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神 論]God.Jesus.성령

유월절과 예수그리스도

好學 2010. 4. 12. 20:36

 

유월절과 예수그리스도

 

레 23:5절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스라엘에게 있어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날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유월절은 민족 최대의 축제일이다.

(마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과 같은 기쁨의 날이다.)

 

유월절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절기이다.

절기는 율법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절기를 주시면서 자손대대로 지켜 행할 것을 명령하셨다.

 

목적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방되었는가를 알리기 위함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었는지를 기억시키기 위함이다. 어떻게 살아 났는지 기념키 위함이다.

 

그래서 모든 절기를 지키는 것을 세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유월절 제물이 될 양의 조건과 양을 잡을 날짜와 시간과 잡는 방법까지 또한 양고기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등등 모든 것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이는 절기란? 단순한 먹고 마시는 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월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는 출애굽기 12장에 잘 기록되어 있다.

 

출 12:1-14=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양을 취하되 그 어린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유월”(逾月) 이라는 어원적 의미는 “넘어 갔다” 는 뜻이다.

영어로는 페스오버(passover) 이다.

즉 지나갔다는 뜻이다.

 

그럼 무엇으로부터 넘어갔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애굽에 왕 바로에게 나아가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내어 놓으라고 했다.

 

그러나 애굽의 왕 바로는 하나님이 어떤 놈인데 감히 내 소유물을 내어 놓으라고 하느냐? 라고 노발 대발하였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여 이스라엘을 놓아 주기를 거절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면서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려 징벌하셨다.

 

재앙을 당하면서도 바로는 완강하게 버텼다. 재앙의 강도는 점점 더 심해지고 이제 마지막으로 애굽에 모든 장자를 죽이는 심판을 단행하고자 하셨다.

 

모세는 바로에게 최후통첩을 한다.

 

당시 애굽은 온 세상의 중심이었으므로 애굽이 징벌을 당한다는 것은 곧 온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즉 온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이다. 이는 곧 장차 이 세상이 심판 당할 것을 예표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살아 남는 것은 성도가 장차 올 멸망으로부터 살아 남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장자를 죽인다는 것은 가문의 문을 닫겠다는 뜻이다. 인간의 씨를 말리겠다는 뜻이다. 세상을 정리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애굽(세상)에 속한고로 장자가 죽는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도 함께 망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효가 되어 버린다.

그러면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무 능력한 분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애굽을 심판하기 전에 모세에게 이스라엘에게 살 길을 알려 주셨다.

그 길은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 흠 없는 어린양이 대신 죽어 주는 것이다.

흠 없는 어린 양의 생명과 이스라엘의 생명을 맞 바꾸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 죽은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발라 놓으라고 하였다. 그래야 죽음을 집행하는 천사가 집집마다 다닐 때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하여 그 집엔 들어가지 말고 넘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이스라엘이 고안한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이다.)

 

모세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고기는 불고기를 해 먹고 그 어린 양의 피는 대문에 바름으로서 살아났다.

이스라엘은 어린양이 대신 죽어 줌으로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나게 되었다.

그래서 유월절이다. 죽음으로부터 넘어 갔다고 해서 유월절이다.

 

이처럼 유월절이란?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이 넘어 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의 살아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너희 같은 자들 때문에 어린 양이 희생당하였다는 것이다.

즉 어린양의 희생을 기리는데 목적이 있다.

 

그럼 여기서 의문을 품고 묻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은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죽음에서 살아날 방법을 알려 주셨는가? 이다.

왜? 애굽 백성들과 다르게 대하느냐 이다. 애굽 사람 입장에서 보면 불공평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피조물의 존재를 목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성경의 증거는 피조물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서라고 한다.

즉 약속을 위해서 피조물을 존재케 하셨다는 말이다.

 

이 말은 애굽이든 이스라엘이든 하나님의 약속을 펼쳐 보이는 도구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약속 속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

즉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애굽은 지옥을 위해서 사용당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천국을 위해서 사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불공평하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원래 없던 자였는데 약속을 위해서 만들어 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이스라엘은 다만 천국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된 자들이기 때문에 죽음 속에서도 살아난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

언약의 내용은 아브라함을 복의 조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복이란? 한마디로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니 아브라함 후손은 죽음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할 운명을 안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들이 어떤 곳에 있더라도 반드시 내가 복을 주고 말겠다고 하셨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있다.

 

창세기 15장 13-1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희 후손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사백년이 지난 사대 만에 이곳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다.

이스라엘이 돌아오는데 있어서 반드시 이스라엘을 괴롭힌 놈들은 죽이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살아남고 애굽은 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떤 방식으로 지켜내셨는가를 살펴보자.

 

출 2장 23-25절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한 때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구출하기로 작정하셨다.

구출하는 방법이 어린양을 이스라엘 대신 죽이는 방식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을 단행하시기 전에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라고 하셨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의 명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집마다 사람의 인수에 따라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에 바르라고 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를 문에 다 바른 후에 하나님은 애굽 전역에 죽음에 사자들을 보내서 장자들을 죽이는 심판을 단행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죽음에 사자들을 보내면서 당부하셨다.  너희가 애굽 전역에 다니면서 심판을 단행 할 때에 장자를 죽이려고 어떤 집으로 들어 갈 때에 먼저 그 집 문을 보라고 하였다.

어떤 집이든지 그 집 문지방이나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발려져 있는 집은 심판을 하지 말고 넘어가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 집은 이미 내가 어린양을 장자 대신 죽인 집이니 넘어가라고 하신 것이다.

대신 죽음을 대속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 때문에 살아난 것이다. 이스라엘에겐 어린양이란 생명의 은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 너희가 어린양의 희생 때문에 죽음에서 살아난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유월절을 기념하여 지키라고 명절로 지정해 주신 것이다.

 

명절이나 기념일들은 모두가 경험된 역사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지켜지는 것이다. 인간들 생활에서 가장 잘 기억 할 수 있는 것이 기념일이나 명절이다.

기념은 경험된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다.

 

출 12:24-27=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치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우리는 어린 양 때문에 살았습니다” 라는 것을 세상에 자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약에서 바울은 절기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라고 하였다. 유월절이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라고 한다면 예수님 때문에 살아난 성도는 이스라엘처럼 난 예수님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엡 2:4-7=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성도가 사는 목적을 하나님의 은혜에 풍성함을 오고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즉 예수 때문에 살아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절기나 월삭이나 모두가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도대체 예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유월절을 성취하셨는가 살펴보자.

 

예수님과 유월절은 어떤 관계인가?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사건을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유월절을 어떻게 지내셨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킨 모습 속에 힌트가 들어가 있지나 않을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셨다.

 

마태복음 26장 1-29절 =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 ~

17 무교절의 첫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가라사대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19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 ~

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위의 말씀을 찬찬히 실펴 보면 예수님이 지킨 유월절은 구약의 유월절과 다르게 지켰음을 보게 된다.

 

모세가 가르쳐준 대로 유월절을 지키려면 반드시 어린양을 잡아서 지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지키는 유월절에는 양이 없고 대신 떡과 포도주가 있었다. 즉 양고기 대신에 떡으로 대체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왜? 예수님은 조상 대대로 전통적으로 지켜 오던 방식으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는가?

문자적으로 본다면 지금 예수님은 모세가 지시한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 의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옛 언약의 관점에서 본다면 반칙인 셈이다.

 

구약의 방식과 다른 모습으로 유월절을 지키면서 예수님은 양고기 대신 먹는 그 떡을 자신의 몸이라고 하신다.

떡을 자신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곧 떡으로 자신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곧 예수님 자신이 곧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로 구약의 유월절의 완성하시고 새로운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새 언약이라고 한다.

 

새 언약이라 함은 언약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젠 옛날 방식으로 절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

 

새 언약 하에선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이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을 내 대신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유월절을 지킴이 된다.

 

내가 예수님의 죽으심 때문에 죽음의 저주로부터 벗어 날 수 있게 되었음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로 행하신 마지막 만찬이신 유월절을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념하라고 하신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이 행하는 성만찬을 주께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성만찬의 의미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고전 11:23-29=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만찬은 연중행사로 치러지는 의식이 아니다.

성도의 신앙고백이고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왜? 날 살려 두셨는지? 삶이며 존재에 대한 의미이다.

 

기념이란? 경험된 것을 현재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는 것은 곧 예수님의 죽으심을 지나간 사건으로 관념화 하지 말고 현재적인 사건으로 삶화 하라는 것이다.

사상이 아니라 실제라는 말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만찬의 의미를 모르고 하는 것은 주의 몸을 범하는 죄와 같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곧 자신을 대신하여 죽어주신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면 아무리 지극 정성으로 골백번 성만찬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

또한 예수님의 죽으심 속에 자신의 죽음을 보지 못하는 자도 성만찬을 매일 하여도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의 죽음에 의미를 모르고 행하는 성만찬은 종교놀음이지 신앙이 아니다. 죽을 죄에 해당되는 악인 것이다.

 

마치 유대인들이 의미도 모른 채 유월절을 연례행사화 한 것처럼 말이다.

유월절을 엄숙하게 치르면서도 정작 유월절의 실상이신 예수님을 죽여 버린 유대인들의 전철을 지금 이 시대 교회들이 밟고 있다.

이 시대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성만찬은 화석화 된지가 오래이다.

거룩한 종교적인 쇼를 하고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면서 어린양의 죽음 안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다 연례행사처럼 형식화되었고 의식은 있으나 내용이 없는 껍데기 유월절을 지킨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유월절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지 이스라엘의 유월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유월절이란? 여호와를 위한 유월절이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유월절을 행하셨다는 말이다.

왜?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희생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셔야만 했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제시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약속에 동참할 생각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 약속을 성취해 나가시는 것이다.

즉 유월절은 하나님이 스스로가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벌리신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유월절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셨다.

이스라엘은 그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구경만 하면 된다.

어린양을 잡는 아이디어나 그 피를 문에다 바르는 아이디어 모두가 하나님께서 제시한 것이다.

하나님 혼자서 죽고 사는 문제를 제시하셨다.

인간은 가타부타 할 것이 없다.

그져 따라오면 된다.

싫으면 말고,,,,

 

신약에선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든 방식이지 인간이 만든 방식이 아니다.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는 알아서 해라. 강요하지 않는다.

믿어지면 감사 할 일이고, 안 믿어져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럼 유월절 어린양의 어떤 것이 예수님의 그림자이고, 예수님은 어떻게 유월절 어린양의 실상으로 자신의 몸으로 성취하셨는가?

 

 

첫째로, 유월절 어린 양은 흠 없는 초태생이라야 한다.

 

출12:3-5절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각 사람의 식양을 따라서 너희 어린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 취하고”

 

출 13:2=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출 13:12=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초태생이란? 첫째 즉 맏물을 말한다. 흠이 없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죽음과 장자의 죽음을 맛 바꾸었다.

그렇다면 장자 대신 죽은 어린 양은 곧 장자란 말이다.

 

그리고 유월절에 희생할 어린 양은 나흘간 잘 간직하였다가 흠이 발견 되지 않아야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흠이 있다면 유월절 양으로 부적합 하였다.

 

이는 장차 성도를 대신할 대속자는 흠 없는 즉 죄 없는 분이라야 한다는 뜻이다.

흠 없는 어린양이라고 하였으니 죄 없는 장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알다시피 이 세상에 그 어떤 인간이 죄 없는 장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죄인인 아담의 후손으로 난 자가 인간이다.

그렇다면 인간 중에선 흠 없는 어린양과 같은 죄 없는 장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흠 없는 어린 양으로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한 것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흠 없는 하나님의 장자가 이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죽어 주실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가 신약의 예수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예수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하나님의 장자여야 된다.

 

과연 예수님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장자가 맞는가?

만약 성경이 이를 증거해 주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메시야 라고 믿는 예수는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로 오신 분이 아니므로 전 세계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계시된 대속자의 실상이라고 한다면 맏아들이어야 하고 죄가 없어야 한다.

 

사도 바울의 증거를 들어보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첫 열매라고 하고 맏아들이라고 증거해 주고 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전 15:22-24=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니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그리고 예수님은 흠 없는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히 9:14=“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한 편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예수님의 반대 편에 서서 죽이고자 하던 자들은 뭐라고 하는지 살펴보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유대인이나 예수님을 사형은 선고한 빌라도나 빌라도 부인조차도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증거해 주고 있다.

 

마 27:19, 24=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빌라도가…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 27:23 =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 ”

 

눅 23:4, 13-15=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막 14:55=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모든 성경은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맏 아들이라고 증거해 주고 있으므로 최소한도 유월절 어린양의 여러 조건 중에서 흠 없는 초태생이 맞다는 것을 확인 할 수가 있다.

 

 

둘째로, 유월절 양은 정월 14일 날에 죽어야 한다.

 

출 12:6=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레 23: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은 정월 14일 날에 죽었다.

구약의 유월절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약 1500년 간극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시간과 공간을 제약받지 않고 성취가 되어진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이라고 한다면 예수님도 정월 14일에 죽어야 한다. 그래야 유월절 절기를 통해서 계시되어진 약속의 메시야가 된다.

 

만약 예수님께서 정월 15일에 죽었다거나 아니면 일찍 10일에 죽었다거나 아니면 2월 달에 죽었다고 한다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예언된 실상이 아니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1500년 전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그 시간에 죽도록 역사하셨다.

 

예수님 또한 유월절 어린 양이 죽는 날을 맞추기 위하여 사셨음을 보게 된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유월절 6개월 전인 초막절에 형이 진짜 메시아라면 이런 시골에 있지 말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당당하게 밝히라고 하였다.

 

요 7:2-8=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유대로 가소서…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내 때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거부하셨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아니 싫다고 할 때는 언제이고 올라 가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예수님은 형제들이 자신을 드러내라고 할 때는 가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유대인으로서의 초막절 명절을 지켜야 했으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지켰다.

 

형제들과의 대화를 보면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요한복음 7장을 보면 도리어 만천하에 드러내 놓고 활동하셨음을 보게 된다.

 

요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 때만 하여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때이다.

그래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틈만 나면 예수를 잡아서 죽이고자 하였다.

그래서 종들을 보내서 예수님을 잡아 오라고 하였다.

 

요 7:43-45=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대 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지 않은 것은 예수님이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요 7:30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그 후에도 또 잡으려고 하였으니 그 때도 번번히 실패 하였다.

 

요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당시 제사장들이 어떤 자들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쥐도 새도 모르게 해 치울 수가 있는 권세를 가진 자들이다.

 

그럼에도 잡지 못한 것은 아직은 예수님께서 죽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들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은 인간의 계획을 비껴가는 방식으로 언약을 이루어 가신다.

 

이제 해가 바뀌고 유월절 때가 가까웠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 돌아가셔야 할 때가 이르자 스스로 죽음의 길을 나서게 됨을 보게 된다.

 

초막절에 형제들이 권유할 때와 는 사뭇 다른 행동이 아닐 수가 없다.

 

이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죽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1500년 전에 유월절 절기로 약속하신 것은 유월절 날 즉 정월 14일에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젠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날 잡으라고 나섰다.

 

요 12:23-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32-33=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요 13:1-3=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초막절 때는 때가 아니므로 잡고자 하여도 하나님께서 막았지만 이제는 유월절 양으로서 죽어야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마음을 격동하여 예수님을 잡도록 하였다.

이젠 하나님께서 마귀로 하여금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게 하여 예수를 팔도록 역사하였다.

 

눅 22:1-7=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매 5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기는 죽여야 하는데 명절 때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득 모이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민란이 일어 날까봐 걱정이 되어서 망설였다.

 

만약 민란이 일어나면 로마 군대가 동원되어 예수살렘에 주둔하게 될 것이다. 군인이 주둔하게 되면 창녀들이 자연히 따라 오게 되고 술집도 생기고 할 것이다. 그러면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성이 아니라 창기가 들끓는 곳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것을 잘 아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도 죽이고 민란도 피할 수 있는지 묘수를 찾기에 급급하였다.

 

막 14:1-2=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그래서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일단 민란이 일어날 소지를 없애기 위해 유월절이 지나고 난 후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명절이 지난 후 사람들이 고행으로 돌아간 후에 죽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명절에는 예수님을 죽이지 말자고 서로 묵계하였다.

 

만약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계획대로 유월절 날에 죽지 않고 다른 날에 죽는다면 예수님은 유월절 양의 실상이 될 수가 없다.

 

예루살렘의 치안을 맞고 있던 총독인 빌라도 역시 혹시나 명절에 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예수를 죽이지 않고 놓아주려고 하였다.

 

그래서 빌라도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놓아 주려고 하였다.

 

요 19:10-16=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죽이고 살리는 권세는 빌라도 네가 행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면서 너는 반드시 나를 죽이도록 선고하게 되어 있다고 하셨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란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라면 빌라도는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조정하에 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빌라도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데 사용하신 것이다.

 

여러 정황을 보면 빌라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안 죽이려고 하였으니 끝에는 죽게하고야 만다. 결국 하나님이 이긴 것이고 하나님 뜻대로 사용되었다. 참으로 하나님이 무섭다.

 

요 18:39-40=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저희가 또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더라”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서 죽어야만 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죽어야 할 때가 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래야 1500년 전에 절기로 약속 해 놓으신 것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인간들이 예수님을 안 죽이려고 하였음에도 하나님은 기어이 예수님이 죽도록 하셨다.

 

만약에 빌라도의 의도대로 예수님이 유월절에 죽지 않았다면 2000년 동안 내려온 기독교는 사기가 된다.

 

예배시간마다 외우는 신앙고백을 한번 생각해 보라.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라는 말이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에 권세로 말미암아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죽이는데 가담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오로지 예수님을 약속하신 메시야임을 드러내기 위하여서 이방인인 빌라도를 사용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이방인이라고 하여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서 사용되어지고 있는 자들임을 알 수가 있다.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물의 주의 자리에 앉히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 속에는 천국 갈 사람도 있고, 지옥 갈 사람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신자나 마귀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가룟유다나 빌라도나 대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나 군중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원시켜서 사용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성도의 구원도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성도가 구원받는데 방해 할 수가 없다.

 

이런 사실을 안 바울은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롬 8:33-39=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성도의 구원은 이미 확정 되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이미 얻은 구원의 확신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라.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유월절 양을 잡는 시간과 예수님이 죽는 시간이 일치하다는 것이다.

 

1500년전 하나님은 유월절 양을 잡으면서 장차 예수님께서 죽을 시간까지도 정하여 놓으셨다.

 

 

유월절 어린 양은 해 질 때 잡았다.

 

레 23:5= “정월 14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출 12:6=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본문이 말하는 해질 때라는 것은 두 저녁 사이란 뜻이다.

 

유대인들의 저녁은 두 개가 있다.

 

첫 번째 저녁은 오후로서 낮 12시부터 6시 해 질 때까지 시작되는 저녁(Evening)을 말하고,

두 번째 저녁은 해가 떨어지고 난 후의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저녁(Night)을 말한다.

 

첫 번째 저녁은 오후를 말하고, 두 번째 저녁은 해가 지고난 후의 밤을 말한다.

 

그러므로 해질 때라는 두 저녁 사이는 저녁(낮12시)과, 저녁(오후6시)사이라는 의미이다.

즉 낮 12시부터 오후 6시 사이인 오후 3시를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양을 꼭 1월 14일 오후 3시에 잡았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려면 오후 3시에 죽으셔야 한다. 만약 예수님께서 아침에 죽거나 밤중에 죽거나 새벽에 죽었다고 한다면 1500년 전에 유월절 양으로 계시하신 메시야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이 맞기 때문에 정확하게 유월절 양이 죽는 그 시간에 운명하시도록 하셨다.

 

눅 23:44-46= “때가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마치신 후 운명하시니라

 

마 27:45-50=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위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구시에 운명하셨음을 보게 된다.

 

유대인 시간은 우리 시간과 6시간 차이가 난다.

그러니 성경이 말하는 구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날 두 저녁 사이인 해질 때인 오후 3시에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죽으신 것이다.

 

십자가 형은 사람의 고통을 극대화 하여 죽이는 처형법이다.

너무도 혹독한 형벌이라서 로마인들에게는 집행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아주 극악무도한 자에게만 집행한 악형이다.

 

사람이 십자가에 달아서 서서히 죽음에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므로 보통 십자가에 달리면 죽는 시간이 하루 정도 걸린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사흘간도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리고 구시에 운명하셨다.  

 

막 15: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막 15: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막 15: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삼시에 달려서 구시에 죽으셨으니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6시간 만에 죽으신 것이다.

 

 

유월절 양의 뼈는 꺾지말라

 

통상적인 죄인들의 죽음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빨리 죽을 수가 없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날 시체가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을 율법으로 금하기 때문에 금하였다.

유월절은 목요일 저녁 6시부터 그 이튿날 저녁 6시까지이다.

그렇다면 몇시간만 지나면 유월절 다음 날인 금요일이 되어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된다.

즉 밤이 시작되는 6시 이전에 예수님과 두 강도는 십자가에서 치워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불 가능하다.

안식일에 시체가 나무에 달리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 할 수가 있어질 처지이다.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지 말고 유월절 다음에 죽이자고 한 것도 다 죄수가 죽지 않을 것을 계산하여 안식일에 시체가 나무에 달려 있을까봐서이다.

 

그래서 안식일을 피하고자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는 것을 반대 하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생각대로라면 예수님은 유월절 막바지 시간인 구시 즉 우리시간으로 오후 3시에 죽을 수가 없다. 아직까지 여섯시간만에 죽은 죄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도 로마인도 여섯 시간 만에 죽는다는 것은 애초 생각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다급하여 로마 병정들에게 뇌물을 주고 빨리 죽여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산 사람의 다리를 꺾어서라도 빨리 죽이고자 하였다.

 

요 19:31-36=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36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로마 병정들은 예수님과 같이 달린 강도들의 뼈를 꺾어 버렸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가서 다리를 꺾으려고 하자 이미 운명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리를 꺾지 않고 죽은 것을 확인하려고 창으로 옆구리 찔렀다.

두 강도들은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데 예수님만 죽은 것이다.

그들도 의아해 하였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죽지 라고,,,,

 

의미심장한 것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서 죽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불러 들이셨다는 것이다.

 

요 10: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누가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린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섯시간 만에 운명하신 것이다.

 

보통 상식으로는 사람이 죽으면 머리가 떨어지는데 예수님은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셨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 죽으면 머리가 툭 떨어지는데 예수님은 머리가 툭 떨어지고 나서 죽으셨다. 야! 이제 난 죽어야 하니 영혼아 떠나라고 한 것이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예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것이다.

머리를 숙였다는 것은 죽음을 잡은 자에게 나 이제 죽을께 라고 부른 것이다.

즉 자! 이제 약속의 시간이 되었으니 내 목숨을 거두어 가라고 하셨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성경대로 하신 사건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고전 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이렇게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게 한 것도 다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1500년 전에 이미 하나님은 유월절 양은 절대로 뼈를 꺾지 못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민 9: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규례대로 지킬 것이라”

출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유대인들은 다른 때에는 양고기 뼈를 꺾어서 그 속에 잇는 골수까지 빼내 먹었다.

그런데 유월절 양 만큼은 절대로 뼈를 꺾지 않고 살코기만 먹었다.

 

이는 장차 오실 메시야의 뼈가 꺾이지 아니할 것을 예견하시고 금하셨던 것이다.

 

참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약속을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성취하셨음을 보게 된다. 만약 예수님의 뼈가 꺾였더라면 유월절기를 통하여서 예언 하신 어린 양의 실상이 아니므로 그 예수는 가짜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우리의 유월절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1500년 전에 유월절 양으로서의 예언 된 그 메시야가 맞으시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이 아닌가.

 

 

셋째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신다.

 

출 12:7, 2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것은 그 양의 죽음이 이스라엘의 죽음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천사가 죽음에 재앙을 집행 할 때에 양의 피를 보고 판단하였다. 어느 집이든지 문에 피가 발라져 있으면 그 집을 넘어 갔다.

 

그러므로 실제로 유월절 양의 중요한 것은 그 피이다.

 

피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노아 시대에 피는 생명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피를 먹는다는 것은 곧 생명을 먹는 것이 되므로 살인하는 것과 같아진다. 

 

그래서 성경은 피를 생명처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창 9:4-5=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이에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날 만찬을 하시면서 피로서 새 언약을 세우셨던 것이다. 즉 예수님의 생명으로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

 

마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의 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피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의 피는 죄인을 살게 하려고 피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아담 안에서 죽은 피(생명)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예수님의 죽지 않는 피(생명)를 수혈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땅에 쏟았다는 것은 성도들을 죽음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를 몽땅 수혈시켜 주신 것과 같다.

 

성도가 의롭게 된 것은 오로지 예수그리스도의 피 때문이다.

 

롬 5: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벧전 1:19=“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하나님은 성도의 행실을 보고 구원한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를 보고 구원해 주셨다.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 안에서만 산 자가 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잊어선 안 되는 것은 어린 양의 피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기 위해 흠 없는 어린 양을 죽이셨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구약시대엔 유월절 어린 양의 피에 의미를 모르는 자는 진정한 이스라엘이 아니다.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에 의미를 모르는 자는 성도가 아니다.

 

히 9:14,15=“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다면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만 자랑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세상에 남겨 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케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부정케 하는 자는 용서치 않으신다.

 

히 10:28-29=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눈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어느 놈이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느냐? 라고 하며 비록 나를 포함한 그 어떤 자라 할지라도 십자가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경고를 하였던 것이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마귀는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의 피가 없는 곳에 내린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출 애굽 시대에는 어린 양의 피가 없는 곳에는 인정 사정 없이 죽음의 재앙이 내렸다.

 

지금은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없는 곳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게 된다.

 

그래서 마귀는 어찌하든지 사람의 눈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려고 한다.

그것이 형식으로 본질을 기리는 것이다.

절기를 행사화 하여 지키도록 한다.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가 없는 곳엔 사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 교회들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귀의 놀이터로 전락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곳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존재 이유는 첫째도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하는 것이고, 둘째도 셋째도 그리스도의 피만 증거하여야 한다. 이건 변하면 안된다.

누구라도 예수그리스도의 피만 증거 하는 자가 구원받은 자이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만 증거하는 교회가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고 말았다.

십자가를 증거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아직도 캐캐묵은 그 십자가만 전하느냐 라고 조롱한다.

이젠 십자가를 넘어서 성화를 가르쳐야 되지 않느냐 라고 한다.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에 빛을 밝혀야 되지 않느냐 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가 불교와 윤리 도덕을 경쟁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노아 시대 죄악이 관영한 것처럼 이 시대는 교회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의)는 사라지고 인간의 피(의)가 가득 채워져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은 사라지고 인간들이 행한 일이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의 누룩은 버리라고 한다. 즉 인간의 의를 버리란 말이다.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넷째로, 유월절을 기점으로 하여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

 

출 12: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신 16:1=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새로운 해의 시작이 되게하셨다.

이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다.

그동안 애굽에서 사용하던 달력은 버리고 어린양의 피로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새로운 달력을 주신 것이다.

 

즉 너희들은 이제 애굽 사람이 아니고 어린양으로 인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새로운 달력은 유월절을 기점으로 해의 첫 달을 시작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쓰던 민간력과 출애굽 후에 쓰는 성력이 있다.

민간력과 성력의 차이는 7달이 난다.

즉 애굽에서의 7월 달이 이스라엘의 1월 달인 것이다.

 

◐ 성력과 민간력의 비교표 ◑

성력

민력

현대양력

성력

민 력

현대 양력

1

2

3

4

5

6

7 아빕월

8 시브월

9 시완월

10 담무스

11 압월

12 엘룸

3 - 4월

4 - 5월

5 - 6월

6 - 7월

7 - 8월

8 - 9월

7

8

9

10

11

12

1 에다님

2 말케스

3 기슬러

4 데 벳

5 스 밧

6 아 달

9 -10월

10 -11월

11 -12월

12 - 1월

1 - 2월

2 - 3월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기점으로 해의 첫 달이 되게 하신 것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새 시대가 열릴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의 역사는 예수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주전과 주후로 나누고 있다.

예수님 오시기 전을 BC (Before Christ)라고 하고, 예수님이 오신 후를 AD (Anno Domini)라고 한다.

 

이는 곧 이 세상 역시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세상 역사를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다.

한 사람이 나고 한 사람이 죽는 모든 것이 다 예수그리스도와 상관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새 한 마리가 죽고 사는 문제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다.

 

성도를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 안에서 새로 낳기 때문이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사람으로 살아난 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가족들을 알려 주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자가 가족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난 자가 가족이라고 한다.

 

그러니 땅에 것을 잊어버리라고 한다.

 

골 3: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다른 나이다. 

이전의 나로 살지 말고 예수 안에서 나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하였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하였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도들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다면 성도를 어떤 모습으로 살게 하겠는가?

당연히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모습으로 살게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자가 마음에 할례를 받은 할례당인 것이다. 즉 그리스도만 증거하는 자가 진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란 말이다.

 

누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 한 분 남기시려고 인간의 역사를 통째로 들어서 사용하셨다. 예수를 얻는 사람은 세상 전체를 얻은 것이고 예수를 놓친 사람은 세상 전체를 놓친 사람이다.

 

예수라는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는 사람은 그 보배의 주인이 지켜 주실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핍박을 받아도 복된 것이고, 망하여도 복된 것이고, 교회를 말아 먹어도 복된 것이고, 일가친척 친구들에게 배척을 당하여도 복 된 일이다.

 

만물에 찌끼 같고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남겨 두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바로 수 천년 전에 이스라엘이라는 미약한 민족의 절기 속에 세상에 생명을 주실 보화의 비밀을 감추어 놓으셨다.

 

예수님의 오심이 성경대로 오셨다면 당연히 성경 속에 예수님의 다시 오심도 숨겨져 있을 것이다.

유월절이 그대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성취가 되었다면 또 다른 절기들도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절기는 꼭 알아야 한다.

 

그런데 돈 버러지 같은 잡놈들이 절기를 가지고 성도들의 돈을 빼앗아 내는데 사기를 치고 있으니 어찌 분개하지 아니하겠는가?

 

성경은 내가 먼저 속지 않기 위해서 배워야 하고 나와 함께한 형제들이 속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배워야 한다.

 

내가 소경이면 소경된 잡놈들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개 눈엔 똥만 보인다고 하듯이 성도의 눈엔 예수님의 십자가 피만 보여야 한다.

바울의 눈에는 십자가만 보였기 때문에 신세를 망쳐 가면서도 그 길을 갈 수가 있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의 눈에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밝히 보여지시길 기도한다.

 

그리하여 십자가 외엔 다른 것을 알기를 원치 않는다고 고백한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지길 소원한다.

 

변화산에 베드로에게 오직 예수님만 보였듯이,,,,

 

이 곳이 변화산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동무들의 눈에 유월절 이린양 되신 예수님만 보여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의 열심이 이루어 가실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