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일사일언] 近視의 도시

好學 2010. 6. 23. 19:59

 

[일사일언] 近視의 도시

 

 

 

몽골과 티베트 유목민들의 시력이 최고 5.0이라고 한다.

막힌 데 없이 사방으로 트인 초원을 생활터전으로 하고 있는 유목민들의 뛰어난 시력에 비해 도시인들은 거의 고도근시(高度近視)라 할 만하다.

초원에서는 인간의 눈높이보다 높은 시각적 장애물이 없지만, 도시에서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건물들이 사람들의 시야를 막아선다.

일제 강점기 때의 사진엽서들 중에는 남북으로 남산과 북악산 사이의 전경을 담은 서울의 사진들이 많다.

북악산과 그 뒤의 북한산, 약간 서쪽으로 인왕산과 안산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휘감고 있는 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1930년대 서울에는 최고층이라고 해야 고작 4, 5층짜리 건물들이 듬성듬성 있는 정도로 보행자들의 시야가 크게 방해받지 않았다.

거리 어디에서든 낯익은 산들이 보였기 때문에 방향을 찾기 수월했을 것이다.

지금의 청계천, 종로, 을지로에서는 주변으로 마천루들이 에워싸고 있어, 지척의 산들을 쉽게 보기 힘들고, 길을 걷다가도 곧잘 방향을 놓친다.

세종로에서 경복궁 뒤편으로 보이는 북악산과 인왕산이 특히 반가운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 사람들이 높다란 건물의 인공 숲 너머에 있는 진짜 자연의 숲을 과거처럼 어디에서라도 본다는 것은 한 편의 꿈인 듯하다.

콘크리트 숲으로 포위된 도시의 일상 생활에서 근시를 잠시나마 벗어날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다. 도시에서 수평적 시야는 차단되어 있지만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은 언제나 열려 있다.

그러나 산과 어울린 하늘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망막에 맺혔던 시절에 비해 지금의 하늘은 뇌를 써서 시신경을 자극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이 도시에서는 그리 녹녹한 일만은 아닌 듯하다. 도시에서는 이래저래 눈은 피로하고 시력은 날로 악화될 운명인가.
(조이담·도시문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