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정치·경제·사회·문화)

3. 옛날에는 필요한 것을 어떻게 구했을까?

好學 2009. 11. 8. 14:00

 

3. 옛날에는 필요한 것을 어떻게 구했을까?

 

 
 
옛날에는 주로 물물교환(物物交換)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구했다. 물물교환을 통해 노동의 결과물을 서로 나눌 수 있게 되자 개인과 개인을 넘어서 부족 간의 분업이 널리 자리를 잡았다.
 
인간 부족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분업이 이루어지면서 농부들은 밀과 보리를 심었고, 목동들은 염소와 양을 돌보았고, 사냥꾼들은 멀리까지 나가 짐승을 잡아왔다.
 
어느 날 사냥을 나갔던 남자들이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상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왔다. 큼지막하고 배가 볼록 나온 모양의 진흙으로 만든 항아리였다. 거기에는 누군가가 일부러 새겨 넣은 것 같은 무늬도 있었다.
 
인간은 그때까지 동물의 뼈나 나무토막 같은 것을 그릇으로 써 왔지만 항아리가 더 편리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항아리는 물을 길어 오는 데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염소와 양의 젖을 보관할 수도 있었다.
 
사냥꾼들은 그 항아리를 바닷가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바닷가에 진귀한 물건을 가진 ‘이방인(異邦人)’들이 산다는 소문은 있었다. 인간 부족 사람들은 더 많은 항아리를 가지고 싶었지만 이방인들이 용감하고 싸움도 잘할 것 같아서 무턱대고 쳐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때 주술사사 좋은 꾀를 하나 내놓았다.
 
“이방인들에게 선물을 가져다줍시다. 그러면 그들도 우리에게 항아리를 몇 개 줄 거예요.”
 
추장은 주술사의 의견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선물을 주라는 거야? 이방인들이 우리가 주는 선물을 좋아할까?”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선물로 주면 돼요. 양과 염소의 가죽 같은 것 말입니다. 바닷가에는 좋은 목장이 없으니까 분명히 좋아할 거예요.”
 
주술사가 말했다.
 
인간 부족 사람들은 용감한 남자 다섯 명을 골아 바닷가로 보냈다. 그들은 모두 어깨 위에 양과 염소의 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걸어가자 바다가 보였다. 일행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기다렸다가 이방인들이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바위 위에 가죽을 얹고 돌멩이로 눌러 놓았다.
 
나무 뒤로 돌아가 밤을 보낸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전날 놓아두었던 자리에 가죽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나무 뒤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에도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사흘째 되던 날 바위 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가죽이 절반 정도 사라진 것이다. 대신 바위 위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붉은 물고기가 놓여 있었다. 남자들은 겁먹은 얼굴로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산속의 냇물에서 본 물고기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먹어도 괜찮을까? 혹시 무슨 함정이 아닐까? 남자들은 물고기가 햇볕에 마르도록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둔 채 계속 기다렸다.
 
나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사냥꾼들이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물고기와 가죽이 사라진 자리에 커다란 항아리 두 개와 질그릇 세 개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사냥꾼들은 신이 나 얼른 물건을 들고 마을로 돌아갔다.
 
물물교환(物物交換)은 이렇게 선물(膳物)을 주고 답례(答禮)를 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첫 번째 물물교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인간 부족의 남자들은 남는 가죽을 바닷가 바위 위에 자주 가져다 놓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이방인과 마주치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이방인들과 흥정도 했다. 서로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손짓, 발짓과 표정으로 서로 교환하고 싶은 물건과 그 값에 대해 흥정할 수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직접 물건과 물건을 바꾸는 물물교환을 통해 물건을 구했다. 독일의 옛 무덤애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리스의 토기 조각이나 장신구가 발견된 것을 보면 농사를 짓기 전부터 물물교환을 했는지도 모른다.
 
최초의 물물교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서력기원전 484~430)가 쓴 카르타고 사람들과 북아프리카 사람들의 물물교환에 대한 글에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육지에 도착한 카르타고 사람들은 교환할 물건들을 바닷가에 내려놓은 다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 육지에 사는 사람들이 바닷가에 놓인 물건을 가져가고 금(金)을 놓아두었다. 카르타고 사람들은 금의 양에 만족하면 그것을 가지고 떠나고 금의 양이 부족할 때는 원하는 만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에 모든 물건을 다 교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상하기 쉬운 과일이나 교환이 불가능했다. 크기가 작고 잘 변하지 않으면 귀한 물건들을 교환하기에 좋았다. 특히 보석과 토기는 인기가 많았다. 시리아 지방에서는 녹색 보석인 공작석과 푸른색의 투명한 보석인 남동석이 주로 교환에 이용되었다.
 
물물교환을 하면서 인간 부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부족 사람들과 분업을 하데 되었다. 인간 부족은 이방인들이 만든 그릇을 힘으로 억지로 빼앗는 대신 가죽과 바꾸어 가졌다. 또 흥정을 통해 가죽과 항아리의 적당한 값도 정했다. 넘겨 준 가죽의 수가 바로 항아리의 가격이었다.
 
이처럼 선물과 답례라는 방식으로 노동의 결과물을 서로 나눌 있게 되자 한쪽에서는 자기들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가죽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더 많은 항아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두 부족은 각자 맡은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고 개인과 개인을 넘어서서 부족 간의 분업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