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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번 작품도 성공할 수 있을까?

好學 2010. 6. 26. 20:54

 

[ESSAY] 이번 작품도 성공할 수 있을까?

 

 

김택진·엔씨소프트 사장

그 순간 나는게임 개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다
게임 창작도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호흡을 맞출 때 작품이 나온다

2008년 11월 11일 오전 6시. 4년 넘게 공들인 온라인 신작게임 '아이온(AION)'을 드디어 일반에 공개하던 순간. 사내 강당을 가득 메운 우리는 대형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접속자 현황을 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여기저기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1000명, 1만명, 10만명으로 접속자의 숫자가 늘어나자 환호가 터졌다. 마치 한 번도 신제품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기대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 같았다. 순간 10여년 전이 떠올랐다. 비가 오기도 전에 서버가 비에 젖을까 걱정하고, 직원들 월급은 어떻게 마련할까 걱정하던 그 시절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을지 모르는, 수많은 실패들도 떠올랐다.

영화나 음악도 그럴 것이다. 공개도 되기 전부터 새로운 게임이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아이온'이 미국에서 사전 한정판(Limited Collector's Edition)이 동이 날 정도의 반응을 얻게 될 것이라고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나 결과를 알 수 있다면 '창작의 고통'이란 말이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일상으로 돌아온 후,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이온의 '디테일함'에 대한 좋은 평을 듣게 되었다. 사막을 걸을 때 흙먼지가 흩날리고 강물에 햇빛이 반사되며 가상 세계에서의 탐험과 스토리 넓이와 깊이가 세심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때 아이온을 만들면서 줄곧 내 머릿속에 달라붙어 있던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작품들에 비해 훨씬 고객의 시각으로 집요하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제 그 생각이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일까. 정말 내 속에 있는 것들이 고객에게 다가간 것일까. 정말 그렇게 믿어도 좋을까.

그러나 고개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의 부끄러움이 밀려든다. 세간의 호평을 들었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 한 작품의 탄생은 제작자에게도 동반 성장을 가져오고 안목은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데 그 순간 앞선 작품은 오히려 많이 부족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24년 전 전자공학과를 들어갈 때만 해도 소위 말하는 '소프트웨어쟁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영화 '해운대' 윤제균 감독도 10년 후 꿈꾸는 자신의 모습을 '좀 더 풍족한 급여를 받는 임원'이라 얘기했듯이, 내 꿈 또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굶지만 않는다면 그저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다는 작은 출발에서 수많은 미지의 여정을 걸어왔다.

우리가 세계 강국들과 겨루어 볼 수 있는 분야가 온라인 게임이다. 게임은 가장 고급스러운 소프트웨어 중 하나다. 그러고 보니 소프트웨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보기 시작한 지도 20년이 지나고 있다. 이 여정 중에 내가 깨닫고 있는 한 가지는 'Form follows functions'다. 생김새는 기능이나 목적에 뒤따라 올 뿐이라는 뜻이다. 개발 회의 때마다 가장 강조하고 있는 얘기가 있다. 디자인이라는 게 단지 겉모양이 예쁜 게 아니라 의도하는 기능이 제대로 동작하도록 파고들어 극한으로 만들다 보면 사람들이 감탄하게 되는 무엇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멋진 자동차의 대명사 포르쉐가 처음부터 예쁜 차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원하는 주행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차체를 깎다 보니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게임을 만들어 많은 나라에 서비스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그 나라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억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떤 게임 혹은 디자인에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또한 자신의 사용 경험에 기반한 기대와 일치할 때인데, 그 나라의 사회적 기억에 대해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고객의 시각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자세가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게임을 만들어 내는 출발선이 되는 것이다.

아이온 신작 공개를 앞두고 홍보실 미팅에서 "온라인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였지만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그 답은 "오케스트라"다. 얼마 전 지휘자로도 활약하고 있는 장한나씨의 글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함께 연주하는 동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소리를 내게 된다"는 내용을 읽었다. 게임 창작 활동도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호흡을 맞추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그 순간 나는 게임 개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다. 100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함께 창작활동을 하다 보면, 100보 앞을 바라보기보다 한 순간 한 순간 집중하고 한치 앞을 바라봐야 하는 경우가 있다. 디테일하게,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100보 앞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걸어가는 것과 같다.

다음 신작이 공개될 때도 "이번 작품도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답은 "모른다" 일 거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계속 생각할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공동의 헌신을 기반으로 얼마나 집요하게 달리고 달려왔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