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만남(5)/바른 열심과의 만남/삼하 19:1-8

好學 2012. 11. 26. 20:45

 

만남(5)/바른 열심과의 만남/삼하 19:1-8

 

 

본문 : 삼하 19:1절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절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절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4절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절 요압이 집에 들어 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뻔하였나이다  /7절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찌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8절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어떤 일을 이루면서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열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 없는 사람치고 어떤 일에 열매를 풍성히 거두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대단한 열심이 있었지요. 어떤 난관과 어려움이 있어도 물러서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믿음이라는 게 태도라 그랬는데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각도 하나만 바뀌는 것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같이 새벽기도를 오려는데 비가 옵니다. 비가 많이 내릴 때 ‘비가 오는구나’ 하며 교회 나올 의지가 꺽이는 사람은 죽을 때 까지 꺽일 사람입니다. 비가 오는 순간에 ‘어렵겠구나’ 그러면서 불이 붙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걸 이겨야지’ 이런 조그만 태도 하나가 평생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시험을 줍니다. 시험이 올 때 꺽이는 인생이 있는 반면에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불타는 인생이 있습니다. 위기 가운데 더 강력해지는 사람, 더 능력이 임하는 사람이 있고 조그만 어려움과 위기가 오면 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강력한 태도로 바꿔야 합니다.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올 때 진정한 고수의 길이 무언지 아십니까? 자전거를 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저는 그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도 자전거를 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타면 고수의 길로 들어서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을 품었어요.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선택입니다. 


      어제는 특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오정현 목사님과 영화를 보았는데 그 분이 Kingdom of Heaven이라는 한물 다 간 영화인데 찾아보았더니 상영하는 곳이 한 군 데 있었습니다. 영화가 스케일도 크고 괜찮았습니다. 저는 무너지고 깨지고 목이 날아가고 그런 것을 좋아 하거든요. 너무 재미있어서 보고 나오는데 한편 더 보자 그러시더라구요. 밖에 나가서 식사하고 또 한편을 봤습니다.


      다음 프로는 제가 결정을 했거든요. 한국 영화를 하나 봐야겠다 그래서 ‘간 큰 가족’을 봤습니다. 티비 드라마 수준의 정말 재미없는 영화였습니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영화를 보자고 해서 이런 망신을 당하나’ 했습니다. 그래도 열정이 참 대단했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 두 개를 다보고 재미없는 것을 끝까지 다 보고 나왔거든요. 한 사람이 보자고 했을 때 물러서지 아니하고 맞장구를 치는 것 이런 태도는 좋더라구요. 열정적인 태도 물러서지는 태도, 누가 제안하면 'No' 안하는 태도.


    그런데 열정만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 나름대로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영화는 정보가 없었기에 재미없는 것을 택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열심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바른 열심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른 열심이 아니면 잘못된 일을 열심히 할 수도 있고 열심을 가지고 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귀한 기회를 다 놓칠 수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열심은 있었으나 바른 열심을 갖지 못한 사람을 들라 하면 요압장군입니다. 그는 열심히 있는 인생이었습니다.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최측근이었고 그의 장군이었습니다. 아둘람 굴에서부터, 초창기 다윗이 고생할 때부터 동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만 동행한 것이 아니라 형제가 셋 있었는데 셋 다 장군들이었습니다. 아비새. 아사헬 모두 동생들이었는데 3인이 다윗을 보좌하면서 열심히 충성스레 뛰던 사람들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을 보면 특이한 것이 무엇이냐 요압이 그렇게 충성을 다해서 뛰었으나 믿음의 사람이라고 묘사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열심히 충성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열심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삼일 교회 성도들 얼마나 열심히 있습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고 열정적으로 뛰지 않습니까? 열심은 있는데 요압과 같은 열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ㄴ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을 만나기는 만나되 바른 열심과 만나야 됩니다.
 

      바른 열심히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무언가?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의해서 끌려가는 열심히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압에게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심이 하나님 말씀에 의한 기준이라기보다 자기 기준, 자기 기분, 자기 멋대로. 자기가 좋으면 따라가고 자기가 좋지 않으면 No 하는 것입니다. 무게 중심이 항상 자기에게 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가 있지 않습니다. 열심이 무슨 원리에 의해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기분에 의해서 끌려가는 사람입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압살롬 사건 아닙니까?  다윗이 압살롬 죽이지 말라 했는데 왕의 명령이고 또 하나님의 기준이기도 하잖아요? 자기 신분 상 명령은 들어야 할 위치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이 상수리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니 자기 칼로 찔러 죽이지 않습니까? 열심은 있는데 그 열심이 컨트롤 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의 열심.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가장 다루기 힘듭니까? 열심히 있고 능력이 있는데 자기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컨트롤을 받지 못합니다. 엔진은 크되 방향이 없으니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과 은혜를 주신 사람일수록 말씀의 컨트롤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세례요한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능력을 받았습니까? 한번 설교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등장하고 나니 예수님께 민심이 몰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이것 반대해야 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라갑니다’  그때 세례요한의 태도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흥해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게 하나님께 능력과 은혜, 열심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말씀의 컨트롤을 받으면서 자기를 절제할 줄 알고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사람. 여러분 중에 열심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무엇에 의해 컨트롤 받고 있습니까? 말씀으로 조정 받지 못하면 불행한 열심, 요압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열정, 엔진은 돌되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돼서 말씀이 날ㄹ 이끌어 가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잘못된 열심이 바른 열심이 되기 위해서 붙들어야 할 것은 희생이 있는 열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능력과 은혜를 주신 사람이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이 ‘희생하는 특권을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압은 열심이 있었으나 내용을 따져 보면 자기 공명을 위한 열심, 자기 이익을 위한 열심이었지 희생을 위한 열심이 전혀 없습니다. 사무엘하에 보면 다윗과 이스보셋의 아브넬이 항복을 해서 평화협정을 맺으려 합니다. 평화협정을 맺으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이인자가 아브넬이 될 가능성이 커지거든요. 그랬더니 요압이 분노하면서 아브넬을 쳐 죽입니다. 다윗을 신의 저버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유가 뭡니까? 다윗과 자기 사이에 이인자가 존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몇 차례나 반복됩니다.


      요압은 어떤 사람입니까? 요압은 열심이 있던 사람입니다. 왜 자기이익에 합하기 때문에. 그런데 자기 이익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된다면 왕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어요. 오늘도 본문을 보십시오. 거의 왕을 앉혀놓고 협박을 하잖아요. ‘당신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젊을 때부터 당한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이 임하게 될 것이다’ 이게 왕 앞에 할 일입니까? 다윗이 지혜로와서 참고 있던 것이지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은혜와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더 많이 받으셨습니까? 자기 것을 내어 놓고 희생할 줄 아는 모습들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더 많은 물적, 인적 자원들이 지금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께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받는가? 기억해야 합니다.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더 많은 능력을 가진 리더십은 희생할 줄 아는 리더십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절제할 줄 알고 깨질 줄 아는 리더십, 그럴 때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압을 보면 안타까움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많은 용맹함, 다윗과 같이 어려서부터 보냈던 오랜 동안의 경험과 생활을 나눔, 얼마나 중요한 것들입니까? 요압의 결정적인 약점이 뭐에요? 다윗과  동거는 했지만 동역자는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의 이익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가 큽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언제나 죽을 수 있습니다. 희생할 수 있습니다. 험난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그런 열심만 된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열심을 사용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