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 53 - John Bunyan
크리스찬 : 에서가 자기 상속권을 팔아먹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중요한 축복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저 겁쟁이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에서와 작은 믿음 사이에,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에서의 상속권은 판에 박힌 것이지만 작은 믿음의 보석은 그렇지 않습니다.
에서에게는 그의 배가 하나님이었지만 작은 믿음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서가 원한 것은 육체적인 탐욕이었지만 작은 믿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에서는 자기 창자를 채우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 굶어죽게 되었는데 이까짓 상속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러나 작은 믿음은 믿음을 조금밖에 갖지 못한 것이 그의 운명이었지만,
그는 그 작은 믿음으로도 그런 허망한 일에서 자신을 지켰고, 에서가 자기 상속권을 팔아치우듯 자기 보석을 팔지 않고 그것을 간직하고 가치 있게 여겼던 것입니다.
에서가 믿음을, 아주 작은 것이라도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기록된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육체만이 전부인 자에게 있어
자기의 타고난 상속권과 영혼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지옥의 악마에게 팔아버린다는 것은 전혀 놀랄 만한 것이 못되지요.
그것은 마치 암내 난 당나귀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들의 마음이 일단 거기에 쏠리면 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그것을 손에 넣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작은 믿음은 그런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거룩한 것에 가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 또한 위로부터 오는 정신적인 것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기질을 가진 그가 혹시 살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무슨 목적으로 그 보석을 팔아 헛된 것으로 자기의 마음을 채우겠습니까?
사람이 자기의 굶주린 배를 건초로 채우기 위해 돈 한 푼이라도 내놓겠어요?
비둘기에게 까마귀처럼 썩은 고기를 먹고 살라고 설득시킬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자들은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전당포에 맡기고 전당잡히고 팔아치우고 나아가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까지 내주겠지만, 구원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는 비록 그 믿음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당신은 착각한 것입니다.
희망 :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그 잔인한 비난 때문에 거의 화를 낼 뻔했습니다.
크리스찬 : 그랬습니까?
나는 단지 당신이 한 말을 속이 텅 빈 머리로 활개를 치며
사람이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어떤 새들에 빗대 본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일단 제쳐놓고 지금 우리가 논하고 있는 문제만 생각해 본다면
당신과 나 사이에는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것입니다.
희망 : 하지만 크리스찬 씨, 그 세 녀석들은 모두 비겁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길에서 발소리가 들린다고 그렇게 줄행랑을 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작은 믿음은 좀 더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요?
일단 한번 부딪쳐보고, 그러고 나서도 어쩔 도리가 없을 때 굴복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찬 : 그들이 비겁한 놈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직접 당해보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작은 믿음 역시 대담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희망 씨가 바로 그 당사자였다면 한바탕 겨뤄본 뒤 굴복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배가 부르고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렇지
지금이라도 당장 그들이 당신 눈앞에 나타난다면 당신도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 강도들은 여행자들을 우려먹는 도둑일 뿐이며,
바닥없는 지옥의 왕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옥의 왕은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면 울부짖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직접 달려올 것입니다.
이 작은 믿음이 당한 것과 비슷한 일을 나도 당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세 놈의 악한이 공격해 올 때 나는 크리스찬답게 저항하기 시작했지만, 그놈들이 한번 크게 소리를 지르자 그들의 주인이 당장 달려왔습니다.
렇게 되자 속담처럼 내 생명은 한 푼어치도 안 되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무장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사내답게 싸우는 게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직접 싸워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 전투가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희망 : 그렇지만 당신도 아시다시피 그들은 '큰 은총'이 오는 듯하기만 했는데 도망을 쳤습니다.
크리스찬 : 큰 은총이 그 모습을 나타내기만 해도 그놈들 뿐 아니라 그 두목까지 도망치곤 한 것은 사실입니다.
큰 은총이 곧 하나님의 전사이니 악당들이 도망치는 일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죠. 그러나 당신은 작은 믿음과 하나님의 전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모두 그의 전사가 아니며 시험을 당해서 모두 전사처럼 공훈을 세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소년이라면 누구든 다윗처럼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옳은 일이겠습니까?
굴뚝새가 황소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강하고 어떤 사람은 약합니다.
어떤 사람은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조그만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믿음은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궁지에 몰렸던 것입니다.
희망 : 큰 은총이 도둑놈들보다 먼저 작은 믿음 앞에 나타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크리스찬 : 큰 은총이라 해도 역시 벅찼을 겁니다.
비록 큰 은총이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무기를 잘 쓰고, 그것을 활용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적들을 잘 상대할 수 있는 건 그가 칼을 뽑아 적들을 겨누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만약 겁쟁이, 불신, 범죄가 한꺼번에 힘을 합쳐 덤빈다면 사태가 어렵게 되어 그들이 큰 은총을 넘어뜨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단 쓰러진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큰 은총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 무수한 상처와 칼자국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보면 내가 하는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