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청소년교육]

만남(4)/좋은 책과의 만남은 인생을 바꾼다/딤후4:13

好學 2012. 8. 14. 22:29

만남(4)/좋은 책과의 만남은 인생을 바꾼다/딤후4:13

 

 

본문 : 딤후 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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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딤후 4:13절을 보면 바울 노년의 상태를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이때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척 추워서 겉옷을 가져오라 요청했던 것 같습니다. 육적인 필요를 위해서 요청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책을 가져오라 그랬습니다. 책이 구약성경일 수 있고 역사책일 수도 있고 다른 주해서일 수도 있고 이방세속적인 시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어떤 책이든 독서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 생활을 할 때 부지런히 독서를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많이 읽어야 더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고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 수 있습니다. 독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만드는 길이 되며 동시에 깊이 있게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또 극단적으로 얘기를 하면 독서 없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왜? 독서가 없으면 깊이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독서가 없이 생각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 논리 안에서만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밖에 못한다는 것입니다. 독서는 넓고 깊이 있게 만드는 수단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책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다니엘서 9장 2절에 보니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이 갑자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예레미야의 서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빌론의 포로가 70년만에 끝나고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도록 만드신 분이 누굽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모르드개 사건 아시죠?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 죽게 되었을 때 갑자기 하나님이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사, 감동도 아니죠. 잠 못들게 만드시니 잠을 못잤습니다. 에스더 6:1 절을 보니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역대기를 가져와라, 실록을 가져 오라 해서 죽 읽어 보았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 가 하면 모르드개가 충성스런 일들을 했다는 것들이 기록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잠 못들게 만들고 역대의 일들을 읽게 만든 힘이 어디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자주 합니다. 말씀을 증거하려고 하니 막힐 때가 있습니다. 한계에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떤 책을 접하게 만드셔서 말씀의 막힌 것을 뚫게 하시고, 또 교회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때 어떤 중요한 책을 접하여서 교회의 진로에 대해 비전을 얻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책을 고르는 데까지 함께 하신다는 그런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책을 선택할 때 ‘하나님 나의 삶 가운데 책을 통하여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하는 기도가 동시에 항상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좀 딱딱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독서에 관한 얘기를 분ㅅ헉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왜 독서를 해야 하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독서의 이유를 세 가지로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자기 분야, 자기 전공분야에 있어서 만은 정통해야 합니다.

목사 같이 말씀을 증거하는 경우에는 성경에 대해서 정통해야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가지 적어도 꿰고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을 몰라서는 안 되겠죠. 법률가라 그러면 법률을 알아야 되고 의사라 그러면 최근 저널을 읽어서 의학에 관해서 정통해야 합니다. 자기 전공분야에 있어서만은 정통하는 모습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전공이 무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성경은 다 읽으셔야겠고 또 하나 전공분야에 있어서 최근의 흐름과 최근의 내용은 다 알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충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전 1부예배에서 기도를 할 때 어떤 형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런 예기를 합니다. 자기는 전자공학이 전공인데 전자공학이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4학년인데 밤낮 세부적인 것들, 시험공부하고 맞추려고만 그랬지 전체적인 파악이 안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 전공분야의 주축을 볼 줄 아는 그런 책 내용들을 많이 봐야 겠다고 합니다. 맞는 얘깁니다. 자기 전공분야를 모른다는 것은 문제가 있잖아요. 책을 통해 정보를 얻습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자기 시대의 스타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습니다. 각시대마다 접근하는 스타일이 다릅니다. 제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 정보도 얻었지만 그러나 중요한 접근 방법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역사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설교투로 설명을 합니다. 굉장히 좋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책으로 방법론을 배웠는데 최근에 나온 책 가운데 일천번제의 예배자라는 책이 있지 않습니까? 그 책이 열왕기 상하의 내용에 관한 것 아니에요? 그 내용 가운데 다섯 여섯 가지 정도는 시오노 나나미 식으로 접근했습니다. 똑같은 역사서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가 방법론을 얻을 수 있잖아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동의하실지 모르겠는데,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백기완씨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사상에 대해서 100퍼센트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와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강의를 할 때 우선 원고도 없이 다 외워서 한다는 것입니다. ‘야! 저 사람의 얘기는 가슴에서 터져 나와서 하는 얘기구나’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시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울리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시를 500개쯤 외워야지 하는 결심을 하고 아니면 내가 지어야지 그런데 내가 그럴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곧장 포기했는데 어쨌든 80년대에 시를 통해서 노랫말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뒤집어엎을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알게 되었어요. 어떤 사람이 시를 통해서 시어로 접근할 때 굉장한 파워가 있습니다. 백기완씨를 통해서 시어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 방법론을 배웠다니까요.

최근 들어서 연금술사 그런 것 있죠? 요즘은 환타스틱한 접근을 해야 이해하는구나, 물론 흉내를 낼 수 없겠지만,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시대마다 접근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감성에 호소하는 시대가 있고, 이성에 호소하는 시대가 있고, 어떤 때는 이야기체로 호소하는 때가 있고... 내용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독서를 왜 해야 합니까? 그 시대에 통한 방법이 있습니다.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독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은 다 옳은데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대가와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빌 게이츠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는 많이 만났습니다. 대화도 하고 질문도 하고 대답도 듣고 또 피터 드러커, 그 할아버지가 나와 만날 일이 없겠지만 저는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분이지만 다신 정약용과도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거의 책을 읽었기에, 천국 갔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천국 가서 만난다면 상당히 대화가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생각하셨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화가 가능할 정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가에게 만나달라고 하면 절대 안 만나 줍니다. 그런데 독서를 통해서는 내가 원할 때 아무 때나 만날 수 있습니다. 깊이 있게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독서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쩐 책을 읽을 것인가? 책을 읽는 내용에 관한 것인데 저는 전기를 많이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전체 일생을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 때문에 전기가 참 중요합니다. 전기를 읽으면 한 사건에 반응하기 보다는 일생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 링컨의 일생에 대해서 기독교에서 많이 읽죠. 참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링컨의 전체 삶을 바라볼 수 있잖아요. ‘나도 그런 삶을 살겠습니다’ 하면서... 또 특별히 허드슨 테일러 같은 사람을 보면 전기를 통해서 선교현장에 어떻게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나가고 어떤 현지화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알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동해, 제주선교를 떠나게 되는데 적어도 선교팀장들은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만 읽어도 거기서 많은 인싸이트를 얻게 됩니다. 동화책 같이 50페이지짜리 말고 적어도 상하로 된 두 권짜리를 읽어야 해요.

그가 그렇게도 사랑해서 결혼했던 아내가 죽고 재혼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결혼하니 실망하고 ‘그래도 그도 인간인데’ 이런 생각이 들고 애는 얼마나 많이 낳는지 책임도 안지고 죽고 그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구나,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구나, 그런데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 쓰임을 받는구나 그래서 희망을 얻습니다. 환상 속에 있는 모습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을 사는 한 사람의 모델을 통해서 우리가 얻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가능하면 인터뷰 기사를 많이 읽으십시오. 웬만한 사람의 책 10권 20권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과 인터뷰 한 것이 저널 등의 앞부분에 나오거든요. 5-6페이지 정도,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그 사람의 사상과 그 사람이 중요하게 말한 핵심이 여기 다 나와 있어요. 자기가 한 시간 인터뷰하면 그 안에 자기의 에센스를 다 담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책에서 다른 것은 모르지만 중요한 사람의 인터뷰 기사들은 다 모아 놔야 합니다. 인터뷰기사를 보면 핵심을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기사가 없다면 목록을 보면 대개 그 사람의 사상을 먼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좋은 책을 집중적으로 읽으십시오. 일전에 말씀 드렸지만 저는 도산 안창호 선생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분의 책을 깊이 읽었더니 그 책들 가운데 밤낮 반복되는 것이 무어냐 하면 다산 정약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도산을 연구하다가 정약용에 관심을 갖고 그분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정약용을 죽어라 공부하니 그분에게 영향을 굉장히 준 분이 성호 이익이더라구요. 성호사설을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성호사설을 읽으니까 성호사설도 자기에게서 온 것이 아니에요. 그게 실학파 전체에 대한 것이에요. 실학파의 뿌리 중에 어디였느냐 북학파입니다.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래서 결국은 도산에서 박제가까지 죽 섭렵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니 실학 이전과 이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조선기와 중기와 후기의 차이가 무언가, 우리는 보통 임진난을 기점으로 파악하는데 실학을 기점으로 조선 후기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그러니 구한말이 이해가 되고 좀 더 깊이 연구하면 고려말까지도 이해가 되겠더라구요. 저는 딱 하나만 연구했습니다. 도산만 연구하니 가능하더라는 것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깊이 있게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분야, 예를 들어서 미국의 예전, Civil Law를 연구한다고 하면 예전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상가들과 역사, 판단들이 다 같이 연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깊이 보면 전체가 다 보인다는 것입니다. 독서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전문가가 되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를 다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기록과 메모를 하십시오. 스코틀란드의 럼스턴이란 곳에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평생 책을 17000권을 읽으셨답니다. 1주일에 2권씩 1년이면 100권 10년이면 1000권이니 17000권은 어마어마한 책입니다. 이분은 설교를 무지 못했답니다. 왜? 독서와 설교가 연결이 안 되서. 이름은 누가 될까봐서 얘기 안합니다. 우리 가운데 읽기는 무지 읽는데 읽는 것과 말하는 것, 읽는 것과 쓰는 것, 읽는 것과 사는 것이 연결이 안 된다구요.

그래서 책상에서 책만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시킬 줄을 알아야 합니다. 파이프로 공급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독서가 내 삶의 지혜로 연결되는 것을 위해서 메모가 필요합니다. 자기 언어로 정리되는 것, 많이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리하는 요령을 빨리 배워야 합니다. 정리한 것만 자기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잘 준비된 모습만 있으면 독서를 통해서 지성을 통해서도 하나님 앞에서 놀랍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영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성이라는 땔감이 있어야, 그 뼈대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불타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특별 새벽기도 가운데 적어도 여러분의 전공에 있어서 대가가 되십시오. 그리고 시대의 스타일을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쉽게 만날 수 없는 대가들을 만나십시오. 전기를 많이 읽고 인터뷰기사를 정리하시고 좋은 책을 깊이 팜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기래서 기록하고 연계시켜서 삶의 자양분을 많이 얻는 믿음의 신실한 종들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