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62과 사무엘하(3):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2) (14-20장) 7

好學 2012. 11. 26. 20:52

제62과 사무엘하(3):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2) (14-20장) 7


 
2-9. 압살롬의 전사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다윗(19-33)

 

  압살롬이 죽은 것을 본 대제사장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요압에게 자신이 즉시 다윗에게 달려가서 승전 소식을 전하겠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요압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의 죽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를 만류했다. 요압은 아히마아스 대신에 구스 사람을 보내어 대신 그 소식을 전하게 했다(19-21).

 

본문에 언급된 `구스 사람'은 에디오피아인으로, 이 전쟁에 참전했던 다윗 왕의 노예였을 것이다. 요압이 압살롬의 전사 소식을 다윗에게 알리는 일을 구스인에게 맡긴 것은 그가 외국인으로 다윗 왕의 노예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압살롬의 죽음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Rust). 또한 요압은 구스인을 전령으로 보냄으로 다윗이 전령을 보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예감하게 하여 다윗 왕의 충격을 완화시키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자기 입으로 이번 승전 소식을 다윗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는 요압에게 자기도 가게 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요압이 마지못해서 그 일을 허락하게 되자, 아히마아스는 들길로 빨리 달려서 구스 사람보다 먼저 다윗이 있는 성에 도착했다(22-23).

 

여기에 언급된 "들길"은 `요단 계곡의 길'을 의미한다. 이 길은 평평한 평지 길이었기 때문에 빨리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구스인은 에브라임 수풀에서 마하나임으로 가는 직선거리로 달려갔던 것 같다. 이 길은 비록 거리 상으로는 짧았지만, 언덕과 골짜기를 지나는 험한 길이었다. 그러므로 아히마아스가 구스인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먼저 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때에 다윗은 문 사이에 앉아서 요압이 보내는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문 사이는 성의 외문과 내문 사이를 의미한다. 이곳은 파수꾼이 있던 성문루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다윗 왕은 하루 종일 이 곳에 앉아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쟁터에서 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23-24).

 

  그 때에 성문루에 서서 파수를 보던 파수꾼이 성을 향해서 달려오는 사람을 발견하였다. 파수꾼은 즉시 이 일을 다윗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다윗은 달려오는 사람이 한 사람이면 소식을 가지고 오는 전령일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전쟁에서 패배한 경우에는 많은 패잔병들이 달려와서 보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인 경우에는 요압이 보낸 전령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 전령을 아히마아스의 뛰에 오는 전령도 발견하고 다윗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다윗은 그 사람 역시 소식을 가지고 오는 전령이라고 말했다.

 

파수꾼은 앞에서 달려오는 사람이 사독의 아들인 아히마아스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다윗은 그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소식을 전하러 오고 있다고 말했다. 다윗은 아히마아스와 같은 충성된 사람이 자기 군사들을 버리고 홀로 도망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히마아스는 성에 도착해서 다윗 앞에 나와서 절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다윗 왕에게  다윗의 군사들의 승전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다윗은 압살롬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아히마아스는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모르는 척했다. 바로 그때에 구스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또 다시 승전 소식을 전했다. 다윗은 또 다시 그에게 압살롬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구스 사람은 다윗에게 압살롬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심히 마음이 아팠다. 그러므로 그는 성문루에 올라가서 울기 시작했다.

다윗은 차라리 압살롬을 대신해서 자신이 죽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울며 애통하였다(25-33). 이러한 다윗의 절규는 다음과 갈은 이중적인 슬픔이 잠재해 있었을 것이다. 첫째로 죽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본능적인 슬픔이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가 불러온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아픔을 크게 느꼈다. 다윗 왕은 압살롬의 죽음이 자기의 죄 때문임을 알고서 흐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이미  두 아들을 잃고 말았다(12:15-19; 13:30-39). 그러나 이제 그는 또 다시 압살롬마저 잃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뼈아픈 과거의 죄가 생각이 나서 통한의 울음을 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윗 왕의 절규는 압살롬을 대항하여 싸웠던 군사들에게는 사기를 저하시키는 행동이 되었다.

 
2-10.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19:1-8)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인해 슬퍼한다는 소식은 곧 승전하고 돌아오는 요압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왕이 자기 아들의 죽음을 인해 슬퍼한다는 소식이 모든 군사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이로 인해 마땅히 기뻐해야 할 그 날의 승리는 오히려 백성들에게 슬픔을 주고 말았다. 그러므로 당당히 개선 환영 식 행진에 맞추어 들어가야 할 요압과 다윗의 군사들은 마치 패잔병처럼 슬며시 성에 들어가고 말았다(1-3). 이때에 다윗은 승전 소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아들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애통하고 있었다(4).

 

이러한 다윗의 처절한 애곡은 단순히 부친으로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아들이 죽었다는 자책감으로 인한 것이었을 것이다. 왕이 목숨을 걸고 싸워 승전한 군사들을 환영하지 않고 압살롬을 인해 애통해 하는 것을 본 요압은 다윗에게 가서 불만이 섞인 조언을 하였다. 요압은 다윗 왕이 오늘 생명을 걸고 나가 싸워서 왕과 그 가족을 구원한 신하들을 부끄럽게 했다고 말했다. 요압은 이러한 다윗 왕의 행동은 왕이 반역자를 사랑하고, 왕을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운 사람들은 미워하고 멸시하는 처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요압은 이러한 다윗의 행동은 마치 압살롬이 승리를 하고, 왕의 모든 신하들이 죽기를 원했던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요압은 다윗에게 승전하고 돌아온 신하들의 마음을 위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만일 다윗이 계속해서 슬퍼하고 신하들을 격려하지 않으면, 오늘 밤 안으로 모든 신하들이 왕을 떠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다윗에게 치명적인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5-7).

 

요압의 충언을 들은 다윗은 자기의 감정을 다스리고 일어나서 성문에 나가 앉아있었다. 당시 사회에서 성문은 매매, 행정, 집회 등이 열리는 장소였다(룻 4:1-2, 삼상 9:18, 욥 29:7, 암 5:10,12). 또한 성문은 왕이 백성들과 만나는 장소였으며, 재판하는 곳이었다(15:2). 따라서 다윗 왕이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왕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본문에서 성문에 앉았다는 말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사들을 치하하고 격려하며,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윗은 요압의 권고가 거칠고 무정하기는 했지만,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요압의 권면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결단이 있기까지에는 강권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위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시 40:17; 56:13). 왕이 성문에 앉았다는 소식을 들은 모든 백성들은 함께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되었다.

이 말은 왕 앞에서 군대의 개선 행진이 있었으며, 또한 승리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왕과 백성들 간에 즐거운 대면이 있었음을 암시해 주는 말이다. 이 일로 인해 압살롬의 반역에 참가했던 무리들은 전의를 잃고 흩어지고 말았다. 압살롬의 죽음으로 그들은 더 이상 저항할 명분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서 자기 집으로 피신했다. 이로 인해 반역으로 위기를 맞았던 나라는 다시 평화를 찾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