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조직신학組織神學]

조직신학(3) 조직신학의 방향

好學 2009. 4. 26. 19:19

 

 

조직신학(3) 조직신학의 방향

조직신학 연구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 중심적 조직신학이고,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조직신학이며, 셋째는 성령 중심적 조직신학입니다. 하나님 중심적 조직신학이란 성경의 정경성 문제, 예정론, 교회론, 성례관 등에서 하나님 중심적 관점을 가지고 뼈대를 세워나간 조직신학을 의미하며 이것은 죤 칼빈이 취하던 입장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조직신학이란 위에 열거한 여러 제반 문제들을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을 가지고 뼈대를 세워나간 조직신학을 의미하며 이것은 마르틴 루터가 취하던 입장입니다. 또한 성령 중심적 조직신학이란 위에 열거한 여러 제반 문제들을 성령 중심적 관점을 가지고 뼈대를 세워나간 조직신학을 말하며 이것은 많은 은사주의자가 취하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입장들은 어떤 차이를 가져다줍니까? 예를 들어 성경의 정경성 문제를 놓고 볼 때 하나님 중심적 조직신학에서는 성경 전체를 평면적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을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역사서나 시가서 및 예언서나 서신서도 복음서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정경성을 보존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점이지만 반면에 이러한 관점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강렬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의 정경성 문제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으로 본다면 성경을 발전적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구약은 신약을 예비하기 위한 책이고 신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장 선명하게 밝힌 복음서를 가장 중요시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 중심적 시각에서는 구약을 꽃이 만발하기 전의 꽃봉우리로 보고 신약을 만발한 꽃으로 보며 그 중에서도 복음서를 꽃 중의 꽃으로 봅니다.

루터가 이와 같이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것 자체는 별로 탓할 일이 없고 오히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강하게 전달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점이 지나쳐 바울서신이 야고보서보다 낫다는 식으로 성경에 있는 책들의 우월성을 논한 일은 심각한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논의가 나아가서는 결국 성경의 무오성을 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루터는 특이한 성서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교회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성서비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성서를 비판했었습니다. "첫째, 예언서에 있는 예언자들의 글에는 오류가 많다. 둘째, 열왕기상하서는 역대상하서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 셋째, 에스더서는 성서에 포함되지 않았음이 좋다. 넷째, 복음서가 다 같은 중요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섯째, 히브리서 6장 4-6절은 두 번째 회개의 가능성을 부인하나 그것은 잘못이다. 여섯째, 야고보서 저자는 성서를 조각 조각으로 만들었다. 일곱째, 요한계시록은 아무 것도 계시해 주지 않는다." 루터는 성경의 모든 책들을 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음으로 결국 성경의 정경성에 침해를 준 것입니다.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으로 보아 복음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은 좋으나 그러한 관점이 지나치면 '치우친 조직신학'의 모습을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성경의 정경성 문제에서 성령 중심적 관점으로 보게 된다면 성경을 역동적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을 '오늘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게 되는 참으로 훌륭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성경 전체에서 은사나 기적과 이사가 일어난 부분을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 간접적으로 성경의 정경성을 침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의 방향을 설정할 때 어떤 관점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을 가지더라도 지나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리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