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구원] 예수의 유일성

好學 2009. 7. 9. 01:13

 

 

예수의 유일성







예수의 유일성

그리스도는 누구이시며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

제1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제2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제3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제4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제 5과 그리스도인 안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제6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제7과 복습








예수의 유일성

중요한 질문을 하고자 한다.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격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얼마전 외국에서 온 총명한 의학도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세계적인 동양 종교를 열심히 믿는 신자 였는데 같이 지내는 동안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에게 세가지 질문을 했다. 먼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누가 인류를 위하여 가장 훌룡한 일을 했는가?"가고 물었다. 그는 "나사렛 예수가 지금까지 살았던 그누구보다도 가장 훌륭한 일을 했음이 확실 하다. 그분을 가당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하겠다."라고대답 했다.


 

유일 하신분

다음에 "누가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틀림없이 그는 소크라테스,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그밖에 고대와 현대의 위대한 철학자나 혹은 공자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장 위대한 스승은 나사렛 예수이다."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이 동양 종교의 경건한 신자에게 "인류 역사상 누가 가장 성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즉시 대답했다. 왜냐하면 모든 역사를 볼 때에 나사렛 예수 같은 분이 없었다는 것을 세계와 그가 명백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오늘날 세계의 어느 곳을 방문해서 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떠한 종교를 믿던지 또 아무리 그들 고유의 종교에 믿음이 두텁고 전심한다 하여도, 만일 그들이 사실 그대로를 알기만 한다면 그들도 또한 나사렛 예수같은 분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 하게 될 것이다. 그는 역사상 특이한 사람이다.

 

전 세계에 끼친 영향

그는 역사의 전체 방향을 바꾸어 놓은 사람이다. 심지어 우리들이 보는 조간 신문도 나사렛 예수가 약 2,000년 전에 이 지구상에 서 살았다는 사실을 증언하여 B.C. 와 A.D.를 기록하고 있다.B.C.이란 그리스도 이전을 말하며,A.D.DLFKS 라틴어로서 우리 주님의 시대에를 의 의미한다.

우리가 만일 예수님의 생애와 그가 세상에 끼친 영향력을 찾아본다면 그분의 참된 소식이 전하여진 어느 곳에서든지 국가나 개인의 생애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잇을 것이다. 역사란 그의 이야기,즉 한 사람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말하는데,이는 역사에서 나사렛 예수를 빼어 버리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는 예수님의 영향력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가고 왔으나 오늘날도 예수님이 인류의 중심 기둥이며 진보 대열의 지도자이다. 지금까지 진군하였던 모든 육군과 조직되었던 모든 해군과 개회되었던 모든 의회와 통치하였던 모든 왕들을 합해 보아도 이 지구상의 인류에게 나사렛 예수 한 사람의 고독한 일생보다 더 강력하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계에 감화와 영향을 끼쳤는데 특별히 그가 없었다면 여성들의 처지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일 여성이 그녀의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면 노예가 자기 주인과 동등하게 되었을 때의 사회와 똑같이 완전히 질서가 문란해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당신의 부인에게 말을 많이 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플라톤은 그의 이상향에서 여자는 남자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가 되고 그들의 아이들은 국가에서 돌보아야 한다고 제의했으며 동양에서 가장 널리 퍼진 종교 중의 하나는 여성에 대한 완전한 차별 대우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모든 것을 종식시켰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노예나 자유인이 따로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가는 어느 곳에서나 결혼의 신성함과 여성의 권리와 선거권이 인정되었으며 고등 교육 기관이 설립되었고 아동 복리법,노동법,노예 제도의 폐지와 다른 수많은 변화가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이루어졌다.


 

개인적인 영향

나는 수백 개의 대학교를 방문하여 수천명의 남녀 대학생들에게 나사렛 예수에 관하여 말해 왔다. 자연히 그리스도에 대해 적대 감정을 가지고 용납하지 않으려는 극소수의 학생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예스는 위대한 인간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을 비웃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이러한 회의론자 중에 시릴 조드발사가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수년 동안 런던 대학의 철학 과장으로 지내왔다. 조드 박사와 그의 동료들,줄리안 헉슬리,버트란드 억셀,웰스등은 다른 어떤 단체보다 지난 세대의 대학 세계의 신앙을 많이 헤쳐 왔다. 조드 박사 는 예수님은 단지 한 인간이고 하나님은 우주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만일 우주가 멸망되면 하나님은 없어질 것이라고 믿었다.그는 쇼우가 세운 '생명 에너지의 철학'을 찬성했다. 그는 죄 같은 것은 없으며 인간은 이상향을 향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고 믿었다. 인간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천국을 가질 것으로 믿었다. 조드 박사는 기독교에 대해 매우 호전적 이었으며 바로 전 세대의 학생들의 무신론적 사고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1948년 어느 날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의 잡지란 제 1면에서 나는 그 존경받는 노학자 의 사진과 함께 그의 생애에 일어났던 극적인 변화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그는 자기가 수년 동안 기독교 에 대해 어떻게 반대했는가를 말했다. 한飁 그는 죄를 부인 했으나 이제 그는 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또 임박한 전쟁의 위기가 결론적으로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을 그에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죄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어진다는 것과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가 일생 동안 부인했던 것을 이제는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조드 박사는 죽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열렬한 제자가 되었다. 내 책상 위에는 최근에 영국에서 온 책 한 권이 있는데 그 책은 그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된 동기와 그의 신앙 생활에 관하여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 한사람의 예를 들면 유명한 장군이며 문학적인 천재 였던 루 웰리스이다. 그와 그의 친구 잉거솔은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도말해 벌릴 책을 쓰자고 같이 했다.그들은 예수를 믿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그럴 듯한 굴레 안에 갇혀 있는 것에 분개했다. 웰리스는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에서 기독교를 파괴할 자료를 찾으면서 2년 동안을 연구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책의 제2장을 쓰다가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나의 주,나의 하나님'하며 크게 울부짖었다. 그리스도의 신격이 어쩔 수 없이 확증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는 더 이상 부인 할 수없었다. 그가 사기꾼으로 칭하려고 결심하였던 그분이 그를 사로잡고 말았던 것이다. 후에 웰리스는 지금까지 쓰여졌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가장 위대한 소설중의 하나인 '벤허'를 썼다.

전형적인 또 하나의 회의 론자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루이스 이다. 여러 해 동안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열렬한 신자가 되어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의 신앙을 고백하는 훌륭한 책을 많이 저술 하였다. 그의 유명한 책(기독교 입문)에서 그는 이와 같이 진술 하고 있다."어떤 사람이 단순한 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이 한 말과 같은 말을 했다면 그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정신 이상자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두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이 모두 사실로써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아니면 미친 사람이거나 그보다 더 악한 어떤 것일 것이다. 악마로 생각하고 그를 부인 할 수도 있고 그의 발 앞에 엎드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 봐주는 척하는 `어리석음을 따르지는 말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선택의 여지를 남겨 두지는 않으셨다."


 

위대한 학자들의 이야기

당신은 나사렛 예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 하는가? 신화의 인물인가? 단순한 인간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아들인가? 이 지구상에서 그리고 내세에서의 우리의 삶은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에 의해서 결정된다.

"기독교는 진실한 역사적 근거하에 세워진 것인가?" 하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에 관하여 하버드 대학의 클리포드 하버트 무어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주님으로 믿고 있는 그리스도는 조잡하고 원시적이며 난폭한 요소를 지닌 어떤 신화에 나오는 것 같은 신이 아니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확실하게 드러난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와 같이 뛰어난 학자로서 그리스도의 열렬한 신자는 수없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40년간 예일 대학 교수로 지냈으며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역사가 가운데 한 사람인 윌리엄 리온 펠프스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역사적 증거들에 대한 자기 확신을 여러 사람에게 발표했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전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구주임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세계적으로 위대한 학자도 많이 있다. 나는 이 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거의 대부분의 복음의 기본적 진리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잉거솔,토마스 페인 혹은 유명한 다른 회의론자의 작품을 읽어 본적이 있는가? 이들이 자신도 충분히 이해 하지 못하는 것들을 문제 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들은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그것을 계속해서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증거들을 성실하게 검토해 본 사람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서로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동안에 그들은 솔직히 "나는 성경을 별로 읽어 보지 못했고 예수님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들이 기독교에 적개심을 가지게 된 것은 유년 시절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질 만한 경험이 있었거나 어떤 대학 교수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가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주관하고 계시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못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중 신약에서 나사렛 예수에 관해 말하고 있는 몇 부분을 골라서 살펴보자. 골로새서 1:15에서 20에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 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다. 또 히브리서 1: 1,2에는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다"고 했고,골로새서 2:3에는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했다. 또 에베소서 1:9,10에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飁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위해서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하셨다. 여기에 중요한 네 가지 일만을 말하기도 한다. 첫째로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용소하실 수 있다. 둘째로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목적을 주실 수있다. 셋째로 예수님만이 인간의 상한 심령에 평화를 주실 수 있다. 넷째로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누릴 힘을 주실 수 있다.

죄의 용서

성경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사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둘 사이,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는데 인간은 이 간격에 다리를 놓을 수가 없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죄의 삯은 사망 . 즉 하나님에게 서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요.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이 계곡에 다리를 놓으실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고 말하고 있다.

죄는 무엇을 뜻하는가? 죄는 도둑질,거짓말, 혹은 부도덕한 행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죄는 마음의 자세이다. 인간이 독단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 죄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사귐이 없는 상태이다.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왕좌가 하나 있다. 그 왕좌에는 자기 자신이 아니면 하나님이 계신다."나는 내 생명의 주인이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죄인이다. 그 왕좌 위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그분은 당신의 죄값을 지불하셨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화목시키셨다.

전등을 마음 속에 그려 보라. 소케트에서 플러그를 빼면 전류의 흐름이 끊어 지고 불은 곧 나간다. 다시 소케트에서 플러그를 꽂으면 불이 들어온다. 전류는 늘 일정하지만 불이 들어오는 것은 플러그에 달려 있다. 인간은 플러그에 비유될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기 때문에 어두움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길을 택해서 죄를 범하였다.

그러면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책은 무엇인가?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제물로서 양과 비둘기와 황소를 제사장에게 바쳤다. 이 동물들은 흠없고 온전한 그 무리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어야 했다. 그리하여 그 제물을 바친 사람의 죄는 흠 없는 양이 대신 지게 되었다. 제물을 죽여서 그 피는 제사장에 의해 제단 위에 그들의 죄에 대한 임시적인 대가로 뿌려졌다. 이 제사 는 하나님의 특별한 양이 그의 피로 인간의 죄를 잠시 동안 이 아니고 영원히 씻어 버리기 위해 오실 것을 미리 보여준 예표였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씻어 버리기 위해 오실 것을 미리 보여준 예표였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즉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내셔서 그의 생명을 내어 주고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게 하셨다. "피 흘림이 없은죽 사함이 없느니라(히9:22)"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나는 피 흘림을 강조하는 그런 식의 도살장 같은 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에 관한 말씀에 분개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의 심미적 감정이 반발하여 얼마나 끔찍스러운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진리를 깨닫고 나서 나는 내 마음의 모든 성실과 모든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귀한 진리는 이것인 것을 알았다. 즉 '인자가 온 것은 잃어 버린 자를 찾아 구원 하려 함이다.','그는 많은 사람을 위해 그의 생명을 속죄물로 주시려고 오셨으므로 그의 피 흘림이 없이는 우리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의 여러 종교에 대해 공부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고서는 인간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아무런 대책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근본적으로 모든 종교는 구원에 이르는 수단으로서 선행의 원리를 주장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선행과 악행을 저울에 달아 선행쪽이 더 무거우면 천국에 가고 악행쪽이 더 무거우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는 그가 천당에 갈지 혹은 지옥에 갈지 모르는 일이다. 이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그런 종교난 철학은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하나님은 그들의 아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그를 알고 바로 지금부터 영원히 그와 사귐을 가질 것을 약속하셨다.

내가 북미 중서부의 한 대학 교에서 강연을 끝마쳤을 때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내게 와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겠는지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들 중에서 인도에서 온 한 힌두교 청년이 매우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분개합니다. 당신들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는 그 오만함에 화가 납니다. 나는 기독교가 하나의 길일 수는 있으나 유일한 길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힌두교도 하나의 길입니다. 불교,신도,그밖의 다른 종교도 모두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위대한 힌두교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저서에 그의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간디는 힌두교에 온 몸을 바쳐 헌신했지만 그의 자서 전에서 그는 '내 악함과 곤고함 때문에 내 생명이신 그에게 아직도 멀고 가까이 가지 못하는 현실이 나의 끊임없는 고통이다. '라고 했다. 그 청년은 한때는 간디가 하나님이라고 믿었으나 이제는 물론 그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경건하고 명석했다. 이 재주 많은 청년은 물리학과 화학의 박사 과정을 끝내는 중에 있었다. 그러나 서로 이야기하는 동안 그의 분노는 가라앉기 시작 했고 기독교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 시작 했다. 그는 기독교가 사람이 만든 하나의 종교나 철학이 아니고 죄 사함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해결임을 알았다. 이때까지 그는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했던 것을 시인 했다. 그는 힌두교의 열렬한 신자로서 힌두경을 읽고 기도 하며 그의 신앙을 위한 모든 의식 등에 열심을 냈으나 하나님을 전혀 만나볼 수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그가 가지지 못했던 어떤 것을 가졌다고 인정했다. 그 어떤 것이란 인간 안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살아 계신 구주 이신 것이 명백하다.

거의 1시간 동안 나는 기독교가 세상의 종교들과 다른 점에 대해 설명했다. 불교의 석가모니와 이슬람교의 마호멧과 여러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을 그들의 종교에서 빼어낸다 하더라도 그 종교에는 별로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그리스도가 빠진다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마침내 그의 마음에 빛이 비쳐왔다. 이제 그는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만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현명한 그는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던 이 귀한 젊은 청년은 이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가 그의 마음 가운데 오셔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의 주님이 되기를 기도 드렸던 것이다. 성경은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일 없음이 니라(행4:12)"고 말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

 

목적을 주심

나사렛 예수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 목적과 평화와 힘을 주실 수 잇는 유일한 분이다.

우선 목적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골로새서 1:16을 보면 하나님은 아들을 통하여 모든 만물을 창조 하셨고 그 아들에게 맡기사 모든 피조물이 그에게 속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 되있다.하나님은 모든 것을 한 목적을 위해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 수 있다 .모든 피조물 에는 질서와 조직과 계획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걸작품이다. 모든 창조물 중에 인간만이 지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즉 선택의 권리를 주어 창조 하셨다.하나님에 대하여'예'또는 '아니오'를 말할 수 있도록 창조 된 것이다. 최초로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말하기를 택했다.'아니오'라고 말한 사람들은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가 없다.

어떤 건축 청부업저도 건축 기사의 청사진을 참고하지 않고 아름다운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생각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인간을 큰 목적을 위해 창조 하신 위대한 건축 기사에게 먼저 우리 인생에 대해 의논하려 하지 않고 우리 의 뜻대로 삶을 살아가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한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존재가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면 큰 축복이 따른다. 하나님은 큰 징계의 막대기만을 들고 우리 위에 서 계시는 분은 아니다. 그는 모든 창조물을 지배하는 법칙을 정하셨다. 그래서 사람이 중력의 법칙을 범하면 그 결과를 치르게 되고 교통 법규를 위반하면 벌금을 지불하게 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법칙을 범하는 그 결과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교통 법규를 위반하면 자기의 생명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칙을 깨뜨리지 못한다. 그 법칙들이 우리를 지배한다.

결혼을 예로 들어 보자 . 1979년의 통계에 의하면 2,359쌍의 결혼한 부부가운데 1,170쌍이 이혼으로 끝났다. 거의 두 쌍 중에 하나 꼴이 아닌가? 이 수치는 1981년 6월 22일자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부부가 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같이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가정 제단이 있는 부부의 경우에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될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어느 누가 감히 그리스도 없이 결혼 하는 도박을 행할 것인가?"어떻게 그리스도가 그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의 마음마다 왕좌가 있다. 그 왕좌 위에 당신 자신이 앉아 있다면 자신의 자아와 결혼 상대자의 자아가 서로 사우므로 알력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그들 두 사람은 서로 대항해서 싸우지 않고 거기에는 평화가 있을 것이다. 불화가 조화로 미움이 사랑으로 변할 것이다. 나는 이혼을 하려는 남녀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무질서하여 불안했고 그들의 가정은 알력과 불화의 장소였으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그들의 생애를 맡겼을 때 그들의 마음과 가정에 평화와 사랑이 찾아왔다. 물론 개인 개인 에게도 똑같은 진리가 적용된다. 왜냐하면 어는 누구도 그리스도 없이는 완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1923년 시카고의 에지워터 비치 호텔에서 매우 중요한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아홉 명의 인사들이었다. 가장 큰 강철회사 사장,최대의 공익회사 사장,최대의 가스 회사 사장,거대한 소맥 회장, 뉴욕 증권 거래소 사장,국세 청산 은행원,월 스트리트 가장 큰 주식 판매자. 특허 공사 사장과 정부 각료 한 사람이었다.

분명히 여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 적어도 돈 버는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25년 후에 이들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 났는가? 강철회사 사장은 파산하여 죽기 전 5년 동안은 빚으로 살다가 죽었고, 공익회사 사장은 법정으로부터 도망다니다가 외국에서 돈 한푼 없이 죽고 말았고,가스회사 사장은 정신 이상자가 되었으며 소맥회사 사장은 많은 부채를 지고 외국에서 죽었다. 또 뉴욕 증권 거래소 사장은 싱싱 형무소에서 겨우 풀려 나왔다. 정부 각료였던 한 사람은 특사로 출옥하여 집에서 죽었고 월 스트리트의 가장 큰 주식 판매자와 특허 공사 사장 그리고 국세 청산은행장등 세 사람은 모두 자살로 인생을 마쳤다. 이 사람들 모두가 생계를 이어 나가는 기술은 알았으나 아무도 참 사는 법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친 바다 위에서 닻도 없고 키도 없이 물결 치는 대로 떠 다니는 배와 같다. 아무리 인기있는 운동 선수일지라도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절대로 알 수 없다. 하나님은 그자신을 위해 우리 인생을 만드셨다. 성 어거 스틴은 "오 하나님, 주님은 주님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우리의 안식처를 얻을 때까지 우리 마음은 평안을 얻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유명한 역사가이며 철학자인 웰즈 는 61세가 되었을 때 "나에게 는 평안이 없다. 나는 내 인생의 종점에 서 있다." 라고 했다. 시인 바이론 은 "내 인생은 만추의 낙엽이라 꽃과 열매는 다 떨어지고 벌레와 낡음과 비애만이 내것이 되었구나." 라고 했다. 문학의 천재 소로우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고요한 절망 속에서 살고 있다."라고 했으며 미국의 일류 만화가 랄프 바톤은 죽기 전에 "나는 친구가 많았고 성공도 했었으며 어려움이라곤 별로 없었다. 아내를 마음대로 바꾸었고 이 집 저 집 옮겨 살아 보았으며 여러 나라를 여행도 해 보았지만 단 하루도 마음의 피로가 그친 날은 없었다. 하루 24시간을 메꾸는 일에 진력이 났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물리 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에 의해서만 채워 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공허가 있지 않은가? 나는 당신을 잘 모르나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공허가 있다. 나는 내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라고 진정 그리스도를 마음 가운데 영접하여 그분이 당신을 만드신 목적을 보여 주시기 까지는 만족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살았던 어는 누구도 이 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도,철학도 어떠한 사람도 할 수 없엇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 하셨다. 우리가 그분께 나아갈 때 그가 나를 만드신 목적을 알려 주실 것이다.

 

평안을 주심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에 목적을 주신다. 나사렛 예수 만이 당신에게 평화를 주실 수 있다 . 그분은 평화의 왕이시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에 군림하셔서 통치하시기 전까지 는 세계 평화를 위한 어떤 회담이나 혹은 개인의 마음에도 참 평화는 결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 복음 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 너의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 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또 마태 복음 11:28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대학 생활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욕구 불만이나 좌절감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나 경제 문제 혹은 친구들과의 사귐에 있어서나 학교 성적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로 염려할 수도있다. "물론 누구든지 이런 문제쯤은 다갖고 있지."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여 갑자기 이상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요하고 잠잠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언제 어디서나 너희와 함께 하리라","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리라","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평안을 얻을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워싱톤에서 열리는 국제 기독교 지도자 협의회에 연사로 초청받은 일이 있다. 그 기간에 대통령 조찬 기도회와 관계있는 한 모임에서 설교를 한 일이 있다. 이때에 대학 시절에 친한 기숙사 친구였으며 나와 절친한 토론 대상자였던 친구가 국방성을 대표하여 해군 사령관으로 조찬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그가 나를 찾아와 우리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어린 아이가 죽고 나서 최근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비참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는 자기 집에 가서 그의 부인과 함께 셋이서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그날 저녁 우리가 서로 이야기할 때 그들 부부는 예수그리스도를 그들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했다. 그들의 마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갔을 때에 그들은 놀랄 만큼 큰 평안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들의 생애가 변화되었다.

다음 해에 다시 국제 기독교 지도자 협의회에 초청을 받아서 워싱턴에 갔었다. 그 사령관 친구도 또 다시 국방성을 대표하여 참석하였다. 비극에 비극이 겹쳐 우리가 만난 후 바로 그의 또 다른 아이가 앓아 누웠다고 말했다. 그의 딸은 신경 조직에 암이 생겨 결국 죽고 말았다. 그는 사랑하는 딸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그 친구와 서로 이야기했던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한 듯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어떻게 된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하겠네. 그 아이를 무척 사랑했고 죽음의 이별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그 아이가 앓아 누워 있는 동안, 그리고 죽고 난 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더욱 절실해졌다네.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평안이 주어졌다네." 라고 말했다.


 

능력을 주심

우리의 생애에도 어떤 가슴 아픈 비극이 생길 수 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리들 생애의 왕좌에 앉아서 그의 용서와 목적과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용서와 목적과 평안만이 아니다. 오직 나사렛 예수 한 분만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을 주신다.
사람들은 흔히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만, 만일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도 도저히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때까지 저지른 잘못,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원한, 곧잘 죄를 지을 가능성, 부도덕함, 과음, 거친 말투, 또 그 외에 다른 여러 잘못된 일이 얼마나 있는지 다른 사람은 모른다. 나는 도저히 그리스도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생애를 그리스도께 맡겼을 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초자연적인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과 내가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도저히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없다.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그의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모든 일을 행하신다. 그분이 능력을 주시는 분이며,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통하여 능력을 행하시는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날 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라는 사람에게 가르치신 것이다(요 3:1∼21).니고데모는 유대인의 통치자로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께 "랍비여(선생을 말함)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예수님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물었다. 이에 예수님은 육신으로 한 번 난 거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우리는 육신으로 태어나서 물질적인 원리에 의해 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세계이고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와 사귐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영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먼지 속을 기어다니는 벌레 한 마리를 상상해 보자. 그 벌레는 참으로 흉하고 털투성이의 벌레이다. 그 벌레에게 말을 걸 수 있어서 "너는 왜 나비같이 날지 못하고 먼지 속을 기어다니고?"라고 물으면 그 벌레는 "나는 땅에 없답니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그러면 우리가 수술을 해서 네 몸에 나비의 날개를 달아 줄께." 혹은 "항공 기술을 배워 보면 날을 수 있을거야."라고 제의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서 사니까 날을 수가 없어요. 먼지 속에서 기어다닐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선한 일, 교회 출석하는 것, 성경을 읽는 것, 기도하는 것과 같은 선한 행동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나는 길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벌레는 자기 몸 둘레에 고치를 짓고, 얼마 후에는 고치를 벗어 버리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나올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전에 먼지 속을 기어다니던 애벌레가 이제는 나비가 되어 하늘을 높이 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스도인 생활도 이것에 비유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탄생은 나사렛 예수, 즉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 오셔서 살아 계실 때에 일어난다.


 

지성· 감정 · 의지

앞에서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의 마음 가운데에는 왕좌가 있다. 만일 그 왕좌 위에 당신이 앉아서 당신 생애의 모든 일을 당신 마음대로 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3:20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고 했다. "볼찌어다 내가 문(당신의 마음의 문,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로 하셨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그의 안에 계시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 것은 모두 사라지고 모든 것이 새로와진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약속은 우리의 모든 지성이나 감정이나 의지 등 전인격을 그에게 바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이성에 관해 많은 찬사를 들었다고 하자.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질 것이다. 직접 만나 보면 더욱 놀라운 기쁨에 차게 될 것이다. 그를 만나 보고 외모나 인격 혹은 그 이외의 다른 여러 가지 특성을 지적으로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의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것으로서 결혼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결혼은 상호간의 존경이나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두 사람이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면 보낼수록 더욱 친숙해지고 그러면 사랑의 큐피드(Cupid)는 활을 당겨 둘은 사랑에 빠지고 말것이다. 그렇다고 결혼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지성이나 감정 이상의 것이 있다. 어느 날 약혼식을 하고 나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얼마나 감격적인 일인가! 당신은 상대방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을 것이다. 둘이 같이 있을 때 서로의 가슴은 두 배나 더 빨리 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욱 중대한 일이 남아 있다. 목사님이나 어떤 권위있는 분 앞에서 서약을 할 때 상대방에게 자기의 의지를 바치게 된다. 참된 결혼은 자기를 상대방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렇다. 결혼에는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모두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포함한 자기의 전체를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 것을 믿는다. 이때까지 이것을 믿어 왔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모든 의지를 그분께 드리려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나는 수양회나 특별한 집회 기간 중에 훌륭한 설교 말씀을 듣고 크게 감동받은 적이 있었다. 심지어는 자진해서 앞에까지 나아가 상담까지 했다. 이런데도 그리스도인이 아닐까요?"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 중심의 왕좌, 즉 우리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드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나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고 매일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여 선한 삶을 살려고 애쓴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그러나 자기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드리지 않는다면 결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의지를 그에게 드리는 것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이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비결이다. 운동 선수이며 사회 지도자인 한 청년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다른 많은 사람과 같이 그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대로 맡기기를 두려워했다. 그는 자기의 생애에 대한 계획을 상세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하나님이 그 계획을 변경시킬까봐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꺼려 했던 것이다. 나는 그와 이야기 하는 동안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어 그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면서까지 그를 극진히 사랑하시고 그의 삶에 대한 훌륭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이렇게까지 당신을 사랑하고 계시며 어느 누구보다도 끝없이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당신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가?" 라고 물었다.

그는"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읍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겠읍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그는 그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그의 참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다. 물론 그의 생애는 다른 수만 명의 대학생들이 그랬듯이 변화되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이제는 그의 전시간을 바쳐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주어진 기회

당신이 아직도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았다면 바로 이 순간도 그는 당신의 마음의 문(당신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 곧 전인격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지금 조용히 당신의 의지를 그에게 드리지 않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에 초청하여 당신 안에 거하게 하고 그의 생애를 살아가게 하자. 그는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생애에 목적을 주시며 그의 평화와 능력을 주실 것이다.

바로 지금 이 귀한 결정의 순간에 머리 숙여 이렇게 기도하지 않겠는가?

'주 예수님 내 생애에 오셔서 내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내 의지,즉 마음 중심의 왕좌를 주님께 드립니다. 내 생애에 대한 주님의 목적을 보여 주시면 그것을 행하겠읍니다. 주님의 평화와 능력을 주셔서 주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리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이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요일5:11,12)"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당신은 바로 지금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당신이 마음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창조하신 목적을 위해 큰 모험을 시작하시는 것이다. 그의 명령에 당신이 계속 순종하면 풍요한 삶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당신은 풍요한 삶을 체험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가까운 교회의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친교를 갖도록 권고한다.

신앙 생활의 성장을 위한 <10단계 성경 교재>는 수천의 학생들과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보다 생명력 있는 관계를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교재를 매일 공부하면 당신에게 값진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출발에 당신을 지켜 주시기 바란다.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골 1 : 15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