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일사일언] 약(藥)과 악(樂)

好學 2010. 6. 23. 20:00

 

[일사일언] 약(藥)과 악(樂)

 

 

낮에는 약대 건물에서 논문을 보며 실험하고 밤에는 악보를 벗삼아 고전 음악을 연구한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음악에 대한 욕구는 강렬하지만 막상 전공할 용기는 없었던, 서울대 약학박사 과정 만 4년차인 과학도의 하루는 이렇게 전공과 취미 사이의 ‘이중 생활’로 이어진다.

한 가지도 잘하기 벅찬 세상에 과욕이나 무모한 열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약(藥)과 음악이 완전히 분리된 분야가 아니다’는 걸 깨닫고부터는 어느덧 용기와 확신이 더해간다.

글자 풀이부터 하면 ‘약(藥)’에서 ‘풀(草)’을 뗀 것이 ‘악(樂)’이다.

약은 육신을, 음악은 영혼을 다스린다.

어두운 유년기를 보낸 니체는 자신의 고달픈 삶 때문에 바그너란 ‘해독제’를 필요로 했다.

바그너의 음악은 그에게 세상의 독을 정화시키는 구원의 빛이었다.

음악은 빈둥거리는 자의 도락이 아니라, 삶의 무게로 지친 정신에 필수적인 처방전이다.

특히 고전 음악은 오랜 세월을 거쳐 그 약효가 검증된 영혼의 약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유행가 속에도 혹 치료제가 있을지는 모르나, 찰나의 효과로 그치거나 독성이 강한 ‘화합물’도 많이 섞여 있을 것이다.

고전 음악의 약리작용은 놀라우면서도 다양하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는 비타민처럼 삶에 생기를 주며,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은 마음속의 진흙탕을 깨끗이 걸러준다. 세기말의 불안한 실존을 온몸으로 부대꼈던 말러의 교향곡은 영혼의 종양을 후련하게 파낸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내 운명이자 연인으로서 약과 음악 모두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