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신약성경개론] 개관

야고보서:The Leteer of James

好學 2009. 10. 15. 01:20

 

야고보서:The Leteer of James

 

 

[영] The Leteer of James (Epistle of James)

신약성서 중 공동서간의 1서.

 

1. 본서의 저자

본서는 [하나님과 주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 문안한다.]는 말로 시작하여,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응하는 끝맺음은 없이되어 있다. 내용에서 말한대로 특정한 교회에 부치는 특정한 문제를 취급한 편지가 아니라 일반적인 권면이다.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특별한 인물은 12사도 중에 둘, 주의 형제 야고보, 그리고 사도 다대오의 아버지 야고보(마 10:3,막 3:18,눅6:16,행 1:13)가 있는데 물론 다대오의 아버지 야고보는 아니다. 그리고 사도 중의 야고보 2인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고(막 3:17-18) 주의 형제 야고보는 초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마 13:55,막 6:3,행 15:13,21:18,고전 15:7,갈 1:19,2:9,12,유 1절).주의형제야고보는 특히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 인물로 전도에 나선 베드로를 대신하여 그 지도를 맡고 있었다. 그는 율법을 엄히 지키고 유대교도 사이에도 존경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Euscb. Hist. II. 38). 초대 그리스도교의 최초의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오스(Eusebios of Casesarea 260/65-339)는 그를 사도라 부르고, 이 야고보서의 저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저자가 확실하지 않아 이 편지가 문제로 되어 있던 것도 알고 있었다. 분명하게 이 야고보를 저자로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 신학자 오리게네스 (Origenes 185-254경 클레덴스의 제자, 교부. 신학원리의 저자)이다. 동방에서는 오리게네스 때 이래, 이 편지의 저자는 주의 형제 야고보로 되어 왔다. 서방에서는 그것보다도 늦게, 이 편지를 야고보의 기록으로 최초에 언급한 이는 정통파의 투장(鬪將)으로 알려지는 갈리아의 뽀아띠에(Poitiers)의 주교 힐라리우스(Hiliarius 315경-67)였다(<<삼위일체론>> De Trinitate,IV. 8). 히에로니무스라는 그의 라틴역 불가타(Vulgata)에 이 편지를 포함시키고, 그의 저서중에도 인용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본서를 정전으로 인정했다. 이렇듯 본서가 주의 형제 야고보의 것으로 인정되기에 이른 것은 동방에서는 오리게네스, 서방에서는 히에로니무스에 힘입고 있다. 최초로 기록한 오리게네스가 자기 이전의 전승에 의한 것인지, 그자신이 사도행전과 바울의 편지(서간)에 나오는 주의 형제 야고보를 이 편지의 저자라 했는지도 불명이다. 그러나 본서의 초두에 사도라는 말이없고 사도 야고보는 기원 44년에 순교했으므로 이 편지는 옛부터 내려오는 전승과 같이 그리고 이글의 내용도 주의 형제 야고보의 글임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여, 주의 형제 야고보라 한다.

그러나 주의 형제 야고보설에 반대하는 설도 강력하다. 외증(外證), 내용이 박약하다고 한다. 초대교회의 전설로서도 오리게네스 이전에 이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의 작으로 한 것을 볼 수 없고, 또 에우세비오스도 막연하게 [주의 형제 야고보에 의한 글]이라고 기록했을 뿐이란다. 주의 형제 야고보설에 반대하는 내용에서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1) 저자가 주의 형제라고 하면 본서 중 주의 수난, 부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지 않음. 주의 이름을 불과 2회(1:1, 2:1)밖에 기록하고 있지 않음이 설명 곤란으로 된다. 또 본서의 특색을 이루는 윤리적, 격언적 교훈은 초대의 특색인 열정과 감격에 일치하지 않는다.

(2) 본서는 뛰어난 그리스어의 문체로 씌어지고, 어휘도 풍부, 디아트리베(Diatribe 痛烈한 攻擊)의 형식을 쓰고 있다. 저자는 코이네 그리스어로 생각하고, 가르치고 있다. 3:6 [생존의 차륜 troCo;" th'" gensew"]이라는 말은 그리스의 오르페우스(Orpheus)교의 용어이다. 그러므로 저자를 주의 형제 야고보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갈릴리의 무학(無學)의 야인(野人) 야고보의 작으로 볼수는 아무리 해도 없다는 것이다.

(3) 또 본서의 정경공인(政經公認)이 늦었던 사실도 예루살렘 교회의 주석(柱石) 야고보의 작으로 하기에는 타당치 않다는 것 등 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주의 형제 야고보설을 반대한다면, 야고보서는 과연 누구의 손으로 씌어진것일까? 이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주요한 설들이 있다.

1. 본서는 주의 형제 야고보가 주석한 예수의 설화집을 기원 70년 이후에 있어서 실천적 그리스도교의 교설(敎設)로서 주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 설은 본서가 비교적 후세에 읽혀졌다는 점과, 초대적 특색을 가진 점 등을 조화케 하는데는 안성마춤이지만 사도시대 이후의 교회사정을 말하는 본서의 내용과 일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2. 본서가 유대적 취미를 가진 점에서 보고 원래 유대인 저자의 붓으로 된 것을 후에 그리스도교회에 있어서 사용하기 위해 다소의 삽입을 가()하여 발표한 것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본서에는 유대문학에 특유한 의례적 율법적 지시는 없고 또 그리스도교적 삽입으로는 너무나 지나치게 적어 그리스도교의 편집자가 채웠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점에서 약점이 있다.

3. 본서의 사상은 유대적 용어는 그리스어라는데서 아람어에서의 번역으로 보는 설도 있다. 마치 마가가 베드로의 설화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 관계를 야고보의 아람어 교설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고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저자가 야고보의 역자로서 그 이름은 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설도 정경공인 지연의 문제, 내용의 문제 등에서 반대된다.

4. 본서는 위명서(僞名書)로서, 저자가 [주의 종 야고보]라 부른 것은 초대 교회에 있어서 정경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사도로서의 어떤 관계를 필요로 했을 것이라고하고 또는 1장 1절은 전연 후세의 가필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속단할 필요도 없으리라.

5. 본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구약성서의 역사 및 사상에 통하여 있고 기타 유대문학에도 자세한 사람이 썼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을 총괄적으로 볼 때, 전승에 의한 주의 형제 야고보의 저서임을 절대로 부정하기는 곤란하며 일층 확실한 증거가 있기까지는 주의 형제 야고보의 서간으로 보아 차질이 없다.

 

2. 본서의 독자

본서는[열두지파의 사람]에게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유대인 또는 그리스도인으로는 누구나 보지 않는다. 본서 중에 이것을 암시하는 것은 없다. [완전한 자유의 율법](1:25)은 모세의 율법을 의미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율법을 의미한다. (新約外典중의 一書인 바나바의 편지 The Gospel of Barnabas 2:1, 6참조) 본서는 바울에 반대한 유대인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행15장갈2-3장).저자는분명히 신령한 이스라엘이며, 육()의 이스라엘의 참된 후계자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키고 있다(갈 6:16,벧전 1:2참조).

 

3. 본서 저작의 연대와 장소

본서의 저작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본서의 저작을 바울 이전으로 하는 이들은 다음 일들을 든다.

(1) 본서가 비신학적인 것은 아직 교의가 발달하기 전 바울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2) 저자가 바울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다면 이에 대립하는 것 같은 본서는 쓰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3) 본서가 유대적인 것은 그것이 초대의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과는 달리 본서를 바울 이후의 작으로 하는 이는 다음 일을 든다.

(1) 본서의 용어, 문체는 수사적이고 힘차며, 저자의 넓은 교양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초대의 유대인의 작으로 보이지 않는다.

(2) 본서는 바울의 로마서,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등 바울의 서간집 및 바울의 복음을 알고 있었음을 예상(豫想)케 한다.

(3) 본서의 독자의 사정은 그리스도교적 생활이 지적신앙에 의해 화를 입어 일종의 윤리적 율법주의가 그 회복 위해 제창되어 있었던 사실을 보이며, 후세의 <디다케didache 십이사도의 교훈)>(즉 신도를 윤리적으로 가르침)의 윤리주의에 흡사한데가 있다. 이것은 초대의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2세기초의 사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집필연대를 45년경, 60-70년경, 125-150년경까지 주장한다. 주의 형제 야고보설을 주장하는 이들 중에도 45년, 60-70년의 각각의 견해가 있는데 조기설을 주장하는 이가 많은 것은 AD 60년경 이미 전교회를 떠들썩하게 한 종교논쟁에도 AD 70년의 예루살렘함락에도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보아 AD 45년, 즉 본서를 신약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글로 본다. 어느것도 추정에 불과하고 확정 할 수는 없다.

기록 장소에 대해서는 본서가 극히 실제적이고 신비적 내지 철학적 요소를 결여하고 있는데서 로마를 저작지로 보는 이도 있다. 또 어떤이는 본서를 오리케네스가 가이사랴에서 발견하고 알렉산드리아에 가지고 돌아 왔으므로 가이사랴를 말하기도 한다. 로마 혹은 애굽모두 추측일 뿐이고 대다수의 의견은 예루살렘이라는데 일치를 보고 있다.

 

4. 본서의 특징

본서는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산상수훈에 유사하다. 극히 적절하게 그리스도교 도덕을 기술한 것으로 결코 단순한 교훈집은 아니고 깊이 이것을 공부하는 자는 그 근저에 있어서 순진한 복음적 신앙을 간취(看取)하게 되리라. 본래 본서는 교의를 해설하려 쓴 것이 아니므로 그 점에 있어서 바울의 서간과 전연 취지를 달리하고 있지만 복음을 신앙의 결과인 행위의 방면에서 본 것으로서 이는 또한 극히 귀중한 하나님의 묵시(계시)이다.

 

5. 본서의 목적

본서의 목적은 환난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위로하고 또 격려함과 동시에, 신앙에 도취하여 행위를 무시하는 자를 경계하고, [다만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지 말고 이를 행하는 자](약 1:22기타)로 되어야 할 것을 반복역설하는데 있다. 저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신앙만을 중시하고 행위를 경시하고 있음을 경계하여 [아! 어리석은 사람아! 너도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싶은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 아닌가? 너희가 본대로 그의 믿음에 행함이 따랐기 때문에 햄함으로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이다](2:20-22)라 하고,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고 인정 받는 것이고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2:24)라고 주장하고 있다(벧후 3:12참조). 그에게 있어서 행함없는 신앙은 죽은 것이다(2:26). 신앙인은 율법을 행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의 율법](1:25)[최고의 법]을 일심(一心)으로 응시(凝視)하며 지켜야 한다. 저자는 이같이 신앙이 실제적인 면에서 일하지 않으면 진실도 아니고 가치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6. 본서의 내용

본서는 5장 108절로 성립되어 있는데, 그중 54절은 명령을 취하고 있는 권면이다. 교리를 말한 신학적 저작이 아니라 실천적인 교훈을 나열한 것이고 그 중에 일관된 논리도 보여지지 않고 있다. 동일 제목의 권면이 몇 곳에 나뉘어져 있는 예도 적지 않다. 대체로 야고보는 본서에 있어서 다음 일 등을 말하고 있다. 먼저 환난의 의의와 이에 대처하는 일을 분명히 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미치고 그런 후, 은혜받은 하나님의 종의 행하여야 할 바른 실천도덕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치고 그러한 행위를 동반하는 신앙이야말로 참된 신앙임을 역설하고 있다.

 

-내용분해-

1. 인사 1:1

2. 시련에 대처하는 길 1:2-18

(1) 시련을 기뻐하라 (1:2-4)

(2) 지혜를 구하라 (1:5-8)

(3) 시련을 빈부 구별없이 온다 (1:9-11)

(4) 시련을 참고 견디라 (1:12-16)

(5) 하나님께서 주는 좋은 선물이 온다 (1:17-18)

3. 신앙생활의 요강(중요사항) 1:19-4:17

(1) 구원의 말씀을 듣고 이를 행하라 (1:19-27)

(2)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2:1-13)

(3) 행위가 따르지 않는 신앙은 무익하다 (14-26)

(4) 혀를 제어하라 (3:1-12)

(5) 참된 지혜를 구하라 (3:13-18)

(6) 탐하지 말라 (4:1-10)

(7) 헐뜯지 말라 (4:11-12)

(8) 자고(自高)하지 말라 (4:13-17)

4. 여러 가지 권면 5:1-20

(1) 임할 심판을 생각하며 축재에 몰두말라 (5:1-6)

(2) 그리스도인은 주의 재림까지 고난을 참고 견디라 (5:7-11)

(3) 맹세하지 말라 (5:12)

(4) 병자 위해 기도하라 (5:13-18)

(5) 미혹받는 자를 구하라 (5:19-20)

 

7. 본서의 주요사상

(1) 저자의 그리스도교관- 저자는 그리스도교를 완전한 율법으로 보고 그 견지에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이것을 자유의 율법이라 부르고 그것이 구약의 율법같이 외적압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적욕구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성질의 것으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의례적이 아니고 도덕적이다. 저자는 바리새적 형식주의를 버리고, 예언자의 정신주의를 채택, 그리스도교를 그 정신에 있어서 구약 율법의 대성(大成)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예수의 구약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2) 저자의 죄관- 저자는 죄를 이기주의로 보고 그 원인을 사람의 욕정에 있는 것으로 단정(1:14), 이 욕정은 육체에 그 본원을 두는 것으로 보고 있다(4:1), 육욕을 죄와 동일시하지는 않으나 육욕은 죄의 거소(據所)이고 기회로 된다고 한다. 그러나 죄의 보다 깊은 원인은 의지에 있는 것으로 저자는 분명하게 의지라는 말을 쓰고 있지는 않으나, 그의 훈계는 이것을 보이고 있다. 의지적으로 욕정이 남발되는 때 죄가 역사(일)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기주의로서의 죄는 또 사회관계에 있어서 나타난다. 교사 및 부자가 그 혀에 의해 그 속악(俗惡)한 재력에 의해 사람을 더럽히고 세상을 해치는 것은 커다란 죄이다. 저자가 이기주의, 사람에 어긋나는 행위를 죄로 본 것은 또 예수의 윤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3) 신앙과 행위- 저자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라 하여 바울의 신앙에 의한 구원에 대하여 반박을 가한 듯한 감을 갖게하나, 바울과 야고보 양자의 용어의 내용을 검토하면 양자의 서로 모순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야고보서 저자는 신앙이 종교생활의 기조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참된 신앙은 단지 지적승인같은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선한 행위로써 실행되어야 할 것으로 본 것이다. 바울도 신앙생활이 신령한 열매로서 여러 가지의 그리스도교적 미덕으로 되어 나타나야 할 것을 말하고, 사랑에 의해 역사(일)하는 신앙의 가치를 고조하고 있다. 다만 바울이 반대한 것은 율법주의적 행위이다. 그것은 의롭다 함의 조건으로 되지 못하는 것, 신앙이 유일한 조건임을 말한 것이다. 행위에 대해서도 본서의 저자는 바리새적 율법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도덕적 행위가 산 신앙의 증거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상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보완하여, 종교생활에 있어서의 신앙과 행위의 위치를 분명케 하는 것이다.

(4) 구원의 문제- 바울은 신앙에 의한 구원을 말하고, 본서의 저자는 행위에 의한 구원을 말했다. 여기서도 양자의 [구원]이라는 문자의 내용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울이 말하는 의롭다 함(宣義; 義認定)은 구원의 입문을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량에 의해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유의 은혜의 선물로서, 우리들의 공로가 아니다. 우리들은 다만 신앙으로써 이것을 수납(受納)할 뿐이다. 그런데 야고보서의 구원의 관념은 종말적인 것으로서, 심판날에 의롭다 함을 입는 일이다(4:12). 그리고 의롭다 함을 입는 자는 의로운 사람, 헛된 신앙의 소유주가 아니라 산 신앙의 구현(具現; 具體的表示)으로서 의로운 생활을 한 자 뿐이다. 이같이 바울은 의롭다 함(義認定; 宣義)을 구원의 제1보로 보고 야고보서는 이것을 신앙생활의 최후의 보상으로 보고 있는데 이 점에 있어서도 양자 서로 모순하고 있는 것 아니다. 바울도 의롭다 함을 입은 자의 생활은 다만 위치의 변화가 아니라 생활 내용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으로 하고, 의롭다 함을 입는 자는 드디어 성결해져 최후의 구원에 들어가는 자로 하고 있다. 본서에 있어서도 바울이 말하는 구원의 제1보로서의 의인(義認; 宣義)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본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사유, 은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5:15, 1:17). 그것은 바울의 교리와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文獻] J.H. Ropes:The Epistle of James, ICC, 1916; R.J. Knowling The Epistle of James(WesterminsterSeries), 1922; J. Moffat:The General Epistle (Moff. Comm.), 1928;H.Windisch (rev. by H. Preisker):De Ketholischen Briefe, HNT. 1951;F. Hauck:DieKirchenbriefe, NTD. 1954; M. Dibelius:Der Brief des Jakobus (Kritischexegtischerkomm), 1956; B.S. Easton:EPistle of James, Interp. B., vol. 12, 1957:淺野猶三郞:야고보서 略解1962; 平保野:야고보서 연구,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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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James(인명)

 

('Iavkwbo", James) 「발 뒤축을 잡음」

[1] 12사도 중의 한 사람이며, 세베대의 아들이다(마 4:21,10:2,막 1:19,3:17). 사도 요한의 형이다(마 17:1,막 3:17,5:37,행 12:2). 최초의 제자 중 한 사람이며(마 4:21,막 1:19,29),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신뢰하고 있던 사도 중의 한 사람이다(마 17:1,막 5:37,9:2,13:3,14:33,눅 8:51,9:28). 그의 출생지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 분명치 않다. 직업은 어부이며 주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점은 베드로나 안드레등과 같다(눅 5:10). 그러므로 그 근방 출신일 것이다. 베드로나 안드레와 다른 점을구태어 말한다면, 야고보의 집에서는 삯군들을 부리고 있었다는 것(막 1:20), 그의 형제 요한이 대제사장과 안면이 있었다는 것(요 18:16), 그리고 예루살렘에 자기 집을가지고 있었던 듯한 것(요 19:27) 등으로 사회적으로 꽤 유력한 가정 출신인 것 같다. 그의 부친은 그가 예수를 좇을 때 특별히 반대하지도 않은 사람인만큼 복음서에 그의 이름이 나온다(마 4:21,막 1:20). 마태복음 27:55, 56 및 마가복음 15:40, 16:1,그리고 요한복음 19:25 등에서 보건대, 그의 어머니는 살로메라고 하며,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자매 관계, 그러니까 야고보의 이모였다고 짐작된다. 만일 그렇다면 이야고보는 예수님과 이종사촌간이 되며, 따라서 다윗의 가계(家系)에 속하는 것이 된다. 그의 이름은 공관복음서(마태˙마가˙누가복음)에만 나타나며, 요한복음에는 `세배대의 아들들' 정도로만 암시하고 있다(요 21:2). 그것은 요한복음서를 쓴 요한이 그의형제 요한이었다는 것을 뒤받침하는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야고보는 요한과는 항상 같이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보통 야고보편이 먼저 나온다(마 4:21,10:2,17:1,막 1:19, 29, 3:17, 5:37,9:2, 10:35, 41, 13:3, 14:33, 눅 5:10,6:14,9:54). 아마 요한이 동생, 야고보가 형이었을 것이다. 그와 동생 요한은 성격이 괄괄하여 사마리아의 어떤 마을에서 예수님의 일행을 받아 들이지 아니한다고 화가 나서 그 마을을불살라 버리도록 하늘에서 불을 구할 것을 제안했다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다(눅 9:52-55). 그 때문에 그들은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란 아름을 받았다(막 3:17). 이형제는 또 야심이 강해 그의 모친도 이 두 아들이 높은 지위에 기용될 것을 예수님에게 간청했다가 책망을 받았다(마 20:20-28,막 10:35-45). 그의 형제는 베드로와 함께 주님의 특별한 교훈을 받았으며, 또 다른 제자들이 보지 못한 이적과 기사를 보았다. 즉, 예수님의 산상 변화(마 17:1), 야이로의 딸 소생(막 5:3743), 베드로의 장모 열병 치유(막 1:29-31), 감람 산에서 성전을 대하여 앉으셨을 때(막 13:3,4),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막 14:32-35) 등등이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죽으신 후 갈릴리(요 21:2)나 예루살렘(행 1:12,13)에 있었다. 그는 AD 44년에 헤롯아그립바에 의해 피살되어 순교의 죽음을 했다(행 12:2). 사도 중에서 최초의 순교자였다. 보통 `큰 야고보' 또는 `연장자 야고보'라고 불러 알패오의 아들인 다른 사도야고보와 구별하고 있다.

 

[2]알패오의 아들이며, 예수님께서 택하신 12 사도 중의 한 사람이다(마10:3,막 3:18,눅 6:15,행 13장).그에대해명확한것은 태무하다. 그러나 마태복음 27:56, 마가복음 15:40, 16:1, 누가복음 24:10의 야고보와 동일인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작은 야고보'라고 불리운 사람일 것이며(막 15:40), 그것은 야고보라고 불리운 다른 사도를 `큰 야고보' `연장자 야고보'라고 불리운데 대하여`작은 야고보' 또는 `연소자 야고보'라고 불리웠다고 생각된다.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불리운 부인이며, 예수님과 행동을 같이 한 부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막 15:40,41). 그러면 그의 형제는 요세가 되는 셈이다(막 15:40). 레위라고 불리운마태는 마가복음 2:15에 의하면 알패오의 아들로 되어 있으므로 만일 이 알패오가 야고보의 부친과 동일인이라고 하면 그에게는 또 한 사람의 형제 마태가 있는 것으로 된다. 또 만일 누가복음 6:16, 사도행전 1:13에 나오는 유다가 야고보의 아들이 아니고동생이었다고 하면(`아들'로 번역된 원어는 `동생'으로도 번역된다) 그에게는 또 한사람의 동생 유다가 있는 것으로 된다. 다음 [4] 참고.

 

[3]주의 형제 야고보이다(마 13:55,막 6:3,갈 1:19). 주님에게는 네 사람의 형제가있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바로 밑 동생이며, 요셉˙시몬˙유다의 형이었다. 일설에의하면, 야고보 이하의 형제는 요셉의 전처의 소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무근하다. 역시 예수님과 같이 마리아의 아들들이라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그는 `의인 야고보'라고 불리웠으며, 헤게시푸스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모태에 있을 적부터 성별되어포도주˙독주˙생축의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고, 기름을 붓지 않고, 목욕도 하지 않고, 항상 혼자 성전에 들어가 엎디어 경배했으므로 그의 다리는 낙타의 다리처럼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주석(柱石)이 되어(행 12:17,15:13,21:18,갈 1:19,2:9,12) 유대파 기독교계에 큰 세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그의 개종은 주님의 부활 후이다(막 3:21,31,요 7:5). 그에 대해서는 복음서에 두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마 13:55,막 6:3).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이전에 그는 확실히 주를 믿지 않았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고전 15:7) 주를 믿게 되고, 제자들의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다(행 1:14). 그는 주의 생전에는 주를 믿지 않았으므로 주를 믿게 된 다음 쓴 편지(야고보서)에서 자기를 `주의 형제 야고보'라 하지 않고 `주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썼다(약 1:1). 다른 동생들은 아마 야고보의 감화에의해 회심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 후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분명치 않으나, 바울은 `주의 형제들'의 전도에 동참했던 것을 전하고 있다(고전 9:5).야고보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열성적이고 활동적이었으며, 더우기 소시적부터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과, 또 지도자로서의 재능을 갖고 있었으므로 제자들간에 큰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야고보는 입신(入信) 이전에 이미 엄격하고 열성적인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충실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입신 후에도 그 생활을 바꾸려 하지않고 오히려 더 충실히 율법을 엄수하는데 힘썼다. 그 정신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경향과 합세하여 마침내 예루살렘 교회의 초석이 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바울이 회심 후 3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야고보는 이미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갈1:19). 11년 후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세 주초석의 한 사람으로서 바울과 협의하여 이방 전도의 자유를 인정했다(갈 2:9). 후일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과 함께먹고(會食) 있을 때, 야고보는 사람을 보내 책망하고 있다(갈 2:11-). 또 수년 후 바울이 최후로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에도 야고보는 제자들 사이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행 21:18). 바울이 제 2차로 예루살렘에 갔을 때의 일은 더 자세하게 사도행전15:4-29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야고보는 이방인 신자는 유대인의 율법을 어느 정도까지 지켜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정하기 위해 열은 회의의 의장으로 되었는데, 그는자기의 의견을 개진하기를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발의(發議)했다. 또 그는 바울이 이방인 중에서 세운 공적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과 동시에, 바울이 이방인 중에 있는 유대인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소문이 유대인들에게 퍼졌을 때, 서원한 네 사람을 데려다가 함께 결례(潔禮)를 행하여 그 풍설이 사실무근하다는 것을 알리라는 충고를 바울에게 주었다(행 21:17-24).야고보의 탄생지예루살렘 교회에서 야고보의 지위에 대해 명확한 단정을 내릴 수는 없으나, 제 2세기 후반에 쓰여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전설에 의하면, 야고보는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었는데, 사도들에 의해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전설은 신빙성이 희박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감독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예루살렘교회가 이방 교회에 보낸 서신에도 단순히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으로만 되어 있고,특히 야고보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행 15:23-). 만약 야고보가 감독의 지위에있었다면 그 이름이 명기되었을 것이다. 야고보는 율법적 기독교의 대표자로서 이방교회의 율법화에 힘쓴 것처럼 말하는 학자도 있다. 이런 운동이 행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야고보가 직접 이런 운동을 일으켰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야고보는 이방 전도를 시인하고 있다. 또 만일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전체가 유대주의였다면, 바울은 AD 53년에 에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또 그가 바울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호의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바울이 최후로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을 때 그도, 교회도, 바울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한 흔적이 없는 것을보면 무엇이 있지 않았나 짐작이 된다. 여하튼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가 조직된 최초부터 그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지위, 아마 목사였을 것이다(행 12:17, 15:13, 21:18, 갈1:19, 2:9,12). 야고보에 대해 사도행전 21:18 이후에는 아무 것도 기록된 것이 없다. AD 62년 안나스의 아들 아나누스가 제사장이었는데, 총독 훼숫스의 사망과 그의후계자 알비누스의 부임하는 사이의 호기를 포착하여 그는 야고보를 사형에 처하려고율법 파괴자의 이름으로 그를 공회에 고소하여 끝내 돌로 때려 죽였다(고대사). 아나누스의 불법 행위는 예루살렘 시민의 반감을 사 새 총독 알비누스에게 기소되어 마침내 재직 3개월로서 퇴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야고보야고보서의 기자로 알려져 있다.

 

[4]사도 유다의 아버지이다(눅 6:16,행 13장).이이외에성경은아무 것도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