생, 그거 알아? 빌 게이츠가 자기 방을 비싸디비싼 현대미술로 장식하는 게 아니라 화석으로 장식한다는 거야. 그래요? 왜 그럴까요? 글쎄, 안 물어봤는데…. 그러고는 한바탕 웃으셨던 그 웃음은 선연한데, 그 어른은 이제 없다. 그분은 돌아가셨는데, 잿빛 화석은 무심히 남아 문득문득 나의 마루를 아득한 성찰의 공간으로 만든다.

화석은 돌이다. 돌은 돌인데 돌 이상의 것이기도 하다. 한때 생명이었던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열달을 품으면 사람이 되고, 백년을 품으면 역사가 되고, 천년을 품으면 신화가 될 것이다. 그런데 화석이 되기 위해선? 백만년이 지나고 천만년이 지나고 억만년이 지나야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인간은 언제부터 지구라는 별의 주인인 양, 행세를 하게 됐을까? 인간의 문명사는 얼마나 됐을까? 길어야 5, 6천년이다. 그런데 나의 마루에 중심이 되고 있는 저 조그마한 화석은 2억만년 전, 나리처럼 피어났던 바다생물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현기증이 인다. 인간의 시간에 비교하면 분명 영원의 시간이므로. 자연사에서 인간의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이므로.

인간은 자연의 작디작은 일부분이고 찰나를 사는 존재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환상이나 거품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자연사적 관점으로 시선을 옮기면 인간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문명사적 애증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이 무심한 세상 멋지게 살아보자고 마음속의 현자를 깨울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로 빌 게이츠가 자기 방을 진짜 화석으로 장식했는지 그렇다면 어떤 화석들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을 때 개연성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는 인터넷의 속도 전쟁을 주도하며 빠르디빠른 세상을 열었다. 그 대가로 우리에겐 상상도 안 되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늘만큼 땅만큼의 돈을 가진 그가 대담하게도 선언한 것이다. 자식들에게 백만불씩만 상속하고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 그 선언은 돈을 신으로 섬기는 현대인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고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백만불, 일반인에겐 역시 큰돈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그의 재산에 비하면 0에 가까운 비율이 아닐까. 그에게는 성공에 집착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의 인간미가 있는 것 같다.

출세를 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자신감이 있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는 일의 희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되는 인생에는 여백이 없다. 시간에서, 관계에서, 나눔에서 여백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완고해지고 냉혹해진다. 명령만 하고 듣지는 않는, 힘의 관계만 있는 구태의연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여백이야말로 마음속 현자에로 통하는 숨길이다.

오래된 것들의 향기가 있다. 오래된 것들의 소리가 있다. 침묵을 닮아 나지막하게, 그러나 깊게 퍼지고 박히는 것! 이제부터는 누구를 비난하는 말은 삼갈 것이라며 모든 비난의 말을 지중해 바닷가에 던져 버리고 왔다는 일소회 어른이 이런 말 같은 것! "인생이 짧아! 저승에 한 발을 담그고 사니 보이네! 젊은 적엔 좋지 못한 생각을 해도 몸이 견디더니 이젠 당장 탈이 나! 좋지 못한 생각은 세포를 병들게 하거든. 누군가를 미워하려면 나부터 다쳐야 돼. 그럴 거 뭐 있어! 생은 덧없고 좋은 사람, 좋은 생각은 많은데!" 가슴이 따뜻해진다. 마른 지식을 아무리 쌓는다 해도 저 지혜에는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내게 어른은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을 때 촉촉한 물색의 지혜로 젊은이의 황폐함을 치유해주는 현자다.

진심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도 서로에게 매이는 법이 없고, 서로서로 좋아하면서도 기대하는 법도 없는 저 어른들이 있는 한 나는 교회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