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13. 향신료는 왜 비쌌을까?

好學 2010. 4. 29. 21:12

 

13. 향신료는 왜 비쌌을까?

 

 

 

15세기 유럽에서는 비단과 향신료 같은 동양 물건들이 비싼 값에 팔렸다. 동방무역(東方貿易)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에는 각지의 상인이 모두 모여 교역(交易)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1254~1324)는 1271년에 바그다드와 페르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먼 여행을 떠났다. 중국에 도착한 마르코 폴로는 당시 몽고의 통치자였던 쿠빌라이 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20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을 썼다. 긴 여행에서 마르코 폴로가 보고 들은 것을 담은 <동방견문록>은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마르코 폴로와 루카 파치올리를 배출한 베네치아는 오래전부터 경쟁관계에 있었던 제노바를 제치고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베네치아 인들은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 자리한 콘스탄티노플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 배를 타고 나가 장사를 했다. 그곳은 인도와 중국, 페르시아에서 귀한 물건들을 싣고 온 배들이 짐을 부리는 곳이었다.
 
십자군 전쟁 이후 북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제노바 같은 도시들을 중심으로 동방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유럽에서 동양물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베네치아 인들은 인도에서 보석, 비단, 향신료를 들여와 비싼 값에 팔았다. 특히, 바닐라, 후추, 육두구 같은 향신료가 귀했다. 베네치아에서는 육두구 열매 하나가 금화 한 닢에 거래될 정도였다.
 
향신료 값은 왜 그렇게 비쌌을까? 중세 말에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을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아주 단순한 음식을 먹었다. 중세에는 지금 먹는 음식들이 없었다. 감자와 토마토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1492년 이후에야 유럽에 들어왔다. 커피와 차, 코코아도 마찬가지였다.
 
과일이나 야채처럼 쉽게 상하는 것들은 오래 보관하거나 운반하기 어려워서 유럽인들은 대부분 곡식으로 만든 죽이나 빵, 고기를 먹고 살았다. 고기를 오래 저장하기 위해서는 소금에 절여 보관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금에 절인 고기는 질기고 맛도 떨어졌다. 이런 고기를 맛있게 만들려면 양념이 필요했는데 인도에서 가져온 향신료가 가장 맛이 좋았다.
 
유럽의 동방무역은 오스만 투르크 족이 비잔틴제국을 점령하기 전까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비잔틴제국은 유럽과 아시아, 흑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여 교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는 각지의 상인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비잔틴제국은 동방의 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종교 역시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를 중심으로 그리스정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십자군 원정과 이슬람 세력과의 오랜 전쟁 때문에 국력이 쇠락해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투르크 족에 의해 멸망하였다. 오스만 투르크 족은 콘스탄티노플의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어 수도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포르투갈이 강력한 해상국가로 떠올랐다. 유럽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 자리한 포르투갈은 15세기, 아프리카의 서부 해안선을 따라 인도로 가는 새로운 바닷길의 개척 앞장섰다.
 
1498년에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는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가장 남쪽 끝에 있는 곳에 도착해 희망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양을 따라 항해를 계속해서 인도까지 갈 수 있는 바닷길을 열었다. 포르투갈 인들은 아프리카의 해안지역에 무역을 위한 특별지구를 만들고, 흑인들에게 유리알이나 술처럼 시시한 물건들을 준 대가로 금과 보석을 받았다. 또 인도의 고아, 페르시아 만의 호르무즈,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같은 도시들도 포르투갈의 땅이 되었다. 포르투갈은 활발하게 아시아, 아프리카와 무역을 벌였다.
 
하지만 포르투갈 인들과 아시아, 아프리카 인들의 무역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포르투갈 인들은 거래를 위해 매번 원주민들과 전쟁을 일으켰다. 그렇게 거래가 시작된 도시 중 몇 곳은 나중에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어 더욱 심하게 약탈당했다. 이렇게 유럽인들은 칼과 총의 힘을 빌려 유럽 밖으로 뻗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