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선한 양심이 주는 기쁨에 관하여
1. 선한 사람의 영광은 선한 양심의 증거이다(고린도전서 1:31).
선한 양심을 가지라. 그리하면 큰 기쁨을 누리리라.
선한 양심은 심히 많은 것을 감당하나니, 역경 안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
악한 마음은 항상 두렵고 평안하지 못하다(지혜서 17:11).
만약 그대의 마음이 그대를 정죄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푸근히 쉴수 있으리라.
그대는 온전히 행하였을 때 외에는 결코 즐거워하지 말라.
죄인에게는 결코 참된 기쁨과 내적인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이사야 57:21).
사람들이 이르기를 "우리는 평안하니 어떤 악한 일도 우리를 덮치지 못할 것이라(누가복음 12:19).
누가 우리를 해하리요?"라고 말할지라도 그들을 믿지 말라. 하나님의 진노는 갑자기 일어나서 저들의 행위를 무로 돌아가게 하시며 저들의 생각을 파멸시키신다.
2. 환난 중에 기뻐하는 것은 사랑이 충만한 자에게 있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쁨은 곧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로마서 8장(참조, 5:3) / 갈라디아서 6:14).
인간들끼리 주고 받는 영광과 기쁨은 온전하지 못하다(요한복음 5:44).
세상 영광에는 항상 슬픔이 따른다.
선한 자들의 영광은 사람의 입게 있지 않고 그들의 양심에 있다.
의인들의 즐거움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고린도후서 3:5) 하나님 안에 있다. 그들은 오직 진리에 대해 기뻐한다.
영원한 참 영광을 바라는 자는 일시적인 세상 영광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세적 영광을 구하거나 이를 진심으로 멸시하지 않는 자는 하늘 영광에 대해 별로 큰 사랑을 갖지 않는다.
인간의 칭찬이나 비난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마음의 큰 평정을 누린다.
3. 양심이 순수한 사람은 쉽게 만족하고 평온해진다.
그대가 칭찬받는다고 해서 더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요, 비난받는다고 해서 더 무가치해지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대의 모습이다. 사람들의 칭찬으로 인해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그대 모습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만약 그대가 그대 안에 있는 자신을 깊이 상고한다면, 자신에 관한 사람들의 말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은 그 용모를 보나,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사무엘상 16:7). 사람은 행위를 보고 판단하나 하나님은 동기를 중히 여기신다.
항상 올바르게 행동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은 겸손한 영혼의 표징이다.
어떠한 피조물로부터도 위안을 구하지 않는 것이 위대한 순결과 내적 확신의 표징이다.
4.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뢰하는 자는 외부에서 자신에 대한 증거를 결코 구하지 않는다.
바울은 말하였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린도후서 10:18)."
내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행하고 외부적 애정은 모두 끊어버린 것, 이것이 영적인 사람의 온전한 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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