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사서오경]四書五經

논어(論語)의 製二 爲政篇(제이 위정편)

好學 2009. 9. 21. 23:49

 

 

논어(論語)의 製二 爲政篇(제이 위정편)

 

 

 

爲政第二(위정제이) -1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자왈 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이중성공지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정치를 하되 덕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나머지 모든 별이 그를 중심으로 고개 숙이고 도는 것과도 같다.

<해설> 

인간세는 군주제, 민주제를 막론하고 위계질서가 없을 수 없다. 모든 위계질서에는 그 위계질서의 기능의 구심점으로서의 어떤 상징적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대통령이 없으면 우리나라의 행정체계는 원활히 돌아갈 수 없다. 이러한 인간세의 모든 위계질서의 구심점이 되는 권력자는 강제적 '힘'으로 이 세상을 다스려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 아닌 '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덕'이란 무엇인가? 유가나 도가나 동양사상의 위대함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서양사상가들과는 달리, 그 덕의 내용의 세목을 규정하지 않는데 있다. 덕이란 무엇인가? 공자나 노자나 그 덕의 내용을 규정하지 않는다. 德(덕)이란 바로 '無爲(무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위'란 무엇인가? 무위란 문자 그대로 '함이 없음'인가? 무위란 함이 없음이 아니요, 바로 북극성과 같은 기능이라는 것이다. 북극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자리를 지키고서 움직이지 않지만 그 주변의 모든 별이 그것을 구심점으로 해서 돌아가게 만드는 어떤 힘을 갖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이장에서 말하는 '衆星共之(중성공지)'의 해석은 우리가 좀 신경을 써야할 문제가 있다. 共을 衆星(중성)의 운행의 구심점으로서 북극성을 '공유한다'는 뜻으로 풀 수도 있지만, 이 '共'을 '拱'자로 해석하면, 모든 별들이 이 북극성을 향해 소매를 들어 공수하면서 고개숙여 절하고 있는 어떤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도가의 '무위'는 사소한 덕목에 억매이지 않는 큰 행위를 말한다. 지도자가 될수록 작은 일을 사사건건 참견하면 그 체제는 번거로운 일만 늘어나는 불편한 조직이 되어 버리고 만다. 지도자는 사소한 덕목에 억매이지 않기 때문에 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法家(법가)의 '무위'는 지도자가 법의 권세만 지니고 법에 따라 집행할 뿐, 자신이 어떤 감정이 얽힌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함이 없음'이다. 그리고 兵家(병가)의 '무위'는 함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남을 하게 만드는 어떤 계략이다. 그리고 유가의 '무위'는 仁의 덕성에 의하여 자신이 직접 개입을 하지 않아도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심복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다. 이 모든 것이 조금씩 뉘앙스는 달라도 결국은 같은 인간의 사유체계에 근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의 '무'사상까지를 포괄하는 동양인의 지혜의 원형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 爲政第二(위정제이) -2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자왈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시 삼백편을 한마디로 덮어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

<해설>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시삼백'이라는 표현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정확한 문헌적 지식을 과시하는 듯, "<시경> 삼백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운운하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번역이다. 공자에게서 詩는 단순히 '노래'를 의미한 것으로 <시경>일 수가 없다. 비록 공자가 말한 '노래'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가 문헌으로 보유하고 있는 <시경>과 일치한다 하더라도 공자의 말 중의 '시'는 '<시경>'으로 번역될 수가 없다. 詩가 <시경>으로서 경전화된 것은 한대에서나 이루어진 것이며, 전국시대까지의 모든 문헌에서 '시'는 그냥 '노래'를 의미하는 것으로 五經(오경)중의 하나인 <시경>으로 간주되어서는 아니된다.
공자에게서 '시'는 '노래'였다. 그것은 문헌이 아닌 민요였으며 민중의 노래였다. 현재 詩는 風(풍), 雅(아), 頌(송)이라는 세 개의 장르로 구분되는데, '풍'은 민중의 노래며, '아'는 大夫(대부)의 노래며, '송'은 종묘 제례악이다. 이 風(풍), 雅(아), 頌(송) 중에서 가장 詩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國風(국풍)이다. 즉 여러 나라들의 민요들이다. 이 민요는 백성의 삶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으로 문헌으로 익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구전으로 가락과 운율에 따라 암송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자시대에 六經(육경)의 문헌은 없었다해도, 민중 속에서 노래는 살아있었다는 매우 평범하고도 명백한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다.
'一言而蔽之(일언이폐지)'의 '蔽'는 '덮는다', 또는 '핵심을 찌르다'정도의 뜻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思無邪(사무사)'는 무엇인가? 여기서 思는 '생각한다'는 인간의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본동사임이 분명하다. 그럼 '생각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자가 생각한 詩는 주로 국풍이었다. 국풍은 민요다. 민요의 주제는 역시 '남여상열지사'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바람이요, 신명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신바람'이라 부르는 것이다. 사랑처럼 우리를 신바람 나게 하는 것은 없다. 사랑은 神的(신적)이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누구를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사랑하니 않는 것이다. 자식이래도 생각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송강의 '思美人曲(사미인곡)'의 '思(사)'도 곧 생각인 동시에 사랑이다. 옛사람들은 사랑을 생각이라는 완곡한 어법으로 표현하였지마는 생각이야말로 곧 사랑의 전부인 것이다. 보고 싶다는 생각, 사모하는 정, 그것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랑이란 보고 싶다는 감정이요, 생각나는 감정이다. 사랑의 굄(思)이란 그것이 어떠한 관계에서 성립하던지간에 그 자체는 순수한 인간 정감의 유로일 뿐이며 사악한 것이 개입될 수가 없다고 선언하는 공자의 과감한 발언 속에서 우리는 그의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감과 친밀감, 그리고 공자 자신의 감성적 순수성을 읽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노래는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無邪(무사)'이다. 사랑은 거짓을 모르는 것이다.

* 爲政第二(위정제이) -3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자왈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예  유치차격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정령(政令)으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기지런히 하면, 백성들이 면하기만할 뿐이요 부끄러움이 없다.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면 사람들이 부끄러움이 있을 뿐 아니라 떳떳해진다.

<해설> 

'道之以政(도지이정)'의 '道'는 '治理(치리)'의 뜻이 있고, '引導(인도)'의 뜻이 있다. '政'은 法敎(법교), 政法(정법), 政令(정령) 정도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齊(제)'는 가지런히 한다, 정돈한다, 뒷처리한다는 뜻이다. 과거의 법가적 법의 개념은 민법이 아닌 형법이었다. 다시 말해서 법을 통해 민권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권익을 위한 질서의 강압이며, 형벌의 강제였다. 그러므로 정령으로 이끈 것은 형벌로 정돈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면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免(면)'이라는 글자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형벌을 모면키만 하는 타율적 행위를 말한다. 행위의 자율성이나 도덕적 의지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無恥(무치)', 즉 수치를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법령에 의하여 질서가 잡혀지는 사회라 할지라도 그 사회 성원의 수치감이 없다면 그 사회는 별볼일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동양사회의 전통적 미덕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수치'라는 한 마디인 것이다. 우리문화는 '수치의 문화'인 것이다. 사회의 성원이 서로간에 '수치'를 아는 사회,서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유가가 포기 할수 없는 인간의 측면인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면 有恥且格(유치차격)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德(덕)이 政(정)과 대비되고, 禮(예)가 刑(형)과 대비되었다는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덕은 '孝(효), 弟(제), 慈(자)'를 일컫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인간을 刑(형)대신 예로써 가지런히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상일까 보냐 마는 물론 그것도 결코 쉬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예를 刑(형)괴 대비시켰다는 것을 보면, 예가 과거 유교사회에서는 어떤 구속력을 갖는 개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格(격)'은 '바르게 된다'는 뜻으로 풀면 좋을 것이다.

* 爲政第二(위정제이) -4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입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우뚝 섰으며, 마흔살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해설> 

이것은 공자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그 삶의 체험과정을 몇 단계로 나누어 서술한 것이다. 여기 분명 '칠십'이라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이 말은 그가 70세 이후 그리고 그의 생애를 73세로 마감하기 이전의 어떤 시기에 발출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志于學(지우학)'이라 할 때 '志'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어떤 나의 삶의 총체적 지향성을 말하는 것으로 주체적 결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차서 학교에 입학한다든가, 남이 하는 대로 서당에 간다든가, 부모님께서 공부하라고 하시니까 공부를 시작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공자의 삶의 최초의 자각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자각이란 배움을 향한 자각이었다. 인간의 깨달음의 최초의 계기는 이미 15세 전후에는 대강형성되는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 인간의 일생을 지배하는 어떤 체험의 깊이는, 상상력의 폭이 넓은 15세 전후의 소년시절에 이미 형성되는 것이다.'삽십이입!'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이 삼십이 되어 '홀로 설 수 없는 인간'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인간이다. 立이란 부모나 친지의 도움이 없이 자력으로 '선다'는 것이다. 이 선다는 말에는 인생에 대한 자신감, 나는 이제 내 두발로,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의 세계를 딛고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력히 표출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건설하고자 하는 인생에 대한 대강의 청사진이나 방향감각이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십이불혹'이란 단순히 의혹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이 사십이란 인생의 과정 중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이며 따라서 주변상황이나 사람들과의 충돌이 많은 시기인 것이다. 이렇게 상충되는 의견이 있을 때에 현혹됨이 없이 올바른 자기의 주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공자는 '불혹'이라 표현한 것이다. 불혹은 곧 주체성의 확립이다.'오십이지천명', 사람이 나이 오십이 되면 이제 한 인간으로서 대강 권위의 정점에 오른다. 주변에서 리더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게 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모습이 원만한 작품의 틀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이 때가 되면 마흔 때의 주관적 확신성보다는 나의 판단을 넘어서는 어떤 보편적 기준을 항상 앞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기준을 '하늘의 명령' 곧 천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불혹은 자기주관을 중심으로 이야기 한 것이므로 주관적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천명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보편적 원리를 말하는 것이며 객관적 측면이 강하다. 그것은 '나'라는 개체의 철저한 부정 위에서 성립하는 어떤 보편적 가치의 세계에 대한 확신인 것이다. 공자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도 태연히 거문고를 뜯으며 외쳤다. "저들이 날 어찌하리오. 이몸에 주공(周公)으로부터 내려오는 문화가 깃들어 있을 진대, 하늘이 정녕코 이 문화를 버리지 않으시려 한다면 저들이 날 어찌하리오!". 공자의 生死는 이미 개인적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결정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믿었던 것은 하늘의 소리요, 하늘의 명령이었다. 그것은 이미 나라는 개체의 논리를 떠나,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문화적 가치였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그는 '斯文(사문)'이라 불렀고, 그것이 곧 그의 '天命(천명)'이었던 것이다.


'육십이순', 이 말은 정말 우리의 일상적 언어 감각에 리얼하게 와 닿는 말이다. '이순'은 '귀가 순해진다'는 말인데, 이것은 모든 것을 통달하여 거슬림이 없다는 그런 達者(달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고, 순수히 인간의 감성과 관련된 '용서'의 함의가 더 강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인간에게서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이지적인 냉철함이나 논리적인 일관성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남이 나에게 어떠한 역한 소리를 해도 그것을 역한 소리로 듣지 않을 수 있는 감성의 순화!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게는 최종적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나이 60이 되면, 이미 신체적으로도 사양길이요 쇠약의 일로를 걷는다. 그리고 이성의 날카로움보다는 단연 감성의 원만함이 돋보여야 할 시기인 것이다. "난 예순이 되니까, 아무리 날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화가 안나!" 혹은 "아무리 세파의 거스리는 일들이 귓전을 때려도 감정의 동요가 없어!"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닐까?'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이 공자의 최후의 독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삶의 과정이 도달한 최후의 경지,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종심소욕'이란 문자그대로 마음이 欲(욕)하는 바를 따른다는 뜻이다. '불유구'의 '踰(유)'는 '넘는다', '건넌다'는 뜻이다. '矩(구)'는 원래 목수들이 쓰는 기역자 모양의 곡척을 말하는 것이다. 콤파스를 뜻하는 規(규)와 함께 '법도', '규칙', '기준', '준칙'의 의미가 된다. 불유구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일정한 질서의 기준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마음이 원하는 바를 마음껏 따라 가도 조금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 이것이 진정한 인간의 자유가 아니고 무엇이랴!



* 爲政第二(위정제이) -5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맹의자문효   자왈  무위  번지어   자고지왈   맹손문효어아
我對曰, 無違."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아대왈  무위  번지왈   하위야     자왈  생   사지이례  사 장지이례
祭之以禮."
제지이례


맹의자가 효(孝)를 물었다.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거슬림이 없는 것이다."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 그에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맹손씨가 나에게 효를 물었는데, 나는 그냥 거슬림이 없는 것이라고만 대답했단다."번지가 말했다.: "그것은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요?"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살아 계실 때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 지내고, 예로써 제사 지내는 것이다."

<해설> 

'무위(無違)'는 일차적으로 '거슬림이 없다', '어김이 없다', '위배함이 없다'는 뜻이 분명하다. 효에 대한 물음에 이러한 대답이 주어졌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뜻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장에서의 '무위(無違)'란 어떤 의미인가? 무위(無違)란 절대적인 복종이나 무조건적인 따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예(禮)로써 섬기며, 돌아가시면 예(禮)로써 장례와 제사 지내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살아 계실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일관되게 예(禮)로써 섬기는 것을 무위(無違)라 재 정의한 것이다.아버지의 명령이 윤리에 어긋날 때, 우리는 얼마든지 불복종할 수 있다. 그러나 불복종에는 하나의 단서가 있다. 불복종조차도 예(禮)로써 해야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한다고 하는 것이 꼭 '무례(無禮)'함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생과 사를 일관하는 것은 오직 예(禮)이다. 그 예를 지킨다고 하는 것이 '무위(無違)'의 본 뜻이라고 공자는 갈파한 것이다. 이것은 번지에게 공자가 자신의 새로운 깨달음을 전한 것이다. 바로 번지를 통하여 수천여년 앞으로 다가올 세대들에게 전한 것이다. 효(孝)의 본질은 복종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예(禮)로써 섬김에 있는 것이다.

* 爲政第二(위정제이) -6


孟武伯問孝. 子曰 :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문효   자왈    부모유기질지우


맹무백이 효를 물었다.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

 

<해설> 

'기(其)'를 자식으로 보고 전 문장의 주어를 보면, 해석은 어머니, 아버지는 오직 자식이 병들 것만을 걱정한다는 뜻이 된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자식이 병만 안 걸렸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애절한 심정에 걸려있는 것이다. 공자는 어른으로서 그 입장을 바꾸어 부모의 마음을 술한 것이다.
맹무백은 본시 호용(好勇)의 인간이다. 따라서 자기 몸을 해칠 수 있는 행동을 잘 저지를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동료 맹의자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말을 할 당시, 공자의 아들 백어나, 자식과 같은 안회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자는 그 자신의 실존적 아픔을 토로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문맥을 떠나서도, 이 '부모유기질지우(父母唯其疾之憂)'라는 한마디는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슴에 절실히 와 닿는 말일 것이다. 보통 때, 자식들이 무럭무럭 자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이 장미빛이고 행복한 단란함에 젖어든다. 그러나 일단 자식이 아파 보라! 모든 것이 캄캄해지고,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삶의 보람이 없어지고, 자신의 희비가 사라지고 오로지 자식의 병 치유에만 매달리게 된다. 그야말로 자식이 병만 안 걸려주면 그 이상의 효도는 없는 것이다. 공자는 효에 관하여 부모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라든가 군(君)에 대한 수직적 충성을 말한 적이 없다. 자식에 대한 강요 이전에, 이러한 부모의 자연스러운 애틋한 정감을 들어 자식의 효성스러운 마음을 유도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신체를 아프게 해서 부모님의 마음까지 아프게 해드리는 상황이 없도록 조심하는 마음, 이것이 곧 효의 본질이라고 갈파하는 공자의 언어 속에서 우리는 유교의 본질이 이성주의적 도덕의 논리적 강요가 아닌, 인간의 본연적인 정감에의 호소에 있다는 것을 알 수

* 爲政第二(위정제이) -7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 犬馬, 皆能有養;不敬,何以別乎?" 
 자유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  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자유가 효를 여쭈었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요즈음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봉양하는 것만을 일컫는 것 같다. 허나 개나 말도 우리사람이 모두 잘 길러주고 있는데, 부모님에게 공경함이 없다면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겠느냐?"

<해설> 

자유(子游)는 자하(子夏)와 함께 문학에 능한 인물로 공문(孔門)에서 비교적 중후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자이다. 또한 자유는 공자의 사후 공자교단을 처음으로 리드한 인물로 추정된다. 자유(子游)는 자(字)이며, 그의 성(姓)은 言이고 그의 명(名)은 언(偃)이다. 그러므로 그의 본명을 말할 때는 언언이라한다. 자유는 스승의 말을 실천하는데 추호도 게으름이 없는 사람이며 무엇보다도 그는 매우 훌륭한 행정가였다. 자유는 무성(武城)의 읍재(邑宰)로서 활약했으며, 그는 부하들을 다스리는데 매우 분별력이 있었으며, 민심을 예악으로 다스려 매우 예술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공자의 상찬을 얻었다. 그가 일찍이 무성재(武城宰)로서 활약했다는 사실은 그가 문학에서 출발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본시 탁월한 무인(武人)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문학으로 꼽히었고 공자사후에 교단을 리드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공자의 가르침을 곧이 곧대로 잘 받아들여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통치자가 되었고 그의 인격의 무적(武的)측면보다는 문적(文的)측면이 후대에 기억되게 된다.여기기서 말하는 '금지효자(今之孝者)'라는 표현에 있어 예나 지금이나, 항상 '요즈음 사람들은...'이라 말할 때는 과히 긍정적인 맥락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이 장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효의 본질이 복종이나 의무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경(敬)'에 있다는 사실이다. 敬은 진지함이요, 경건함이요, 공경스러운 태도이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적인 교감의 세계이다. 敬이 없다면 그것은 부모를 모신다 하는 일이 개나 돼지를 기르는 차원의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갈파하는 공자의 양식 속에서, 우리는 오늘 바로 우리세태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 공자의 깨우침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 爲政第二(위정제이) -8


子夏問孝.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자하문효 자왈   색난  유사  제자복기로  유음식   선생찬  증시이위효호

자하가 효를 여쭈었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어른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어른에게 귀찮은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어른께서 먼저 잡수시게 하는 것만으로 일찍이 효라 할 수 있겠는가?"

<해설> 

문제는 '색난(色難)'의 해석을 둘러싼 대결이다. 色의 주체를 부모로 보는 견해와 자식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전자에 의하면 자식이 부모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 되고, 후자는 부모를 공양함에 자식이 온화하고 공경스러운 안색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서는 후자의 경우, 자칫하면 '교언영색'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므로, 그렇게 볼 수는 없다고 간주하여, 안색은 역시 부모의 안색이고, 그 안색을 살필 줄 아는 나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다.그런데 자하가 효를 묻는 이 대화의 원문을 뜯어보면 부모와 자식이라는 말은 나와있질 않다. 제자와 선생이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 공자의 대답으로 미루어 효가 꼭 부모-자식 간에만 한정된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며, 효는 좁은 개념의 가족윤리의 울타리에 갇힌 개념이 아니라, 선생과 제자사이에, 장자(長者)와 유자(幼者)사이에 폭넓게 쓰인 어떤 덕성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 爲政第二(위정제이) -9

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 如愚.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 不愚!"
자왈  오여회언종일  불위  여우퇴이성기사   역족이발  회야  불우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회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하였으나, 내 말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아 그가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물러가고 나서 그의 사적 생활을 살펴보니 역시 나를 깨우치기에 충분하다. 안회는 어리석지 않도다!"

<해설> 

안회는 공자가 仁하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수제자 중의 수제자인 안회의 요절과 그에 대한 사랑이 <논어>곳곳에 스미어 있다. 여기 사(私)는 분명 공(公)과 대비되는 말이다. 공자의 학단 내에서 公이란 제자가 스승 공자를 만나는 시간을 말한다. 私란 제자가 물러나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토의하며 노는 시간을 말한다. 그러니까 공자와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세미나를 할 때에는 안회는 일체의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말들에 도무지 거역하는 안색이 조금도 없고, 모든 것을 따르기만 하는 듯이 보였다. 그것을 '불위(不違)'라 표현했다. 공자는 이러한 안회의 태도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안회는 소리없이 물러났다. 그런데 그가 제자인 친구들과 토론하고 담소하고 삶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살펴보게 되었다.
발(發)은 '촉발하여 밝힌다'는 뜻으로 공자와 안회 사이에서 일어나는 느낌의 교감의 어떤 상태를 기술하는 말이다. 즉 나와 말할 때는 그가 묵묵히 따르기만 해서 바보스럽게 느꼈는데, 그가 사적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보니까 오히려 역으로 나를 깨우치고 계발(發)시키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즉 공자는 자기가 가르친 내용을 제자의 실천을 통해 역으로 촉발받고 계발받고 그것의 참 의미를 깨닫게 도는 것이다. 제자의 언행을 관찰하여 제자에게 배울 줄 아는 열린 마음을 지닌 공자의 인간미에 우리는 다시 한번 숙연한 스승의 상을 발견하게 된다.

* 爲政第二(위정제이) -10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 所安. 人焉수哉? 人焉수哉?"
자왈  시기소이  간기소유  찰기소안   인언수재   인언수재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 행하는 바를 보고, 그 말미암은 바를 따지며, 그 지향하는 바를 살핀다면, 사람들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으리오! 사람들이 어찌 자신을 숨길 수 있으리오!"

<해설> 

다산 정약용은 '시(視)', '관(觀)', '찰(察)'이라는 의미가 비슷하면서 다르게 쓰인 이 세 동사를 의미의 강도에 따라 배열된 것으로 보았다. 시(視)는 혹 무심하게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요, 관(觀)은 반드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요, 찰(察)은 더더욱 자세히 정밀하게 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냥 '관찰한다'는 의미를 다양하게 표현한 어휘의 변화일 수도 있다.
'수'는 '숨긴다', '은닉한다'라는 뜻으로 새기면 된다. 이(以)를 인간행위의 현재로, 유(由)를 과거로, 안(安)을 미래로 파악한다. 以는 用이며 그것은 인간의 현재적 행위이다. 즉 우선 인간을 바라볼 때, 그가 현재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피라는 것이다. 그리고 由는 그 행위의 과거적 사태이다. 즉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그러한 행위가 유발되었으며, 또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밟아왔는가를 살피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安이란 그 행위의 미래적 사태이다. 그 행위의 지향점 즉 목표나 이상으로 삼는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세 측면을 모두 살필 때 비로소 그 인간의 행위와 그 행위의 주체의 인격의 전모가 숨길 수 없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복합적 감정의 동물이다. 인간의 행위는 반드시 의식이라고 하는 느낌의 고등적 단계와 결부되어 있으며, 이것은 반드시 시간적 인과 속에서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또 동시에 과거로부터의 축적은 반드시 미래 속에 투사되어 있다. 미래가 없는 현재는 존재할 수가 없다. 현재란 미래가 과거로 이행하는 과정의 찰나를 의미할 뿐이다. 미래는 경험된 적이 없지만 항상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간을 이해할 때 현재라는 한 시점의 단절적 오류를 수반하기 쉽다. 반드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전관하는 습관을 길러야만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공자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爲政第二(위정제이) -11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옛 것을 온양하여 새 것을 만들어 낼 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해설> 

'온(溫)'은 '옛 것을 캐어 들어간다', '싸늘하게 식어 버린 옛 것을 다시 데운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둘 다 옛 것을 잊지 않고 다시 복습함으로써 그 옛 것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함의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온(溫)'이라는 글자는 삼수변이 없는 모습과 상통하는데, 그 글자를 잘 살펴보면 그릇이 위에 있고 그 밑에 화기가 올라오는 모습이다. 이것이 그릇에 있는 것을 끓이는 모습일 수도 있고, 또 술독과 같이 무엇을 온양, 즉 발효시키는 모습일 수도 있다. 우리 된장국이나 꼬치장국의 특징은 , 모든 재료가 한군데 들어가 끓여짐으로써 어떤 새로운 성질이나 맛이 발현된다는 데 있다. 발효라는 것도 옛 것으로부터 다른 성질이 발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에 있어서 온고(溫故)의 목적은 지신(知新)에 있을 뿐이다. 新을 위하여 故는 溫되었을 뿐이다. 故는 故일 뿐이다. 故가 故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新으로 참여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新을 떠난 故는 존재하지 않는다. '온고이지신'이라는 명제는 근본적으로, 옛 것에 대한 존숭의 맥락이 아니라 새 것의 창조라는 맥락으로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강조가 溫故라는 전통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知新이라는 창조성에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창조를 위하여만 溫故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미래의 창조가 없는 과거는 과거의 자격이 없다.

爲政第二(위정제이) -12


子曰: "君子不器."
자왈 군자불기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해설>

'군자불기'의 불기(不器)의 뜻은 그 능력이 두루 통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군자는 근원적으로 器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즉 군자는 본질적으로 器로 규정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군자불기'는 器의 부정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器에 의하여 한정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어떤 본질적 위상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器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器가 이로 인하여 드러나게 되는 자리라는 것이다. 즉 불기(不器)는 器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器를 포괄하는 자리이다. 군자는 단순히 도덕적인 인격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는 리더를 말하며, 그는 器가 아닌 器를 부리는 자이다. 그러므로 器는 수많은 신하를 말하는 것이요, 군자란 임금을 말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爲政第二(위정제이) -13


子貢問君子.
자공문군자
子曰: "先行, 其言而後從之."
자왈 선행 기언이후종지


 

자공이 군자에 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먼저 실행하라. 말은 그 후에 행동을 따르게 하라."

<해설> 

자공은 비교적 연소한 제자로서 탁월한 외교관이요, 비즈니스맨이었다. 자공은 말의 명수였다. 말로써 제후를 설득시키고 말로써 재화를 벌어 들이는 탁월한 재주꾼이었다. 이러한 자공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선행(先行)' 그 한마디였던 것이다. 먼저 행하라! 말인 즉은 그 행함을 뛰 따라가게 하면 족하다. 우리의 교육방법으로 가장 잘 쓰이는 말이 '솔선수범'이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말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써 모범을 보인다는 말이다. 이것은 만고를 통하여 양보할 수 없는 보편적 진리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란과 무기력증세를 보이는 것도 바로 우리사회 리더들이 말만 앞세울 뿐, 후학들이 진심으로 따를 수 있는 행동의 모범을 보이고 있질 못하기 때문이다.

* 爲政第二(위정제이) -14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자왈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불주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두루 마음쓰고 편당짓지 아니하며, 소인은 편당짓고 두루 마음쓰지 아니한다."

<해설> 

군자와 소인의 대비적 가치판단은 반드시 동일한 가치평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라는 것이 확실히 인식되어야 한다. 군자는 士가 지향해야 할 이상이며 소인은 士가 극복해야 할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공자의 소인에 대한 비판은 서민에 대한 경멸의 언사가 아니라, 士임을 자처하는 동일한 사회리더들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다. 공자는 나보다 못한 저 민중 무지랭이 소인들을 처다보고 있는, 선택받은 자로서의 자기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민(民)은 존재의 기반이며, 그것은 다스림의 대상인 동시에 지고의 가치이다.
周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지향이다. 比는 비슷비슷한 인간들끼리 똘똘 뭉치는 현상이다. 周는 보편이요, 比는 편당이다.인간은 항상 자연스럽게 비슷비슷한 자들끼리 뭉치게 마련이다. 마음에 맞는 자들끼리 모여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슷비슷한 자들끼리 뭉치고, 마음에 맞는 자들끼리만 모여 사는 것은 결국 소인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에 맞는 자들끼리 모여 살더라도 그 모임이 하나의 편당적 성격을 지녀서는 아니 되는 것이요, 그 붕당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에 대해 항상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比하게 마련이지만, 比를 초극하여 끊임없이 周로 나아가는 삶의 과정이야말로 사람의 군자다움의 바른 기준일 것이다.

爲政第二(위정제이) -15

子曰:"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치 않으면 멍청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해설>

공자가 말하는 '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의식의 장으로 '새로움'이 유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배움이란 물음이요, 탐구요, 독서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이다. 따라서 새로움의 유입이 없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맨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신문이나 삼류소설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우리는 그것을 독서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인식의 지평의 확대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學은 반드시 思로써 질서 지워져야 한다. 思는 새로운 경험적 사실의 유입은 없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반추하고 서로의 관계를 정연하게 심화시키는 과정이다. 思는 나 홀로 의식의 자내적 반추과정이다. 그런데 學만 있고 思가 없으면 罔(망)하여 진다. 배움만 있고 사유가 없으면 맹목적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반대로 사유만 있고 배움이 없으면 殆(태)하여진다. 생각만을 깊게하고 새로움의 유입이 없는 체험의 세계는 공허한 것이다. 그것은 선방만을 유랑하는 선승들이 자칫 잘못 빠지기 쉬운 유폐와도 같다. 과거의 훌륭한 선승(禪僧)들은 결코 學을 게을리한 사람들이 아니다. 學에 집착하지 말라는 禪(선)은 있을 수 있어도, 學을 무시하라는 禪은 있을 수 없다.

爲政第二(위정제이) -16


子曰:"攻乎異端, 斯害也已."
자왈 공호이단 사해야이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단에 들어가는 것은 해가 될 뿐이다."

<해설> 

여기서 말하는 이단은 지금 현재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쓰이는 맥락에서 규정되고 있는 의미로 해석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공자시대에는 공자 사상에 대한 정통의 개념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양묵(楊墨)이니 노불(老佛)이니 하는 따위가 모두 공자 후대에 형성되어 대비된 개념들이요, 공자시대에 공자를 괴롭혔던 어떤 이단학파의 개념이 아니다. 공자는 창조적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여기서 '이단(異端)'을 '색다른 단서', '기이한 생각'의 뜻으로 푼다. '공호이단'의 공(攻)은 전공한다, 연구한다의 뜻으로 한다. 따라서 상식적인 것을 버리고 색다른 것만 추구하는 사람들, 구체적인 것을 무시하고 절대적이고 추상적인 어떤 진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일상적인 것을 외면하고 허황된 도통이나 해탈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병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멧세지을 담고 있는 것이다.

爲政第二(위정제이) -17


子曰:"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 是知也." 
자왈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유야! 내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이다."

<해설> 

자로는 본시 용맹스러움을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이런 사나운 자들은 대체로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안다고 우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공자께서 다소곳이 일러주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마!"참으로 안다는 것을 무엇인가? 과연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난해한 질문에 대하여 공자는 앎에 대한 인식론적 규정을 회피하고자 한다. 그리고 매우 우회적으로 앎에 대한 우리의 앎을 드러내고자 한다. 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즉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앎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앎 그 자체의 규정이라기 보다는 앎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자세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인간의 앎에 있어서 가장 큰 병폐는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즉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모르느냐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명료하게 아는 인간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우기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 무지의 영역으로 전이되리라는 소망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느냐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을 때만이 앎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지지위지지'의 영역은 '부비위부지'를 통해서만 반사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바로, 모르는 것을 확실히 모르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자에서만 비로소 진정한 앎에 대한 발돋움이 가능케 되는 것이다.

爲政第二(위정제이) -18

子張學干祿.子曰:"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자장학간록 자왈  다문궐의  신언기여  즉과우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다견궐태  신행기여  즉과회  언과우  행과회  녹재기중의

자장이 공자에게 녹을 구하는 법을 배우려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많이 듣되 의심 나는 것은 빼어 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어진다. 많이 보되 위태로운 것을 빼어 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가 적어진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이 바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해설> 

여기 나오는 자장은 본시 진(陳)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8세 연하인 제자이다. 자하, 자유와 함께 공자말년 교단의 가장 강력한 세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세 사람 중에서는 가장 아웃사이더적인 성격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자장의 관심은 항상 현세적 출세나 세속적인 성공에 쏠려 있었다. 자장은 매우 현실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논어>속에서의 자장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좋은 질문자이다. 많은 질문을 통해 공자의 좋은 대답을 꺼집어 내고 있다.
공자와 자장의 나이 차이를 48세로 시인한다면, 이 대화의 장면은 70여세의 공자에게 스물을 갓넘은 청년이 세속적 성공의 방법을 묻는 장면이다. 여기서 '녹(祿)'이라는 글자를 넓은 의미의 추상적인 '행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장의 질문은 좁은 의미의 벼슬자리를 얻는 방법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삶의 행복의 획득에 관한 공자의 지혜를 규탐하는 질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장의 '행복'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것이며, 현세적인 것이다.이런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탁월하다. 그는 현세적이고 경제적인 질문의 맥락을 윤리적인 맥락으로 회전시켜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우리 삶의 자세에 어떤 본질적 회전을 요구하는 것이다.공자는 말한다.먼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듣고 보아라! 경제적, 정치적 성공의 추구이전에 그러한 목표를 달성시키기 위해서 인간이 실천해야 할 과제상황은 '문견(聞見)'이라고 공자는 갈파한다. 먼저 많이 들어라! 여기서 말하는 '다문(多聞)'이란 다양한 가치관이나 체험의 수용이다. 그러나 여기에 조건이 있다. 의심이 나는 것은 빼놓으라는 것이다. 여기 '빼놓다'에 해당되는 궐(闕)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삭제나 무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중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불안한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행하여야 할 것은 그에 대한 일체의 가치판단을 보류하는 것이다. 그것을 당분간 '괄호'속에 집어 넣는 것이다. 그 괄호 속에 집어 넣고 남은 것, 다시 말해서 의심스럽지 아니한 것만을 조심스럽게 말하면 곧 허물이 적을 것이다. 많이 보아라! 많이 체험하라! 단 위태로운 것을 괄호에 집어 넣어라! 그리고 위태롭지 아니한 나머지를 신중하게 행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이렇게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다면 세속적 성공은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爲政第二(위정제이) -19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擧直조諸枉, 則民服;
애공문활  하위즉민복    공자대왈  거직조저왕  즉민복
擧枉조諸直, 則民不服."
거왕조저직 즉민불복

애공이 물어 말하였다."어떻게 하면 백성이 따릅니까?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곧은 자를 들어 굽은 자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를 것이며, 굽은 자를 들어 곧은 자 위에 놓으면 백성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해설> 

애공(哀公)은 문자 그대로 슬픈 군주, 공자의 생애에 있어서 공자의 조국 노 나라의 마지막 군주다. 아버지 정공(定公)이 죽고 나서 왕위를 계승한 해가 BC 494년, 공자의 나이 58세였다. 그때 애공은 10세 전후의 어린아이였다. 그의 재위 16년에 공자는 세상을 떴다. 이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를 공자말년으로 본다면, 애공은 스물을 갓 넘은 아직도 어린 군주였다.'조'를 '놓는다'는 동사로 해석하면 '거직조저왕'은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놓는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은 옛날의 목수들이 나무를 쌓아 보관하는 생활지혜와 관련된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정치판에 적용한 것이다. 즉 곧은 자를 들어 굽은 자 위에 놓으면 굽은 자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불운한 시대상도 바로 굽은 자들이 바른 자 위에 앉아있기 때문에 생기는 모습이다. 곧은 자들은 굽은 자 위에 앉히면 백성들은 그러한 정치를 심복하고 따른다. 그러나 굽은 자들을 곧은 자 위에 앉히면 백성들은 반항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 반항이 굽은 자들을 제거할 수 있다면 모르되 결국 그 반항의 몸부림마저 그 굽은 압제 속에서 굽어져만 가는 것이 우리 삶의 현실이다. 공자가 살고 있는 시대도 삼환(계손씨,숙손씨,맹손씨)의 폭정에 의하여 굽은 자들이 바른 자 위에서 설치고 있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爲政第二(위정제이) -20

 

季康子問: "使民敬忠以勸, 如之何?"
계강자문 사민경충이권 여지하
子曰:"臨之以莊, 則敬; 孝慈, 則忠;
자왈 임지이장 즉경 효자 즉충
擧善而敎不能, 則勸."
거선이교불능 즉권

계강자가 여쭈었다."백성으로 하여금 경건케 하고 충직케 하여 스스로 권면케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자신을 장엄케 하여 사람을 대하면 백성이 경건하게 되고, 자신이 효성스러움과 자비로움을 실천하면 백성이 충직하게 되고, 능력있는 자들을 등용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들을 잘 교화시키면 백성들이 스스로 권면하게 될 것이요."

<해설> 

계강자는 대부 계씨 가문의 7대 영주이다. 그의 아버지 6대 영주 계환자는 공자가 노 나라의 내각에 있을 때, 공자의 동료였다.이 장의 대화는 공자가 노 나라에 돌아온 후에 이루어진 말년 대화이며, 이때 이미 계강자는 10여년 정치수업을 쌓았다. 아들 같은 계강자에게 공자는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 계강자의 질문은 民을 주어로 하는 것이다. 民이 경(敬)하고 忠하여 권(勸)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의 주체는 民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자는 역습을 감행한다.民이 경충이권(敬忠以勸)할 수 있는 것은 民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바로 그대의 마음자세, 바로 그대의 삶의 자세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民의 경충(敬忠)에 대하여 그 주어를 民에서 군(君)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다.民이 敬하게 될려면 바로 그대 자신이 위엄있는 경건한 삶의 자세로써 民을 대하면 될 것이다. 뭘 백성에게 따로 바랄게 있는고! 民이 충직하게 되길 원한다면, 바로 그대 자신이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바로 그대 자신이 아랫사람에게 자애로운 덕성을 보이면 될 것이다. 뭘 따로 바랄게 있는가? 백성들이 자기 일에 충실하게 부지런히 힘쓰기를 바란다면, 능력있는 자를 등용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를 교화시키면 될 것이다. 뭔 딴 방법이 있겠는가?백성이 바르게 되기를 원하고자 한다면 다스리는 자 그대 스스로가 먼저 바르게 되시오! 라는 공자의 준엄한 타이름은 항상 들어도 끊임없이 우리의 가슴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타인에게 바름을 원한다면 내가 먼저 바르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爲政第二(위정제이) -21

 

或 謂 孔子曰 子 奚不爲政

혹 위 공자왈 자 해불위정

혹자가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께서는 정치를 왜 안하십니까.


子曰 書云 孝乎 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是亦爲政 奚其爲爲政

자왈 서운 효오 유효 우우형제 시어유정 시역위정 해기위위정

공자왈 서경에 이르기를 효성스럽고 효성스럽다 형제간에 우애가 깊도다, 이를 정치에 베풀도다 했다.

이또한 정치를 하는 것이니 어찌 내가 직접 정치하는 것마니 정치라 할수 있겠는가.

 

공자는 '서경에 孝를 비유해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형제우애를 가르치는 것도 정치다.

벼슬을 하지 않고도 정치는 얼마든지 할수 있다,라고 가르친다.

공자는 집안을 잘 다스리는 것을 정치로 보고 있다.

 



爲政第二(위정제이) -22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예,
자왈 인이무신 부지기가야 대차무예
小車無월, 其何以行之哉?"
소차무월 기하이행지재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으로서 성실함이 없다면, 그 사람됨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큰 수레에 큰 멍에가 없고, 작은 수레에 작은 멍에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그 수레를 가게 할 것인가?"

<해설> 

인간으로서 신(信)이 없다면, 나는 그 가(可)함을 알 수가 없다. 그 가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이다. 신(信)이 없는 인간, 성실함이 결여되어 있는 인간에게는 한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信이 없는 인간은 예측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인간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격의 기본이 형성되지 않는 인간은 그 재능이 아무리 출중하다 하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예나 월은 수레와 마차를 연결시키는 어떤 장치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수레와 소는 본래 두 개의 다른 물건일 뿐이다. 그 몸뚱이가 각기 별개래서 서로 연접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예나 월로써 단단히 묶어 연접시킨 연후에나 수레와 소,말은 한 몸이 되어 소가 가면 수레 또한 가게 되는 것이다. 공자는 이를 가지고서 믿음(信)에 비유한 것이다. 나와 타인은 본래 두 개의 사람일 뿐이다. 믿음으로 굳게 결속됨이 없다면 같이 걸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爲政第二(위정제이) -23


子張問: "十世可知也?"
자장문    십세가지야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 可知也; 周因
자왈    은인어하례 소손익   가지야 주인


於殷禮, 所損益,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 可知也." 
어은례 소손익 가지야  가혹계주자  수백세  가지야

 

자장이 여쭈었다."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본받아 덜고 보태고 한 바 있어 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본받아 덜고 보태고 한 바 있어 열 세대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자가 주나라를 계승한다면 백 세대의 일일지라도 미리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해설>

하례는 완벽하게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은나라가 비록 그것을 계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덜고 보태고 한 바가 있었다. 은례는 완벽하게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주나라가 비록 그것을 계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덜고 보태고 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문물전장(文物典章)는 주(周)나라에 이르러 크게 구비되었고 완벽하게 좋고 완벽하게 아름답게 되었다. 그래서 덜고 보태고 할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이상적 군주가 일어난다면 반드시 한결같이 손익없이 주례를 따를 것이니 백세라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누군가 주나라를 계승한다면 백세라도 미리 알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만약 이상적 군주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잡란되고 망령되이 역사를 운영할 것이니 망망하여 정해진 기준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역사의 변화를 예측할 길이 없어진다.

爲政第二(위정제이) -24


子曰: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
자왈    비기귀이제지 첨야   견의불의  무용야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제사를 지내야 할 귀신이 아닌데도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요, 의를 보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해설>

불의를 보고도 일어서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비겁이다. 의를 보고 실천하지 않는 것이나, 불의를 보고 일어나지 않는 것은 모두 같은 인간의 비겁함이다. 의를 보고 실천하지 않는 비겁자일수록 받들지 말아야 할 귀신을 받드는 아첨꾼일 뿐이다. 인간은 용기가 없을 때, 허구적 종교의식에 빠진다. 용기없음과 아첨은 동일한 인간의 나약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 두 명제를 병기함으로써 두 명제의 각각의 의미맥락을 상호적으로 강화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