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일사일언] 폭죽이 죽인 종소리

好學 2010. 6. 23. 20:02

 

[일사일언] 폭죽이 죽인 종소리

 

 

부모님이 계신 서울에서 새해를 맞았다.

 2005년 마지막 날 늦은 시간 아내와 나는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종로로 나와 종로타워 앞에서 보신각 타종을 들었다.

사실 서른 세 번을 쳐댔을 종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무수히 쏘아 올린 폭죽의 위력에 압도되었던 까닭이다.

한 해가 바뀌는 시간에 동시다발로 터져대는 폭죽들로 종로네거리의 창공은 자욱한 연기와 화약 냄새로 진동하였고, 얼굴에는 부스러기가 내려앉았다.

타종 1시간 전쯤에 을지로 3가 지하철역에서 하차, 가까운 청계천에 이르러 계단을 내려가 물길 산책코스를 따라 광교 쪽으로 걸었다.

우리 부부는 모처럼 제법 근사한 산책로를 따라 송년의 데이트를 즐겼다.

길을 걷다 문득 청계천 개통 무렵에 장애인들이 ‘이동권’ 요구 시위를 하며 청계천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항의의 메시지를 휘갈기던 사진 장면이 떠올랐다.

청계천 위 도로변의 인도는 폭이 좁은데다 가로수를 어중간한 자리에 심어놓아 휠체어 한 대도 지나다니기 어렵다. 물길 산책로로 내려가려면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지 않는다. 시위자들의 거친 몸짓은 책하더라도 정당한 호소는 귀담아 들었길 바란다.

보신각 타종이 끝나고 밀리는 인파를 헤집어 을지로 쪽으로 가려는데, 광교사거리 북쪽 도로에서 경찰버스들이 길게 줄지어서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바로 뒤가 청계천. 낙상사고를 막기 위해 경찰버스로 병풍을 둘렀던 것이다.

길이 열린 광교사거리를 간신히 빠져 나와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도 폭죽 터지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은은한 보신각종을 들으면서 새해 소망을 빌려 했는데 폭죽들의 굉음에 홀린 탓인지 애써 거기까지 갔던 이유를 밥솥 태우듯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내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조이담·도시문화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