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11. 유럽 경제를 살찌운 십자군 전쟁

好學 2010. 4. 29. 21:10

 

11. 유럽 경제를 살찌운 십자군 전쟁

 

 

십자군전쟁을 통해 아라비아 숫자와 복식부기(複式簿記) 같은 아랍의 발전된 문화를 받아들인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사업(事業)의 흐름과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역사 속에는 엄청난 재앙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세 유럽의 십자군전쟁도 그런 경우의 하나이다.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크리스트교도들에게 이교도인 유태인과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예수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 성지를 이교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를 믿는 셀주크 투르크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교황의 주장은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와 남부 이탈리아의 기사들은 변변한 무기도 갖추지 못한 채 외투에 빨간 십자가를 꿰매고 십자군이 되어 성지로 향했다. 크리스트교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사들의 뒤를 따랐다.
 
1099년 7월 15일,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해 곳곳에 십자군의 나라가 세워졌다. 그러나 십자군의 승리는 그리 왜라지 못했다. 200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은 1291년 마지막 보루인 아코가 함락되면서 막을 내렸다.
 
십자군전쟁은 인간의 가장 야만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참혹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십자군전쟁으로 유럽인들은 우수한 이슬람 문화와 비잔틴문화를 받아들여 경제, 문화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아랍 국가들은 크리스트교 국가들에 비해 군사적인 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월등히 앞서 있었다. 아랍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고전들을 보관하고 연구해 뛰어난 수학자와 천문학자, 예술가와 상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아랍인들은 독특한 숫자 체계를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가 바로 그것이다. 아라비아 숫자는 원래 인도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아랍인들에 의해 유럽에 전해져 아라비아 숫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라비아 숫자 중에서도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0’은 특히 중요했다. 숫자 ‘0’의 발명으로 곱셈과 분수 계산이 한결 쉬워졌고, 수를 표현할 때도 0, 1, 2, 3, 4, 5, 6, 7, 8, 9를 써서 열 배마다 윗자리로 올려 나아가는 십진법으로 간단하게 쓸 수 있었다.
 
유럽인들은 십자군 원정을 통해 아라비아 숫자를 처음으로 배웠다. 발 빠른 상인들을 중심으로 아라비아 숫자는 그때까지 쓰이던 로마 숫자를 빠르게 대신했다.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하면 계산이 훨씬 더 간단했고, 장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중세 유럽의 상인들은 오래전부터 장사를 통해 벌어들인 돈과 나간 돈을 장부에 기록했다. 그러나 기록 방법은 매우 단순해서 장부에 필요한 내용을 낙서처럼 긁적여 놓는 게 전부였다. 누구에게 어떤 물건을 얼마에 팔았는지를 쓰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중세의 상인들은 오늘날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간단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조차 하지 못했다. 많은 상인들이 자기가 계산을 정확히 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심지어 농민들은 손수건으로 매듭을 만들어 계산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거래 규모를 파악할 수 없었고, 중세 사람들은 거래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라비아 숫자와 함께 장부를 더 간단하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방법도 전해졌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복식부기가 그것이다. 유럽에 복식부기를 처음으로 널리 알린 사람은 이탈리아의 루카 파치올리(1445~1510년)이다. 그러나 파치올리가 복식부기를 발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아랍과 이탈리아의 상인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오던 복식부기를 파치올리가 책으로 알기 쉽게 정리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복식부기의 기본은 거래상의 모든 과정을 두 번씩 적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상인 포도주 한 통을 10두카넨을 받고 팔았다면 포도주 재고 칸에는 ‘-1개’, 현금 칸에는 ‘+10두카넨’이라고 쓴다. 모든 거래를 이렇게 기록하면 어느 때라도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를 만들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대차대조표는 회사의 경영 상태를 숫자로 기록한 표이다. 대차대조표는 양쪽에 접시가 하나씩 있는 저울과 같다. 왼쪽 접시에는 회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돈과 수입을 쓰며 ‘차변(借邊)’이라고 한다. 오른쪽 접시에는 지불한 돈을 기록하며 ‘대변(貸邊)’이라고 한다. 양쪽 접시는 항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만약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면 무언가 실수가 있다는 뜻이다.
 
복식부기를 쓴 뒤로 사람들의 사업의 흐름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복식부기를 이용하면 돈과 물건이 어디에서 어떻게 얼마나 움직이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거래 규모 또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또 회사가 잘 운영될 것인지 아닌지를 미리 계산해 볼 수 있어 돈을 빌리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복식부기는 빠르게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다. 복식부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보통 더 많은 돈을 벌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