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5. 상인들은 왜 계약서를 썼을까?

好學 2009. 11. 8. 14:02

 

5. 상인들은 왜 계약서를 썼을까?

 

 
 
 
문자(文字)의 발명은 경제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문자의 발명으로 상인들은 서로 주고받기도 한 물건에 대해 계약서(契約書)를 썼고 시간과 무게의 단위를 도입했다.
 
기원전 3000년경에 수메르인(人)들은 도시를 세웠을 뿐 아니라 글자도 만들었다. 수메르인들이 만든 글자는 ‘쐐기문자’ 또는 ‘설형문자(楔形文字)’라고 불렸다. 점토판(粘土板) 위에 갈대나 금속으로 그림을 새긴 것이어서 문자의 선이 쐐기 모양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집트에서도 ‘상형문자(象形文字)’라는 독자적인 문자를 만들어 썼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수메르의 설형문자는 해, 물, 강, 남자, 야자를 의미하는 단순한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점토판 위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들은 점점 더 단순한 기호가 되었다. 수메르에는 직업적으로 글자를 새기는 사람이 있어,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전설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점토판 위에 기록했다. 기록이 끝난 점토판은 햇볕에 말리거나 불에 구워져 오랜 세월 동안 보존되었다. 당시 만들어진 점토판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남아 있어 학자들의 연구에 이용되고 있다.
 
5000년 전 수메르인들은 왜 문자를 만들었을까? 우선 문자는 다른 사람들과 지식을 나누기 위해 필요했다. 유프라테스강(江)과 티그리스강(江) 유역에서 농사를 지었던 수메르인들은 홍수가 나는 때를 정확히 예측(豫測)해야만 했다. 홍수가 언제쯤 일어나는 지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다음 해에 농사의 시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한편 왕은 백성들이 내는 세금(稅金)으로 살았기 때문에 언제, 누가, 어떻게 세금을 내야 하는지 백성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그 내용을 기록해 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또 자기의 명성(名聲)이 후세에까지 전해지기를 바랐다. 이런 필요에 의해 문자(文字)가 발명되었던 것이다.
 
문자의 발명은 상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상인들은 늘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상대로 물건을 교환해야 했다. 가죽을 주고 항아리를 받는 차원을 벗어나 거래가 복잡해지자 상인들은 서로 주고받기로 한 물건을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간략하고 손쉬운 기록 체계를 필요로 했다. 문자가 발명되자 상인들은 줄 것과 받을 것에 대해 ‘계약서(契約書)’를 썼다.
 
계약서를 쓰게 되면서 상인들에게는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가 생겨났다. 만약 누군가와 가죽을 거래하기로 계약했다면 사냥 도중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가죽을 준비해야 했다. 또한 상인들은 계약서라는 신뢰할 수 있는 합의를 통해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거래를 틀 수 있게 되었다. 계약서를 보고 줄 것과 받을 것이 합의된 내용대로 거래되었는지 확인 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수메르 상인들은 계약서를 아주 자세하게 썼다. 그들은 거래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점토판에 기록했다. 더 나아가 일정한 무게의 금괴와 은괴를 만들어 가기에 도장을 찍은 다음 물건 값을 지불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자 번거로운 물물교환 과정이 훨씬 간단해졌다.
 
문자의 발명은 경제적인 이익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학분야의 발전을 가져왔다. 수메르인들은 무게를 정확히 재기 위해 단위(單位)를 도입했다. 가장 큰 단위는 25킬로그램짜리 금괴로, 달란트라고 불렀다. 1달란트는 60미나, 1미나는 60세겔로 나뉘었다. 시간의 단위 역시 수메르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지금까지 쓰이는 것 중 하나이다.
 
계약서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계약이 잘 지켜지는지 감독하는 일도 중요해졌다. 단순한 물물교환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복잡한 거래에서는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계약서에 쓰인 내용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반드시 지켜져야 했다. 국가가 이런 감독 기능을 함으로써 수메르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