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63과 사무엘하(4): 부록 및 결론 (21-24장) 10

好學 2012. 12. 11. 13:27

제63과 사무엘하(4): 부록 및 결론 (21-24장) 10

 

 

6. 다윗의 인구 조사와 형벌(24장)

  24장에는 이스라엘이 다윗이 교만해져서 인구조사를 한 일로 인해 3일간 온역으로 징계를 받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겉으로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땅에 대해 진노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부추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24:1).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은 다윗이 사단의 유혹에 미혹되는 것을 방임하셨다(대상 21:1).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이스라엘의 범죄는 무엇인가 ?

1) 혹자는 그것을 본서에 기록되지 아니한 '숨은 죄'라고 본다(Kimchi).

2)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다윗의 인구 조사에 동참한 죄라고 본다(Lange). 그러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을 진노케 한 이스라엘의 범죄는 무엇인가?

1) 어쩌면 이스라엘의 범죄는 이스라엘 전체의 교만이었을 것이다. 인구조사를 한 영역을 보면 이스라엘은 다윗의 지도 아래 처음으로 인근 국가들 가운데 강력한 국가로 등장했다(5-7).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다윗을 통해 거의 실현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감은 우월감으로 이어지는 교만으로 나타났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서 그들의을 겸손하게 만들고, 그들의 번영이 자신의 의로움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셨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결국 다윗의 교만한 모습은 교만해진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나의 노래에서 나타났듯이 하나님은 언제든지 가난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시다. 2) 어쩌면 이스라엘의 범죄는 압살롬의 난과  세바의 난에 나타난 반역적인 태도였을 수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 왕을 반역하고, 그를 대적하여 압살롬과 세바를 좇았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반역 적인 행동 역시 하나님의 징계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말살하지 않고 인간 역사를 당신의 뜻대로 섭리하여 가신다. 따라서 다윗의 인구 조사는 다윗의 자유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코자 다윗의 의식 속에 있던 악한 의도를 허용하셨을 뿐이다. (대상 21:1)을 보면 이러한 인구조사가 '사단의 격동'을 인해 일어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다윗의 인구 조사는 하나님을 인한 것인가? 아니면 사단을 인한 것인가? 아마도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단의 유혹을 허용하셨을 것이다(욥 1:12;삼상 26:19). 다윗의 인구조사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단의 격동을 허용함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다윗은 요압에게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모든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통해서 자기의 세력과 영광스러운 번영을 확인하고 자랑하려 했다. 특히 그는 군사력에 대한 실상을 파악함으로 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굳히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는

1) 번영의 근거가 바로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으며,

2) 하나님 보다 군사력을 더욱 신뢰하려 했던 다윗의 교만한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과 번영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목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힘을 괴시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러한 인간의 과시욕과 명예욕은 그러한 번영과 힘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일로서, 결국 그분의 진노를 자초하게 되었다(시 94:2; 잠 21:4; 눅 1:51). 요압은 다윗의 교만한을 감지하고 이를 만류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구조사를 실시하도록 요압을 재촉하였다. 인구 조사단은 이스라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인구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단은 요단 강을 건너서 갓 골짜기에 있는 성읍인 아로엘 우편(야셀 맞은 편)에 장막을 쳤다.

'아로엘'은 요단 동편에 있던 한 성읍으로(신 2:36; 수 12:2), 원래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지만, 그곳에 성을 쌓은 자들은 갓 자손이었다(민 32:34). 이곳은 사해에서 동쪽으로 약 22km 떨어진 곳이며, 아르논 강북쪽 해안에 있었다. 이곳은 국경 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요압은 이 곳에서부터 인구 조사를 착수했던 것이다. 야셀은 원래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성읍이었으나, 후에 갓 족속의 정착지가 되었다(민 32:35; 수 13:25). 이곳은 아모리 지경과 경계지였으며, 갓 지파가 레위 지파에게 준 네 성읍 중에 하나였다(수 21:39).

인구 조사는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무리들이 동원되었다. 따라서 요압은 이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장막을 아로엘과 야셀 사이의 초원 지대에 세우고, 이 장막을 인구 조사의 본부로 이용했었다(Keil, Lange).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지명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인구 조사를 실시했다. 1) 길르앗-2) 닷딤훗시, 3) 다냐안, 4) 시돈, 5) 두로, 6) 히위와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 7) 유다 남편으로 나와서 브엘세바에 이름-8) 조사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이름. '길르앗'(Gilead)은 인구 조사 본부가 설치되었던 아로엘과 야셀이 있던 지방으로(신 3:10), 얍복 강 양편에 있는 산악 지방을 의미한다(창 31:21-48). 이곳에는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가 살고 있었다.

 

 닷딤홋시는 갈릴리 바다 동편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사단이 그곳에서 이스라엘 북단인 '다냐안'으로 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이곳은 길르앗에서 다냐안으로 가는 중간 지점이며, 따라서 닷딤홋시 땅은 갈릴리 바다 동편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냐안은 정확히 말해서 '단야안'이며, 이는 이스라엘  북단에 있던 '단'을 가리킨다(수 19:47; 삿 18:29). 이곳은 다메섹의 남서쪽에 있었으며, 당시에 다윗 왕조의 북쪽 경계지에 있었다.

 

한편, '야안'은 베니게의 신의 이름으로, 이교적인 풍습에 의해 이 지명에 붙여진 듯하다(Bunsen). 시돈은 사실상 다윗 왕국의 영토는 아니었으나, 다윗 왕국의 속국으로 당시 군역에 가담하고 있었다. 한편 시돈성은 베니게의 부요한 성읍이었으며, 단의 북서쪽 지중해 해안에 있었다(창 10:15; 수 11:8; 19:28). '두로'(Tyre) 역시 시돈과 마찬가지로 당시  다윗의 속국이었다. 이곳은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수 19:29). 따라서 이스라엘 최북단까지 올라간 요압 일행은 시돈을 기점으로 해서 다시 남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위 사람'이나 '가나안 사람'은 모두 이스라엘 내에 거주하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비록 히위 사람들은 기브온 근처까지 내려와 살기도 했지만(수 11:19), 이들은 주로 이스라엘의 북방 지역, 즉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땅에 공동으로 살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은  후에  '열방의  둘레'라는 뜻인 '갈릴리'로 불려지게 되었다. 한편 이들 이방인들도 역시 군역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인구 조사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브엘세바는 유다 네게브 지방의 한 성읍이었고, 남쪽 유다의 행정 중심지였다(대하 19:4). 이곳은 이스라엘 영토의 최남단에 있었다. 그러므로 성경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판도를 서술할 때 흔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기술하였다(삿 20:1; 삼상 3:20; 삼하 3:10). 요압을 지도자로 한 인구 조사단은 위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9개월 20일만에 조사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요압의 보고에 의하면 이스라엘에서 전쟁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80만명이었으며, 유다 사람은 50만명이었다(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