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12. 시계 발명 이후 달라진 경제생활

好學 2010. 4. 29. 21:11

 

12. 시계 발명 이후 달라진 경제생활

 

 

 기계 시계(時計)가 발명된 후 시간(時間)은 일을 하는 데 하나의 기준(基準)이 되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 기도할 시간에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미 원시시대부터 시간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사람들은 해가 뜨면 일어나서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일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또 곡식이 익고 과일이 열리는 계절이 되면 추수를 하고 축제를 열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시간은 더욱 중요해졌다. 해마다 가뭄이나 홍수가 언제 일어나는지를 알면 농사의 시기를 조절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집트와 수메르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관찰해 달력을 만들었다.
 
시간을 측정하려는 시도도 계속되었다. 이집트 학자들은 밤에는 별의 흐름을 보고 낮에는 물시계의 도움을 받아 하루를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었다. 물시계는 좁은 구멍을 통하여 물이 일정한 속도로 그곳에 떨어지게 하여 고이는 물의 분량과 줄어든 물의 분량을 헤아려서 시간을 재는 도구이다.
 
이집트 학자들은 낮과 밤을 각각 10시간으로 보고 새벽과 초저녁 시간을 2시간씩 계산해 오늘날처럼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었다. 하지만 해 뜨는 시각에 낮이 시작되고 해 지는 시각에 낮이 끝난다고 보았기 때문에 밤의 1시간과 낮의 1시간은 길이가 달랐다. 또 여름에는 겨울보다 낮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럼에도 해의 위치는 줄곧 시간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세상 어디를 가나 같은 시각에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는 것을 옛날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중세가 되자 정확한 시간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우선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그랬다. 엄격한 규칙에 따라 생활했던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기도나 식사를 정확히 제 시간에 해야만 했다. 수도원 밖의 사람들도 시간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수도원에서는 기도시간이 되면 종을 울렸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썼던 시계는 글자판이 없이 무거운 추를 매단 것으로 매일 15분 정도의 오차가 있었다.
 
마침내 몇몇 사람들이 톱니바퀴, 추, 추를 거는 막대기를 이용해 기계시계를 만들었다. 누가 처음으로 시계를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280년부터 1300년 사이에 유럽 곳곳에서 시계가 발명된 곳만은 확실하다.
 
맨 처음 만들어진 시계는 바늘이 하나뿐이었는데 이 바늘이 톱니바퀴에 연결되어 동그란 판 위를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두 번째 시계 바늘은 한참 뒤에야 만들어졌다. 최초의 시계는 요즘 우리가 쓰는 시계에 비하면 몹시 부정확했다. 톱니바퀴를 정확하게 만들 연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전에 쓰던 물시계나 해시계보다는 정확했고 해의 움직임에 상관없이 움직였다.
 
기계시계의 발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시계를 발명한 사람들조차 그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시계(時計)는 교회의 행사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늘 똑 같은 간격(間隔)으로 시간을 알렸다. 시간(時間)은 더 이상 힘 있는 자들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지(意志)와는 상관없이 세상 어디에서나 일정(一定)하게 움직이는 자연현상(自然現象)이 되었다. 
 
상인들은 시계가 아주 쓸모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돈이 얼마나 들고 나는지 뿐만 아니라 언제 들고 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돈의 흐름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면 미리 준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시계의 발명으로 상인들은 들어오고 나가는 돈뿐 아니라 시간도 계산하지 시작했다. 돈과 함께 시간도 아껴야 할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교회의 시계탑이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저마다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일했다. 시간을 정확히 재는 것은 먹고사는 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시간은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일상에도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 영원히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 시간에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교회는 점점 사람들의 삶에서 멀어졌다.
 
더 나아가 시간은 일을 하는 데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전에는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시간이 날씨나 숙련된 장인의 결정에 따라 정해졌다. ‘푸른 월요일’이 그런 경우이다. 독일의 방직공장에서는 옷감을 염색할 때 보통 옷감을 일요일에 물에 담가두었다가 월요일에 꺼내어 말렸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옷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며 일을 쉬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기계시계의 발명과 함께 점차 사라져서 16세기에 독일 하르츠 광산의 광부들은 정해진 근무시간에 따라 일하고 근무시간에 따라 임금을 받았다.
 
미국의 사회학자 루이스 멈퍼드(1895~1990)는 시계를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멈퍼드는 기계시대 덕분에 사람들이 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공장을 세워 지금과 같은 경제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았다.
 
중세유럽은 오랫동안 이슬람 국가에 경제적, 문화적으로 뒤쳐져 있었으나 기계시계 발명 이후 기술적 우위를 점하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시계는 인도와 중국으로 퍼져나갔고, 아프리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