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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제요소에 대한 동방교회 [미의 신학]적 이해

好學 2009. 9. 6. 22:24

개신교의 제요소에 대한 동방교회 [미의 신학]적 이해

들어가는 말

미적 요소 즉 예술은 종교적인,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긴장을 화해시키고 가장 깊고 생생한 교제를 가능케한다. 특히 완성된 예술작품으로서의 건축물은 인간 정신의 거처가 되고 또한 그것이 교회라면 거룩한 신의 정신의 거처가 된다.
건축물로서의 교회는 실제적으로 예배를 위한 필요에서 나온 위대한 예술로서, 보다 능동적인 예배를 위한 편의를 제공하는 동시에 예배의 형태를 형성하는 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을 한다. 즉 건물은 그 안에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예배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며, 예배의 형식과 모양을 규정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예배에서 미술의 요소가 요청됨은 하나님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이 타락하면 그 모습이 어두워졌지만 결코 파괴되지 않는 신의 형상에 대한 교리에 근거 하고 있다. 폰 알멘은 자신이 개신교도 임에도 스테인드 글라스, 십자가들, 벽화등의 표상들에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며 조각, 회화 미술 등은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의식하게 하는 색과 형상을 통한 시각적인 예술'로 정의 한다.

미술의 색채는 '거룩함'에 이끄는 수단이 되며 동방교회의 '미의 신학'적 요소를 경시해 온 개신교회에서도 점차 교회력에 의한 색채의 사용이나 스테인드 글라스, 聖畵 등의 사용이 시도되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력에 의해 사용되는 빨강, 초록, 보라, 흰색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삶의 내용을 상징하며 휘장에 자주, 하 늘색 등을, 예복에 검정과 흰색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형상을 금지하는 교회라도 제단에 성서를 펼쳐둔다거나, 촛대를 세워 일곱교회를 상징한다거나 특별한 절기에 맞추어 주제에 입각한 꽃꼿이를 하고, 예배실 혹은 교회 내부에 聖句를 새긴 패널을 부착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징, 혹은 미적 요소들을 도입함으로써 색채와 형상을 통해, 예배하는 이들을 도우며 하나님의 현존에로 더욱 가까이 가는 인간적 노력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이것들 자체가 우상화되지 않고 오직 보조도구로서 인정될 때에 신앙을 위해 유익한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本考는 먼저 동방교회의 [미의 신학]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고 동,서 교회의 [미의 신학]적 요소의 실제적인 면을 살펴보고 끝으로 한국 개신교에 나타난 상징들을 동방교회의 [미의 신학]에 입각하여 해석하고 일부, 제언해보고자 한다.

1. 동방교회의 [미(색깔)의 신학]
정교회의 가장 위대한 영적 교과서의 제목이 [필로칼리아]로서, 그 문자적인 의미가 '아름다움을 사랑함"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초기 정교회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추상적인 관념을 통해서 보다는 종과 성상을 가지고 있는 비잔틴 대성당의 구체적인 아름다움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애썼다.
정교회에서는 예전에서 오관을 전부 사용하도록 의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기독교적 물질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눈은 성상과 프레스코와 모자이크를 바라본다. 향 냄새는 성도들의 기도와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 미각은 성만찬에서 충족된다. 촉각은 기름을 바르며 은사를 간구하고, 복음과 십자가, 그리고 성상에 입을 맞추는데서 표현된다. 그리고 청각은 예전 속의 영창과 카펠라 성가대의 찬양을 들으면서 즐거움을 누린다.
동방의 기독교에 있어서, 신학과 교리는 예전과 예배의 미학적 형상에서, 그리고 합리적 담화에서 보다는 직관과 명상 속에서 궁극적으로 발현되고 표현된다. ... 동방의 신학은 성소에서 기원된다면 서방의 신학은 학자의 서재나 대학의 도서관에서 기원한다. 전자는 양초, 프레스코, 모자이크, 종, 성상, 그리고 향 냄새를 채용하는 반면, 후자는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한다. 정교회에 있어서는, "철학적 사색이나 학문적 엄밀성이 아니라 시각과 소리가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결국, 동방교회 신학의 많은 부분이 예전의 맥락에서 일어난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서방에서는 신학은 과학적 지혜의 형태를 띠는 반면, 동방에 서는 성례전적 예배의 형태를 띠는 것이다.

2. 동, 서 교회의 [미의 신학]적 요소의 실제

1) 동방교회
동방교회의 예배에는 "성전의 구조에서부터 예전의 순서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상상력과 시적인 표현의 加味"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추상적이고 불변하는 어떤 영원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성육신의 관념은 그들 예배의식을 형성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 결과 동방교회의 예배는 성육신 하신 주님의 전 생애를 보여주는 것으로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도성인신의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셨고 또 지금도 교회의 예전들을 통하여 계시하고 계시다는 사실" 에 근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찬을 준비하는 일은 주님의 유년시절을 의미한며 성경을 펼쳐드는 일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께서 말씀을 전파하기 위하여 나아옴을 의미한다. 지성소 안에 봉헌할 물건을 두는 것은 주께서 자기 교회를 위하여 영원한 제물로 봉헌함을 뜻하였다.
또 그것을 제단 위에 올려 놓는 것은 주님의 시체가 무덤에 옮겨 눕혀졌음을 그리고 잔을 꺼내는 것은 부활하신 주께서 성도들에게 나타나 보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방교회의 儀式은 "영원한 말씀이 역사 가운데 참여했다는 사실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동방교회는 "성전 구조와 대다수의 상징벽화에서까지 하늘나라의 예배현장을 말한 사도요한의 설명(계 4장-5장)을 그대로 보이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등 그칠 줄 모르는 벽화를 모색하여 갔다.
동방교회의 예배는 기원후 350-380년 경에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교구의 정착을 하고 나섰을 때부터 예배의 독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헬라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이 지역은 시와 문학 등 예술과 철학을 숭앙하여 그것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래서 동방교회의 예배도 헬라적 상상력에 의해 그 형태가 이루어졌으며 수많은 상징들이 사용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서방교회에서 부르는 미사 대신에 '신성한 예전 (the Divine Liturgy)'이라고 불렀다.
교회 건축은 비잔틴식으로 지었는데, 바실리카 교회건축이 장방형인데 반하여 비잔틴식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정방형이었으며, 건물 전체가 바위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단을 중심으로 하여 기독교인의 영적 건물을 상징하는 돌로 쌓아 올렸으며, 점차 그리스식 십자가 모양으로 사면의 길이가 같은 십자가 형태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예배는 신비와 경외 그리고 상징적 표현으로 이루어졌고, 성만찬은 신과 영원이 주시는 능력으로 표현되는 신비극이 되었다. 동방교회 예배의 내용은 하늘과 승리하는 교회의 끊임없는 활동을 반영하였다. 히브리서 12장 22-24절을 근거로 오늘의 회중은 수많은 성인들과, 천사들과 함께 예배드림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 원칙은 '교회가 하늘의 회중과 연합하는 것'과 '정교하고도 값비싼 장식을 사용하는 것'에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예배를 드릴 때 성인들, 사도들, 동정녀 마리아, 그리스도 등의 성상들과 정교하게 교회안에 장식한 초상화를 사용하였다. 성서의 지시 중 상을 새기지 말라는 명령을 따르기 위해 사람의 몸부분은 평면 위에 그렸다. 동방교회는 성상화에 뛰어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즉 성상 안에 그 원형인 실재가 현존하 며, 그것은 성사 안에서 그리고 일반적으롤 예배 행위 안에서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결국 동방교회는 성상에 구원에 영향을 주는 신비를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성상들은 교회안에 'Iconostasis'라는 칸막이 안에 놓여지며, 이 칸막이는 예배를 집례하는 장소와 평신도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구분한다. 이 칸막이는 단순한 용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물건이며, 교회안에 하나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기능을 하였다.

이 동방교회 예배의 특성은

첫째, '신비' 혹은 '비의'의 요소와 '상징주의'의 내용을 지니는 점에서 현저하게 특징적이다. 에배의 움직임은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드라마 그 자체 이다.
둘째, '경외감'의 표현이다. 경외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성취의연속성'을 신빙할 뿐 아니라 '구원의 큰 사건'을 생생하게 전망하려는 마음의 상태이다.
셋째,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강조하였다.
넷째, 예배의 기도는 대단히 사상적이었고 시적이었다. 이 기도는 치밀한 구조를 가지지 않았으나 자유롭게 표현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다섯째, 그들의 '성상'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성례전적 역할을 수행하여 보이지 않는 거룩한 이와 연합하게 하는 방편이었다.

(1) 성상논쟁

동방교회의 가장 특징적인 예배요소인 성상에 대한 논쟁을 알아보는 것은 동방교회가 강조하는 ' 미의 신학'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3세기 카타콤을 중심으로 시작된 성상화(Icon)는 우상숭배와 비슷하다고 곧 반대가 뒤따랐으나 성화 숭배는 점점 더해갔다. 서방교회는 일찌감치 성화 사용을 규제하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동방교회는 긴 기간에 걸쳐 이에 대한 논쟁을 하게 된다.
1세기 이전까지는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를 반대했었으나 5세기 경에 변화가 생겼다. 모형에 대한 신플라톤주의적 이론이 도입되어, 모형이란 하나님 자체를 그대로 생각하게 되는 정상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사다리의 첫 계단으로 이해하였다. 모형에 어떤 위험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으로 이끄는 위험이 아니라, 계단을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인 배경을 가지고 성상에 대한 숭배는 점점 더 확대되었다. 이 성상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초상화로, 동방교회 내에 널리 퍼졌으며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성상앞에 절하고, 입맞추고,성상을 앞에 두고 기도했다.
성상에 대한 논쟁이 실제적으로 시작된 것은 레오3세가 성상사용을 우상숭배라 하여 반대함으로 불씨가 당겨졌다. 레오3세는 사실상의 여러가지 책임 면제를 받고 있던 교회의 주권을 잡으려고 이 성상반대를 하게 되었는데, 반대의 근거는 당시 유대교나 회교도에서 물질계를 무시하고 정신적 종교를 요구하는 동방  이원론에 두었다. 그는 군대를 모집하여 성상 주장의 교회를 꺽으려 하였다. 이 결정은 당시 성상을 인정하는 수도사,평신도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쳤고, 이로 인하여 수차례 전쟁까지 하게되었다.

성상을 지지한 사람들 중에는 다마스커스의 존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는 '성상 변호를 위한 연설'에서 "성상의 역할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을 창작해 낸 사람의 의도를 살펴야 한다. 성상이 실제로 하나님과 성자들의 영광을 위하고, 미덕을 전파하며, 영혼구원에 도움이 된다면,모형과 추모와 형상으로서, 그리고 문맹자에게 책으로서 마땅히 대우를 받아야 한다. 눈과 입술과 마음으로 성상을 포용하라. 성상 앞에 절하라. 성상을 사랑하라. 성상들은 성육신 하나님, 성보 마리아, 그리고 성자들과의 교제의 모형이다."라고 썼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754년 성상파괴주의자들이 승리한 Hieria종교회의는 존을 파문시켰다.
이 회의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나타내는 허용 가능한 유일한 물건은, 성만찬에서의 빵과 포도주이다. 이것 외에는 어떤 모양도, 어떤 형태도,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성육신을 묘사하기 위해 취하신 것은 없다. ... 기독교는 모든 이방종교를 배척한다. 그들의 희생 뿐이 아니라 그들의 형상 숭배까지도배척한다." 고 하 여 성상숭배를 정죄하였다. 그러나 787년, 성상숭배자들을 지지하는 제7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 성상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가 표명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고귀하고 생명을 주는 십자가 상과 같은 존경할 만 하고 거룩한 형상은 그림이든 모자이크든 혹은 수공예품이든,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 즉 성구, 사제복, 벽 위에, 그리고 화랑과 집, 길거리에 비치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주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와 거룩한 아기와 거룩한 천사와 모든 사도와 거룩한 사람들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술적으로 묘사된 성상들을 보면 볼수록 더욱더 그 본체를 기억하고 더 흠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상은 정당한 경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참된 신앙의 경배는 아니다." 라고 선언하여 성상을 적극적인 면에서 옹호 하였다.

이렇게 성상에 대한 논쟁은 양극 사이에서 지속되다가 843년에 성상숭배자들의 승리로 마무리되어 매년 사순절 첫 주일에 이 승리를 기념하는 날로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개신교회는 이 제7차 공의회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성상을 우상으로 치부하기에 이르렀고 한동안 교회안에서의 장식과 예술, 미적 요소들에 대한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에 이르렀고 오늘날도 그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요즈음의 개혁적인 예배학자들과 교회사가들에 의해서 동방교회의 예전과 '미의 신학'적 요소를 재연구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동방교회의 예배와 예술은, 그들의 삶 전체가 예배라고 하는 맥락에서 이해가 되고 그럼으로써 '미적 요소'는 그 생활 중에서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예배의 자리를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예술이 계시가 되고, 예배와 같은 위치에서 하나님에게 봉사하게 된 것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인간의 응답이라고 하는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하나님의 계시라는 면에서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동방교회의 예배와 예술을 표현 하자면,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예배와 예술 이라고 하겠다

2) 4,5세기의 예배와 예술

이 시기는 313년이 기독교의 공인과 함께 예배와 예술에 급격한 자유가 주어졌고, 제국의 교회 내에서  둘  사이의 관계가 밀접해 지며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4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예배를 위한 건축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하여 초기에는 큰 교회건물들이 세워졌으나, 그 건물들은 대체로 기존 건축의 전통들을 예배의 목적애 맞추어 수정을 가한 다음 채택한 것들이었다. 대표적인 건물들은 바실리카였고, 그외에 순교자 기념성당, 세례당, 수도원 등이 있었다.
특히 세례당의 둥근 천정은 금빛 모자이크로 덮여 있었고, 그 외에도 다른 빛깔의 돌들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천정 모자이크 그림들은 다분히 성서적이면서도 교훈적이었음을 생각게한다. 밀라노 교구에는 5세기경의 세례당이 있는데, 팔각형 구조와 여덟 기둥이 받혀 있고, 폐허가 된 모자이크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열 두 마리의 비둘기들이 싸여있다. 그리고 보석으로 장식된 큰 십자가가 있으며 그 양쪽에는 두 마리의 양이 서로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성상회화(Icon)가 출현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성서의 사건들을 묘사하는 것들로부터 시작하여 그 사건들이 갖고 있는 숨은 종교적 의미와 특히 그 사건들이 갖고 있는 원초적인 가치를 이미지를 통하여 설명하려 하였다. 교회 바닥에는 모자이크가 성행했는데 이것들은 자연과 신앙의 조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또한 이는 교회 내부의 예배 순서에 따라 성서적인 장면들을 그렸다. 성당벽에 그림을 그린 이유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왔으나 그들 중에는 자신들이 가진 신심에 비해서 글은 전혀 읽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또한 그들은 오랫동안 이교의 미신행위에 물들어 있었다. 이러한 이들에게 한번쯤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일대기를 자신들의 눈으로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국 그들도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4,5세기의 예배와 예술은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간격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성직자들은 '예배에서' 계시와 응답을 하고, 평신도들은 '예술'에서 계시와 응답을 느끼는 이원적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3) 서방교회

"동방교회가 정적이고 초자연적인 요소에 관심을 둔 반면에 서방교회는 확실히 그들 생활 자체에 집착하고 있었다." 고 볼 수 있다. 서방교회의 예배의식은 "대중적이고 평민적인 경향이 농후" 하였는데 실례로 "성찬식에는 사제와 평교인들이 직접 참여하였으며 제단도 회중에게 모두 보이는 곳에 위치해 두었다.
이 시기 교회 건물들은 어떤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동시에 교회공동체의 예배를 위해서도 제공되었다. 여기서 예술은 풍부한 예배 거행의 영성적, 신학적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때 예술은 당시 사회에서 사용하는 표현 수단들을 차용하였다.
예를 들어 죽은 이를 그리는 방법으로서 승리한 이는 눈을 뜬 형상으로, 패한 이는 눈을 감은 모습으로 그렸다. 이러한 차용 뒤에는 명백한 의도가 들어 있었는 데, 그 의도는 마치 이 시대의 예배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 신비의 종합, 부활의 신비, 육화된 말씀에 대한 진리등을 나타내려는 것이었다.
결국 서방교회에서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완전한 계시를 재현하는 것으로 확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적 요소는 그 재현을 도와주는 도구로 쓰였다.
예배당의 건축에 있어서 중세교회는 예배의 극적 요소를 높이기 위해 연극의 공연장과 같은 구조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그것이 고도로 발전한 '고딕'양식으로 발전하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는 모든 것이 에배에 봉사하고 성찬 거행을 윗받침하며, 참석자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신비를 알도록 도와주는 목적들을 가지고 지어졌다. 이 교회들은 지붕으로 덮여 있지만 내부의 조명이 신비스럽게 변하도록 만든 설계가 내부 공간의 양감을 만들고, 전체를 균형잡으며, 내부와 외부에 조
형적인 장식을 분배하고, 회화적 장식을 위해 넓은 벽면을 그냥 놔두는 식이었다. 이런 교회들이 위풍당당하고 힘차고 신비스러웠던 이유는 기쁨과 희망을 주기 위함보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배의 공간을 숭고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천정은 점점 높아갔으며, 또한 종탑을 창안하였는데 이 종탑은 본당과는 분리시켜 세우는 것이 원칙이며, 하나 혹은 둘, 때로는 몇 개씩 집중되어 조화를 이루어 성곽같은 위엄과 중후한 느낌을 주었다.
한편 고딕 양식의 첨두아취는 높은 지성과 참된 신앙이 최후에는 조화를 일치한다는 스콜라 철학이 함축된 것이었다. 건물의 창들이 높고 커졌으며, 특히 스테인드 글라스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으로 거기에 상징과 신학을 담았다. 벽화는 쇠퇴하는 한편, 높고 큰 창을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현저히 발달하였 다. 이 스테인드 글라스는 빛이 투과되면 아름다운 색광으로 신비스러운 느낌과 환상적이며 명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주로 적색과 청색으로 단순한 색면을 이용하여 발전하여 14세기 판화가 등장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중세 교회는 성서의 이야기들을 조각과 모자이크와 회화와 스테인드 글라스로 설명하였으며, '희생의 피를 흘리지 않는 제물의 제단'이 전체 장식의 초점이었다. 제단을 꾸미려는 소원 및 틀림없이 거기 임재하시리라고 믿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도록 꾸며진 예배순서들을 구현하기 위해 그릇들과 비품들과 제복들을 고안해 냈다. 그리하여 예배도구에 금, 은, 보석 사용이 널리 행해졌는데 이는 믿음의 열정으로 받아들여졌다. 회화는 주로 성서나 예식서에 넣을 삽화를 위해 그려진 것이 많았고 12세기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성체에 개인적으로 인사드리면서 바치는 기도, 종의 사용, 초의 사용,집례자가 성체 앞에서 절을 하는 것, 성체를 만진 손가락을 경외의 표시로 계속 맞붙이는 것, 죄의 고백시 가슴을 치는 것 등의 예배 습관이 생겨나기도 했다.

3. 한국 개신교에 대한 '미의 신학'적 입장에서의 접근과 제언

1) 예배음악
한국교회 예배에 있어서 음악적 요소는 거의 서구음악 일색이다. 사용되는 악기는 피아노가 대부분이며 일부는 오르간과 소규모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현악 중주단을 통해 청각적인 면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에 있어서 일부 진보적교회에서 국악 찬송과 국악기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토착화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민의 심성과 시각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라 사려된다.

2) 예복
예전과 평상복의 구분은 7세기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예복들이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1세기경 부터였고 11-12세기에는 교회력에 따른 예전복의 상징적 색채가 사용되었다.
이와같은 발전은 기독교가 분열되면서 가톨릭은 11세기 이후 예전복의 부분적인 발전과 함께 오늘에 이르렀고 성공회나 루터교는 16세기 이후 교파 나름대로 예전복을 정착시켰으며, 개혁교회들은 의식을 폐지하고 설교자는 학자들이 입던 단순한 가운을 착용(제네바 가운)하여 왔는데 예배시에 목사나 성가대원, 기도위원, 헌금위원들이 착용하는 예복은 서구의 것들을 차용하고 있다.
영대(stole)는 성직에 의하여 성직자에게 부여된 직책과 의무의 상징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영대는 불멸을 상징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멍에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교회에서는 "에피트라 켈리온이라고 하는 것을 사용하는데, 사제직의 봉헌하는 은총을 상징한다. 또 사제는 이것이 없이는 직무를 이행할 수 없다고 한다.
근래에 들어와서 의식을 중요시하는 교회에서는 특히 가톨릭과 성공회에서는 간소화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한편 의식을 경시하던 개신교회는 성서에 의해 예복을 회복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전)복은 의식을 인도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일반 백성과 구별하여 반드시 예복을 입고 그의 직분을 행하였다. 그리고 예복의 착용은 기능과 역할 면에서도 예복을 착용함으로서 성직자의 직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게 되며, 신자는 성직자의 인간적인 외모가 감추어지므로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임할 수 있어 의식을 보다 숭고하며 위엄있게 하여준다. 또한 예복의 적절한 상징이나 색채는 예배에서 언어와 같은 역할을 하여 메시지의 전달을 용이하게 하며 예배에 임하는 자에게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더욱 심화시켜줄 수 있다.
그러나 교회사적으로 볼 때 설교자가 검은 가운을 입는 것은 오히려 세속의 것(졸업가운)을 받아들인 것이며 우리의 정서도 그러하지만 본래의 색인 흰색, 회색 혹은 미색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며 이는 진리의 말씀의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3) 교회건축

교회건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에서 형식과 상징들을 풍부하게 사용할 때에 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 영혼에 대한 진리의 전달은 청각만을 통하지 않고 시각에서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개신교 역사를 보면 형식과 상징을 제거한 결과, "신의 임재"에 대하여 무감각하여 지고 예배의 정신에 둔하여졌던 것이다.교회에서 이러한 형식과 상징의 사용은 경외심과 진실성에 대한 불가결의 요소를 지닌다. 그 좋은 예로 사람들이 교회의 탑과 십자가를 볼 때마다. 그리스도의 집인 것과 주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음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성도들의 모임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인상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게 된다.

(1) 종탑
교회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교회의 종탑이다. 종탑은 십자가와 함께 가장 눈에 잘 보이는데, 이 종탑은 고딕 건축에서 볼 수 있는데 탑을 설치하는 이유는 그 장엄함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넓게하며, 그곳에 종과 시계를 달기 위한 목적에서 였다. 또한 탑을 뾰족하게 한 것은 예배의 대상인 영원하신 하나님께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 간다는 뜻에서이다. 탑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해석되어진다.

(2) 십자가
십자가는 본래 죽음을 상징했으나, 그리스도교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상징이며 희생과,하나님의 사랑을 그리고 구원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바울신학에서 십자가는 구속사건을 나타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상징하고, 聖化와 화목을 나타낸다. 십자가는 시각적인 설교이다.

(3) 예배당의 방향
교회는 대부분 서양식의 건축인데, 방향을 세울 때 현관을 서향으로, 강단이 있는 곳은 동향으로 지었다. 이것은 동쪽이 빛을 상징하며 인류의 낙원을, 주님의 고향이 있는 곳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서향식은 이러한 상징적 의미 이외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 실제로 대예배를 드리는 정오 경에는 햇빛이 예배당 측면의 창문을 비치게 될 뿐만 아니라 예배드리는 사람의 눈에 직사되지 않으면서도 밝기 때문이다.

(4) 예배당의 내부

현관 문에서부터 강단까지의 넓은 공간은 회중석이다. 이 회중석(nave)이란 말은 라틴어의 'navis' 배(船)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교회가 인생을 항해하는 방주라고 생각되었다. 중앙 통로를 예배당 안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성가대의 입장과 목사들의 입, 퇴장을 쉽게 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교회의 방향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있을 때 그리스도교인이 하나님께로 접근해 가는 것을 뜻.하며 회중석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공동체를 상징한다. 외부세계와 차단해 놓은 유리창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나 색유리의 여러 가지 상징들을 그려넣어 과거에 많은 그리스도 교인들이 진리를 위해 싸운 것을 회상시켜 주며, 그들로 하여금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고 성도의 깊은 교제의 의미를 깨닫게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 건축에서도 이러한 면들을 고려하지 않고 편리성을 너무나 추구한 나머지 서구적인 풍의 것과 교회사적으로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양식이 비일비재한 형편이다.
그렇지만 강화도의 성공회 성당이나 카톨릭의 일부 건축물 그리고 개신교의 몇몇 건축물들에서 한국적인 건축미를 시도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친근감이 있는 곡선미를 살린다거나 내부구조의 변형 내,외부의 장식 등에 있어서 예배학적으로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5) 성가대석
성가대석을 예배당의 성소 또는 강단 위에 자리를 설치한 것은 2세기 이후의 일이며, 원래는 회중석 본당(Nave)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성가대가 회중을 향해 대면해서 찬양하는 것은 효과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으나 그것은 성가대가 예배에 있어서 말씀과 예전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기 때문에 설교대 뒷면에 설치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고 본다. 좋은 위치는 강단 옆에서나 회중 속에서, 또는 2층으로 된 교회는 2층 가운데에 위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6) 강단

예배의 중심은 복음이다. 이 복음은 설교와 성례전을 통하여 나타난다. 성례전과 설교가 행해지는 곳은 강단이다. 강단이야말로 예배당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며, 주님의 식탁이 놓여진 곳이며, 신앙고백과 헌금, 하나님의 배성들의 찬송이 인도되어지는 곳이다.
의식을 중요시하는 교회에서는 교회의 동쪽 부분을 二分하는데 강단과 성소이다. 강단은 회중석과 성가대석에 가까운 쪽이며 성소는 제일 동쪽 깊은 곳이다. 강단과 회중석 사이에는 난간이 있고 보통 강단은 회중석보다 세 계단 높다. 이 세 계단은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성찬에 참여하기 위하여는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 성소는 강단보다 세 계단 높이 있으며 그 사이에 난간이 있다. 성소에는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은 성소보다 적어도 한 계단 높이 있다. 이 계단 모두를 합하면 일곱 계단인데 이는 "성령의 일곱가지 은사"를 상징하는 것이 된다.
강단의 중심부에 대한 배치에서도 두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성찬대를 중심에 두고 좌우에 설교대와 낭독대를 배치하는 의식 중심의 교회이며, 또 하나는 설교대를 중심에 두고 그 앞에 성찬대를 배치하는 설교중심의 교회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유형은 모두 균형있는 배치라고 할 수 없다.
균형을 이루는 강단의 배치는 설교대와 성찬대가 같은 위치에 놓이며 성찬대는 벽에서 분리하여 집례자가 회중을 향하여 서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4) 성만찬 집기

성찬대는 십자가에서 희생당한 주님을 상징하며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床이다.
성찬대를 카톨릭과 루터교회 그리고 영국 교회에서는 제단이라고 하는데 이는 순교자들의 묘, 특히 카타콤(catacomb)의 제단에서 행하여졌기 때문이다.
성찬대 위에 씌우는 성찬보는 재포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주님의 수의 구실을 하는 상징으로 보여지며, 하나님의 임재를 맞기 위해 마음이 지녀야 할 상징이다. 그리고 이 흰 제단보는 성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이 하나로 묶여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보는 그리스도의 백성을 가리키고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교 역사의 20세기 후반은 성만찬의 본래적인 의미를 되찾는 시기였고 각양 전통의 예전적 다양성이 또한 수용되면서 성만찬 '집기'의 문화적인 표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만찬 집기는 그 원래적인 모형들이 그대로 전승 되면서도 각기 시대와 문화의 표현이 수용되면서 발전되어 온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각 시대마다 변화해 온 신학적인 강조점에 따라 결정적인영향을 받아왔음도 볼 수 있다. 이에 우리의 관심은 우리 문화 전통에서 잔과 집기로 사용될 수 있는가에 있다.
성만찬 집기는 서구 교회의 전통에 따라 그 표현이 다양했다. 유대교의 축성배, 고대 아일랜드의 성만찬의 잔, 6세기의 시리아 집기, 16세기의 영국의 집기, 18세기의 독일의 집기와 오늘날의 집기가 있다.

이제 한국교회도 한국 문화 전통에서 술잔과 떡 접시의 실용성과 예술성, 그리고 종교적 맥락을 추적해서 우리에게 적절한 집기를 개발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성만찬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 참예자들에게 있어서 말씀과 함께 가장 소중한 것인데 말씀이 보이지 않고 듣는 청각적 말씀이라면 성만찬은 참여 하며, 만지며, 먹고 마시며, 냄새를 맡으며, 느끼는 五感의 예배 그 자체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5) 세례반(Baptistery)

세례반은 세례를 받기 위해 물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초대교회에서는 개종하는 사람에게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거행하였다. 4,5세기에는 세례반을 따로 교회에 설치하였다.
침례교회에서는 예배당 안 강대 뒷편에 침례탕을 설치해 놓고 커튼으로 가리워 둔다.
그러나 일정한 곳에 두기 보다는 예배당의 내부에 회중들의 눈에 잘 보이는 장소에 세례반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회중들이 세례반을 볼 때마다 자신의 세례를 상기시켜 신앙의 받침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세례반의 적적한 위치는 설교대와 성찬대와 나란히 강단의 중심적 위치에 설치하는 것이 좋다. 세례반의 상징은 신생의 표시 즉 죄에서 깨끗해졌다는 뜻으로 물을 적시는 상징이다.

6) 촛불
계시록에서 빛의 생멸은 교회의 생멸을 의미한다.
촛불을 켜는 습관은 초대교인들이 지하동굴에서 성찬식을 행할 때 사용하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촛불을 켜는 것은 교회가 빛의 장소가 되어야 하며, 또 어두움에 대처하여 빛으로 극복하는 곳임을 보여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이다.
촛불을 켤 때 두개를 켜는 곳과 일곱 개의 초를 켜는 곳이 있는데 이는 각각 다른 의미가 있다. 2개를 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며, 7개의 초를 켜는 것은 성령의 일곱가지 은사를 상징한다. 그리고 성만찬 식탁 뒤에 큰 촛대를 놓을 수 있는데 이는 세상의 빛을 상징하며 오순절의 성령의 불꽃과 교회의 생명과 영원한 날에의 기대를 상징화 하는 것이다.

7) 향
향은 시편 141편 2절에 나타난 바와같이 기도의 상징이다. 향을 피울 때 향연은 기도의 표상이며 하나님께 숭배와 감사를 올리는 기도의 상징이다.
향의 사용은 본래 예전적인 동기보다는 순교자의 무덤 위에서 예배를 드릴 때 유해한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하여 사용한 것이다. 향의 사용은 사람이나 물건에 분향하는 것이 아닌 기도의 상징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8) 색채의 상징
교회가 변하는 절기를 나타내는 뚜렷한 방법의 하나는 제단의 설교대, 교독대, 그리고 예복의 영대에 나타나는 색깔에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빛깔은 교회의 절기를 나타내 준다. 그리고 빛깔의 상징은 그것의 아름다움 때문에서이다.
초대교회에서 색채의 사용은 유대교 성전의 색채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12세기까지만 해도 빛깔과 절기에 관한 순서는 정해지지 않았다. 1198년 교황 Innocent Ⅲ는 그의 논문에서 처음 색깔의 순서를 말하였다.
종교적 상징의 색채의 올바른 사용은 신자들로 하여금 예배에서 신앙심을 일깨우고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현재 예배와 의식에서 사용되는 색과 상징은 다음과 같다.

(1) 백색(White)
흰색은 주로 그리스도의 축제와 연관된 색으로 결백, 무죄, 용서, 평화, 기쁨, 빛,환희 등을 상징한다. 성탄절기에 사용되며 또 성 목요일에 주의 만찬의 시작에 대한 기쁨을 상징한다.
부활절에는 최상의 거룩한 날로 지키는 풍요함을 뜻하기도 한다. 흰색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킨 것을 의미한다. 또 흰색은 세례식, 견신례, 임직식 및 결혼식에도 사용된다.

(2) 적색(red)
적색은 피, 불, 기독교의 열정, 성령과 순교자, 교회의 사업과 선교를 상징한다. 그리고 희생과 수난의 표이기도 하며 승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오순절에는 성령의 불을 상징한다. 또 하나님의 자녀의 희생적 생활을 의미하며 순교자의 피를 상징한다.

(3) 흑색(Black)
검정색은 결여를 나타내며 비밀, 슬픔, 비애, 그리고 죄의 어두움과 죽음을 상징하는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성 금요일과 장례식에도 사용되며 재해를 당해 기도할 때도 이 색을 사용한다.

(4) 보라색(Violet)
참회와 경계, 금식 등을 상징한다. 고난을 제외한 사순절 40일간 사용된다. 강림절 동안에는 오시는 왕을 위한 임금의 왕권을 상징으로 위엄과 존엄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난절에는 엄숙성을 암시하며 청결과 영적 씻음을 암시한다.
(5) 녹색(Green)
자연 가운데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색깔로 영원성, 그리고 크리스챤의 신앙의 영원 불변과 종교적인 소망의 신선함을 의미하며 영적인 성장과 희망, 성결, 생명을 상징한다. 이 색은 삼위일체 주일부터 강림절 사이에 사용한다.

나오는 말
동방교회는 '五感'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 '오감'을 제하고는 동방교회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신학이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동방과 서방의 감성적 차이(동방은 성상 속에서 말씀을 보기를 원했던 반면, 서방은 말씀을 언어적인 선포를 통해서 듣기를 원했다)는 서로의 신학적 근저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질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한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동방교회의 이러한 요소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한다거나 단순히 추종해서는 아니된다는 점이다. 오직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그 진정한 의도와 필요성을 감지하고 교류를 주저하지 않을 때 진정한 에큐메니칼의 정신은 실현될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本考의 의의는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서방교회와 개신교에서 발견되어지는 동방교회의 [미의 신학]적 요소를 발견하여 그 둘의 공통점 혹은 일치점을 찾아냄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임을 다시한번 확인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