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歷史,宗敎,哲學/(역사)韓國敎會史

한국교회사(1) 그리스도인의 역사관

好學 2009. 9. 6. 22:22

한국교회사(1) 그리스도인의 역사관



2005년 첫 주부터 경향교회보를 통해 한국교회사를 연재하고자 한다. 한국교회사를 연재하는 목적은 선교 121년을 맞이한 한국교회의 발자취를 살펴봄으로써 과거에 한국교회가 수난 가운데서도 어떻게 그 신앙을 지키며 성장하였는가를 살피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하고 모색해 보며,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봄에 그 목적이 있다 하겠다.

그리스도인의 역사관

그리스도인의 역사관은 어떠해야 하는가?
역사(History)란, 인류사회의 과거에 있어서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 그 기록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역사가 성립되는 전제들로서는 ①시간(언제) ②공간(어디서) ③사람(누가) ④사건(무엇) ⑤기록(의미와 교훈) ⑥목적(왜 일어났는가?) ⑦교훈(어떻게 되었는가?) 등이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역사란 시간과 공간 세계 속에 일어났던 기록적 가치를 가진 사건들의 모음임과 동시에 그 사건들의 의미와 연관(사건과 사건 간의, 어제와 오늘 간의,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나 사이의)을 탐구하는 인간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역사관이다. 이 역사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그 역사는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또한 과거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역사관은 이와 다르다.
기독교 역사란, ①여러 시대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헤롯 왕 때) ②유대 베들레헴에서 ③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④오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구원) ⑤성령을 보내어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전개해 나가는 일을 ⑥기록하여(성문화 계시=성경) ⑦오늘에 교회가 받은 선교적 사명으로 삼아 구원성취를 이루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역사관과 기독교적 역사관은 모든 관점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1) 우선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
그리스도인이 보는 역사는 인류사도 아니요, 문화사도 아니요, 사상사도 아니요, 전쟁사도 아니며, 세상 나라의 흥망성쇠사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세계사의 중심은 구속사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구원을 위하여 어떻게 역사를 섭리하셨는가?’를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역사관이다.

2) 역사의 중심인물이 다르다.
일반 역사의 중심인물은 영웅과 호걸과 재사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과 그가 행한 일들을 중심으로 기록되는 것이 일반 역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중심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속사의 중심에 우뚝 서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기 때문이다.

3) 또한 역사의 전개 기관이 다르다.
일반 역사는 국가라고 하는 세상 기관을 통해 역사가 전개된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는 그의 몸 된 교회 운동을 통하여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역사는 곧 교회사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상속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어떻게 성장하고 선교하였는가가 역사 기록의 중요한 내용이되는 것이다.

4) 또한 역사의 전개 방법이 다르다.
일반 역사는 힘(칼의 권세)을 바탕으로 그 역사를 전개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은 케르그마 곧 전도(설교, 말씀의 검) 운동을 통하여 전개된다.
위와 같은 역사관은 역사에 대한 변할 수 없는 우리의 관점이다.

세계사의 중심인 하나님의 구속 역사

1)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고 하는 선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계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시간과 공간과 모든 물질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의미이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유지된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가 하나님이시요, 그것을 다스리시는 통치주도 하나님이시요, 그 최종적 소유주도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이다.
이를 한 마디로 성경은「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2) 역사 운행의 목적은 구속사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하였다.
이는 역사 존재의 목적이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이 세상 역사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해 내는 역사로 진행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여 죽음이라고 하는 영원한 형벌 가운데 놓여있을 때에 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셔서 저를 구원하셨다. 노아에게 방주를 예비케 하셔서 저를 구원하시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사 성민(선민)을 삼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그 백성을 출애굽 시키심으로 저들을 구원하셨다.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이 친히 그 백성과 나라를 통치하시고, 저들이 범죄하였을 때 바벨론과 앗수르에 포로로 보내셨다가 당신이 정하신 때에 저들을 귀환케 하심으로 구원하셨다.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 운동을 전개하시므로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내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를 존재케 하는 근본 목적이요, 의의였던 것이다.
구속사야말로 모든 역사의 중심이요, 의의요, 열쇠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 이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이다.

3) 역사의 중심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일반 역사의 중심인물이 영웅과 호걸과 재사라고 하면,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중심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나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나 페르시아의 고레스나 헬라의 알렉산더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가 한 시대를 풍미하는 듯 하였으나 결코 영구히 역사의 중심인물이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저들은 모두 다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사라져 버리고 마는 유한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시작부터 마치는 그 날까지 결코 사라지지 아니하고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구약의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고 있으며, 신약의 복음서들은 역사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사셨는가를 증거하고 있으며, 서신서와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
서 이 세상의 끝 날에 다시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역사 곧 구속사의 중심에 언제나 영원토록 우뚝 서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그리스도가 세계사의 구심점이 되고 분기점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역사의 분기점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주전(B.C.)과 주후(A.D.)로 나뉘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로 모든 개인과 가정과 나라들마다 주전에서 주후로 변화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주를 만난 사람마다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의 새 시대가
열리고, 새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4) 역사의 전개 기관은 교회이다.
일반 역사는 국가라고 하는 세상 기관을 통해 역사가 전개된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는 그의 몸 된 교회 운동을 통하여 전개된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운동이야말로 구속사 성취의 필연적인 기관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이 역사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곧 그의 몸 된 교회가 역사의 중심이라는 사실과 직결된다.

5) 역사의 전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일반 역사는 힘(칼의 권세)을 바탕으로 그 역사를 전개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운동은 케르그마 곧 전도(설교, 말씀의 검) 운동을 통하여 전개된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은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역사를 당신의 뜻대로 후회함이 없이 진행해 가신다. 죄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심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역의 중심 계획이시다. 그러므로 세계와 세계 역사는 언제, 어디서, 어떤 경우든지 구속사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기쁘게 동원된다.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상관없이 거룩하신 주권자의 목적 성취를 위하여 동원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님은 특별히 전도 운동을 통하여 당신의 구속사를 전개하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역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져야 한다. 아니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지기 전까지 인류 역사는 복음때문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역사는 결국 택자 구원 완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 역사의 주인이시다.
역사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이 이 세상 역사를 구속사로 진행하신다.
구속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운동을 통하여 구속 운동을 전개하신다.
교회는 복음 전파를 통하여 구속 운동을 전개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를 구속사로 진행하심은 당신의 택자 구원 완성을 위해서이다.
택자 구원이 완성되는 날, 인류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곳에서의 영원한 삶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바로 이 구속사의 현장에 한국교회가 존재한다.

제1장 개신교 선교 이전의 한국의 정황

1. 서양종교 및 문화와의 접촉
한국이 서양문화와 접촉한 시기는 언제이며, 서방 세계에 알려지게 된 시기는 언제인가 하는 문제는 많은 역사가들의 주요한 관심이 되어왔다. 그 첫째 접촉은 중국을 통한 경교와의 접촉 가능성이고, 둘째는 통일신라시대 아랍세계와의 접촉 가능성이며, 셋째는 몽고를 통한 가톨릭과의 접촉 가능성이다.

1) 중국을 통한 경교와의 접촉
중국의 기독교 접촉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인도의 전설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동안 도마와 바돌로매가 동방으로 진출하여 도마는 인도에, 바돌로매는 중국에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역사적 문헌에 의하면 중국이 서방 기독교와 최초로 접촉한 교파는 경교였다.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은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네스토리우스(Nestorius) 일파는 선교의 방향을 오늘날의 이라크, 이란, 터키 동남부 등 동방으로 돌려 활동하였으며, 서방교회와는 다른 신학을 정립해가기 시작했다. 페르시아를 거점으로 오랫동안 세력을 확장하던 네스토리우스파는 674년 페르시아가 회교국 아라비아에 의해 멸망당한 후에도 칼리파(Khalifa)의 신임을 얻어 계속 교세를 확장해 나갔으며, 762년에 본거지를 바그다드로 옮겨 계속 발전했다.
네스토리우스주의가 중국에 전래된 것은 당나라 시대였다. 중국에 경교의 전래가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기 시작한 것은 1625년‘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가 발견되면서부터이다.
알로펜(Alopen, 阿羅本)을 단장으로 한 네스토리우스파 선교단이 중국에 도착한 것이 635년, 당(唐) 태종(太宗) 정관(貞觀) 9년이었다. 태종은 재상 방현령(房玄齡)을 내보내 이들을 환영하였고 당의 수도 장안에 머물게 하며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도록 배려하였다.
이 네스토리우스파에 대한 한자 명칭은 여러 가지다. 그들이 페르시아에서 왔다고 해서 페르시아의 한자 음역인‘파사’를 붙여 파사교(波斯敎)라 칭하기도 했으며, 후에 그 교가 로마에서 전래되었음을 알고 로마를 의미하는 한자‘대진’을 넣어 대진교(大秦敎)라 불렀다. 그러다가‘광명정대한 종교’라는 의미가 담긴‘경교’(景敎)란 칭호가 사용되기 시작하여‘대진
경교’(大秦景敎)란 명칭이 널리 사용되었다.

638년 7월에 경교(景敎)는 태종(太宗)의 조정이 공인하는 종교가 되었다. 태종은 국비로 장안의령방(長安義零坊)에 대진사(大秦寺)를 건립하고 승려 21명을 두게 하였다. 태종은 경교를 공인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 교는 도덕적으로 숭고하며 심오한 신비성이 풍부하고 평화를 존중하는 종교이므로 나라가 공인하는 종교로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이 이유 외에도‘당의 태종이 경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 배경에는 한(漢) 이래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룬 태종이 서쪽으로부터 확산되고 있는 아라비아의 회교국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알로펜은 635년부터 641년까지 포교하는 한편, 「예수 메시아경」을 번역하였다. 650년에 즉위한 고종(高宗) 때에는 경교를 진종(眞宗)이라며 전국 각지에 사원을 건설하고 알로펜을 높이어 진국대법주(鎭國大法主)로 삼았다. 이때부터 경교는 국교로 인정받았으며, 845년 무종(武宗) 때의 외래 종교 대박해 사건이 있기까지 약 200여 년 동안 융성하였다.
경교가 한국에 전래 되었을 가능성은 있는가?
경교가 당나라에서 유행하던 635-845년까지 210년 동안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통일제국을 형성했던 시기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당의 군사력의 도움을 받았고, 그 후 통일신라가 친당 정책을 쓰면서 사회·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당의 영향을 깊숙이 받고 있었다. 더구나 일부 학자들은 통일신라시대 해상 무역이 발달해 중국, 일본은 물론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지역에까지 무역을 확장하였다고 주장한다. 경교의 한국 전래를 주창하는 이들은 이와 같은 논리, 즉 신라와 당나라간의 정치, 문화, 군사 교류, 신라와 아랍국들 사이의 무역 교류 등을 통해 경교가 한국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1917년 골든 여사는 금강산의 장안사에서 발견한‘경교모조비’와 경주 석굴암의 무인상, 십일서관음상 등의 옷 무늬와 신발과 유리 장식 등을 페르시아의 것으로 보고 경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1956년에는 불국사에서 석재 십자가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김양선은「한국 기독교사 연구」에서 통일 신라 이후 능묘 제도의 특색이 되어 있는 호석(護石)에 부조(浮彫)된 12지상과 능묘 앞에 배치된 페르시아의 무인상 등이 경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교의 한국 전래에 대한 위와 같은 주장은 단지 추측일 뿐 결정적인 역사적 사료는 되지 못하며, 혹 전래가 되었다 할지라도 종교적인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