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62과 사무엘하(3):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2) (14-20장) 1

好學 2012. 11. 23. 01:51

제62과 사무엘하(3):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2) (14-20장) 1

 

 

다윗왕국의 확립(1-8장)

다윗왕국의 위기와 극복(9-20장)

부록(21-24장)

사울

전사

다윗 왕국의
성립

견고해진다윗
왕국

요나단의약속지킴

암몬수리아
전쟁

다윗의범죄

근친상간

압살롬의 반역과
극복

세바의
반역

진노

용서

다윗의용사들

다윗의
노래

진노와
용서


다윗

애가

사울가문과의 전쟁

블레셋정복

법궤운반

다윗언약

행정
제도

므비보셋대접

도전과
승리

밧세바
사건

암논을 죽임

압살롬
반역

다윗복귀

반역
진압

기브온
거민 원한
해결

군대조직

감사찬송

인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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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세바의 반역과 극복(14장-20장) <참고지도: 압살롬의 반역>

 

1.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14장)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돌아온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1). 암논을 살해하고 압살롬이 그술로 도주한 지 3년이 지나게 되자, 다윗은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압살롬에 대해 염려하게 되었으며, 다윗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요압은 이를 눈치를 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압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는 드고아에서 슬기로운 여인 하나를 데리고 왔다.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약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였다.

 

이곳은 선지자 아모스의 고향이자(암 1:1), 르호보암의 산성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대하 11:6). 요압은 그녀를 데려다가 초상을 치르는 여인처럼 위장시켰으며, 그녀에게 다윗에게 가서 할 말을 가르쳐 주었다(2-3). 요압이 이처럼 압살롬의 사면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은 다윗에 대한 충성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차기의 왕이 될 압살롬에게 환심을 얻어 자기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Leon Wood,). 만일 요압이 다윗에 대한 충성심으로만 이 일을 했다면 그는 드고아의 여인 대신에 나단 선지자에게 가서 이 일을 부탁했을 것이다. 요압의 사주를 받은 여인은 다윗에게 가서 자신은 남편을 잃은 참과부라고 말했다. 히브리 사회에서 과부는 고아와 함께 특별한 동정과 보호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다윗의 동정심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과부로 위장을 했다. 그녀는 다윗에게 자신의 남편이 죽고 그녀에게는 두 아들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두 아들이 들에서 싸우다가 한 아들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자기 형제를 죽인 아들을 처벌하기 위해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녀는 만일 나머지 한 아들마저 죽게 되면 자신은 더 이상 남편의 대를 잇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4-7).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처음부터 그 아들이 형제를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실수로 살인하게 되었고, 또 과부의 딱한 서정을 참작하여 그 아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녀에게 아무도 그녀의 아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8-11). 다윗은 만일 누구든지 그녀의 아들을 해치려고 하면 자기에게로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면 다윗은 자신이 그 사람이 그녀의 아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조치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만일 형제를 죽인 아들을 처벌하지 않은 일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왕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책임을 자신의 집에 돌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다윗이 형제를 죽인 아들을 살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자기 형제를 죽인 압살롬도 용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살롬을 다윗 왕의 후계자로 알고, 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해서 왕은 압살롬의 죄를 용납하지 않느냐고 우회적으로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그녀에게 이 일을 하도록 시킨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다윗은 이러한 엄청난 일을 여인 혼자서 도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은 그녀에게 이 일을 그녀에게 시킨 사람이 요압이 아니냐고 다그쳤다. 다윗이 생각하기에 이러한 일을 꾸밀 자는 요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다윗의 판단은 옳았다. 결국 그녀는 할 수 없이 이 모든 일이 요압이 시켜서 한 일임을 자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고백을 통해서 모든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마침내 요압을 불러서 압살롬을 궁전으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요압은 다윗의 지시를 듣고 즉시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술은이스라엘 북쪽에 인접해 있던 아람의 소국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자, 그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그의 집으로 가서 거하라고 지시를 하고 자기 얼굴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에도 다윗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12-24). 이는일종의 연금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다윗 왕은 이러한 태도를 취함으로 아직도 압살롬의 죄를 완전히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를 표명을 한 것이다. 다윗이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은 까닭은 아마 그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Lange). 다윗이 백성들 앞에서 형제를 죽인 압살롬을 묵인하면 백성들을 통치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다윗의 이번 조치는 비록 최선책은 아닐지라도 적절한 조치였을 것이다(Lange, Patrick).

 

그러나 이러한 다윗과 압살롬 간의 불편한 관계는 압살롬으로 하여금 부친에 대해 반역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선언한 징계가 성취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압살롬은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자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아무런 흠이 없었다. 그의 머리털은 매우 많아서 연말마다 깎았는데  그 무게가 200세겔이나 나갔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머리털은 힘과 미의 상징이었으며, 그것이 빨리 자라는 것은 힘이 왕성하다는 것(삿 16:17)을 의미했다(Keil). 또한 머리숱이 많다고 하는 것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는 개념을 지니는 것으로, 자신의 신비로움울 나타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압살롬의 머리숱이 많고 빨리 자랐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후에 압살롬은 그의 자랑거리인 머리털이 나뭇가지에 걸려 죽고 말았다. 이는 세상에서 자랑하는 외모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보여준다. 여기서 왕의 저울로 계산한 세겔은 '왕실의 세겔'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무게를 측정하던 기본 단위는 세겔인데, 이에는 '보통 세겔'과 '왕실 세겔', '성소 세겔'이 있었다. 그 중에 왕실의 세겔은 보통 세겔의 1/5을 더한 중량이었다. 보통 세겔의 경우 한 세겔은 11.4g이므로 200세겔은 약 2.3kg에 해당되는 무게였다. 보통 사람의 머리털이 1년 동안 자랄수있는 평균 무게가 약 500g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엄청난 무게가 아닐 수 없었다. 압살롬은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누이와 같이 다말이라고 지었다. 압살롬의 세 아들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18:18에서 압살롬이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어서 한탄하면서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가 딸의 이름을 다말이라고 지은 것은 누이인 다말을 지극히 사랑했거나, 아니면 그 딸이 다말을 닮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와서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윗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압살롬은 자기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여전히 자기를 용서하지 않는 부친만 원망했던 것 같다. 압살롬은 요압을 사람을 보내어 자기에게 오도록 했다. 그러나 요압은 압살롬의 요청을 거절하고 말았다.

그러자 압살롬은 요압의 밭에 불을 질렀으며, 요압이 압살롬에게 항의하기 위해서 그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때에 압살롬은 요압에게 다윗이 용서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왜 자기를 그술에 있도록 그녕 두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왔느냐? 고 항의했다. 그리고 나서 압살롬은 만일 자기에게 용서 할 수 없는죄가 있으면 차라리 법을 따라 죽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압은 그 말을 듣고 다윗에게 나아가서 이러한 압살롬의 뜻을 전달했다. 다윗은 그 말을 듣고 압살롬을 자기에게 불렀다. 이에 압살롬은 다윗에게 나아가서 땅에 얼굴을 대고 절하였으며, 다윗은 압살롬과 입을 맞추며 그를 맞이했다(25-33).

 

여기에서 입을 맞추는 행위는 화해의 표시이다. 특히 아버지가 범죄한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것은 그를 완전히 용서했다는 표시였다(창 33:4;  45:15 ; 눅 15:20). 이로 보아 우리는 이제 다윗 왕이 압살롬의 죄를 완전히 용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윗 왕의 이러한 조치는 지금껏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조금도 회개하지 않는 압살롬을 단지 자식에 대한 부정 때문에 용납한 어리석은 행위였다. 왜냐하면 다윗 왕은 이로 말미암아 압살롬이 차기 왕이 될 것이라는 인상을 백성에게 심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압살롬의  반역적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허용한 결정적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