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神 論]God.Jesus.성령

칠칠절과 예수 그리스도

好學 2010. 4. 12. 20:40

 

 

칠칠절과 예수 그리스도 (오순절, 맥추절)

 

 

레 23:15-22=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17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찌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18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19 또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년 된 어린 수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20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칠칠절(오순절)은 초실절 이후부터 7주가 지난 후 50일 째가 되는 날(7X7주=49일 이튿날) 에 지키는 절기이다.

 

정월 14일 유월절, 15일 무교절, 16일 초실절을 지내고 나면 7주를 지난 후 50일째가 칠칠절이다.

 

유대인들은 큰 의미로서의 3대 절기를 지낸다.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을 한데 묶어서 봄 절기로 지키고, 50일 후 칠칠절은 여름 절기로, 그리고 넉달후 가을 7월이 되면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을 지킨다.

 

봄절기를 통틀어서 무교절기라고 하고, 여름절기를 칠칠절(오순절, 맥추절)이라고 하고, 가을 절기를 통틀어서 장막절(초막절, 수장절)이라고 하여 3대 절기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남자는 반드시 일년 삼차씩 예루살렘에 올라가도록 율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삼차란?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말한다.

 

출 23:14-17=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칠칠절이라는 말은 7안식일을 일곱 번 지난 후에 드린다고 해서 77절이라고 한다.

또는 초실절 이후 50일 째에 드리기 때문에 신약에서는 펜테코스트’(pentecost) 라고도 부르며 이것을 번역해서 ‘오순절’(5X10순) 이라고도 부른다.

 

시기적으로는 모맥 곧 밀과 보리를 거둘 때 드리는 절기라고 해서 맥추절(출 23:16)이라고도 한다.

구약시대에는 첫 곡식을 거두는 절기로 지켰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BC 586년 이후에는 출애굽 이후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켜졌다.

 

칠칠절을 맥추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처음 익은 보리 열매를 드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달력으로는 5월 하순이나 6월 초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민 28:2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각각의 절기마다 예수그리스도와 관계된 것이므로 칠칠절 역시 예수님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서서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담고 있었고, 무교절은 예수님의 무덤 속에 계심을 담고 있었고,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담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 50일째가 칠칠절이다.

 

구약 시대에는 초실절 후 50일째가 되는 날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자.

 

 

50일째 율법을 받았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한 후 셋째 달에 시내산에 도착 하였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서 하나님이 강림 하실 터이니 백성들을 정결케 하라고 하셨다.

 

출 19:1-3=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제 삼월 곧 그 때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출 19:10-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11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출 19:15-17=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 하니라 16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월 14일 날 출애굽 하였다. 그리곤 셋째 달에 시내 산에 도착하였다.

한 달을 삼십일로 계산하면 첫째 달 14일에 애굽을 빠져 나왔으니 17일이 된다.

 

그리고 둘째 달은 온전하게 삼십일을 광야로 행진하여 셋째 달에 시내 산에 도착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를 시내 산으로 올라가니 하나님께서 오늘과 내일은 백성들을 성결케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사흘 후에 모든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시내 산에 강림하셔서 율법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면 셈으로 첫째 달 17일+둘째 달 30일+셋째 달 5일= 52일이 된다.

이렇게 되면 초실절후 50일째가 아니라 52일째가 된다.

이 계산은 유월절부터 시작한 계산이다.

그러나 칠칠절은 초실절 후 50일째 지키는 절기이므로 초실절은 유월절 이틀 후이니 50일이 된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상세하게 알지 못하고 살았다.

다만 조상들이 구전으로 전해주는 하나님만 알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애굽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

 

이들이 출애굽 후에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율법을 받을 동안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여호와라고 불렀던 것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출애굽 시키셨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아브라함의 약속에 의하여 생겨난 민족이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시고 언약을 맺으셨다.

이제 그 약속의 장소로 불러들이시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약속으로 일해가시는 하나님을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다.

 

지금 모세로부터 출애굽한 백성들 모두가 애굽에서 태어난 애굽 사람이다.

자연히 약속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 턱이 없다.

 

가나안 땅에서 살려면 약속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그 땅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광야로 불러내시고 지금 시내 산으로 인도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주시는 것이다.

 

애굽에서 알던 하나님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 주시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시내 산에서 알려 주시고자 한 것이다.

 

이제부터 애굽에서 처럼 제 멋대로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율법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죄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섬기게 되므로 그 하나님은 곧 우상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십계명을 주시면서 제 일성이 “다른 신”을 없애라는 것이다.

이는 곧 너희들이 지금까지 알고 잇던 신은 모두가 다른 신이란 말이다.

즉 너희들이 애굽에서 부르던 하나님까지도 다른 하나님이란 말이다.

 

애굽에서 알던 하나님은 자신들을 도와주는 신인 줄 알았는데 시내산 율법을 주시면서 나타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이제는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자는 모두가 하나님의 징벌대상이 된다.

그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

결국 율법은 이스라엘의 우상성을 고발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심으로서 이스라엘을 율법 아래 가두어 버리셨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이 지배 받는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누구든지 말씀 밖으로 나가면 애굽 사람으로 간주가 되어 징벌을 당하게 된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다른 종자들이다 라는 것을 시내산에서 알려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으로 가면서 율법으로 애굽에서 알던 하나님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옛 사람이 아니고 이젠 새 사람들이다.

 

 

칠칠절엔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려라

 

레 23:15-17 =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로 삼을 것이요

 

새 소제란? 새 것이란 말이다.

즉 묵은 곡식이 아니라 새로 수확한 곡식의 제사를 말한다.

 

새 소제를 의인화 하면 출애굽한 이스라에 백성을 말한다.

 

이젠 이스라엘은 애굽의 옛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온 새 사람이다.

애굽에선 나를 위해 살았지만 가나안에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출 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는 이유는 이제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자라는 것이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던 애굽에 사람은 모두가 홍해바다를 건너면서 죽었다.

 

이제 이스라엘은 새로운 사람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 민족인 것이다.

광야에서 하늘에서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한 것은 이제는 애굽에서 처럼 이스라엘의 힘으로 살아가는 족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심으로서 살아가는 민족임을 알려 주고 계신 것이다.

 

이스라엘에겐 율법이란 생명이다.

누구든지 율법 안에 있으면 삶을 얻지만 율법 밖으로 나가면 저주를 받게 된다.

 

칠칠절엔 새 소제로 만든 떡을 만들어서 요제로 드리면서 우리는 이제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라고 고백하여야 한다.

 

요제란? 살아난다는 뜻이다.

나를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사는 자로 살아났다는 뜻이다.

 

 

구약의 칠칠절은 신약의 오순절이다.

 

칠칠절에 드려진 새 소제를 신약적 의미로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초실절의 첫 열매가 되셔서 살아나시고 난 후 50일째가 되는 날에 발생 되었다.

 

칠칠절은 초실절 50일째 지켜졌다.

앞서서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이라고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째에 칠칠절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구약시대엔 초실절후 50일째가 되는 칠칠절 날에는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았다.

신약에선 예수님 부활 후 50일째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한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40일을 이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다.

 

행 1:1-5=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부활 후 40일 만에 하늘나라로 승천하시고 그 후 열흘 만에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 만에 약속대로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 주셨다.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강림은 어떤 성령운동을 하는 혹자들의 말처럼 120문도가 기도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성령은 인간이 달라고 기도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령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비 성경적인 무속적 행위이다.

성령의 오심은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1500년 전에 칠칠절이 되면 성령이 오시기로 작정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가면 구약의 절기를 통하여서 약속했던 대로 성령을 보내 줄 터이니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 것이다.

반드시 그 날이 되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셔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면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실 것이다.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주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실 것이다.

 

 

인간이 알고 있는 예수와 성령이 알게 해 주시는 예수는 다르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을 알아야 했지만 신약에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알던 하나님과 율법을 통하여서 알던 하나님이 달랐다.

율법을 통하여서 전혀 다른 하나님을 알았듯이 신약에선 성령을 통하여서 전혀 다른 메시야를 알게 된다.

 

구약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하여서 장치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며 살았다.

그들이 알고 있던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세계 속에 강국이 되게 하여서 세계를 지배하게 해 주는 메시야였다.

다윗의 영광을 재현 시켜줄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들이 알고 있는 메시야는 광야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와서 세상 부귀영광을 주겠다고 하는 마귀이며 적 그리스도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적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 적 그리스도가 바로 육(애굽)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진짜 그리스도로 오셨음에도 자신들이 육적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죽여 버린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죽임으로서 과거 애굽에서 나올 때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 우상으로 알았던 하나님을 섬긴 꼴이 되고 말았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안 그리스도나 애굽에서 안 하나님이나 거짓이기에는 모두가 동일하다.

 

제자들 역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모두 도망을 친 것은 유대인들이 알고 있던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물과 배를 버리고 쫓아다니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과거에 버렸던 그물과 배를 다시 장만하여 고기를 잡았다는 것은 베드로 역시 예수 믿고 한탕 잡아 보고자 따라 다녔음이 드러난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 직업 대신 예수라는 직업을 택한 것뿐이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았지만 예수를 만나고 난 후에는 예수를 통해서 먹고 살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베드로가 알고 있던 메시야관이 육적으로 알고 있던 메시야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주시기로 하신 메시야는 전혀 다른 메시야이다.

하나님이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는 인간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아니고 인간의 죄와 사망에 문제를 해결해 주실 메시야이다.

 

이 메시야는 성령이 오셔야만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제 성령이 오시면 전혀 다른 메시야를 알려 주실 것이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칠칠절날 시내산에서 만난 하나님처럼 인간을 도와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서 인간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으로 알게 될 것이다.

신약으로 말하면 성도를 도와주는 예수님이 아니라 새 언약을 위해서 성도를 제물로 사용하시는 예수님임을 알게 된다.

 

이처럼 성령이 알게 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는 전혀 다른 분이시다.

성령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자들은 이제부터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과 싸우는 전사로 세상에 보내어진다.

 

 

새로운 피조물은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과 싸우는 군대이다.

 

성령은 성령운동을 하는 거짓 목사들의 주장대로 성령 받기로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이 오시는 분이 아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인간의 열심으로 온 성령은 성령을 가장한 악령일 뿐이다.

그들이 받은 성령이 악령인 이유는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는데서 밝히 드러난다.

 

성령은 아들에 영이다.

성령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거쳐서 오시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성령을 일컬어 십자가의 영 또는 아들에 영이라고도 한다.

 

아들에 영이라 함은 아들에게 종속되었다는 말이다.

성령이 능력이 없어서 독단적으로 일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은 아들을 증거키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만 증거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만 증거하신다.

아들이 한 일이란? 십자가 사건이다.

 

그래서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는 결코 증거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지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는 것은 다른 복음이라 하였다.

만약 자신을 포함해서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라고 경고하였다.

 

 

진짜 성령과 가짜 성령은 오직 십자가로만 분별할 수 있다.

 

진짜 성령인지 가짜 성령인지는 무엇을 증거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성령을 빙자하여 육신에 일을 생각하는 자는 다 이단이다.

 

즉 교회 부흥을 외치거나 기복신앙을 외치거나 병 고침이나 기적을 행하는 것으로 이용한다면 그 성령은 성령의 이름을 가장한 악령이다.

 

때로는 복음 증거의 형장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들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모두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는 차원에서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일어난 초월적 사건은 반드시 시선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고정시키게 되어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 그 모든 것은 악령에 사로잡힌 증거이다.

그 사람이 교회를 부흥시키고, 천사의 말을 하고,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를 하고, 구제를 하고 사회에 봉사를 한다고 하여도 귀신의 놀음이지 성령의 역사는 아니다.

 

교회됨의 증거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데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들의 모인 집단이다.

 

이로보건데 지금 이 시대 교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성령 운동은 모두가 가짜임이 드러난다.

성령을 말하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증거가 없는 가짜들이다.

엄청난 종교적 사기극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성령 속에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시대 교회와 목사들은 성령을 인간의 소원을 성취하는 능력으로 이용하고자 한다. 모두가 가짜이고 저주 받을 독사의 새끼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를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말이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어째서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가?

살아가는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 아래서 태어난다.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위하여 살도록 주장한다.

그래서 신을 섬겨도 자신을 위해서 섬긴다.

 

이처럼 자신을 위해서 섬기는 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적으로 우상숭배자로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칠칠절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자로 부름을 받는다.

 

무엇이든지 자기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우상숭배적 본능을 가진 자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잇다.

자기를 위해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전혀 다른 인간으로 만든 것이다.

 

성령이 이제는 자기를 살려주신 분을 위해서 살게 하신다.

 

고후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자기를 증명하는 자가 아니라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로서 살도록 하신다.

 

옛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지만 새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자랑한다.

 

바울은 성도를 일컬어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한다.

이젠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한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칠칠절 성령으로 새로운 소제로서 거듭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가 되었다.

그리스도가 안에서 사는 자는 자연히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가 안에서 사는 자는 모든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 중심으로 판단을 한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생겨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형제가 되지만 육적으로 한 형제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남이다.

 

성령은 성도의 땅에 족보를 끊어내고 하늘에 족보로 입적시켰다.

 

구약에선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개 같이 취급을 하였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고 난 후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담이 헐어져 버렸다. 육적인 조건으로 나누지 않는다.

 

엡 2:11-18=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새 소제)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새로운 피조물들은 육체로 사람을 판단치 않는다.

육체로 판단치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로 판단하지 않고 오직 복음으로만 판단한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땅에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새 사람 즉 새 소제인 것이다.

 

 

새 소제의 떡 두덩이를 요제로 드렸다는 의미

 

떡 두덩이란? 유대인과 이빙인 두 민족을 말한다.

하지만 한 가루 속에서 만들어진 떡이다.

그러므로 한 민족이다.

이는 예수그리스도가 깨어져서 만들어 낸 성도를 말한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누어졌다.

성령이 임함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민족과 혈통으로 따지지 않는다.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엡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한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령강림이후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로 나누어진다.

성령 안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생겨난 것이다.

 

성령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사람은 새로운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유대교식으로 지켜져 오던 신앙을 버려야 한다.

 

유대교 신앙은 한마디로 날과 달과 절기와 안식일이나 먹고 마시는 것들을 지키는 의식종교였다. 구약 시대엔 율법이 말하는 문자대로 지켜야만 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는 문자가 의미하는 내용을 예수님께서 자기 몸으로 다 이루신 것을 믿어야 한다.

성령 안에서는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칠칠절 이후에는 신앙이 의식에서 믿음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구약에서 지켜져 오던 성전이나, 안식일이나, 각종 제사나 십일조와 같은 것들은 폐하여졌다.

 

이제는 특별한 장소와 특별한 날을 지키면 구약으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므로 악한 것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징벌 대상이 된다.

 

히 10:28-29=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하나님은 아들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돌리는 자를 용서치 않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말씀으로 참과 거짓을 구분한다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약을 완성 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은 참이 되고 진리 안에 속한 자가 된다.

 

그러나 반면에 아직도 구약 식으로 어떤 장소를 고집하거나, 어떤 날을 지켜야 한다거나, 어떤 사람을 따르게 하면 거짓이 되고 비 진리에 속한 자가 된다.

 

즉 교회를 거룩하다고 하거나 주일 날을 성별하거나 목사를 추종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도말하신 것을 지키게 하는 것이므로 저주를 받게 된다.

 

그래서 성령 받기 전의 제자들에 모습과, 성령을 받고 난 후의 모습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울이다.

 

사도바울은 성령을 받고 난 후 이젠 구약식 예배를 깨트리는데 앞장을 섰다.

구약식으로 지키는 것이 예수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그리스도가 성전이고, 예수그리스도가 제물이고, 예수그리스도가 날이고 절기이고, 예수그리스도가 예물이라고 증거하였다.

 

새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를 예수그리스도가 다 이루셨다고 증거해야 한다.

인간이 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고 증거해야 한다.

성도가 할 것이란 예수그리스도께서 다 하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 뿐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증거하여야 한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새 소제로 살아난 사람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게 된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순절 성령을 받고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목이 자기들에게 집중이 되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영광을 예수그리스도에게 돌렸다.

 

이 시대 억지로라도 자기에게 관심사를 돌리고자 하는 성령 운동하는 목사들의 행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는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행할 수 없는 일이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돌리지만 거짓 성령을 받은 자들은 사람들이 시선을 자기에게로 고정시키려고 한다. 성령은 오로지 예수그리스도의 종을 만들지 자기 종을 만들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자기를 따르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누가 칠칠절 새 소제가 되어서 요제로 살아난 자들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증거하는 자들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하는 그대가 바로 칠칠절 새 소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