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그리스도를 본받아]Thomas

[12]. 왕도인 십자가의 거룩한 길에 관하여

好學 2009. 7. 26. 23:04

 

      [12]. 왕도인 십자가의 거룩한 길에 관하여

       

       

      1.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는 이 말씀은 참으로 힘든 말씀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희 저주받은 자들이여, 나를 떠나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마태복음 25:41)"는 마지막 말씀을 듣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지금 십자가의 말씀을 기꺼이 듣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때에 영원한 저주의 판결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시편 112:7).

      주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 오실 때 이 십자가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표징이 될 것이다.

      그때에, 살아 있을 동안 십자가에 달리신 에수님을 본받았던 모든 십자가의 종들은 크나큰 담대함으로 심판장 되신 그리스도께 나아갈 것이다.

       

       

      2. 그런데 왜 그대는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는 십자가를 지기 두려워하는가?

      십자가 안에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고, 적들로부터의 보호가 있다. 도한 십자가 안에서 하늘의 감미로움이 유입되고, 마음이 강해지며, 영이 기쁨을 누리고, 덕이 높아지며, 완전한 성화를 누리게 된다.

      오직 십자가 안에만 영혼의 구원과 영생의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으라(누가복음 14:27). 그리하면 영생에 들어가게 되리라.

      주께서 앞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사(요한복음 19:17), 그대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이유는 그대도 역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 위에서 죽기를 사모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대가 주님과 함께 죽는다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면 그의 영광에도 함께 동참하게 될 것이다(고린도후서 1:5).

       

       

      3. 보라, 모든 것이 십자가 안에 놓여 있으며, 우리가 그 위에서 죽느냐에 따라 모든 문제가 좌우된다.

      왜냐하면 생명과 참된 내적 평안을 얻는 방법은 오직 거룩한 십자가를 지고 매일 죽는 길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아무리 원하는 곳으로 가서 원하는 것을 찾아 볼지라도, 거룩한 십자가의 길보다 더 높고 더 안전한 길은 찾지 못할 것이다.

      그대의 뜻과 판단에 따라 모든 일을 경영하고 시도해 보라. 그러나 결국 그대는 원하든 원치 않든 무언가 고난의 필연성을 발견하게 되리니, 이렇게 그대는 십자가를 개닫게 될 것이다.

      그대가 육신으로 고통을 당하든 영혼의 고통을 느끼든 반드시 영적 환난을 겪게 될 것이다.

       

       

      4. 때대로 그대는 하나님을 잃어버리며, 때때로 이웃으로부터 고난을 당할 것이다. 또한 더욱 자주 그대는 자신에 대해 염증을 느낄것이다.

      어떠한 위로나 위안도 그대를 구원하거나 평안하게 해 줄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의 마음이 흡족해지실 때까지 그대는 고난을 참고 견뎌야 한다.

      하나님은 그대가 아무 위안 없이도 환난을 견디는 법을 배워 하나님께 더욱 겸손하게 복종하도록 만들고자 하신다.

      그리스도와 같은 고난을 직접 체험한 사람보다 더 그리스도의 수난을 마음으로 실감하는 사람은 없다.

      십자가는 항상 준비되어 있으며, 어디서든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대가 어디로 도망가든 십자가를 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대가 가는 곳에는 항상 그대의 자아가 따라 가기 때문이다.

      위에나 아래에나, 안에나 밖에나, 어디로 돌이키든 그대는 항상 십자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대가 내적 평화를 누리고 영원한 면류관을 소유하고 싶다면, 어디서든 반드시 인내해야 할 것이다.

       

       

      5. 만약 그대가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면, 오히려 십자가가 그대를 지고 원하는 목표까지 그대를 인도하리니, 원하는 목표란 비록 이 땅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모든 고통이 끝나는 곳이다.

      만약 그대가 억지로 십자가를 진다면, 그대에게는 새 짐이 되어 부담이 더 커질 것이지만, 그래도 그대는 이 짐을 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대가 십자가 하나를 벗어버리면 틀림없이 또 다른 십자가가 닥칠 터인데, 그 십자가는 어쩌면 더 무거울지 모른다.

       

       

      6. 그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면 누구든 결코 피할 수 없는 십자가를 감히 피하려고 생각하는가? 세상의 성자들 중에 십자가와 환난을 겪지 않았던 자가 어디 있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조차도 이 세상에 사실 때 수난의 고뇌를 겪지 않으신 적이 한 시간도 없었다.

      그는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후에야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리라(누가복은 24:26)." 이 왕의 길 곧 거룩한 십자가의 길 외에 다른 길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7. 그리스도의 삶은  체가 십자가요 순교였는데, 그대는 자신의 안식과 기쁨만 구하는가?

      만약 그대가 환난을 견디려 하지 않고 다른 것만 찾으려 한다면, 그대는 기만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삶은 비참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욥기 7:1) 길목마다 십자가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큰 진보를 이룬 사람은 예전에 자주 무거운 십자가를 경험했던 사람이다. 이는 유배에 대한 그의 슬픔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더욱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8. 이 사람이 여러가지로 고난을 당하기 했으나, 그에게 활력을 주는 위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십자가를 감당함으로써 자신에게 많은 유익이 쌓이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가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동안, 모든 환난의 짐은 하나님의 위안에 대한 확신으로 변했다.

      고난으로 인해 육신이 쇠하면 쇠할수록, 영은 내적 은총으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그러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받고자 갈망하여 아무 환난과 고통이 없는 생활은 바라지 않고 오히려 때때로 환난과 역경이 임하기를 원한다(고린도후서 4:16, 11:23∼30). 이는 그가 하나님을 위해 견디는 고난이 크면 클수록 또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하나님께서 그를 더 기뻐 받으실 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약한 육신으로 많은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그리하여 본성적으로는 항상 싫어하고 피하는 일도 영적 열성에 의해 우리는 그것을 대면하고 또 사랑하게 된다.

       

       

      9. 인간의 본성에 의해서는 십자가를 지거나, 십자가를 사랑하거나, 육신을 질책하거나, 육체를 굴복시키거나, 영예를 멀리 하거나, 기꺼이 징계를 당하거나, 자신을 경멸하고 또 경멸받기를 바라는 일들은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모든 역경과 피해를 견디고 이 세상에서의 번영을 단념하는 일도 할 수 없다.

      만약 그대가 자신만을 바라보면, 결코 이러한 종류의 일을 성취할 수 없다(고린도후서 3:5).

      그러나 만약 주님을 의지하면, 하늘로부터 담대함이 주어질 것이요 세상과 육신은 그대의 명령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대가 믿음으로 무장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다면, 원수 마귀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10. 그러므로 그대는 그리스도의 선하고 충실한 종답게 담대히 주님의 십자가를 질지니, 그리스도는 그대를 사랑하사 친히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그대는 이 비참한 세상에서 많은 역경과 각종 고통을 감당할 대비를 하라.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환난과 고통이 함께 할 것이요, 그대가 어디로 숨든지 그것들이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명심하라. 참고 견디는 것 외에는 환난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치유책과 방법이 없다.

      그대가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고 그와 분깃을 함께 나누고 싶으면 진심으로 주님의 잔을 마시라(마태복음 20:23 / 요한복음 18:11). 위로는 오직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라.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위로를 주시도록 맡겨두라.

      그대는 다만 환난을 견디는 일에 전념하고, 그 환난을 오히려 크나큰 위안으로 여기라. 왜냐하면 그대가 모든 환난을 끝까지 견디었을 때 오는 하늘의 영광은 현세의 이 고통에 결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 환난이 달콤하게 여겨지고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이 즐겁게 느껴지는 대가 오면(로마서 5:3 / 갈라디아서 6:14) 그때는 모든 일이 잘 된 것으로 여길지니, 그대는 지상에서 낙원을 발견한 것이다.

      고통이 그대에게 힘겹게 여겨지고 거기서부터 도망하려는 마음이 가득한 한, 그대는 결코 평안할 수 없을 것이며 환난을 피하고자 하는 갈망이 어디든지 그대를 따라다닐 것이다.

       

       

      12. 만약 고통과 죽음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임을 온전히 받아 들인다면 그대는 곧 휠씬 나아지며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설사 그대가 바울과 함께 삼층천까지 올라갔다 왔을지라도(고린도후서 12:4) 이것이 그대에게 있어 더 이상 악한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 바울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사도행전 9:16)."

      만약 그대가 예수님을 기꺼이 사랑하고 계속 그를 섬기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고난을 받게 될 것이다.

       

       

      13. 아, 과연 그대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당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사도행전 5:4) 만약 그렇다면 이는 그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영광이며, 모든 하나님의 성자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또 그대의 이웃들에게 얼마나 큰 덕이 되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인내를 칭찬하지만, 기꺼이 고통을 견디는 자는 참으로 적다.

      마당히 그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작은 고난들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해야 하나니, 이는 세상을 위해 더 심한 고통도 참고 견디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14. 그대는 매일 죽는 생활을 감당해야 함을 명심하라(시편 44:22). 사람이 자신에 대해 많이 죽으면 죽을수록, 그는 하나님 편에서 더 많이 살게 된다.

      그리스도를 위해 역경을 참고 견디지 않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일을 결코 깨달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고난을 견디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세상에서 유익한 것은 없다.

      할 수만 있으면 그대는 여러가지 위안을 받고자 하는 대신 그리스도를 위해 역경을 참고 견디기를 소원해야 할지니, 이를 통해 그대는 그리스도를 더욱 닮게 되며 모든 성자들을 본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가치와 영적 능력은 많은 희락과 위안을 누리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큰 고통과 환난을 철저히 참고 견디는 데서 온다.

       

       

      15. 만약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보다 더 인간의 구원에 유익한 일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행동으로 이를 일러주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또 그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십자가를 지도록 분명히 권고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누가복음 9:23)."

      지금까지 우리가 충분히 말슴을 읽고 살폈으니, 이와 같이 결론을 내리도록 하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사도행전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