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제61과 사무엘하(2):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1) (9-13장) 6

好學 2012. 11. 23. 01:49

제61과 사무엘하(2): 다윗 왕국의 위기와 극복(1) (9-13장) 6

 

4. 암논의 근친상간 사건(13장)

 

  마침내 나단이 다윗에게 말한 예언이 현실로 나타나기 지작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것과 동일한 범죄가 암논을 통해서 그의 가족 안에서 반복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원수를 갚기 위해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주한다. 그 후에 압살롬은 다시 돌아와서 다윗을 몰아내고 왕이 되려는 계획을 감행한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들은 다윗의 왕권에 대한 도전과 관계되어 있으며, 나단의 예언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동생 다말을 강제로 욕보인 사건이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다. 그런데 다윗의 장남인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1). 그러나 다말은 처녀였기 때문에 암논이 어찌할 수 없어서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2). '처녀'라는 말('베투라')는 '동정녀', 즉 아직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은 정숙한 여인을 의미한다(Lange, Keil). 다말은 순결을 소중히 여기는 품위 있는 여인이었기 때문에 암논이 함부로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다말이 암논에게 연정을 품게 할 정도로 성숙한 것을 보면 이때에 다말은 15세 이상 되었을 것이다. 다말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딸이기 때문에(대상 3:5-9), 본문에 기록된 사건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한 지 최소한 15년은 경과했을 때였다(5:1-5).

 

그런데 암논에게는 요나답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로서 심히 간교한 자였다(3). 시므아는 이새의 셋째 아들로서(대상  2:13) 삼마라고도 불렀다(삼상 16:9; 17:13). '간교한 자'란 말(이쉬 하캄')은 좋은 의미로 사용되면 '지혜롭고 능숙한 자'를 의미하지만, 나쁜 의미로 사용되면 '교활한 자'를 의미한다. 본문에서느 이 말이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는 사람의 마음과 사건의 정황을 정확히 판단할 줄 아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그 지혜를 범죄하는 일에 사용하고 말았다.

 

요나답은 친구 암논이 나날이 말라가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암논은 다말로 인한 상사병 때문이라고 대답했다(4). 그러자 요나답은 암논에게 다말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요나답은 병이 든 척하다가 다윗이 오면 다말에게 요리를 해서 먹게 해달라고 부탁하라고 말했다. 암논은 그의 말대로 해서 다말과 둘만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그를 거부하는 다말을 강제로 범하고 말았다(5-14). 그러나 암논은 다말을 범한 후에는 그녀를 향했던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암논은 다말을 강제로 문밖으로 쫓아내고 문을 닫고 말았다. 이로 인해 다말은 재를 그 머리에 쓰고,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에 얹고 크게 울면서 돌아갔다(15-19). 재를 그 머리에 무릅쓴 것은 자신의 수치스럽고 비참한 현실에 대한 슬픔과 고뇌를 나타내는 행동이다(삼상 4:12; 왕하 5:8).  

아마도 다말은 조금 전 과자를 구울 때 사용한 화로나 벽난로에서 취한 재(8절)를 머리에 뒤집어썼을 것이다(Pulpit). 옷을 찢는 행위 역시 금식이나 굵은 베옷을 입는 행위(왕상 21:27; 에 4:3; 시 35:13)와 함께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나타내는 히브리인의 표현법이었다. 다말이 손을 머리 위에 얹은 것은 자신의 머리에 수치가 임한 것을 애통해하는 표현이었다(렘 2:37). 다말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당한 억울함(11-14절)과 결백함을 나타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Lange).

 

  다말의 오라비인 압살롬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암논이 장남인 고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고 있었다. 암논이 다말에게 행한 일은 다윗의 귀에도 들어갔다.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심히 분노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과감하게 처벌할 수 없었다.

이러한 다윗의 우유부단함에 대해 불만을 품은 압살롬은 자신이 친히 그 원수를 갚을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압살롬은 그 때부터 암논을 미워하여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0-22). 마침내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그 사건이 있은 지 만 2년 후에 에브라임 곁에 있는 바알하솔에서 양털을 깎게 되었다. 압살롬의 복수극은 즉흥적인 감정에 의해 돌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오래 동안의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 압살롬의 이러한 음모는 누이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것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왕위를 차지하려는 쿠테타 성격도 있었을 것이다.

 

다윗의 차남인 길르압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세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장남인 암논만 제거하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알하솔은 에브라임 성에서 북쪽으로 약 4km,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곳에 있는 산지 마을이었다. 이곳은 해발 1,200m 가량 되는 고지로서 목양하기에 아주 적합한 목초지였다. 압살롬은 다른 왕자들처럼 이곳에 자기 토지를 마련하고 많은 양들을 사육했을 것이다.

 

 목축업을 주산업으로 삼고 있던 이스라엘에서 양털을 깎는 일은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행해졌다(삼상 25:2-8). 따라서 압살롬은 이 일을 미끼로 자연스럽게 형제들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 다윗은 먼저 이 축제에 다윗을 초청했다. 물론 그는 다윗이 바쁜 국사로 인해 그 축제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이 이를 거절하는 것은 본 압살롬은 다윗 대신에 장남인 암논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다윗은 암논과 다른 모든 왕자들을 압살롬의 양털을 깎는 축제에 참가하도록 지시했다(23-27). 이때에 압살롬은 미리 신복들을 시켜서 자신의 신호를 따라 암논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마침내 암논은 압살롬의 신호에 맞추어 압살롬의 신복들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를 본 다른 모든 왕자들은 모두 노새를 타고 뒷산 언덕길로 도망치고 말았다(28-29). 히브리인들은 동쪽 방향을 앞쪽이라고 불렀고, 서쪽 방향을 뒤쪽이라고 불렀다(출 3:1 ; 사 9:12).  따라서 뒷산 언덕길은 예루살렘 서쪽에 있던 산길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 후에 다윗은 압살롬이 모든 왕자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윗은 그 소식을 듣고 놀라서 옷을 찢고 충격으로 혼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그의 신하들도 옷을 찢고 다윗을 보좌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이 다윗을 찾아가서 다윗을 위로하였다. 그는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암논만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암논에게 다말을 범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후에 압살롬이 보복을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앗을 것이다.

 

그는 다윗에게 암논이 다말을 범한 때부터 압살롬이 원수를 갚기 위한 일을 준비했었다고 말했다. 요나답은 모든 왕자가 죽지 않고 암논만 죽었다고 말하면서 다윗을 위로했다(30-33).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한 후에 다윗 왕을 두려워하여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에 다윗은 왕자들이 노새를 타고 언덕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요나답은 그 광경을 보고 다윗에게 자신이 한 말대로 되었다고 하였다. 왕자들은 다윗과 그 신하들을 보고 통곡했으며, 다윗 왕과 그 신하들도 함께 애통해 하였다. 다윗이 대성 통곡한 까닭은 자신의 죄와 잘못이 기억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윗은 압살롬이 다말 사건으로 인해 암논을 살해한 사실을 알고, 과거 자신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살해했던 죄를 기억했을  것이다(11장). 그리고 자신이 암논을 엄히 징계하지 못한 결과(21절) 결국 형제간의 살육이란 비극을 초래한 일에 대해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죽임 당한 암논에 대한 안타까움, 압살롬에 대한 염려 등이 어우러져서 심히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Pulpit). 압살롬은 암논을 죽인 후에 그의 조부인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인 달매에게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다윗은 압살롬을 인해 날마다 슬퍼했다(34-37). 그술은 아람 소국들 중 하나로, 이스라엘 바로 북쪽에 있던 나라였다. '그술'이란 말의 뜻은 '다리의 땅'으로, 이는 헤르몬 산에서 갈릴리 호수까지 북부 요단강 양편으로 다리처럼 길게 뻗어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다윗은 당시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여 그술과의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아가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압살롬이었다. 따라서 그술 왕 달매는 압살롬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압살롬이 달매에게로 도망을 한 지 3년이 지나갔다. 3년은 다윗이 압살롬의 죄악을 잊어버리고 그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애끓기에 충분한 세월이었다. 그때에 다윗은 이미 압살롬을 마음으로 용서하고 그를 보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다윗은 이미 암논이 죽었기 때문에 마음에 위로를 받았으므로 압살롬이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었다(38-39). 다윗 왕은 마음 속으로 압살롬을 법에 따라 처벌할 의지를 포기했다. 압살롬에 대한 다윗 왕의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졌으며, 오히려 압살롬에 대한 연민의 정이 되살아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