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9장 5.
반 발짝 문 밖으로 나가더라도,
또한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해도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없다.
실연을 당한 자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헤어진 애인의 추억이 될만한 모든 것을 멀리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빠진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은
그 감정을 자극하는 모든 것으로 부터 몸을 피해야 한다.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것은 마치 아이들이 진귀한 광경을 쫓아가
바라보는 것처럼 새로운 풍겨을 찾아가는 데 불과하며,
거기서 어떤 이득을 바랄 수 는 없다.
그런 여행에서 돌아와도 마음은 조금도 가라앉지않고,
또 건전하게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동요를 일으켜 점점 시달림을 받을 뿐이다.
여행에 나서면 물론 명승지나 도시의 이름을 기억하거나
많은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수 있을 터이지만,
그 대신 예지와 덕을 숭상하는데 시간을 소비했다면
오히려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이미 선철이 발견한 것을 배우는 동시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을 탐구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만일 사람이 다리를 다치거나 정강이를 부상당했을 때에는
곧 외과의사를 불러다가 치료를 받아야 하며,
결코 말을 타고 산책을 나서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배로 항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상의 고장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거처를 변경시켰다고 해서 치료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웅변가나 의사를 만드는 것은 결코 어느 일정한 지역이 아니다.
십자로 에 서서 "길을 가르쳐주십시요. 겸손에 이르는 길은 어디입니까?
정의에 이르는 길은, 절제와 용기에 이르는 길은 어디입니까?”하고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어디를 향하여도 반드시 자기의 정욕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여행을 하려면 우선 자기자신을 절제 있는 반려자로 만들어야 한다.
여행을 해도 아무 소득이 없었다는 어느 여행가에게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그건 당연하네. 자네는 자기의 자아를 데리고 갔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네.”
즉 그는 몸을 먼 곳으로 옮겨 가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개조하여
딴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자아를 데릴고 여행을 나선 이상 어느 곳에 가보아도 별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싶다거나
어떤 새로운 발견을 하고 싶다거나 옜날 물건을 만져보고 싶다거나
외국풍속을 보고싶다거나 하는 여러가지 호기심이 있으므로,
좀처럼 혼자 잠자코 있을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