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The Second Letter of Peter
[영] The Second Letter of Peter신약성서의 베드로전서에 이은 1서.
1. 본서의 저자
전서와 한가지로 본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 종 사도 시몬 베드로](1:1)임을 말하고 있다. 또 저자는 자신을 주 에수의 변화의 목격자(1:16-18), 주 예수에 의해 자신의 죽음이 예언되어 있는 것(1:14→요 21:19), 또 사도 바울과 동격의 형제(3:15)로서 표시하고 있다.그러나 베드로 저작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난점이 지적되고 있다.
(1)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1 알렉산드리아학파의 대표적 신학자) 및 에우세비오스(Eusebios 265-339/350 그리스도교 최초의 교회사가)는 이 편지를 일단 정전중(정)에 넣고는있으나, 그 정전성에 대하여서는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여 주고 있고, 교부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340/56-419/20 불가타역자)의 시대에도 베드로설을 부정한 자가 있었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
(2) 이 편지의 용어 및 사상에 인정되는 헬레니즘 사상의 영향은, 저자의 배후에 뛰어난 그리스적 교양이 있었음을 예상케 하는데, 그것은 베드로에게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덕](1:35), [하나님의 성질에 참여한다](1:4), [지식](1, 2, 3, 6, 2:20, 3:18)등은 그 예(例)라는것이다.
(3) 이 편지에 나타나 있는 역사적 상황(→下記 3참조)은 2세기 전반경의 상태에 부합한다는것.
(4) 유다서와의 병행기사(2:1-3:3과 유 1:4-18)에 대해서는, 이 편지의 저자가 유다서를 썼다고 판단함이 타당하다는 것.
(5) [시몬 베드로](1:1)라는 명칭 기타에서, 저자는 자기가 사도 베드로임을 종종 보이려하고있는데, 도리어 이것은 의작자(擬作者)의 기교적 조작으로 의심될만 하다는 것.
(6) 베드로전서를 베드로의 작(作)으로 하는 경우, 베드로전서와 베드로후서와의 사이에 인정되는 용어 및 구약성서의 인용방식 및 신학사상 등의 차이가 문제로 된다는 것.이상과 같이 필자에 대한 강한 의심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그것에 지지 않을 만큼의 베드로저작의 역사적 유력한 증거도 결코 적지는 않고, 전서에 보여지는 약간의 진기한 말의 사용,또는 하나의 사상의 부정적면과 긍정적면을 보여주는 수법(예컨대 벧전 1:12,14,15,18,19,벧후 1:16,21,2:4,5,3:9,17)등 외에도 많은 증거로서 베드로 저작을 뒷바침하는 편도 유력하다.
2. 본서의 독자
본서 1장 1절에 [우리의 믿음과 같은 귀한 믿음을 얻은 이들에게 편지한다]고 하는 외에, 지리적인 소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3장 1절에의하면, 이들 중에는 베드로전서를 받은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베드로후서와 베드로전서와의 관계를 알 수 있으므로, 독자는 소아시아의 신도들이라는 것이 된다(벧전 1:1). 독자는특히 이방인 신도로 추정되고(2:18, 20), 또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고(3:2), 바울에게서 편지를 보내진 일도 있었던 듯하다 3:12).
3. 본서의 집필 시기와 장소
본서의 집필 시기는 저자를 베드로로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이단배척에 힘쓰고 있는 점등(2:1-22)을 위주하느냐에 따라, 집필 연대는 판이해진다. 베드로저작설을 반대하는 이들은 본서 집필의 시기를 2세기 전반, 즉 130-150년대로 본다. 마가복음(1:16-18, 막 9:2-8) 및 요한복음(1:14, 요 21:18,19)의 지식, 유다서의 원용(2장), 바울서간의 결집 및 기타의 문서의 정전화(3:16), 사도들의 사거에서의 시간적 간격(3:4), 주의 재림의 지연(3:4, 9), 또 윤리생활을 무시하는 이단(2장)등은, 2세기 전반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점에서 판단하면, 이 편지는 신약성서 중 가장 후기의 문서로 된다. 이와는달리 베드로의 저작으로 보는 때, 베드로전서보다 뒤지기 수년, 그의 죽음의 직전 기원 67년에서 68년경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 교회사가 에우세비오스(Eusebios)의 글따라 네로(Nero)에 의해 베드로가 순교한 것을 AD 64년경으로 보면, 그 순교 직전으로 되어야 한다(Euseb. Hist Ⅱ. 14.4-6, Ⅱ. 25.15).본서의 집필 장소는 분명치 않으나, 마가복음과의 관계(1:16-18), 베드로의 순교와의 관계(1:14), 바울에의 언급(3:15), 베드로전서와의 관계(3:1)등, 즉 이들은 전부 로마와 관계가 있으므로, 로마설이 유력해지는데, 바벨론에서 로마에의 도상을 말하는 이도 있고, 에집트설도있다.
4. 본서의 집필 사정과 목적
본서를 보내는 제교회에 이단을 말하는 자들이 들어가 신도들을 미혹했다. 그들의 교설은 특히 두가지 점에 있어서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제1은 윤리생활에서의 해방이었다(2장). 그것은 육(肉)의 행위는 영의 사람의 생활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그노시스적 이원론(Gnosticism-)과, 바울에 있어서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교의의 오해(3:16)등이 결부된 것으로 생각된다. 제2는 종말신앙의 부정이다(3:3, 4). 그노시스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구원은 이미 실현되어 있었고, 종말적인 사항은 문제로 되지 않았다. 종말신앙에 대한 의혹은 1세기 말에 이미 나타나 있는데 (I Clement 23:3-), 그것을 부정한 것은 2세기의 그노시스파의 사람들이었다.그러나 구원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윤리(롬 12:1,2,갈 5:13,22,23,벧전 2:16)와 종말신앙(롬 8:18-25,빌 3:20,I요 3:2)은, 초대교회의 전통적 신앙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저자는 이러한 이단을 배척하고, 전통적 신앙을 보전하도록 격려하고, 훈계하기 위해 붓을들었다. [우리 주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그를 아는 지식이 자라(풍성하)]기를(3:17, 18), 또 전서를 상기시켜 그들의 순수한 신앙을 분발시키려(3:1), 이 편지는기록된 것이다.
5. 본서의 특색과 의의
이단과의 대결이 본서의 특색이다. 이단자들이 윤리생활에서의 해방을 주장하고(2장), 종말신앙을 부정하는데(3장), 이 이단에 대하여 통렬한 탄핵이 행해지고있다. 윤리생활에서의 해방의 주장에 대한 탄핵은 유 1:4-18의 원용인데, 수개처의 흔적이보여진다. 종말신앙의 부정의 문제는 유다서에는 없다.본서에 있어서는 또, 그리스도는 종종[구주 救主](1:1, 11, 2:20, 3:2, 18)로 불리우고, 내림의 지연이 하나님의 인내와 관용으로서 이해되며(3:9, 15), 심판과 멸망은 불(火)에 의함이 말해지고 있다(3:7, 10, 12).또 성서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고(1:20, 21, 3:15), 몇가지 귀한 권면도 있다(1:5, 7, 10, 3:13,14, 18).또 이 편지는 교회의 카톨릭화의 초기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인정되고 있다. 즉 이단과의 대결을 배경으로 하여, 예언자의 말(1:19, 21, 3:2), 및 사도의 전승(1:1, 12, 2:21, 3:2)이 중시되고, 바른 신앙의 [지식](1:3, 8, 2:20, 3:18)의 중요성이 역설되어있다. 또 바울의 편지의 결집도 포함한 정전 형식의 움직임도 인정되고(3:15, 16), 또한 사도적 신앙으 ㅣ보지자, 성서의 권위있는 해석자로서의 교회의 역할이 명시되어 있다(1:20, 21,3:15, 16).
6. 본서의 내용 분해
(1) 인사(1:1-2)
(2) 교훈(1:3-3:13)
1. 참된 지식으로 성장하라(1:3-11)
2. 복음의 진리를 언제나 기억하라 (1:12-21)
3. 거짓 교사는 주를 부인하고, 도덕을 무시한다(2:1-22)
4. 거짓 교사는 재림을 부인한다(3:1-13 주는 반드시 재림한다)
1) 조소자의 종말부정과 그 논박(3:1-7)
2) 종말지연의 의미(3:8-9)
3) 주의 날(3:10-13)
5. 주의 재림에 대비하여 선한 신앙의 싸움을 싸우라(3:14-18)
(3) 송영(3:18)
7. 본서의 제문제
(1) 유다서와의 유사성에 대하여,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와의 유사는 눈에 띄게 현저하다. 베드로후서 2:1-18과 유다서 1:4-16, 후서 3:2-3과 유다 1:17-18과는 병행기사이다. 유다서1:25 가운데 중심부의 15절여가 후서 2장에 보여진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 기초하여 후서가 유다서를 사용한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①. 짧은 유다서가 긴 베드로후서의 1부를 취하여 그것을 본체로서 편지를 작성했다고 하기 보다는 후서가 자기의일부에 유다서를 취해 넣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자연스럽다는 것. ②. 이단과의 대결의 방식에 있어서 유다서편이 직절적이고 또 통렬하다는 것. ③. 유다서는 솔직하게 위전에서 인용하고 있는데(9, 14절), 베드로후서는 그것을 삼가고 있다는 것. ④. 양자의 병행기사의 사이에보여지는 몇가지의 어구의 상위에 대해서는, 베드로후서의 기사쪽에 개정의 흔적이 인정된다(유 1:5-7,11과 벧후 2:4-6,15,유 1:9과 벧후 2:11,유 1:10과 벧후 2:12,유 1:12-13과 벧후 2:17). 그러나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의 배후에 이단배격의 설교의 정형이 존재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2) 위서에 대하여, 그리스ㆍ로마의 문서에도 유대교 및 초기 그리스도교의 문서에도 몇 개의 위서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반드시 기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위서에 대해서는 그 목적과 내용이 중요하다. 베드로후서가 위서였다고 해도, 작자는 단지 자기의 소설을 권위세우기위해 베드로의 이름을 쓴 것이 아니라, 이단의 배격에 있어서, 교회의 대표로서의 베드로에대신하여 그 이름을 써서 행했던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후서의 경우에 있어서는, 문서의 내용과 베드로의 이름과의 사이에 일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령 위서였다고 해도 그것이정전에 넣어진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가지로 베드로의 이름을 쓴 것이라해도, [베드로 복음서 Gospel of Peter], [베드로 행전 Acts of Peter], [베드로의 선교 Apocalypse ofPeter]등은 정전에서 제외되어 있다.
[文獻] J.C. Beker:"Peter:Second Letter of, "Interp. D., Vol. 3. pp. 767-771; J.B.Mayor:TheEpistles of Jude and Ⅱ Peter, 1907; J.W.C. Wand:The General Epistles of St. Peter andSt. Jude(The Westminster Commentaries), 1934; M. Green:2 Peter and Jude. 1968; 石井晴美;註解 베드로서 I. Ⅱ., 1962; 新聖書大辭典, pp. 1215-1218,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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