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神 論]God.Jesus.성령

나팔절과 예수 그리스도

好學 2010. 4. 12. 20:41

 

나팔절과 예수 그리스도

 

 

지금까지 유월절을 시작하여 넉 달 농사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적 의미로 고찰하여 보았다.

 

짧게 정리하면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기념하는 절기이고,

무교절은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계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고,

초실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으며,

칠칠절은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절기였고,

넉 달 농사는 절기는 아니지만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이 세상에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복음이 어떻게 세계만방으로 퍼져 나갔으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해 내는 시기임을 알았다.

 

그래서 성령 강림 이후 넉 달 동안을 성도를 구원하는 넉 달 농사라는 이름으로 살펴보았다.

이제 넉 달 동안 농사를 다 지으면 곡식과 가리지를 갈라내어서 이제 추수하여 창고에 들이는 시기이다.

 

유월절을 시작하여 넉 달 농사까지가 예수님의 과거 사역과 현재의 사역을 담고 있다면, 가을에 추수한 곡식을 창고에 들이는 것은 아직 이루어질 사역이다.

 

절기를 통하여서 예수님의 역사적 사역을 어제와 오늘과 내일로 살펴 본 것처럼 이제 예수님의 사역 중에 남은 것은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시는 일이다.

 

넉 달 농사까지가 현재적 의미가 된다면 이제 남은 나팔절 이하 속죄일과 초막절은 미래적 사건으로 남겨져 있다.

 

절기의 약속대로 라면 예수님은 나팔절이 되면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소리로 강림하셔야만 한다.

이는 하나님의 각본이 그렇게 짜여져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팔절엔 반드시 오셔야만 한다.

 

성도로서는 더 말할 나위 없이 기쁘고 즐거운 날이 되지만, 복음을 거역한 자들에게는 엄청난 저주의 날이 된다.

 

 

그럼 이제부터 나팔절 절기를 통하여서 계시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떻게 감추어져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참고적으로 유월절에서 넉 달 농사까지는 이미 성취되어진 것을 바탕으로 살펴보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였지만, 이제부터 전개되는 나팔절 이하 가을 절기는 앞으로 이루어질 절기들이므로 단정적인 해석을 금하고 이렇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유추적인 해석을 하고자 한다.

 

혹 지혜가 부족함에도 앞서가는 해석을 하는 우를 피하고자 함이다.

 

괜히 오버하여 하나님의 뜻을 그르칠까 두려운 마음에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범주 안에서 상고하고자 한다.

 

 

나팔절

 

레23:24-25=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나팔절은 가을 절기로서 7월 1일 날에 지켜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칠칠절 이후 넉 달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나팔절이 되기까지는 특별한 성회가 없었다. 오직 월삭과 안식일 날에만 성회로 모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나팔절이 되면 그 동안 농사를 짓느라 누리지 못한 쉼들은 절기를 통하여서 누리게 된다.

 

나팔절이 되면 제사장은 언덕에 올라 온 종일 나팔을 불었다.

이는 백성들을 성전으로 불러 모으고자 함이다.

이 때 나팔 소리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넉 달 동안 지은 농산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서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드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나팔 소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절에 불려지는 나팔 소리를 소망 삼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왜냐하면! 나팔절에 울려 퍼지는 나팔소리와 함께 안식의 절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럼 먼저 이스라엘에게 있어 나팔소리의 의미는 무엇인지부터 상고해 보자.

 

구약 시대 불려진 나팔은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는데 사용하였다.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예배를 알릴 때 불었고,

② 여행의 출발을 알릴 때 불었고,

③ 국가의 전쟁을 알릴 때 불었고,

④ 백성을 소집 할 때 불었고,

⑤ 정기적 명절을 알릴 때 불었고,

⑥ 년 중 새 달의 시작을 알릴 때 불었고,

⑦ 특별한 희생제물이 바쳐지는 제사 때 불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나팔소리에 따라 움직였다.

 

이스라엘에게는 두가지 나팔이 있다.

양각나팔(쇼파르)과, 은 나팔(하쪼쯔라)이 있다.

 

양각 나팔은 주로 성회나 희년을 알릴 때 백성을 성전으로 불러들일 때 불었다.

은 나팔은 주로 행군할 때나 아니면 전쟁에 출정 할 때와 같이 급박할 때 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의 나팔소리가 어떻게 울리느냐에 따라서 행동을 달리 하였다.

 

민 10: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은 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하나를 불 때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으로 모였고, 두 나팔을 불 때는 족장들이 모였다.

 

민 10:3-4=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그리고 그냥 단번에 부느냐 아니면 울려 부느냐에 따라서도 백성들의 움직임이 달랐다.

 

쉽게 말해서 모든 백성을 소집 할 때는 그냥 한번 “빵” 하고 불지만, 전쟁이나 급박한 일이 나면 “빵 ~ ~ 빵~ ~빵” 하면서 울려 불었다.

 

민 10:5-10=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6 제 이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소리를 울려 불 것이며 7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8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찌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찌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10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팔은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지시를 나타내는 싸인이었다.

제사장들이 부는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는 비밀의 소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멀리서도 제사장이 부는 나팔 소리만 듣고도 모이라는 소리인지 도망가라는 소리인지 분간을 하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은 나팔이든 양각나팔이든 백성들을 불러 모을 때 불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가 나면 일손을 멈추고 준비를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소리였던 것이다.

 

 

나팔절은 민간력으로서 새로운 해의 시작 달이다.

 

나팔절(로쉬 하산나)은 “새롭게 된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7월 1일을 민간력으로 새해 첫날로 지냈다. 성력으로는 유월절이 새해 첫달이지만 민간력으로는 7월이 새해 첫달이 된다. 성력과 민간력은 약 7달 차이가 난다. 즉 유월절이 1월이고 나팔절은 7월이다.

 

그런데 유월절은 성력으로서의 시작달이지만, 나팔절은 민간력으로서의 시작달인 것이다. 성력은 음력과 같고 민간력은 양력과 같다.

 

우리나라 명절로 말하면 유월절은 설날과 같고, 나팔절은 신정과 같지만 시기적으로 가을이라서 추석과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출 애굽한 백성들에겐 유월절이 최고의 명절이라고 한다면 가나안에 들어와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나팔절을 비롯한 가을절기는 최고의 명절이다.

 

왜냐하면! 한 해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쌓였던 모든 수고와 슬픔들을 잊고 긴 안식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때이기 때문이다. 속죄일이 가을절기에 포함 되어 있는 연유도 다 이와 같다.

 

모든 죄를 다 어린 양의 피로서 씻김 받고 그동안의 모든 죄과로부터 벗어나 홀가분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매 칠일마다 안식일을 지냈고, 매 칠년마다 안식년으로 지내다가, 일곱 안식년을 지나 오십년째가 되면 희년으로 지켰다. 그 희년을 가을절기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절을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 지냈던 것이다.

 

이는 나팔절은 희년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애굽의 종에서 풀려난 것은 유월절이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남의 집에 종이 된 사람들은 희년이 되면 모두가 원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희년이 되면 노예에서 해방이 되고, 잃어버린 기업을 다시 찾게 되고, 모든 빚을 탕감 받게 된다. 모든 것으로부터 면제 받는 날이 희년이다. 그 희년이 나팔절 가을 절기부터 시작이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절을 학수고대하고 기다렸다.

 

그렇다면 신약에서의 나팔절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가?

나팔절이란? 글자 그대로 나팔을 부는 날을 말한다.

그러므로 나팔절은 날의 의미보다 나팔에 의미가 있다. (물론 유월절을 시작하여 정한 날짜를 그대로 완성하셨기에 나팔절의 날짜를 소홀히 여길 수는 없다. 하지만 미래적 사건이기 때문에 날짜보다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언제 나팔이 울려 퍼지는지 또한 나팔이 울려 퍼질 때 나팔절이 갖는 의미와 동일한 사건이 언제 이루어지는지 살펴보면 실제적 나팔절을 이해할 수가 있어질 것이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나팔이 울려퍼지는 날이다.

 

성경이 예수님의 재림 때의 모습을 나팔 소리와 연관시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팔절의 희년의 소식을 안고 오시기 때문이다.

 

마 24:30-31=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나팔소리로 전 세계에 흩어진 택한 백성들을 모은다고 하신다.

이는 마치 나팔절에 제사장이 언덕에 올라 하루 종일 나팔을 불어 백성들을 예루살렘 성전(성전이 지어지기 전에는 회막)으로 불러 모으는 것과 같다.

 

사도 바울 역시도 장차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신다고 하였다.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강림하시게 될 때에 주 안에서 잠자던 자들이 다 일어나고 이 세상에 아직 살아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던 성도들은 모두 공중으로 끌어 올려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고 한다. 이 얼마나 흥분되는 말인가!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부르던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그날이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것 이상 더 기쁜 소식은 없다.

명실상부하게 세상의 수고를 마치고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천국에서 안식하는 때이다.

 

사도 바울은 장차 올 이 영광을 보고서 현재의 고난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사도요한도 일곱째 나팔이 울려 불게 될 때에 이 세상은 끝장이 나고 성도들은 약속대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성령에 감동으로 보았다.

 

계 10:7=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주님의 재림에 나팔 소리와 함께 비로서 죄의 몸으로부터 풀려나는 영원한 희년이 이루어진다.

 

레 25:8-12=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희년이 되면 전국방방곡곡에서 자유케 하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면 매였던 종들이 다 돌아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에도 천사들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희년에 불려진 나팔처럼 나팔을 불어 자기 백성들을 모은다고 하였다.

 

마 24:30-31=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우리가 즐겨 부르던 168장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1.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 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후렴]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2. 무덤 속에 잠자던 자 그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승리 얻으리

   주의 택한 모든 성도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3.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우리 알 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서도록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이 영광된 순간이 바로 7월 1일 나팔절이다.

 

 

이스라엘은 나팔절을 신년절이라고도 하여서 나팔절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에서는 새해를 축하하는 제사를 드렸다.

 

이는 장차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계시사적 의미로 보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구약의 선지자들도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면 흩어지고 쫓겨났던 백성들이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사 27:13 “그 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렘 4:5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결국 하늘로부터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는 성도를 하늘 예루살렘으로 불러 드리는 소리인 것이다.

이는 친히 하나님이 이 땅에 강림하셔서 자기 백성들을 데리고 가시고자 하심이다.

 

 

하나님이 강림 하실 때마다 나팔소리가 났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실 때에는 반드시 나팔소리 가운데서 강림하셨다.

 

먼저 구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타나실 때의 모습을 살펴보자. 어떤 모습들이 일어났는가?

 

최초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실 때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이다.

 

출 19:16-19= “제3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 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한 번도 하나님을 만나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출애굽을 하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나팔 소리를 울리면서 강림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에 두려워 떨며 모세에게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만나면 죽을 것 같으니 당신이 대신하여 만나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출 20:18-19=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나팔소리로 시내산에 강림 하신 하나님은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이셨다. 마치 재림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흡사하다.

 

요엘 선지자는 그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날은 성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복된 날이지만 복음을 배척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던 자들에게는 전무후무한 형벌의 날이 된다고 하였다.

 

욜 2:1-2=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 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말 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여호와의 날이란? 하나님이 세상에 강림하시는 날이며 곧 심판의 날이란 뜻이다.

성도에게 있어선 기쁨의 나팔 소리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겐 심판의 소리이다.

 

이는 마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나팔소리와도 같다.

이스라엘 백성에겐 승리의 나팔 소리였지만 여리고성 사람들에겐 심판의 나팔 소리였다.

 

철옹성과 같던 여리고 성이 제사장들이 나팔 소리에 무너져 내린 것과 같이 장차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강림하시는 예수님에 의하여 무너져 내릴 것이다.

 

수 6:4-5=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

 

여리고 성의 멸망은 곧 이 세상의 멸망을 예표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 일곱째 달에 일곱째 나팔이 울려 퍼지는 날이 임박하였다는 것이다.

 

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고고학자들이 말을 빌리면 당시 여리고성은 무너질 수 없는 성이라고 한다.

성벽은 2중벽으로서 외벽이 두께가 2미터나 되고, 내벽의 두께가 4미터나 되는 도합 6미터의 벽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높이가 각 10미터로서 당시로서는 그 어떠한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가 없는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성이 나팔 소리에 무너져 내렸다.

누가 나팔 소리에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믿었겠는가?

 

생각해 보라

 

여리고 성 밖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짓거리들을 성 안에서 살던 여리고 백성들이 무어라고 했겠는가? 이 무슨 병정놀이를 하는가? 라고 조롱하지 않았겠는가?

 

여러분들이 그림을 한번 상상해 보라.

앞에서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뒤에서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빙빙 돌고 잇는 모습들을,,,

과연 이들의 모습을 정상이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여리고성 사람들은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또 이스라엘 백성 역시도 나팔소리에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리고 성 사람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고 안 믿고 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무너지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불신 속에서도 그 약속을 이루셨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예수님이 공중에서 재림한다고 하면 믿겠는가?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공중에서 구름을 타고 사람이 온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과학의 시대에 구름타고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아무리 성경이 그렇게 말하였다 하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이지 실제가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믿는 사람을 정신 나간 사람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절기를 살펴보면서 그 절기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하나 가을 절기는 실제가 아니고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믿음이란? 상식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약속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이니 나팔을 불며 돌라고 하면 돌면 된다.

그런데 무너졌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이야기이다.

천국도 실제이고 지옥도 실제이다.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이 실제이고, 모세가 실제인물이고, 여리고 성이 실제이고,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에 심판 당한 것도 실제이고, 다윗 왕이 실제 인물이고, 예수를 죽인 빌라도도 실제 인물이고,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왕이었던 헤롯도 실제인물이었듯이, 예수님도 실제였다.

 

성경이 이스라엘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기록한 것은 실제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도 실제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감람산에서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제자들은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예수님에게 자랑하였다.

예수님 참 멋있지요!

너희 눈에는 그렇게 보이느냐?

그런데 내 눈에는 잠시 후면 벽돌 하나도 벽돌위에 쌓여 있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라고 하셨다.

 

마 24:1-2=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이에 제자들이 그럼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은 언제쯤입니까? 그럴 때 징조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마 24: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종말의 여러 징조들을 말씀하셨다. 물론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라고 하신 것들이 역사 이래로 늘 있어 왔던 것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거짓 선지자들이 출현하여도 옛날부터 있었는데,,,,,,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옛날에도 일어났는데,,,,

세상에 전쟁은 인류역사가 생기고부터 있어 왔던 일인데 뭘,,,,,,,,,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그져 노망난 늙은이의 농담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때 인간들이 관심사가 노아 시대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사고 팔고 하는 그 때에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나팔소리와 함께 재림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마 24:30-31=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42-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한다.

천지가 없어져도 예수님 말씀은 없어지지 않으니 약속을 믿으라고 한다.

 

베드로는 이 약속은 헛소리가 아니고 실제라고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다.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이 친히 들은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벧후 1:14-18=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가 예수님의 재림을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은 조롱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약속이 믿어지는 사람은 복 된 자이다.

하늘로부터 울려 퍼질 그 나팔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복된 자이다.

 

성도는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하는 그 약속을 바보처럼 우직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화려하던 예루살렘 성전은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하여 처참하리만치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창고에는 성전 지붕을 금으로 입히려고 엄청난 양의 금을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면서 그 금이 흘러내리면서 돌과 돌 사이에 박혀서 그 금을 캐낸다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한치의 틀림도 없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덧놓이지 않고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은 외식 종교의 멸망을 보여주는 계시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대 목사와 교인들은 성전을 짓는답시고 수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잇다.

 

화려함으로 따진다면 예루살렘 성전과도 뒤지지 않는다. 이 성전을 짓는다고 얼마나 영혼들을 사냥하였는가?

 

예루살렘 성전에 의인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가 흘러넘쳤듯이, 이 시대 교회들은 교인들의 고혈을 짜내서 가득 채우고 있다.

 

모두가 자기 조상들의 일들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거짓 종교가 진짜처럼 행세를 했듯이 지금도 거짓 신앙이 진짜인 냥 행세를 한다.

 

이 시대 교회들은 유대교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일컬어 외식신앙이라고 하였다.

외식이란? 영화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초림은 재림의 그림자적 성격을 담고 있다.

이는 곧 초림 때의 영적 상태가 재림 때의 영적 상태와 동일하다는 뜻이다.

예수님 초림 때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율법 신앙을 예수님은 한마디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외식신앙이라고 하였다.

당시의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겉은 뻔지르르 한데 그 속은 온갖 더러운 탐욕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성전중심으로 이권이 개입하여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이를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라고 하였다.

지금 이 시대 교회의 모습은 바로 예수님께서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저주하였던 그 모습 그대로를 교회들이 지니고 있다.

교회마다 각종 종교적 행사와 천사의 말과 같은 좋은 언어는 난무하는데 그 속에 생명이 없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없다.

아니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예수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피가 없다.

죽은 송장들만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회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예수님의 지적대로 교회도 목사도 교인들도 회칠한 무덤들이다.

 

이제 진짜와 가짜가 갈라질 때가 가까웠다.

예수님께서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를 갈라내실 것이다.

 

마 13:47-50=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속에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면 좋은 고기이고 피가 없으면 나쁜 고기이다.

 

신앙은 속일 수가 없다.

안에 있는 것이 겉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어 보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안다.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있는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없는 자는 자기를 말할 것이다.

예수라고 하여서 다 예수가 아니다.

나팔절을 통하여서 약속하신 예수는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피흘려 주신 분이시다.

 

이제 그 피흘려 주신 주님이 하늘로부터 피 뿌린 옷을 입고 오실 것이다.

 

계 19:13-16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왜? 피뿌린 옷을 입고 오시는가?

 

그 분이 바로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이야기 하면 조롱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하는 일을 수치로 여긴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한다고 일부러 피를 감추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 대신 좋은 가정 만들기, 좋은 아버지 되기, 부부 십계명,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등등의 이야기로 세상과 화목하게 친하게 지내자고 한다.

 

이제 주님은 피뿌린 옷을 입고 오셔서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잡아서 불 구덩이에 쳐 넣을 것이다.

 

기독교는 입신양명하는 종교가 아니다.

세상에 빌 붙어서 아양 떠는 종교가 아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하기 위하여 피 터지게 싸우는 종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하다가 피 뿌린 옷을 입고 죽어가는 종교이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 죽어갔다.

바울이 그러했고 12사도들이 그러했다.

이들은 오로지 하나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하다가 피 흘림을 당하였다.

 

이제 그 피 흘리신 예수님이 피 뿌린 옷을 입고 재림을 하신다.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지 말라

 

재림의 날짜를 7월 1일이라고 단정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아직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재림의 날짜를 인간들에게 알게 해 주시지 않았다. 알려고도 하지 말란다.

 

마 24:36=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행 1:6-7=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 알 바 아니요”

 

살전 5:1= “때와 시기에 관하여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 ”

 

 

예수님께서 재림의 날짜를 알려 주시지 않은 것은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가려내기 위함이다.

참 신자는 유월절의 예수님을 성령 안에서 영접함으로서 이미 나팔절을 영적으로 경험하고 살아간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자는 이미 영적으로는 나팔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성도는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주인이 현재 있는 것으로 알고 하루 하루 열심히 주인의 뜻에 따라서 살아간다.

 

그러나 거짓 신자들은 그 속에 나팔절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올 때가 되어서 일하겠다고 요령을 피운다.

주인이 올 때를 날짜 계산하고 있다.

날짜를 계산한다는 것은 그 속에 예수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나팔절을 계산하며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이미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나팔절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성도에게 있어 나팔절이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성령 안에서 선취적으로 일어났고 누리고 있다.

 

장차 역사 속에서 도래할 나팔절은 이미 선취적으로 누리고 있는 성도들에겐 희년의 소식이 되지만, 선취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그 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심판의 날이 된다.

 

그러므로 “나팔절을 기다리십시오” 라고 하지 말고 “나팔절 안에서 사십시오” 라고 해야 한다.

 

마음 속에 영적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합니까? 라고 묻게 된다.

 

그러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한다고 야단법석을 떤다.

 

나팔절은 내가 노력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 하는 것인가?

 

1998년도 10월 28일에 주님이 재림한다고 흰 옷을 입고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주님을 준비하는 것인가?

그들은 주님이 재림하니 직장도 그만두고 교회에서만 살고 재산은 팔아서 교회에다 헌금을 하라고 하였다.

그들이 어리석다고 비웃으면서도 이 시대 교인들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한다는 것은 고작하여서 종교적 선행을 쌓는 것일 뿐이다.

 

재림 신앙으로 무장한다고 하는 서울의 어느 교회는 주님 맞을 준비를 한다고 백점 신앙을 가르친다.

그 백점 신앙이라는 것이 가관이다.

 

주일 성수하면 10점

수요예배 나오면 10점

금요기도회 나오면 10점

구역예배 참석하면 10점

온전한 십일조 하면 10접

하루 성경 석장씩 보면 10점

매일 새벽기도 하면 10점

교회에 봉사하면 10점

각 기관에 충성하면 10점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면 10점

거기다가 전도하면 만점 교인이란다.

 

이렇게 가르치니 온 교인들이 목사가 시키는대로 하여 예수님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심지어 세상과 단절하겠다고 TV도 보지 않는다.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이 시대 교회들도 가르치는 내용을 들여다 보면 오십보 백보이다.

 

기껏 해서 가르친다는 것이 윤리 도덕이다.

 

술 담배 먹던 사람은 술 담배를 끊고,

나쁜 짓하지 말고,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착한 사람이 되라는,,,등등 이런 류이다.

 

이게 성경 어디에 약속되어 있는가?

사도 바울은 이런 것을 공교하게 지어낸 말이라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다.

 

 

그럼 예수님께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하신 내용은 무엇인가?

 

마 24장에서 주님이 오실 때 종들에게 당부한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마 24:44-51=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인자가 곧 올테니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당부하시기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라고 한다.

한마디로 복음을 잘 전하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다.

 

요 6:27-29=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은 곧 아버지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다. 즉 예수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와 살이 아니고서는 영생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는 일이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를 말하면서 깨어 있으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잘 증거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고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일이란? 위에 어느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임을 알게 된다.

 

성도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생의 능력이 죄사함의 능력이 무엇으로부터 주어지는가를 증거하는자로 세상에 남겨져 있지 교회를 지키라고 남겨진 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일하라고 하니 제자들이 밭에 나가 농사를 짓거나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일인 줄 알고 있을까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못을 밖아 꼭집어 일러 주셨던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서만 의롭게 되고 구원의 능력이 나온다는 것을 증거하라.

이것이야말로 자기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다.

주님은 이런 성도를 아들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재림 하시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위의 어느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준비하는 자들은 단 한 사람도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다 지옥에 들어간다.

 

예수님의 재림은 준비해서 맞이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자기 안에 나팔절이 이루어진 성도만이 맞이할 수가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만 증거하게 되어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양식을 먹고 있는 자이다.

즉 불법한 자들이다.

세상친구들과 어울려서 술 쳐먹고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놈은 지옥불에 집어 넣겠다고 하신다.

 

나팔절은 유월절의 연장선상에 있는 절기이다.

유월절이 예수님의 죽으심이고 나팔절이 주님의 재림이다.

 

그렇다면 유월절 안에 들어와 있으면 자연히 나팔절 속에 들어온 것이 된다.

 

이는 유월절이 이루어진 사람에게 나팔절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유월절을 경험하고 있는 성도는 이게 믿어진다.

 

나팔절은 유월절이 이루어진 성도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다.

 

유월절이 없으면 나팔절도 없고, 유월절이 있으면 나팔절도 있다.

 

그럼 장차 이루어질 나팔절을 준비하려고 하지 말고 이미 이루어진 유월절 안에서 살아가라.

 

유월절 안에서 사는 것이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라는 것만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피를 증거하는 그대가 유월절 안에 있는 자이다.

 

이제 예수님이 곧 나팔소리로 그대를 찾으러 오실 것이다.

 

계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