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조직신학組織神學]

루터

好學 2009. 3. 18. 14:37

 

 

창세기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나 땅이 황폐케 되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일격을 가한 이러한 손상은 여전히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갈망을 좌절시키려하는 사탄이 한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지혜를 나타낼 기회를 더 제공했습니다. 그분은 회복을 가져오시려 영으로서 하락된 상황을 덮고 계셨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did not overcome it).

 

하나님은 종종 그 분이 개입하시기 전에 악한 상황이 완전히 전개되도록 허락하십니다.

개혁에 관해 이것은 진정 사실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항상 간증을 갖고 계셨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중요한 진리들이 암흑시대동안 묻혀져 있었거나 분명치 않았으며 미신적 행위의 제도로 대체되어 있었고 진리가 덮여져 있었고 회개하고 그분을 믿으라는 부르심 대신 사람의 공로가 전파되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했습니다. 이방 의식이 영과 실제 안에서 하나님을 단순하게 경배하는 것을 대치했습니다.

율법과 의문(letter)이 영과 말씀을 대치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본을 따른 세상 적인 성직자 제도가 지방 장로들을 대치했습니다. 흑암의 역사가 그러한 결실을 맺었을 때 주님은 그 시대의 독특한 그릇인 마르틴 루터를 일으키심으로 개입하셨습니다.

 

A. 루터의 소년시절

 

마르틴 루터는 색소니(Saxony)에 있는 아이슬레벤(Eisleben)에서 1483년 11월 10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평민 출신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광부로서 정직하고 근면한 분이셨으며 그의 어머니는 중간 계급 출신이었습니다.

루터가 6개월 되던 때 그의 가족은 맨스펠드(Mansfeld)로 이주했습니다. 일곱 살이 되던 해 그는 그 지역에 있는 라틴 학교에 다녔습니다. 열 네살 때 마그데부르크(Magdeburg)에 있는 공동 생활의 형제회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단순한 믿음을 사용했고 그의 마음을 주님께 열어드렸습니다.

그 다음해 그는 아이제나흐(eisenach)에서 친척과 함께 살았으며 그 곳에서 계속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녔습니다. 어떤 이는 그가 빵을 구걸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이는 그의 가족의 경제적 상황을 보여줍니다. 다른 이들은 그의 부모에게 아무런 경제적 문제도 없었고 단지 그가 노래하기를 좋아했다고 말합니다. 양쪽 어느 경우든지 루터에게 노래와 찬송은 그 당시와 그후에도 아주 중요했습니다.

 

B. 훈련

 

1. 에르프르트 대학 (University of Erfurt)

열 여덟살 때 에르프르트 대학(University of Erfurt)에 들어가 1502년 학사 학위를 받고 삼 년 후에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목적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루터는 20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에르프르트 대학 도서관에서 그가 발견한 라틴어 성경이었습니다.

 

2. 아우구스티노스 수도회 (Augustinian Monastery)

 

비록 그에게 성경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지만 어릴 적부터 마르틴 루터는 지옥에서 구원받고 천국에 가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갈보리의 하나님이 아니라 시내산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저주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추구했던 어떤 것 중, 심지어 신학 연구에서도 그가 갈망하던 내적 평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중 질병과 사고와 친한 친구의 죽음과 그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맹렬한 뇌우라는 사건들로 인해 루터의 일생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해 그는 세상을 버리고 그 자신과 그의 온 일생을 하나님을 섬기는데 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는 길은 수도사가 되는 길 밖에 없었기에 1505년 그는 에르프르트에 있는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이 년 후 그는 성직자로 안수 받았습니다.

루터는 안수 받은 후 몇 년 후에 아우구스띠노의 명령에 의해 선택되어 로마 선교에서 그들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여행하면서 멀리서 로마를 보고 그는 매우 흥분했었습니다. 그가 그 도시에 들어가면서 “만세! 거룩한 로마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가 로마와 그 곳의 실제 상황을 보면 볼 수록 더 환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성직자들의 낮은 도덕성을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를 방문하던 중 마르틴 루터에게 어떤 빛이 임했습니다. 교황이 약속한 면죄부를 얻으려는 희망을 갖고 그는 로마에 있는 빌라도의 계단이라 불리는 곳으로 가서 무릎을 끓고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그가 이렇게 하고 있는 동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이 떠올라 그것을 멈췄습니다. 마치 큰 빛이 루터에게 임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은 후에 루터의 일생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3. 비텐베르크 교수 (Professor at Wittenberg)

1508년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철학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가르치는 것 외에도 그는 대학에서 계속해서 공부했습니다. 사 년 후에 그는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그 당시 그는 두 가지를 선포했습니다. 첫째, 그 날 이후부터 그가 성경을 전파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사람들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루터가 자기 자신에게 정해놓은 놀라운 목표였습니다.

 

C. 관점의 변화

 

점차적으로 그의 관점은 변했습니다. 그가 빛을 더 받을수록 그는 그의 옛 관점을 더 붙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1. 철학에서 성경으로

 

비록 몇 년 동안 철학이 루터의 흥미를 돋구었지만 이것은 말씀을 사랑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그는 옆 공간이 많고 줄 사이에 공간이 넓은 특별한 성경을 인쇄했습니다. 이것은 학생들이 강의 때와 스스로 말씀을 공부할 때 필기하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즉시 성경은 나에게 전과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씀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갈 때 루터는 그의 구원에 더욱 확신을 가졌는데 특별히 그가 로마서와 시편을 읽을 때 그러했습니다. 이 책들 외에도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디도서, 사사기를 강의했습니다. 로마서를 추구하는 동안 그는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가 그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루터의 전기를 쓴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루터가 발견한 최고의 순간이다. 그가 후에 “마치 내가 다시 태어난 것과 같았고 새롭게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들어간 것 같았다. 즉시 성경은 나에게 전과 다른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하나님의 의’라는 내가 예전에 미워했던 그 구(phrase)는 이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그 단락이 나에게 낙원에 이르는 길이 되었다.”

이제 그는 은혜와 의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며...

 

 

 

 

 

루터는 이제 자유함을 느꼈습니다. 그가 예전에 느꼈던 하나님의 대한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복음은 그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분명해 졌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나 다른 모든 믿는 이들을 “항상 죄인이며 항상 죄에 유감스러워 하며 항상 하나님께 의롭다”고 보았습니다. 전에는 의와 공의와 징계가 그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그는 은혜와 의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며 우리가 금식이나 가난한자들에게 돈을 주거나 회개 기도를 하거나 성찬을 받아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루터는 이 진리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도록 감동 받았으나 그렇게 할 수록 더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2. 어거스틴(Ausgustine)과 버나드(Bernard)와 타울러(Tauler)의 영향

 

세 사람이 마르틴 루터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첫 번째는 오거스틴으로서 그를 통해 루터는 의에 대하여 믿음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였는데, 루터는 그의 찬송들을 감상했습니다. 버나드가 만든 찬송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예수, 당신을 향한 바로 그 생각 달콤하게 내 가슴을 채우네
훨씬 더 달콤한 당신의 얼굴을 보며 당신의 임재 안에서 안식해

 

 

세 번째는 신비주의자인 타울러입니다. 비록 루터가 신비주의와 관련된 많은 항목들을 받아들인 것 같지 않지만 그는 사람이 성찬식이나 소위 말하는 로마 교회의 은혜의 수단 없이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습니다.

 

3. 구원의 기초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한분 안에서 믿음을 통한 것...

 

 

 

비록 그가 여전히 그 자신을 독실한 로마 카톨릭 신도, 교회의 신실한 아들이라 생각했지만 루터는 구원의 참된 기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한분 안에서 믿음을 통한 것임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선한 행실은 구원과 아무관계 없는 죄일 뿐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성령과 말씀을 통해 내적 의가 우리의 존재 안으로 역사 되어야 할 필요를 보았습니다. 루터는 선택과 예정을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방면으로 보았습니다. 죄인이 살아야 하는 생명은 은혜와 함께 하는 믿음의 생명이며 새 생명은 믿음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보면 볼 수록 그와 카톨릭 교회 사이의 거리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처음에는 이 어긋남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교회가 보았고 모든 것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의 관점이 점차적으로 로마 교회의 가르침과 정반대로 반대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보면 볼 수록 그와 카톨릭 교회 사이의 거리가 생겼습니다.

 

 

 

 

 

4. 그리스도의 역사

 

루터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율법을 완성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분 자신이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대상이십니다.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사시거나 거주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떡이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더 접촉할 수록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떡으로서 더욱 누리게 됩니다.

 

5. 교회

 

루터는 교회의 인도자들이 되어야 할 카톨릭 주교들이 그들의 주요 임무라고 그가 느끼는 말씀 전파나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전설이나 사람의 의견으로 주일 설교를 채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루터는 로마 카톨릭에 대한 순종은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곧 바뀌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