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書 : The Epistle to the Philippians
[영] The Epistle to the Philippians (The Letter of Paul to the Philippians)신약성서 중의 제11번서. 바울의 편지로서는 제 6 번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보통 [옥중서신]으로 불리우는 서신으로,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에 써 보낸편지이다.
1. 본서 수신의 빌립보 교회- 빌립보는 그리스(희랍)북쪽의 마게도냐의 유력한 도시로서 기원 4세기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빌립 2세)에 의해 세워진 곳이고,그의 이름을 따라 빌립보라 부르게 된 곳이다. 후에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되었다. 이 곳의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제 2 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의 초청을받고 유럽에 건너가 최초로 세운 교회이다(행 16:11-40). 그 곳에서 소수의 제자를 얻었으나, 그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 투옥되었다가, 그 옥중에서 간수의 온집안을 믿게 하는 등 여러 가지 기억할만한 일들이 있는 곳이어서, 바울에게는 가장 인상 깊은 곳이었다. 그 후 제3 차 전도 여행에서 돌아올 때도 들림으로써(행 20:1,6) 그와 빌립보 교회와의 친밀한 관계는 계속되고, 다른 교회에서는 물질적 원조를 받지 않은 바울이 이 교회로부터는 재삼 선물을 기꺼이 받고 있음을 보게 된다(4:15-16).
2. 본서의 쓴곳과 때- 본서가 옥중에서 기록된 것은 그 내용에 의해서도 명료하다(빌 1:7,13,17). 그 옥이 어느 곳의 것인가는 사도행전에 의해 추정되는데, 로마설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빌립보서 중에, 바울은 두번이나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려 한 것이 나타나 있고(1:26,2:24), 특히 2:24에서는 [나도 속히 가기를 주안에서 확신하노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가이사랴 설은 채용할 수가 없다. 또한 골로새서와 함께, 근년 에베소설이 제창되고 있는데(1897년 Adolf Deissmann 1866-1937년 독일의 신약학자에 의해 최초로 제창된 것) 이 설은빌립보서에 관해서는, 상당히 유력하다. 그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제 1 조 본서 중에 [시위대안](1:13)은 바울이 로마에서 관대한 대우를 받고 있던 때의 호위(행 28:16)였으리라고 생각되고, [가이사의 집 사람](4:22)도 로마로 여겨져 왔는데, 에베소에도 로마의 군대라든가넓은 의미의 로마 황제의 공사 사용인이 발견 됨으로써, 반드시 로마에 한정되어 있지는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 2 조 바울이 두번이나 빌립보 교회에의 방문을 예고하고 있는것은(1:26, 2:23-24), 본서를 멀리 서바나(스페인)에 전도하려고 간 로마에서 보내진 편지로보기보다는, 오히려 로마로 가기 이전의, 에베소 체재중으로 추정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이두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서, 에베소설은, 곧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바울이 장기간 에베소 옥중에 있었다는 것은, 사도행전에도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료(史料)가 없다. 이 점이 에베소설의 커다란 난점이고, 종래부터의 로마설에 대신할 수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본서 중에 바울은 순교의 죽음에 대해 거듭 말하고 있어(1:21,2:17, 3:10), 바울의 로마의 옥중 생활의 마지막에 가까운 상태가 보여지는 것으로 생각된다.따라서, 본서는 로마 옥중에서, 더구나 그 마지막에 가까운 시기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고, 61년경(케네디)이나 63년의 초기경 (슈미트)으로 생각된다.
3. 본서의 집필 사정과 목적- 이 편지가 기록된 주요 이유로서는, 두가지 일이 생각된다. 그하나는,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선물을 보내준 일에 대해 감사하기 위해서이다(4:10, 14-18). 또 하나는, 교회내에 있던 몇가지 작은 문제에 대한 지시를 주기 위해서이다.그 작은 문제란, 교회내의 불일치(1:27, 2:1-4, 4:2, 3), 유대교주의 (율법주의)자의 위험(3:2),그릇된 완전주의자의 위험(3:12-16)이었다. 그러한 것과 함께 바울은 자기의 신변사정을알려주고(1:12-26), 디모데를 파견할 계획과(2:19-24), 에바브로디도를 돌려보낼 계획을 말하고(2:25-30), 박해 중에서도 용감하게 살며, 어떤 상황하에 있어서든, 주안에서 살도록 권하고 있다(특히 1:27-30, 2:12-18, 3:17-21, 4:4-9).
4. 본서의 내용
1:1-2 인사(人事)-축도
1:3-11 감사와 기도
1:12-26 바울의 개인 소식(투옥의 복음진 보에 유익된 것)
1:27-2:18 여러 가지의 훈계
(1:27-30) 신앙위해 싸우라
(2:1-11)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라
(2:12-18) 신앙으로 복종하여 구원을 이루라
2:19-24 디모데를 추천한다
2:25-30 에바브로디도를 돌려 보내련다
3:1- 주안에서 기뻐하라
3:2-11 거짓된 유대인을 경계하라
3:12-16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라
3:17-4:1 나를 본받으라
4:2-3 유오디아와 순두게에 권한다.
4:4-7 기뻐하며, 염려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4:8-9 일반도덕을 존중하라
4:10-20 원조에 대한 감사
4:21-23 마지막 인사
5. 본서의 특징- 이 편지에는 세가지 내지 다섯가지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 나타나 있다. (1)본서는 바울의 서신 중에서 가장 친밀감이 넘쳐 있는 개인적 우정과 사랑으로 찬 편지이다. 본서에는 갈라디아서 같은 곳에서 보여지는 복음의 자유를 위한 논쟁이라든가, 또는 로마서에 논해져 있는 조직적 구원관, 혹은 고린도서에서 보는 복잡한 교회 문제 같은 것은보여져 있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안에 있는 바울의 풍성한 내면적인 신앙미(信仰美)가 넘쳐 있다.
(2) 본서는 기쁨, 즉 환희의 편지이다. 본서 중에 [기쁨]이라든가 [기뻐한다]는 등의 말이,불과 4장 중에 무려 16회나 씌어져 있다(1:4, 18, 18, 25, 2:4, 17, 17, 18, 18, 28, 29, 3:1, 4:1,4, 4, 10). 이 중 [기쁨 Cara](카라 chara)라는 명사가 5회(1:4, 25, 2:4(2), 29, 4:1). [기뻐한다Caivrein](카이레인 chairein)라는 동사가 11회(1:18, 18, 2:17, 17, 18, 18, 28, 3:1, 4:4, 4, 10)있다.더구나 이 편지가 옥중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렇듯 [기쁨]이라는 말이 거듭되고 있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울 자신의 내적 생활이 얼마나 충실해 있었나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3) 이 편지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편지이기도 하다. 바울은 고난중에서도 다만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살며, 그것도 큰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귀중한본서이다. 바울의 생(生)의 전내용은 다만 그리스도로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할 뿐 아니라,전부로 하여 살았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이다. 실로 본서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주안에서]라는 말이 거듭 나오고 있다(1:1, 13, 14, 26, 2:1, 19, 24, 29, 3:1, 9, 14, 4:1, 2, 4, 7,10, 13, 19, 21). 특히 이 편지 중에는, 바울이 쓴 [그리스도론]이 2:5-11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찬송가였던 것으로 보고 있는데, 바울이 여기에 이것을쓰고 있는 것은, 겸손을 권하기 위해서이다.
(4) 또한 이 편지중에는 그리스어 [코이노-니아 koinoniva(koinon'a)라는 말이 많이 보여져 있다(1:5, 7,2:1, 3:10, 4:14, 15). 이것은 [교제], [사귐], [함께 함], [분여]등을 말함인데, 전도의 수고에 함께 하고, 때로는 바울에게 선물로 분여하여, 사귐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성도의 교제]에 힘쓰는 종교이다.
(5) 이 편지에는 또한 [복음 eujaggevlion(euaggelion)]이라는 말이 여러번 나온다(1:5, 7, 12, 27, 2:22, 4:3, 15).1:27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것은 모두 같은 의미로 씌어져 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에 맡긴 선교의 역사(일)을 의미하고 있다. 그는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고(갈2:7-8), 디모데라든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서(빌 2:22,행 16:1-3), 이방인에의 복음 전도에출발했다. 빌립보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바울이 빌립보를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그들에게 전한 이래, 계속 그들의 복음 전파의 일을 도왔다. 그리고 복음위해 바울은 투옥되고(1:13, 17), 투옥되는 몸이면서도 기쁨에 넘쳐 있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은 매이는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리다(딤후 2:9). 그리고 복음은 승리의 대가도(大街道)를 똑바로 힘차게 진군해 갔다(1:12, 살후 3:1). [文獻] 칼빈:신약성서 주해 중 빌립보서, 新敎出版社;H.A.A Kennedy:The Epistle to the Philippians(The Expositor's GreekTestament), 1903;J.H.Michael:The Moffatt NT Commentary), 1928; J.J.Muller:Epistles ofPaul to the Philippians and to Philemo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NT), 1955;Donald Guthrie:NT Introduction, 1970; いのちの 言葉社刊:新聖書注解-ピリピヘの 手紙, 1972;이성호편:새聖書大辭典,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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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Philippi(지명)
(Fivlippoi,Philippi) 「말」
마게도냐 동쪽의 번영했던 성읍이었는데, 오늘날은 휠리베드직(Filibedjik, `작은 빌립보'란 뜻)이라 불리우는 고지(古址)를 남기고 있는데 불과하다. 그 해항 네압볼리에서 서북쪽으로 20㎞의 내륙에 있으며, 그 사이에는 숨볼론 산(Mt. Symbolon)을 넘어 달리는 에그나티아(Eghatia)가 도로로서 연결되고 있었다.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때 일행과같이 네압볼리에서 빌립보로 간 것은 이 에그나티아 가도였다(행 16:11,12). 구릉 꼭대기부근의 오르고 내리는 몇 군데에는 상당히 넓은 범위에 걸쳐 돌로 포장된 고대의 도로가 남아 있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밟아 닦아진 흔적이 보인다. 바울 일행이 도보로 네압볼리스에서 빌립보에 가는데는 족히 하루가 걸렸을 것이다.빌립보는 팡가에우스 산(Mt. Pangaeus, 오늘날의 Pangaion Oros, 표고 1,957m)의 동북쪽에 발달한 평원의 위치하며, 강기테스 강(River Gangites)의 저지를 굽어보는 구릉에 세워져이전에는 적어도 BC 7세기 이후 크레니데스(Krenides,Krhnivde")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구릉촌 부근에 많은 샘(krhvnh)이 있었기 때문이다. BC 358년 마게도냐 왕 필립포스 Ⅱ세(Philippos Ⅱ, BC 359-336 재위)가 점령 확장하여 자기의 이름을 따라 성읍을 `빌립보'라고 불렀다. 그는 성벽을 두르고 요해를 견고히 하였는데, 그 일부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나 기타 지점에서 발견된다. 비잔틴 시대의 성벽을 포함하여전장이 3.5㎞에 달하며, 가역(街域)은 장방형이고 그 면적은 80ha에 이르는 광대한 것이었다. 성읍 서쪽의 팡가예우스 산은 금 산지로서 유명하여(바울 시대에는 폐광) 빌립 Ⅱ세는연산 1,000달란트(34t)의 금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금화를 주조(鑄造)하였다.BC 168년, 파울루스(L. Aemillus Pa\ullus)의 지휘하에 로마군이 마게도냐 최후의 왕 페루세우스(Perseus)를 격파하여 그의 국토를 점령하여 BC 167년 그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위하여 마게도냐를 네 지구로 분할하였다. 빌립보는 이들 네 지구(districts) 중 제 1지구에위치했으며, 그 도성은 암비볼리였다. BC 146년, 로마는 이들 네 지구를 통합하여 `속주 마게도냐'(the province of Macedonia)로 하고, 데살로니가를 그 도성으로 하였다.BC 42년, 이 부근의 평원에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군대가 브루타스와 카시우스의군대를 격파하여 빌립보는 일약 유명하게 되었다. BC 31년, 옥타비아누스(아구스도)가 악티움(Actium)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하여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는 앞서 거기서 거둔 승리를 생각하여 빌립보를 로마 식민시의 위계(位階)로 높이고 이에Colonia Augusta Julia Victrix Philip\pensium라는 칭호를 주었다. 이것은 이태리 시민권(jus Italicum)의 특권(면세와 자유 포함)을 수반하고 로마 군대의 퇴역 군인에게 호적한 식민지로 되었다. 수비대가 주둔했기 때문에 인구의 절반은 로마계이고 나머지 절반은 마게도냐계, 그리고 거기에 소수의 유대의 식민이 섞여 있었다. 빌립보는 군사상, 통상상 중요한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이 지방의 도성 암비볼리를 앞질러 마게도냐의 이 지방에서 제일가는 성읍이라고 하였다(행 16:12).빌립보에는 디아스포라(Diaspora,diasporav, 유대인으로서 팔레스틴 이외의 땅에 이주한 자)의 유대인은 소수였던 듯하며, 그들은 이 땅에서는회당을 가질 정도까지는 되지 못하였다. 그들은 성읍 서쪽을 흐르는 강기테스 강가에 `기도처'를 설치하고 집회를 하였다. 바울은 안식일에 거기서 복음을 전하여 개종자를 얻었다(행16:13-15).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준 일로 해서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도공중 질서 문란죄로 체포되어 많은 매를 맞고 투옥되었다. 이때 간수가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행 16:16-40). 제 3차 전도여행 때는 오고 갈 때 바울은 빌립보를 방문하였다(행 20:1-6). 빌립보의 고지(古地)는 1914-1938년사이에 아덴의 프랑스학원('Ecole Francaise d'Athenes)이 발굴하였다. 성벽 북우(北隅)를 이루고 있던 구정(丘頂)의 일각은 아크로폴리스에게 점령되어있었다. 도성의 동쪽에 있는 네압볼리문(Neapolis Gate)에서 서쪽으로 성읍 중앙을 에그나티아 가도가 뻗어 있다. 성읍의 대략 중앙가도의 남쪽에 연하여 포람(Forum)이 설치되어 있었다. 길이 100m, 폭 50m의 광장이 있었는데, 서쪽의 곡물 점포, 동쪽의 도서관 등 여러 조영물(造營物)을 포함하면 길이 148m, 폭 70m의 광대한 지역으로 된다. 이들 조영물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D 2세기 말) 시대의 것인데, 그것은 이전의 더 간소한포람이 있던 장소에 틀림없다. 아마 바울은 이 본래의 간소한 포람을 실제로 보았을 것이다.포람의 북쪽에는 양쪽으로부터 4단의 단계를 거쳐 올라가게 되어 있는 법정의 좌(座,Bh'ma)가 있었다. 이 법정의 좌는 조기(早期) 포람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것인데, 바울과 실라는 여기서 재판을 받았을 것이다(행 16:19-).포람의 남쪽에 접하여 체육장(palaestra, 73×57m)이 있고, 거기서 남쪽으로 100m쯤 떨어져공중 변소(lavatory)가 있었다. 이것은 로마식 변소인데, 42실(室)로 되어 있으며, 돌 좌석이달려 있고, 아래는 수세(水洗)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체육장에는 로마식 목욕탕이 달려 있는데, 그것은 AD 3-4세기의 축조였다. 포람의 동북쪽 150m쯤 되는 구릉의 중복에는 헬라식의 커다란 야외극장이 있으며, 5만의 관객이 수용되었다. 이것은 빌립 Ⅱ세가 경영한 것인데, 지하도는 구경거리로 할 동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그나티아가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단구교회'(段丘敎會, Church of the Terrace)는 AD 500년 경의 조영인데, `바울의 교회'(Church of St. Paul)라 불리운다. 반원형의 아름다운 돌단을 거쳐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이 돌단이 우측에 지하실이 있으며, 그것은 `바울의 감옥'이라고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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