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62과 사무엘하(3):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2) (14-20장) 2

好學 2012. 11. 23. 01:52

제62과 사무엘하(3):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2) (14-20장) 2

 

 

2. 압살롬 반역 사건(15:1-19:8)

 

  그 후에 압살롬은 자기를 위해서 병거와 말들을 준비했으며, 전배 오십 명을 세웠다(1). '전배'라고 번역된 말('이쉬 라침')의 원래 뜻은 '달려가는 사람', 즉 '경주 자'란 뜻이다. 본문에서는 이 말이 '왕의 마차 앞에서 뛰어다가면서 마차가 갈 길을 정비하고 왕을 경호하던 경호부대를 가리키고 있다. 압살롬이 병거와 말들과 오십 명의 경호부대를 갖춘 것은 반역을 위해 필요한 군사를 모으고, 다음 왕으로서의 위용을 갖추어 민심을 끌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왕상 1:5). 이제 압살롬은 서서히 다윗으로부터 민심을 자기에게 돌리기 위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재판이 열리는 성문 길 곁에 서 있었다. 그는 그 곳에서 왕에게 송사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의 말을 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 왕이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자신이 재판관이 되게 되면 이러한 일들을 공의롭게 재판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2-4). 또한 압살롬은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절을 하려고 하면, 자신이 먼저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입을 맞추었다. 압살롬은 이러한 행동으로 백성들의 민심을 빼앗았다(5-6).

 

  압살롬은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지 4년 째 되던 해에 마침내 반역을 시작했다. 그는 먼저 다윗에게 가서 서원 제사를 드리기 위해 헤브론에 가겠다고 요청했다. 그의 반역적인 의도를 알지 못하는 다윗은 압살롬의 요청을 쾌히 허락했다. 압살롬은 미리 준비해 둔 정탐꾼을 모든 이스라엘 지역에 보내어 나팔 소리를 듣게되면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그는 세력이 있는 200명의 인사와 다윗의 모사인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갔다. 이때에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데리고 간 200 명의 인사는 예루살렘 성의 고위 관리였을 것이다.

 

압살롬은 그들을 자기의 거사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명목(7-8)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부분 압살롬의 반란 기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채로 헤브론으로 가게되었다. 압살롬은 그들을 자기편을 만들고, 또 반항하는 사람은 죽여 버릴 계획을 했을 것이다. 압살롬과 동행했던 아히도벨은 길로 사람이었는데, 길로는 유다 남쪽 산지에 있던 성으로(수 15:51), 헤브론에서 북서쪽으로 약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히도벨은 지략이 뛰어나서 다윗의 모사로 일했으며(31), 그는 항상 하나님께 물어 일을 결정했기 때문에 그의 지략은 실패가 없었다. 따라서 압살롬은 반란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누구보다 먼저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그는 헤브론으로 갈 때에 아히도벨을 데리고 갔던 것이다. 그리고 후에 아히도벨은 압살롬을 위해 일을 하게 되었다(16:20-23; 17:1-3).

 

성경은 아히도벨이 다윗 왕을 배반한 이유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일부 학자는 다윗이 범한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가 아히도벨의 손녀였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아비도벨이 손녀 사위인 우리아를 모살한 다윗의 파렴치한 행동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가 압살롬의 제의를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급속도로 압살롬에게 유리해졌다. 이러한 원인은 아마도 압살롬의 매력적인 외모(14:25, 26)와, 그의 민신을 끌기 위한 치밀한 계획(1-6), 그리고 다윗 왕의 부정한 행위와 우유부단한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1)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한 일과(11장), 2) 암논의 범죄에 대한 우유부단한 조치(13:21), 그리고 3) 영토 확장 사업(8장)에 따른 국민에 대한 무관심과 과다한 세금 징수 등으로 다윗에 대해 마음이 떠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압살롬은 이러한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서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압살롬의 반역 소식은 즉시 다윗에게 전해졌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시도한 사실과, 이스라엘의 민심이 그에게 기울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즉시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신하들에게 예루살렘을 피하라고 지시했으며, 다윗의 신하들은 그 지시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다윗은 예루살렘 성에 후궁 10명을 남겨두어 그들로 궁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가족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을 떠났다. 왕이 성에서 나갈 때에 모든 백성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행렬은 벧메르학에서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13-17). '벧메르학'은 '먼 집', 또는 '먼 궁'이란 뜻을 가진 곳으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목에 있던 다윗의 별궁이었을 것이다. 학자들은 이 별궁이 기드론 시내를 넘기 전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Keil, Lange, Pulpit). 다윗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기드론 시내를 넘기 전에 이 별궁에서 안전히 탈출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잠시 이 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고 있다.

마침내 다윗은 피난 준지를 마치고 벧메르학을 떠났다. 그때에 모든 신복들은 다윗의 곁으로 지나갔으며, 모든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그리고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600명이 왕의 앞에서 행진을 하고 있었다(18). 그렛과 블렛은 다윗 왕의 시위병이었다. 그렛은 왕명에 따라 중죄인을 처벌하던 사형집행 기관의 병사들이었으며, 블렛은 왕의 보발꾼이었다. 그리고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600명은 다윗이 사울 왕으로부터 핍박을 받던 시절에 블레셋의 가드에서부터 다윗을 추종했던 용사들이었다. 그들은 가드에서부터(삼상 27:2) 시글락(삼상  27:6; 30:1)과 헤브론(2:3)을 거쳐서 예루살렘에 이를 때까지(5:6) 초지일관하게 다윗 왕을 보필했다. 후에 다윗은 그들을 왕의 근위대로 임명하였으며, 그들이 지금 다윗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Wycliffe).

 

  그때에 다윗은 가드 사람 잇대에게 자신을 따라오지 말라고 부탁했다(19-20). '잇대'는 '블레셋의 가드에서 망명해 온 용사였다. 그는 본국에서 큰 용맹을 떨쳤던 용사였기 때문에 다윗은 그를 자신의 군대 장관 중 한 사람으로(18:1-2) 세웠다. 잇대는 얼마 후에 요압과 아비새와 동등한 위치에 서서 반란군을 진압하는 지휘자가 되어 활약했다. 다윗은 잇대가 외국에서 망명해 온점을 참작해서 이스라엘 내란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에게 어렵게 자기를 따르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잇대는 다윗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하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다윗은 그의 결심이 굳게 선 것을 보고 더 이상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다윗은 그와 그의 군대들에게 자기보다 먼저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라고 지시했다(21-22). 다위을 따르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크게 울면서 시내를 건너갔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건너간 후에 다윗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갔다. 시내를 건넌 후에 다윗의 일행은 광야 길을 행해 진군했다(23).

 

 다윗이 광야 길로 갈 때에 대제사장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다윗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에 대제사장이었던 아바아달 역시 그 곳에서 다윗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24). 그들은 언약궤를 메고 다윗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다윗은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자기를 따라오지 말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메고 가라고 지시했다. 다윗은 여호와의 어약궤를 이용하지 않고 모든 일을 여호와의 주권에 맡기기를 원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볼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여호와의 주권을 따르기를 원했다. 다윗은 대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그의 아들인 아히마아스과 요나단을 데리고 성에 가서 광야 나룻터에서 자신의 기별을 기다리라고 지시했다(23-27). 대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의 지시를 따라 여호와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옮긴 후에, 그의 아들들을 광야 나룻터에 머물게 하였다(28). 다윗은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 발로 울면서 피난길을 떠났다. 그리고 그를 따라가는 모든 백성들 역시 자기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그 길을 따라갔다(29-30).   

 

  그때에 다윗은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윗은 아히도벨의 모략이 기도를 통해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르렀을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로 다윗을 맞으러 나왔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은 감람산 꼭대기를 가리킨다(30).

 

여기에서 '경배'라고 번역된 말은 '제사'보다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나누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예수께서도 생전에 이곳에서 기도하신 적이 있었다(마 26:30; 눅 21:37; 22:39). 다윗은 바로 전에 하나님께 아히도벨의 모략이 시행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력하게 만들 사람을 다윗에게 보내주셨다. 그 사람은 바로 또 다른 다윗의 모사였던 후새였다.

 

다윗은 그를 통해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력화 시킬 계획을 세웠다. 다윗은 후새에게 자신을 따르지 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의 편이 되라고 부탁했다. 다윗은 후새에게 압살롬의 편으로 위장하고 아히도벨의 모략이 시행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대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통해서 전하라고 지시하였다. 다윗은 그의 기별이 있을 때까지 요단 강을 건너지 않고, 나루터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의 친구 후새는 압살롬을 맞기 위해서 즉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거의 같은 때에 압살롬의 행렬도 예루살렘 성으로 향했다(3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