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괴테 - 파우스트(Faust:1831)
-제1부-
파우스트는 오랜 세월 속세를 떠나 곰팡내 나는 고딕 식의 서재에 파묻혀
철학, 의학, 신학 심지어는 마술 연구에까지 몰두하여
학식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만큼 대학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심오하고 폭넓은 지식으로도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는 대우주의 법칙을 파악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한계와 무능을 한탄했다.
그는 이미 인생에 지친 노인이었다.
자기의 생명이 이미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 한계에 도달한 학문을 위해서
인생의 모든 것을 희생해 버렸음을 생각하며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더욱 괴로운 것은 지식의 한계보다도 학자로서의 삶이 부질없다는데 대한 불만인 것이다.
어떠한 지식이나 기계도 자연의 신비를 여는 열쇠가 못 된다는 걸 깨닫고
학문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것을 후회하면서 그는 이제 지상의 향락을 누리려고 한다.
즉 학문의 부자연으로부터 자연에 돌아가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자연 과학의 영역에 있어서의 미신 즉 마술에 몸을 맡기고
주문을 읽어 인간과 교섭을 하며 인간과 유사한 영인 지령을 불러내어
우주의 진리를 간파하고 집요한 지식욕과 향락에의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하였다.
파우스트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지상에서의 만족을 구하였기 때문에 지령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인데
대지의 아들인 그로서는 너무나 위대한 지령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지령 또한 그를 외면하였다.
파우스트가 지령의 음성을 듣고 당황하고 있을 때 이상도 없이
지식만을 탐하고 있는 현학적인 그의 조수 와그너가 잠옷을 입은 채 들어와
학문에 대한 이야기로 파우스트가 영혼에 대하여 사색하고 있는 것을 방해한다.
그는 와그너를 보자 다시 불쾌해져서 소리를 질렀다.
"학자 그 중에서도 역사가는 쓰레기이다!" 하고 호되게 꾸짖어 돌려 보냈다.
홀로 남은 파우스트는 고독과 회의 인생에 대한 갈증으로 절망한 나머지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는 육체로부터 빠져 나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영혼이 되어 우주의 진상을 보기 위하여 자살을 결심한다.
그는 독약을 마시면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독약을 입에 대려는 순간 "그리스도 부활하셨네!" 하는 부활절의 합창 소리와 함께
교회의 종소리가 멀리서 은은히 들려왔다.
이 소리는 신을 믿지 않는 파우스트에게 신의 은혜를 믿고 찬미가를 부르면서
숲이나 들을 헤매어 다니던 어린 시절의 옛 추억을 환기시켜 주었다.
더구나 그 노래의 고운 음률은 파우스트의 늙은 가슴 속에
순진하던 소년 시절의 동경을 소생시켜 마침내 자살을 단념하게 되고 만다.
그는 와그너와 함께 밖으로 나가 고운 옷차림을 하고 봄날을 즐기는
시민 학생 군인 직공 노인 소녀 거지들의 무리에 섞여 교외를 돌아다니며 향락의 모습을 바라본다.
즐겁게 춤추는 농부들 가운데서 그에게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노인 한 사람이
파우스트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며 술을 권하여 그도 그 순간에는
유쾌한 기분이 되어 어울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곳을 떠날 때에는 다시 와그너를 향하여 인간의 지식이 무용함을 한탄한다.
석양을 바라보며 지상에 대한 집착과 높은 하늘에 오르고 싶은 마음의 갈등으로
더욱 새롭고 풍부한 내용의 생활을 구하려 한다.
이는 그가 유혹 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때 해가 저물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검은 개 한 마리가 나타나서
파우스트의 뒤를 따라왔으므로 그는 이 개를 서재로 데리고 온다.
파우스트의 가슴에 또다시 이성과 희망이 솟아나
그는 성서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요한 복음을 독일어로 번역하려고 한다.
그러자 서재 안으로 들어온 검은 개는 짖어 대면서 방 안을 돌아다니더니
이상스럽고 불안한 태도를 보이므로 파우스트는 이 짐승이 어떤 영혼이 둔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혼을 불러내는 주문을 읽어 보았으나 하등의 효험이 없다.
그래서 악마가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 주자 개는 점점 변해서
금실로 수놓은 빨간 저고리에 새털을 꽂은 모자를 쓰고 긴 칼을 찬 귀공자가 되어 나타났다.
검은 개는 악마 메피스트펠레스의 변신이었던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라 함은 '빛을 싫어하는 자' 즉 악마라는 뜻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와 악마의 본체 등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달콤한 말로 유혹하려고 한다.
그는 파우스트에게 그가 이 세상에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
원하는 모든 희망과 향락을 성취시켜 주는 대가로 그가 죽은 뒤
그의 영혼을 지옥으로 에리고 가는 계약을 하자고 제안한다.
파우스트는 그의 유혹과 지식에 대한 혐오의 마음에 자포자기가 되어
고민을 잊어버리는 향락에 도취하여 보려고 쾌히 이를 승낙하고
영원히 영혼을 파는 증서에 혈관을 찍어 주었다.
그는 악마를 종복으로 하여 자유로이 부리고 그 마법을 이용하여
인간의 기쁨 및 슬픔을 맛보고 또한 자신의 자아를 인류의 자아에까지 확장하여
세계의 근원을 규명하려는 초인적인 욕구를 관철하려는 것이었다.
계약이 성립되자 둘은 악마의 외투를 타고 세계 여행 길을 떠났다.
악마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파멸의 구덩이에 떨어트리기 위하여
먼저 그를 공상의 세계로부터 끌어내려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현실의 추악한 진상을 보여 주면 그도 향상적인 노력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그 쾌락의 세계를 보이기 위하여 그를 데리고 온 곳은 라이프치히에 있는
아우에르바하의 지하실 주막에서 활기에 찬 대학생들이 주연을 베풀고 있는 곳이었다.
악마는 마술로 만들어 온 술을 타락한 그 대학생들에게 먹여 만취해 있는 광경을 보여 주었으나
냉철한 학자인 파우스트의 도덕성은 마비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에게 젊어지는 약을 먹이려고 산중에 사는 마귀 할멈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요술에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으나 마귀로부터 이상한 액체를
받아 마시고 일정한 의식을 마치자 마약의 효능이 현저히 나타나 노쇠하여
구부러진 그의 몸은 한 서른 살쯤으로 젊어져서 이제까지 몸 한 구석에
잠자고 있었던 정욕이 발동하여 악마의 마법에 의하여 거울에 비친 절세의 미인을 보자
마음이 황홀해지며 추잡한 감정이 일어났다.
악마는 기뻐하며 그레첸이라는 16세밖에 안되는 순결한 처녀를 그에게 접근시켜
육욕으로써 그를 타락시키려고 하였다.
파우스트는 교회에서 돌아오는 그레첸을 길거리에서 본 뒤로는 꿈 속에서도
그의 미모를 잊을 수가 없어 악마에게 자기의 소원을 성취시켜 달라고 졸라댔다.
어느 날 밤 그 처녀가 이웃집에 놀러 나간 틈을 타서 그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안내되어 처녀의 방에 침입하였다.
아담한 처녀의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들뜬 사랑의 꿈에 잠겨 있다가
악마에게 들고 오게 한 보석이 든 조그마한 상자를
쇠로 잠겨진 옷장 속에 몰래 넣어 놓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집에 돌아온 그레첸은 파우스트가 두고 간 보석과 장신구를 발견하고
이제까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 어머니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레첸은 옷을 갈아입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들여다 보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원래 정직하고 신앙심이 두터운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상의한 끝에
누가 준 것인지도 모르는 이상한 선물을 가질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교회에 다 바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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