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 예순의 신춘문예 새내기

好學 2010. 6. 22. 21:29

 

[만물상] 예순의 신춘문예 새내기

 

 

 

1918년 영국 작가 홀 케인이 옵서버지(紙)에 ‘최고의 작품을 쓸 수 있는 평균 나이는 37세’라는 글을 썼다.

그러자 78세의 토머스 하디가 케인에게 보내는 답장을 옵서버에 실었다.

‘호메로스가 서사시를 노래한 것은 나이 들어 시력을 잃은 뒤였고, 아이스킬로스가 최고 비극을 쓴 것도 예순을 넘기고였으며, 소포클레스는 아흔이 다 돼 최고 작품을 썼습니다.

에우리피데스는 마흔 넘겨 글쓰기를 시작해 일흔까지 계속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공쿠르상과 권위를 다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한림원)상의 재작년 소설부문 수상자는 베르나르 뒤 부슈롱이라는 76세 노인이었다. 수상작 ‘짧은 뱀’은 뒤 부슈롱이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은퇴해 처음 쓴 데뷔작이었다. 중세 북해의 동토(凍土)로 이주해 간 사람들의 거친 삶을 다룬 설화소설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최종 심사에서 ‘변화무쌍한 황혼의 상상력’에 표를 몰아줬다.

▶올해 회갑을 맞은 박찬순씨가 새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에 당선해 등단했다. 모르긴 해도 신춘문예 소설 사상 최고령 당선자 아닌가 싶다. 외국영화 번역가로 일해 온 그는 나이에 쏠리는 눈길을 “요즘 누가 환갑잔치 하나요”라는 한마디로 물리쳤다. 그 말처럼 그는 수상작 ‘가리봉 양꼬치’를 쓰느라 꼬박 한 해 동안 조선족 사람들을 만나고 경찰서와 병원을 돌며 현장취재를 했다고 한다.

▶문학을 향한 열정엔 나이가 따로 없다면서도 서른 넘어 등단하면 으레 ‘늦깎이’로 치던 문단이다. 황석영과 최인호는 고교 때 데뷔했다. 박완서와 복거일이 마흔 안팎에 등단하자 문단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요즘엔 마흔 넘은 신인들이 적지 않게 나오면서 ‘문학청년’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졌다. 나아가 60세 신춘문예 새내기의 출현엔 문학현상을 넘는 무엇이 있다. ‘젊은 노년’이다.

▶눈 어둡고 몸 굳어 발톱깎기가 전쟁과 평화처럼 파란만장한 게 노년이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그런 67세에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박찬순씨는 “유한한 삶을 행동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에서 신춘문예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감각은 따를 수 없지만 체험을 녹여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작품을 쓰겠다”고 했다. 조금 무뎌도 절절한 삶의 진정성이 담긴 글, 그 밑천이 경험과 연륜이다. 예순 살 문학 새내기는 세상의 노년들에게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