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참회록]Augustine

제9 권 개종과 모니카의 죽음 (4~8)

好學 2009. 6. 11. 15:18

 

제9 권 개종과 모니카의 죽음 - 4.카시키아쿰.네브리디우스(시편) 

수사학 교수직에서 해방되는 날이 왔습니다.
그와 더불어 당신은 나의 혀도 해방시켜 주셨으므로
나는 당신을 찬양하면서 기꺼이 동지들과 함께 별장으로 갔습니다.

내가 거기서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거기 있었던 사람들과
행한 토론문과 나 자신과 더불어 홀로 대화를 하던 철학 서적들이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던 네브리디우스와의 시간들이 증명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당시 우리에게 베푸셨던 당신의 커다란 은헤를 빼놓지 않고
서술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은 언제쯤 생길까요?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위해서 서둘러야 합니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주님이시여, 고백하는것 처럼 즐겁습니다.
당신께서는 내 속에 찌르는 가시를 두어 나를 복종시키시고
마음의 기복을 고르게하여 굽은 것을 똑바로 펴시고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절친한 친구 알리피우스를 당신의 독자
우리의 주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굴복시키신 것입니다.

알리피우스는 초기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의 저작 속에 넣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그는 우리의 저작 속에 뱀의 독을 막는 약초의 향기 보다는
학교에 있는 백향목의 향기가 감돌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백향목은 주께서 이미 꺽어 버리셨습니다.

내가 다윗의 시편을 낭송했을때 당신에게 무엇이라고 외쳤겠습니까?
나의 하나님이시여!
그것은 신앙의 노래이며 오만한 정신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경건함이었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당신의 참된 사랑에는 어린애와 같아서
세례 지원자인 알리피우스와 별장에서 쉬고 있었고
우리 옆에는 어머니까지 모시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외모는 여자였지만 남자같은 신앙의 소유자로써
노년기의 성숙한 인격과 모성애와 신도다운 경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시편을 읽고 당신에게 얼마나 불타 올랐는지 모릅니다.
가능하다면 온 세상에 있는 교만한 자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불처럼 타올랐는데
그 시편은 전 세계에서 낭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타오르는 당신의 빛 앞에서는 자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나는 통렬하고 신랄하게 마니교도들을 비난했으나 한 편 그들을 동정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말씀, 즉 유익한 약을 모르고
저 독약을 자기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했습니다.
나는 오직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 근처로 와서 내 얼굴을 알아보고
평온하게 시편 4편을 읽는 내 목소리를 듣고
이 시편에는 무슨 말씀이 씌여있는지 그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을 부르니 의로우신 내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나의 청을 들어 주셨으며 환난 속에 있던 나를 평안하게 해주셨습니다.
주여 나를 가엾게 여기시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시편의 낭송을 나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그동안 한 말이 그들 때문이었다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나를 보고 있다든가 듣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기라도 했다면
나는 그것을 절대 말하지 않았을 것이며 설마 말한다 해도
그들은 내가 당신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나와 더불어
그리고 나에게 얘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미 당신의 성자 그리스도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어 영광을 주시고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하여 거기 높은 곳에서 진리의 영인 구세주를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이미 그분을 보내셨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보내셨고 북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승천하셨으므로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예수가아직 영광을 받지 않았으므로 영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언제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있는가?
무엇 때문에 허무한 것을 즐기고 허위를 추구하는가?
주는 성스러운 자를 위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알라.'고.
그는 '언제까지인가?' 라고 외치며 '알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까지 허무한 것을 사랑하고 허위를 추구해 왔으므로
그말을 듣자 겁이 났습니다.
내가 진리 대신에 꼭 붙잡고 있던 환상속에는 거짓말과 허위가 있었습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생각하고는 슬퍼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그들은여전히 허망한 것을 좋아했고 거짓말을 따랐습니다.
이 말씀을 조금이라도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이 만일 불편을 느꼈더라면 그 더러운 것을 토했을 텐데!
또한 그들이 당신을 애타게 찾았더라면
당신께서는 그들을 위로 끌어 올리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당신께 나아가는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그 육신을 따라 죽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 "분은 품어도 죄는 짓지 말라."는 말씀을 읽고 매우 감동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과거에 대해 화를 낼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화를 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들의 말과 같이 내 속에 있는 어둠에서 나온 다른 본성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화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의로우신 심판의 계시가 나타나는 날에 대비해서
노여움을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이미 나의 '선'이 다시는 밖에 있지 않고
햇빛 아래서 육신의 눈으로 그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밖에서 즐거움을 만들어 보려는 자들은 쉽게 자신을 상실하고
눈에 보이다가 다시 사라져 버릴 형상만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오, 그들이 배가 고파 지쳐서'누가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일 것인가.'
라고 말한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주여,우리의 내부에 당신 얼굴의 빛이 새겨졌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 그들이 그 말을 들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물론 우리는 당신에 의해 밝혀진 자로써 이제는 어둠 앞에서
당신 안에 있는 빛이 되었습니다.

오 그들이 저 영원한 내재자들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이미 그걸 보았으므로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이 당신으로부터 떨어져 외부로 돌린 눈 속에 갖는 마음을 나에게로 돌려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여 줄 것인가.' 하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자신에 대해서 분노를 터뜨린 그 장소에서,즉 회한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낡은 자기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며 새 사람이 되기를
당신에게 기도하던 장소에 당신께서 나타나 내 마음에 기쁨을 주셨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겉으로는 크게 소리내어 읽었으며 속으로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나는 시간적인 것을 삼키면서도 또 그 시간적인 것한테 삼킴을 당하면서
지상적인 것의 선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영원 단순하신 자에게서
다른 종류의 "곡식과 새 포도주"를 가졌습니다.

또한 나는 계속되는 구절을 마음속으로 더 크게 외쳤습니다.
"오, 평화 속으로! 오, 같으신 분 안으로!"
"나는 잠들 것이며, 포근히 자리라.!"
"죽음이 승리 안에 삼켜졌도다." 라는 말이 실현될 때
감히 누가 우리에게 항거하겠습니까?
당신이야말로 변함 없이 항상 같으시고
또 당신 안에는 모든 수고를 잊게 하는 안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당신 이외에 아무도 없으며
당신 이외의 어떤 허구의 것을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여, 오직 당신만이 나를 희망 안에 두셨습니다.

나는 그 구절을 읽고 정렬이 끓어올랐지만
저 듣지 못하는 사자들에게 어떻게 주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나 자신 재앙있는 한 사람으로써 천상의 꿀로 달콤하기 이를데 없고
당신의 빛이 환히 비치던 빛의 성경에 대해서 나는 개처럼 짖어 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성경의 적들 때문에 안달하고 있습니다.
휴가 기간에 일어난 일들을 추억할 날은 언제인가.
그러나 나는 당신의 회초리와 놀랍게도 빠른 자비만은 잊지 않을 것이며
절대로 입을 다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무렵 당시은 치통으로 나를 고문 하셨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건강의 주인이신 당신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그 내용을 납판에다 적어서 그들에게 주어 읽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성을 모아 무릎을 꿇자마자 아픔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어떻게 해서 사라졌을까요?
내 주, 하나님이시여! 나는 정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철이 든 지금 그런 일이라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당신의 뜻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당신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아직 당신의 세례를 통하여
지난 날의 죄사함을 받지 못한 까닭에 나의 마음은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제9 권 개종과 모니카의 죽음 - 5. 개종을 알리다.  

포도수확의 휴가가 끝날 무렵,
나는 밀라노 시민들에게 학생들을 위해 다른 선생을 찾으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섬기기로 결심했고 또한 호흡이 곤란하고
가슴이 아파서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폄 당신의 주교인 거룩한 암브로시우스에게는 편지를 통해서
그릇된 내 과거와 현재의 결심을 알림과 함께
그처럼 큰 은혜(세례)를 받으려고 하는데
보다 더 완전한 준비를 하려면 당신의 성경 가운데
특히 어느 부분을 읽어야 좋을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이사야서를 읽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뚜렷하게
복음과 이방인의 성스러운 부름을 예언해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읽는 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전편이 모두 그러리라 생각하고
주의 말씀에 익숙해진 뒤에 다시 읽기로 하고 접어 두었습니다.

 

제9 권 개종과 모니카의 죽음 - 6. 세 례  

그러는 동안 세례 지원자 명부에 기록해야 할 날이 다가왔으므로
우리는 전원을 떠나서 밀라노로 돌아갔습니다.
알리피우스도 역시 당신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로 결심했는데
그는 이미 당신의 비적을 받을 만한 겸손의 의상을 입고 있었으며
또한 극기심도 대단해서 얼어붙은 이태리의 땅바닥을 맨발로 걸어 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아데오다투스라는 소년을 데리고 갔는데
그는 육체적으로는 내 죄악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였지만
당신은 그 아이를 훌륭하게 만드셨습니다.
그의 나이는 겨우 열 다섯이었지만,
총명하기가 학식이 많은 어른들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여!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우리의 잘못된 것을 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선물에 감사합니다.
사실 나는 그 소년과는 나의 과오를 빼놓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를 당신의 가르침대로 양육하기는 했지만
우리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신 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십니다.
당신께 그 선물에 대해 감사합니다.

나의 저서 가운데 교사론(敎師論)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나는 그 책속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기 씌어 있는 대화 내용의 전부가
열 여섯살 먹은 제 아들의 사상이라는 것을 당신께서는 알고 게십니다.
나는 그 아이에게서 그보다 더 놀라운 재능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재능에 나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떠나서 누가 이런 기적적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일찌기 그의 생명을 이 세상에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평안한 마음으로 그의 유년 시절이나 청년 시절,
또는 인간 자체에 대해서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은혜 안에서는 우리와 똑같이 나이를 가진 그를,
우리는 당신의 가르침대로 양육하기 위하여 우리들과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세례를 받고 나니 과거의 고뇌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을 느낍니다.

그무렵 나는 인류의 구원에 대한 당신의 뜻을 생각하며
불가사의한 감미로움에 젖어들곤 했습니다.
덩신의 교회에서 들려오는 친미가나 성가를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목소리는 내 귀에 스며들고 진리는 내 마음속으로 배어들엇습니다.
거기서 경건한 내적 감정이 솟아올라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는 이 눈물과 함께 행복을 느꼈습니다.

제9 권 개종과 모니카의 죽음 - 7. 밀라노의 송가  

밀리노 교회가 이러한 종류의 위로와 교훈으로써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마음을 합쳐서 합창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1년 전에 어린 황제 발렌티아누스(발렌티아누스2세.375 ~ 391재위
네 살에 제위에 올랐으나 후에 부하에게 살해 당했다)의 어머니 유스티나가
아리우스파들에게 유혹을 당해서 그 이단파 때문에
당신의 사람, 암브로시우스를 박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경건한 백성은 주교와 함께 죽음을 각오하고 교회에서 밤을 지샜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여종인 나의 어머니 모니카는
온갖 염려나 경계를 맡아서 하고 오직 기도 속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냉랭한 가운데 당신의 영으로 불을 받지 못했지만
온 도시의 경탄과 소송에 휩쓸려 들었습니다.
그때 동방교회에서 하는 것처럼 찬송과 시편을 노래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백성의 고난에 압도당해 낙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습관이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이제는 여러 교회에서
아니,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무렵,그때는 지금 말씀드린 주교에게 순교자  푸로타시우스와
게르바시우스의 시신이 있는 곳을 환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은 그 시신을 여러 해 동안 부패시키지 않고 비밀의 보고 속에 감추어 두셨는데
그것은 황후의 흉포를 누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시신을 발굴하여 암브로시우스의 교회로 운반했을 때
귀신들인 자들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날 때부터의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소경은 시민들이 기뻐서 날뛰는 이유를 물어 보고는,
안내인에게 당장 그곳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그곳에 이르러 자기의 손수건을
거룩한 관에 대 보겠다고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가 손수건을 당신의 눈앞에서
값있게 죽은 성자의 관에 대자마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소문이 널리 퍼지자 불길 같이 빛나는 찬송이 일어났고
저 저주로 가득 찼던 황후의 영혼이 신앙의 구원은 못 받았어도
우리를 박해하던 손을 거두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나의 기억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도하여 내가 잊어버리고
특별히 주의하지 않고 지나갔던 이 위대한 일까지도 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당시 당신의 기름의 향기가 그렇게도 향기롭게 퍼져 나갔는데도
나는 그 뒤를 따라서 뛰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찬송을 들으면서 더욱 크게 울었던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당신을 애타게 그리워해 왔던 내가
이제야 초막(나 자신)에 들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시게 되었습니다.

 

 

제9 권 개종과 모니카의 죽음 - 8. 에보디우스의 개종과 모니카의 죽음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한집에 살게 하신 당신은
같은 동네 출신인 에보디우스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궁정의 관리로 있던 사람으로써 우리보다 먼저 세례를 받았고
그로부터 이 세상의 관직을 버리고 당신을 섬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면거 거룩한 당신의 뜻을 받들기로 하고
당신을 섬기기에 가장 좋은 곳을 찾던 중 모두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티베르강 하구에 있는 오스티아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서두느라고 많은 것을 빼놓았습니다.
내 주님이시여!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을 침묵속에서 행한다 하더라도
나의 고백과 감사를 받아 주소서.
어쨌든 당신의 여종인 내 어머니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만은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육신으로 나를 낳아 이 시간의 빛을 보게 하고
마음으로는 나를 영원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대해서보다도
당신이 어머니에게 베푸신 선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그녀를 창조하시고 양육하신 분은 당신이었고
그녀의 양친들도 자신의 딸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나의 어머니를 양육할때 당신을 두려워 하고 당신의 채찍,
즉 당신의 독생자의 권위로 신앙이 두터운 가정에서
당신의 교회의 값진 일원으로 키웠습니다.

그밖에도 어머니는 자기의 양육에 대해서 말할 때
지금은 아주 노쇠한 하녀를 자기의 어머니 곧 나의 외할머니보다 더 자랑했습니다.
하녀는 어머니가 어릴 때,
지금도 처녀가 아이들을 업어 주듯이 그렇게 키웠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연로한 데다 훌륭한 생활 태도 때문에
신자 가정의 주인들로부터 매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주인 집 딸들을 돌봐 주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 하녀는 딸들을 정성껏 돌봐 주고 영리하고 신중하게 그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모들 식탁에서 매우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경우 외엔
타는 듯이 목이 말라도 그녀는 버릇이 잘못 들까 하여
물을 마시는것 조차 절제하게 했는데
나쁜 습관이 몸에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너희들에게 술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물을 마시지만,
시집가서 부엌 살림과 술통을 맡게 되면 이번에는 술마시는 습관이 붙게 된단다.'
이러한 교육 방법과 권위있는 명령으로 어린 나이의 욕망을 억누르고
갈증조차도 참아 낼 만큼 소녀들을 훌륭한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ㅡ당신의 하녀가 이 자식에게 들려 준 것처럼 ㅡ
어머니에게 술맛이 몰래 스며들었습니다.
그녀는 술을 모르던 처녀 시절에 부모의 술심부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잔의 윗쪽을 기울여 술통에서 술을 떠오라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병에 술을 붓기 전에 입술로 약간 맛을 보았습니다.
술이 매우 써서 더 이상은 맛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었고 그 나이의 넘치는 호기심 때문이었으나
이런 것은 어른들의 압력으로 억제되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그 '아주 조금'에 매일 '즈금'을 덧붙여서 마침내는
습관이 되었고 나중에는 순수한 술 한 잔 정도는 쉽게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 현명한 노파와 그의 준엄한 금령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유모가 없을 때도 곁에서 돌보아 주시는 당신,
우리를 창조하시고 부르시며 손위의 사람들을 시켜
좋은 일을 하시는 나의 주님이시여! 당신은 그때 무엇을 하셨습니까?
어떻게 치료하시고 어떻게 해서 고쳐 주셨습니까?
의사가 칼로 환부를 단번에 베어 내듯, 당신의 신비스러운 방책으로
다른 영혼에게 부탁하여 험하고 날카로운 욕설을 퍼붓게 하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어머니는 그 하녀와 더불어 항상 술통있는 곳으로 가곤 했는데
그럴때면 언제나 둘이서 말다툼을 했습니다.
하녀는 어머니의 행동을 날카롭게 비난하며 '고주망태'라고 불렀습니다.
이 욕설 한 마디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자기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스스로 바로 잡았습니다.

아첨하는 친구가 멸망으로 이끌듯, 비난하는 친구는 흔히 바로잡아 줍니다.
그러나 당신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 보상을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원했던 일에 대한 보상을 해주십니다.
이 하녀가 그처럼 화가 나서 비난한 것은
결점을 고쳐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리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그때 그곳이 싸우기에 알맞은 장소였으므로
남몰래 기회를 탄 것이거나 또는 자신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발견했기 때문에 자기도 꾸중을 들을까 두려워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지의 지배자이신 당신께서는깊은 격류의 방향을 뜻대로 바꾸시고
세상의 어지러운 형편도 바로잡으시지만,
광기 섞인 영혼을 이용해서 다른 영혼도 고쳐 주십니다.
이것은 누구든 남을 고쳐주려 할 때 상대가 자기 말에 의해 개심한다면
그가 자기의 능력으로 고칠 수 있었다고 하는
자만심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