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신약성경개론] 개관

에베소書 : The Letter to the Ephesians

好學 2009. 9. 18. 20:07

에베소書 : The Letter to the Ephesians

 

 

[영] The Letter to the Ephesians(Epistle to the Ephesians)

신약성서 중의 1서. 특히 바울이 옥중에서 쓴 편지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옥중서신]으로 불리운다.

 

1. 獄中書信(書簿) [영] Captivity Epistles, Prison Epistles: 바울의 서간중, 특히 옥중에서 써보낸, 빌립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의 4서간을 가리키는 관용으로되어 있는 총칭.옥()의 장소에 대해서는, 가이사랴설, 에베소설 등도 있으나, 고래로 바울의 로마에 있어서의 투옥중(후60-64년)으로 되어 있다(행 28:16). 따라서 바울의 만년(60-62경)에 쓴 서간이랄수 있다. 각 서간은, 각각의 특장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박해, 이단의 세력이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중에서, 신앙을 확립하고, 교회를 일치케 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글들이다. 바울이 옥중에서 쓴 글은 본래 디모데후서까지 다섯인데, 디모데후서는 전혀 다른 시기의 투옥때이므로, 이를 제외하고, 그 밖의 것만을 옥중서신이라 한다.

 

2. 본서의 수신교회- 에베소에 있는 교회인데, 에베소서의 처음에 있는 [에베소에 있는](1:1)이라는 글이, 고사본은 특히 두 개의 중요한 사본인 시내사본과 바티칸 사본에는 없고, 내용적으로도, 특정한 교회의 문제보다도, 전체의 교회의 일반적 문제를 말하고 있는 느낌이 강한데서, 에베소만이 아니라 에베소를 중심으로 하는 소아시아의 제교회에 보내진 회장(回狀)으로 보고 있다. 바울은 1:1의 [... 에 있는] 앞의 말(원어에는 뒤) 부분을 공백으로 하여 두고, 후에 이 편지의 필사때, 각각의 교회명을 써 넣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최대도시로, 그 지방의 로마행정의 중심이었다. 이 에베소는 신전시(神殿市)로 불리웠다. 그것은 유명한 아르테미스(아데미르 역) 신전이 있는데서, 그리고 후에는 황제예배를 목적으로 하는 2, 3의 신전까지도 포함되어서이다. 바울은, 이곳에 이 지방 전체에 복음을 전하는 기지로 된 교회를 세웠다. 사도 요한은 뒤에 이곳에 있었다. 에베소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여, 매우 번영했는데, 따라서 에베소 교회도 소아시아교회의 중심이 되고, 교회사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3. 본서의 성립 장소와 때- 엡 6:21과 골 4:7에 의해 두 편지가 잇따라 성립된 것이 분명하고, 골로새서가 로마옥중에서 바울에 의해 씌어진데서, 본서도 60년경-62년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에베소서도 로마 옥중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내용에서 판단해도, 자명하다(3:1, 4:1, 6:20). 또 본서의 원숙한 사상과 필치의 풍격(風格)에서 추찰해도, 만년의 편지임이 분면하다. 학자들 중에는 이 서간이 가이사랴 옥중에서 집필된 것으로 보는 이도 있는데(행 23:33-27:2), 로마를 성립지 및 발신지로 하는 편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4. 본서집필의 동기 목적- 본서중에는, 두기고가 다른 소식(통지)을 아시아에 전하기로 되어있다는 것(골 4:7) 이외에는, 이 편지가 기록된 특별한 이유 및 직접 목적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바울이 소아시아의 제교회를 생각하는 지정은 절절한 바 있고, 옥중에서 그들에게 신앙의 비밀을 보여주어 그들의 신앙을 높이려 애쓰는 의도는 잘보여져 있다. 그의 투옥 그것은 근신이라고 해도 틀림없을 정도였고(행 28:16이하), 이 고요함 속에서, 성령은 일찌이 없었을 정도로 분명히 세계 역사의 신적철리(神的哲理), 하나님의 지고(至高)의 목적, 교회의 광영있을 전도를 그에게 보여주셨으므로 이 사상과 이 계시는 발표되지않으면 안되었다. 거기서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의 긴 시간(행 28:30)과, 두기고의 여행이라는 기회를 선용하여, 바울은 이 숭고한 글을 집필, 이것을 본서의 내용에 의해 알 수 있다.

 

5. 본서의 특징- 본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같이 전투적이 아니고, 고린도 전후서와 같이 실제 문제를 취급하는 일 없이, 다만 고요히 하늘에 계시는 주 그리스도와의 영교에 있어서 기록된 서한인 것으로서, 따라서 어떤 의미에 있어서 가장 깊은 비밀(오의 奧義)을 계시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사, 그리고 교회의 본질을 논하는 교회론 또는 그리스도론 등에 있어서 본서는 가장 중요한 서간이다. 즉 본서의 특질인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은 주목(主目)된다(1:15-2:22). 즉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관이시며, 교회는 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상은 특히 중요하다.

 

6. 본서의 내용- 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일)하심의 존엄이 알려져 있는데 대하여, 에베소서에 있어서는, 구속된 자의 총체인 그리스도의 몸, 교회의 숭고함이 말해져있다. 이 서간은, 바울이 지금까지에 가르쳐온 것의 요약이랄 수도 있다. 즉 은혜의 부()를 전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택함 받은 자의 성자에 의한 구속에 있어서 표시된 하나님의 계획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인사로 시작하여(1:1-2), 영적 축복의 하나님을 장중하게 찬미한다. 이 영적 축복이라는 것이, 택하심, 예정, 속죄, 죄의 사유, 하나님의 뜻의 깊으심, 성령의 은혜,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광화로 보여진 하나님의 능력, 그리스도의 전 세계에 대한 주권, 교회의 머리,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결합,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자에 있어서의 내주등의 교리로 발전한다.그리스도에 있어서, 만물을 하나로 통합하려 하는 하나님의 계획(1:9-11), 그리스도와 우주및 교회와의 관계(1:20-23), 신자에게 주어진 구원, 새 생명, 은사의 은혜성(2:1-10), 이방인 구원의 오의(2:11-3:19)가 본서 전반(교리의 부)의 주요점이다. 후반은 생활의 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걸을 것, 닮은 자로 될 것, 이교적 악을 버릴 것, 성실 정직할 것,부정한 교제를 피할 것, 우상숭배의 전형적인 두 가지의 악, 음행과 탐욕을 피할 것, 신자간의 제관계를 중시할 것 등을 가리친다. 이러한 선한 생활은, 전반의 은혜의 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것이다. 특히 교회에서의 일치(4:4), 부정을 온전히 끊을 것(5:3-14), 인간 제관계의 의무(5:22-6:9)에 주요점이 있다. 본서를 쓰기 전에 바울은 교회가 각종의 인간을 흡수하고 있음을 알고, 교회가 주의 몸인것(롬 12:5,고전 12:27),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일치의 필요성(롬 12:4-8,고전 12:12-30)을 이미 가르쳐 왔다. 각양의 인간들이 거주하는 아시아 지방의 교회에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 몸이라는 것을 강조한 서간을 보낸 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용 분해-

본서는 인사와 맺는 말을 빼놓으면 크게 둘로 나뉜다. 전반부를 1-3장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후반부는 윤리적 부문이다.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1:1-2 인사

1:3-6 하나님의 예정의 찬미

1:7-12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찬미

1:13-14 성령의 보증에 대한 찬미

1:15-19 감사와 기도

1:20-23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주심

2:1-10 그리스도와그들(죄인)과의관계

2:11-22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됨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의 철폐-

3:1-13 이방인이 이렇게 구원된 것을 알아야 함

3:14-21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한 것이므로 그리스도를 충분히 하는 것이 최대의 일임

4:1-16 신도 각자 신앙에 의해 일치할 것

4:17-24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원리 새생활원리 따를 것

 

-이방인특유의 생활태도를 버리고-

4:25-32 악을 피하라

5:1-7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5:8-14 빛 가운데를 걸으라

5:15-21 지혜로운 자로 되라

5:22-23 부부의 도

6:1-4 부모 자식의 도

6:5-9 주종(主從)의 도

6:10-20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전하라.

 

-사단에 대한 싸움-

6:21-24 끝맺음

 

7. 본서의 진위성- 에베소서의 진위성은, 옛부터 문제로 되어 왔다. 이 편지가 바울의 것이 아니라 하여, 그 진실성을 부정하는 설, 바울이 쓴 단편을 제자가 후에 집록(集錄)했다는 설, 뒤의 삽입을 많이 인정하는 설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문제점으로서 들고 있는 것은, 제1로 동의어를 속격으로 거듭하고, 장중한 어구로 하는 용법(1:19), 혹은 관계대명사로 써서, 문장을 길게 연속케 하는 용법(1:3-10)등이다. 이것이 다른바울의 편지와는 다른 특색이다. 그러나 그런 까닭에, 이것을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조계(早計)이다. 그 용어가 오히려 바울적이라는 학자도 있다. 제2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상적 특색이다(1:22-23, 4:12-16). 이것은새로운 것이 아니라, 로마서(12:5) 및 고린도전서(12:12)에 보여지는 사상의 발전으로 말할수 없다. 사상적으로 보아 본서를 바울의 것이 아니라고 결론할 수는 없다. 제3으로 골로새서와의 병행기사(골 1:20과 엡 1:10,골 2:2과 엡 4:16등), 골로새서 1장이 에베소서 1-4장의 여러 곳에 분산하여 있는 듯이 보여 에베소서는 골로새서를 이용한 위작이라는 설도 있으나, 골로새서를 바울자신의 서로 보는 이상은, 에베소서를 그 병행기사와의 유사로 인하여 도리어 바울에 의한 편지로 볼 수가 있다.

 

8. 본서와 골로새서와의 관계- 이 서간과 골로새서의 문학적 특징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쌍생아 서간(雙生兒書簡)으로도 불리워왔다. 용어나 내용에 있어서, 에베소서의 반()은, 골로새서 중에 보여지고, 사상과 용어가 부합되는 곳은 40이나 있는데, 각각이 서간의 구조 중에 면밀하게 짜 넣어져 있으므로 그것이 모방이라든가, 위조를 꾀한 것이라고 믿기는 불가능하다. 특히 의의있는 것은, 같은 단어라든가, 구()가 두 서간에 나와 있대도, 아주 전후관계가 다르고, 관계도 여러 가지라는 사실이다. 양자의 유사성은, 저자의 환경이 같았던 사실에서, 납득할 수 있고, 상위(相違)는 수신인이 다른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예를 들면 골로새의 단독교회에 보낼 서간에 보여지는 문제점(골 2:16-23)은, 일반적인 에베소서에는 없다. 어느편이먼저 씌어졌는가를 정한다고 하면 양자에게 공통된 사상이 에베소서에 충실하게 전개되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골로새서간이 에베소보다 일찍 씌어졌다고 생각된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구조에 있어서도 유사하다. 각각 교리적인 것이 있고(엡 1:1-4:16,골 1:1-3:4), 각각 실천적 적용으로서 끝나 있다. 주제가 같은 순서로 다음 다음 계속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어느 서간에서도 1장에 등장하고, 바울의 임명에 관한 언급(엡 3:1-13,골 1:23-29)과, 교리적 부문의 끝에 있는 교리의 총론(엡 4:1-16,골 3:1-4)도 병행해 있다. 실천적 부분에서는, 죄에 대한 경고(엡 4:17-5:21,골 3:5-17)와, 복음아래 있어서의 인간관계에 관한 주목할 만한 곳(엡 5:22-6:9,골 3:18-4:1)이 병행기사이다.

 

[문헌] J.A. Robinson:St. Paul's Epistle to the Ephesians, 1903; N.Dibelius: An dieKolosser, Epheser, an Pilhemon, (HNT), 1927, 1963; E.F. Scott; The Epistles of Paul tothe Colossians, to the Philemon and to the Ephesians, 1930; E. Goodspeed:The Meaningof Ephesians, 1933; D.H. Asmussen: Der Brief des Paulus an die Epheser, 1949; H.Conzelmann:Die Kleinen Brief Paulus, NTD. 8, 19629 ; H. Schiller:Der Brief an dieEpheser, 1957; H. Schiler:Der Brief an die Epheser, 1957; H. Schlier:Christus and dieKirch im Epheser brief, 1930; 1966; F.L. Cross(ed.): Studies in Ephesians, 1956; G.T.Manley:The New Bible Commentary, The Letter to the Ephesians, 197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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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Ephesus(지명)

 

( [Efeso", Ephesus) 「인내」

로마 제국 아시아현에 있던 해항 도시이다.상업과 종교의 중심지인데, 사도 바울이 여기에 3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다(행 20:31).

 

(1)에베소 위치: 지형이 복잡한 소아시아의 서해안에는 몇 줄기의 강이 흘러들어 자연적인 교통로를 이루고, 그 하구에 도시 형성에 적합한 지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헤르무스(Hermus) 하구에 가까운 서머나, 메안데르(Maeander) 강 하구에 있는 밀레도 등이 그 좋은 예이지만, 이들 도시의 중간에 있는 에베소도 카이스테르(Cayster) 강의 하구에있다. 이 강은 그것을 북과 남에서 끼고 흐르는 헤르무스, 메안데르 두 강보다도 작지만, 두 강에의 통로를 가지고 있으며, 또 항향으로 유입하고 있으므로 그 하구에 자리잡은 에베소는 아시아현 최대의 도시로 되었다.

 

(2)에베소 역사: 옛 시대에 에게해의 만은 시의 안쪽까지 깊이 파고 들어와 있었으나, 카이스테르 강이 운반하는 퇴적물에 의해 점차 메꾸어져 갔다. 해변에 있던고대의 시 폐허는 오늘날 바다로부터 6 8km나 내륙으로 들어간 습지대에 있다. 에베소의 역사 이전의 이주민은 카리아인(Carians), 렐레기인(Leleges) 등이라고 하는데,BC 1087년 안드로클로스(Androclus)가 거느린 이오니아인이 아덴으로부터 와서 이를추방하고, 이오니아의 식민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헬라인의 이민은 더 이전부터 시작했으며, 에베소에는 아시아적 모성신(母性神)의 숭배가 행해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옛부터 헬라 신화의 아르테메스(Artemis)와 동일시되어 예배되고 있었다. 헬라인은 여기에 고자 제사장과 처녀 제사장 제도를 조직하고, 또 무장 신자나 신전 창녀를 두었다.BC 560년 경 크로소스(Croesus)는 루디아(Lyaia)의 왕위에 오름과 동시에 근린을 정복하기 시작하면서 우선 에베소의 헬라인부터 쳤다. 그러나 포위 공격 중에 있어서 에베소의 주민은 시를 아데미에게 봉헌하고, 그것을 시벽(市壁)과 신전을 길이 1.6km의 밧줄로 붙잡아 맴으로서 나타냈다. 그래서 크로소스는 여신에 대한 존승(尊柰)때문에 물러갔으나, 사실상 목적을 달하고 헬라인의 지배자를 추방하고 조공을 받게 되었다. 그는 당시 건축 중이던 최초의 대신전에 금소와 새긴 원주(圓柱)를 헌납하여 제사장들을우대하였다. 그러나 BC 546년 바사의 고레스는 이 왕을 치고 에베소를 자기의 지배하에 두었다. BC 334년 알렉산더 대왕은 바사군을 격파하고 에베소를 마게도냐 영내에병합했지만, 거기에 민주정체를 허용하였다. 대왕의 사후는 그 후계자들 중 왕의 장군루시마코스(Lysimachus)가 에베소를 포함하는 소아시아의 대부분을 얻었다. 그는 시의중심부를 두 구릉, 즉 파나지르 다흐(Panajir Dagh)와 뷸뷸 다흐(Bulbul Dagh)의기슭으로 옮기고, 그 부근에 새로운 항구를 축조하였다. 루시마코스는 BC 281년에 셀레우코스 I세(Seleuecus I)에게 멸망되고, 에베소는 그 후 약 100년동안셀레우코스왕조의 것으로 되었지만, BC 190년에 로마에 점령되어 로마로부터 그 맹우(盟友)버가모 왕에게 주어졌다. BC 133년 다시 로마로 복귀되고, 그 후 곧 일시적인 반란에가담하는 일도 있었으나(BC 88), 후에 로마 제국의 평화가 계속되는 동안 동지중해 통치권 내의 중요한 도시로서 오래동안 번영을 유지하였다.

 

(3)유적으로 본 구시: 에베소의 최초의 고고학적 발굴은 1863년 영국박물관의 지원하에 우드(J.T. Wood)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끈질긴 탐색 결과 발굴 개시일로부터 꼭 6년된 같은 날에 신전의 벽을 팠다. 그 후 금세기 중엽까지 수차에 걸친 발굴 결과 구시의 전모가 분명하게 되었다.먼저 아데미 신전에 대하여 말하면, 그것은 오늘의 에베소역 부근 아야솔루크(Ayasoluk)라는 동리에 있다. 최고(最古)의 예배소 자리로서 여신상이나 제단을 놓았던 돌 대가 있다. BC 6세기 중엽에 이 구 예배소를 중심으로 세로 100m, 가로 50m의 대리석조의 거대한 신전이 건립되었다. 그레데인 케리시프론(Chersiphron)에 의해 설계되고그 건립에는 120년이 소요되었다. 이것은 BC 356년에 소실되었으나, 건축가 디노크라테스(Dinocrates)에 의해 알렉산더 대왕 때와 거의 같은 규모로 재건되었다. 단 그 포석(鋪石)은 가설된 신전보다 1.5m나 높게 되어 있다. 이 아데미 신전은 고대 세계 7대불가사의의 하나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후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 때, 여신의 신봉자는 이 선교에 의해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행 19:27)라고 두려워 하였다. 사실 기독교가 전파됨에 따라 이 신전은 중요성을 잃고 AD 262년 고드인(Goths)에게 약탈, 소실되어 겨우 고고학자의 연구 대상을 남길 뿐으로 되었다.에베소의 원형극장과 유적들신전으로부터 구가도가 1.6km 서쪽에 있는 시의 코레시아문(Coressian city gate)으로 통하고 있으며, 바로 그 부근에 경기장이 있다. 이것은파나지르 다흐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남쪽 좌석은 이 구릉의 사면에 만들어져 있다.경기장에서는 온갖 종류의 경기, 경주가 행해졌으나, 특히 그 동쪽 구석에 만들어진특별한 장소에서 검투(飜鬪), 야수와의 싸움이 행해졌다.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싸웠다는 바울의 말(고전 15:32)이 문자대로 해석해야 한다면, 그의 싸움은 이 투기장에서 행해졌다고 생각된다.경기장으로부터 남쪽으로 수 100m지점에에베소의대극장이 있다. 바나지르 다흐의서록 와지(■地)에 만들어져 있으며, 그 사면(斜函)에는 반원보다 좀 크게 잡은 대리석조의 22열의 관람석이 3단으로 되어 있으며, 24,000명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다.배우들은 오케스트라에 의해 무대에 출연하게 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높이 만들어져있는 무대 전면은 조각된 기둥이나 입상(立辣)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헬레니즘 시대의특징을 많이 보이고 있다. 바울의 선교에 반대한 은장색(銀匠色) 데메드리오에 선동되어 일어난 소동은 이 극장에서였음이 틀림 없는 것 같다(행 19:23-41).에베소 교회의 유적에베소의 주요 도로는 극장으로부터 똑바로 항구로 통하고 있다.양단(양端)에 기념문이 있고 노폭은 약 10m,길양쪽에는열주가늘어섰고, 그 배후에건물이나 상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길 서쪽과 시의 중심부에는 학교(김나쥼), 욕장(浴湯) 따위의 주요한 건물이 위치하였다. 이 주요 도로의 남부, 극장의 남서쪽에시장(저자, agora)이 있었다. 직각을 이루고 양쪽에 110m쯤 뻗은 지역을 열주가 있는광장이 두르고 그 배후에 점포나 제실(諸室)이 늘어져 있었다. 중앙의 광장에는 해와물시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특히 동쪽에는 네로 황제 시대에 소급하는 아름다운 광장이 있었다. 시장 입구에 있는 문 중 가장 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은 남문인데 거기에는 각명(刻銘)이 기록되어 있고, 또 주위에 늘어져 있는 입상의 대에도 많은 각명이있다.시장에 가까운 다른 건물에는 도서관과 신전이 있었다. 신전은 아마 애굽의 신 세라피스(Serapis)를 모셨을 것이다. 양자 다 같이 AD 2세기의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 떨어져 뷸뷸 다흐의 정면에 또 하나의 신전이 있었다. 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AD81-96)의 거대한 대리석상의 파편이 발견된 것으로서 이 신전은 아시아현에 있어서의 황제 예배의 장소로서 선정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도미티아누스는 기독교 대박해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 마왕으로서 오래도록 기억된 황제이다. 제 2세기 이후 기독교전승은 사도이며 전도자였던 요한을 에베소와 결부시키고 있다. 사실, 아야솔루크라는동리와 구릉의 명칭은 동방 교회에 있어서의 요한의 칭호인 `거룩한 신학자'(하기오스세올로고스)에 유래하고 있다. 요한은 이 구릉에서 아데미 신전의 우상 예배를 목격했을 것이다. 사후 이 구릉에 장사되고 후에 그의 묘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또, 경기장과 항구 사이에 또 하나의 커다란 교회의 유적이 있다. 이 교회는 거기서발견된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의 비문에서, 431년 에베소 교회 회의가 개최된 유명한 `동정녀 마리아 교회'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또, 파나지르 다흐 동북록에는 `7인의 잠자는 자'의 카타콤베(Catacombs, 로마에 있어서의 초대 기독교도의 지하 매장소로서알려진 지하 구조의 유적 명칭)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데키우스(Decius) 황제의 박해시(AD 250) 7명의 청년이 동굴에 갇혀 잠에 빠졌다가 겨우 데오도시우스 II세(Theodosius II, 480- 450)때에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깨어났다. 그들은 사후 그 동굴에장사되고 그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다른 많은 성인들의 묘도 그리로 옮겨졌다. 역시5세기의 것으로 추측되나 시장에 가까운 시문(市門)의 폐허에서 에베소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승리를 증명하는 하나의 비문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한 개의 구형의 돌 위에새겨져 있는데, 이 돌은 원래 아데미 신상을 안치하는 토대로서 후에 한 그리스도인이그 대신에 십자가를 세웠던 것이다. 그 십자가에 대해 비문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데메아스(Demeas)는 마신 아데미의 거짓 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모든 우상을 추방하는 이 표적을 두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또 승리에 찬 불후의 그리스도의상징을 기리기 위해서이다.

 

(4)성경에 나타난 에베소:이 도시에는 유대인도 많이 살고 회당도 가지고 있었다(행18:19,19:17).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려 얼마동안 전도하다가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남겨 두고 떠났다(행 18:21). 제 3차 전도여행 때에도 들렸으나 이번에는 적어도 2년 3개윌 체재하면서 열심히 전도한 결과 아시아에 살고 있던 자는 유대인도, 헬라인도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행 19:1-10). 곧 은장색 데메드리오의소동이 일어났고, 그 후 바울은 에베소를 떠났다. 이 에베소 체류 중 골로새 지방에서온 에바부라와 빌레몬이 회심한 것 같다. 제 3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도중 에베소에 들릴 수 없어 바울은 밀레도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작별의 인사와 교훈을주었다(행 20:17-38). 후에 로마 옥중에서 그는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써서 두기고에들려 보냈다(엡 1:1,6:21,딤후 4:12).에베소 교회는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일곱 교회 중 하나이며, 사도 요한이 후년에에베소에서 활약한 듯하다. AD 431년 교회의 제 3회 세계 회의가 에베소에서 열려 그리스도의 이성 일인격(二性一人洛)의 교리를 정했다. 또, 449년 소위 도적회의(그리스도 단성설을 주장하다가 패하여 추방된 유티케스XEutyches〉를 회복한)가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