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주 동양명언 : 진정한 師道란 바른 삶의 가치를 일깨우고 북돋는 것임을 재론합니다..
◈ [금주 명언] - 無貴無賤하며 無長無少니, 道之所存이 師之所存也니라.
◆ [독음] - 무귀무천 무장무소, 도지소존 사지소존야.
◆ [한자] - 없을 무/ 귀할 귀 /없을 무/ 천할 천/ 없을 무/ 길 장/ 없을 무/ 적을 소/ 도리 도/ 어조사 지/ 바 소/ 있을 존/ 스승 사/ 어조사 지/ 있을 존/ 어조사 야
▶ [출전] - 『古文眞寶(고문진보)』〈師說(사설)〉
◈ [해석] - 귀(貴)함도 없고 천(賤)함도 없으며, 나이 많은 것도 없고 적은 것도 없다.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 [어구풀이]
☞ 無貴無賤無長無少(무귀무천 무장무소) : 빈부귀천(貧富貴賤)과 남녀노소(男女老少) 등 모든 인위적인 조건들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바른 도리(道理)를 삶의 스승으로 삼는 전제에서는 아무런 인위적 조건들이 상관이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 道之所存 師之所存也(도지소존 사지소존야) : 도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작금의 피폐한 사도(師道)의 가치를 개선하는 관건은 진정한 인간의 바른 도리를 확인하고 진작할 수 있는 가치를 정립하고 그것으로부터 확산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근본적인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 [해설] -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을 전후해 언론매체에서는 제자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스승의 모습을 클로우즈업하고 사제간의 정을 바로 정립해야 한다는 기사를 접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더 없이 각박해지고 상막해지고 있는 교육 풍토와 문제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교육에 대한 이론과 정책을 역설하고 열띤 토론을 벌일 때 항상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표현으로 포장하는 모습을 많이 접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에게는 지금도 냉엄한 경쟁 논리를 바탕으로 오로지 학력과 일류만을 추종하고 지향하는 좁은 공간 속으로 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일류라는 괴물만을 추앙하는 학벌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닌 현실은 결국 강한 경쟁력으로 좁은 공간을 뚫고 나온 소수의 아이들에게는 많은 주목과 혜택으로 큰 대가를 부여하지만, 정작 좁은 공간을 뚫지 못한 다수의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눈길이나 배려가 전무(全無)한 실정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만 잘 살면 그만이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그래서 일신(一身)의 출세와 영달(榮達)만을 쫓아가는 이기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주의 명언을 쓴 당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 역시 이렇게 말을 이어갑니다.
" 옛날의 성인은 보통사람들보다 뛰어나기가 엄청났음에도 오히려 또한 스승을 좇아 물었건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인보다 부족함이 또한 큼에도 불구하고 스승에서 배우기를 부끄러이 여긴다. 이렇기 때문에 성인이 더욱 성인다워질수록, 우인(愚人)은 더욱 더 어리석어진다. " [ 古之聖人 其出人也 遠矣 猶且從師而問焉. 今之衆人 其下聖人也 亦遠矣 而恥學於師. 是故 聖益聖 愚益愚. ]
또한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단순하게 교육 문제를 개선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듯이, 난맥(亂脈)을 보이는 교육 문제 역시 민주주의의 정착과 복지 등 사회 전체가 소외층 등 약자의 입장을 더 많이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회 구조와 의식 구조가 정착될 때 교육 현실도 완화되고 개선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만이 아닌 남을 배려하고 도와줄 수 있는 세상,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 주는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며 노력하는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가야 할 당당한 이 땅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원론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바른 가치와 냉철한 논리로 건전한 가치관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사회 전반의 건강한 가치 체계가 바로 잡힐 수 있는 첩경이라는 점을 재차 부연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참스승의 자세 역시 그런 바른 삶의 가치를 일깨우고 북돋울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