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제 6 장 4.
양심은 남의 눈을두려워 하지 않지만,
악한 마음은 홀로 있을 때에도 우울하고 두렵다.
만일 누구나 결백하다면 자기 행위를 세계에 공개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테지만,
그와 반대일 경우에는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라는 증인을 무시하는 사람이야말로 비겁하기 이를 데 없다.
악한은 법의 규율은 벗어날 수 있지만, 자기 양심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자기 마음의 단죄야 말로 그 범인에 대한 가장 큰 형벌이다.
죄는 스스로 원한을 품은 망령이 되어 가책을 느끼게 하며,
응보의 두려움은 형벌에서 벗어난 자를 끝까지 추격한다.
이것은 실로 자연의 묘한 섭리로, 만일 자연이 범죄자에게
양심의 가책이나 이에 따르는 괴로움을 마련해두지 않았고
벌률, 재판 그리고 형의 집행이 소용없다면
악인은 선량한 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불행을 초래했겠는가.
죄를 저지른자는 언제나 두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형벌을 각오하고 있을 뿐더러, 자책때문에 괴로워 하게 마련이다.
죄 지은 자는 으레 그렇다. 만일 “죄가 탄로나지 않는다면”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탄로 날지 모른다는 걱정이 따른다.
잠들면 악몽에 시달리고, 남의 죄악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에도
곧 자기자신의 악이 연상된다.
이와 반대로 양심에 따르는 사람은 언제나 향연에 접한 기분이다.
이 양심의 향연이야말로 유일하고 분명한 희락이며,
이것은 선한 삶에서 비롯되므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한
외부의 소란에 마음이 어수선해지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의 정욕이 발동하면, 외부의 소란이 없어도
눈을 감고 평안히 잠들 수 없다.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신체의 안정이나 침실의 구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들뜬 기분은 움직임으로써 진정시키고,
게으른 악덕은 분주한 일로 안정시킬수 있다.
참된 행복은 술이나 미인, 또는 금은보화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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