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經信仰/[聖書]The Bible

성경과 세계사 9

好學 2012. 10. 22. 11:07

성경과 세계사 9

 

 

다니엘 시대의 왕들

 

 

 

다니엘이 바벨론제국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 바벨론에 있던 그 시대의 왕들은 모두 일곱 명입니다. 첫 번째 왕은 나보폴라살(Nabopolassar)왕의 아들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왕으로서 B.C. 605부터 B.C. 562년까지 다스렸습니다. 그는 갈그미스에서 애굽을 격파하고 수리아와 팔레스틴을 정복하여 지배권을 넓혔습니다. 두 번째 왕은 에윌므로닥(Evil-Merodach)왕으로서 B.C. 562년부터 B.C. 560년까지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통치 기간 중에 여호야긴을 옥에서 풀어 그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세 번째 왕은 B.C. 560년부터 B.C. 556년까지 다스린  네르살사레셀 (Nergalsarezer) 왕으로서 그는 느브갓네살의 명령에 따라 예레미야선지자를 옥에서 석방시켰던 자입니다. 네 번째왕은 라바시말둑(Rhabashi-Marduk)왕으로서 B.C. 556년에 왕위를 계승하였지만 9개월 만에 제사장들에 의해 폐위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왕은 나보니두스(Nabonidus)왕으로서 B.C. 556년부터 B.C. 539년까지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는 기록에 의하면 신바벨론제국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다니엘 5장과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B.C. 539년 메대.바사에 의해 나라가 망하기까지 나보니두스는 그의 아들 벨사살과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여섯 번째 왕은 앞서 언급한 벨사살입니다. 그는 B.C. 539년 메대 왕 다리오(Darius)가 바벨론 성을 점령했던 시기에 갈대아지방을 통치한 나보니두스의 아들이며 공동 통치자였습니다. 다니엘서에서는 느브갓네살이 벨사살의 아버지로 칭해지지만 그것은 느브갓네살의 자손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벨사살이라는 이름은 벨 신이 왕을 보호하셨다라는 뜻입니다. 나보니두스는 B.C. 550년 경 벨사살을 섭정(대리 통치자)과 바벨론 군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한 후 중앙 아라비아에 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벨사살은 그의 부왕이 돌아올 때까지 10년간 바벨론을 다스렸던 것입니다. 그는 메대 사람 다리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왕은 고레스(Cyrus)왕입니다. 그는 바벨론제국을 무너뜨리고 바사 제국을 설립한 자로서 B.C. 539년부터 B.C. 530년까지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혼란한 제국을 잘 조직하여 안정된 국가로 만들었으며 또한 메대를 병합하여 메대. 바사 제국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는 즉위하면서 유대 백성을 포로에서 해방시키는 조서를 발표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이 망하면서 등장하는 메대 사람 다리오(Darius) 벨사살이 죽은 후 바벨론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데 돕도록 총리들과 방백들을 임명하였습니다. 그는 다니엘을 120방백을 감독하는 3인 중 한 사람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이적으로 구출된 후 전국에 선포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고레스 통치하의 한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리오라는 이름은 당시 그 지역에 흔한 이름으로서 역사에 여러번 나타납니다. 메대 사람 다리오 외에도 B.C. 521년에 대 바사(페르시아)의 왕으로 선언한 히스다페스의 아들로서 역사상 대 전략가 중의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와 헬라(그리스)의 전쟁으로 헬라를 정복하려던 계략이 마라톤 전쟁의 패전으로 실패하여 세계사에 기록된 유명한 인물입니다. 바로 이 다리오가 다스리는 기간에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고향 가나안에서 성전 중수공사를 하였음을 스가랴서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왕입니다. 그의 다른 이름은 크세르크세스입니다. 그런가하면 B.C. 330년에 마케도냐의 알렉산더대왕에게 패망한 페르시아의 마지막왕 다리오가 있습니다.

 

 

포로시대와 포로귀환시대

 

 

유다왕국이 망하면서 유대인들은 4차에 걸쳐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첫번째는 B.C.605년에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들과 귀족 계급이었고, 두번째는 B.C.597년에 여호야긴 왕을 포함한 일반 백성들과 모든 방백들과 군사들 1만명 외에 많은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B.C. 586년에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이 최후로 함락될 시드기야 왕을 포함한 백성들이었습니다. 네번째는 B.C. 581 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의 시위대장인 느부사라단아 마지막 남은 유대인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유대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유대 본토에 남겨진 백성들은 극히 미천한 자들로 토지를 갈고 농사를 지을 있는 자들은 불과  2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한 각처로 도망갔던 유대인들이 다시 모여 왔으나 황무해진 지역의 형편은 기아와 무법천지였습니다.

 

반면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에게 바벨론 정권은 비교적 많은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집을 짓고 사업을 수도 있었으며, 관리에 등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성전은 없었지만 종교의 자유도 허락되어서 성전을 대신한 회당을 중심으로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며 민족의 흩어짐을 막을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신앙과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남유대왕국의 사람들로서 유대지파와 베냐민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왕국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의 나머지 10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앗시라아)에게 망하고 일부는 포로로 잡혀갔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을 강제로 자신들의 다른 영토로 이동시켰고,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이방 민족을 이스라엘과 혼합되게 하여 새로운 사마리아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의 잊혀진 지파로 사라져 갔습니다.

 

바벨론제국에 포로로 있던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바사(페르시아)에게 망한 , 바사제국의  고레스왕(고레스2)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함에 따라 1 귀환을 하였습니다. 때가 B.C. 538-537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스룹바벨이었습니다. B.C. 457 아닥사스다왕 때에 에스라를 지도자로 2 귀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B.C. 444 2차와  같은 아닥사스다왕 때에 유대인 느헤미야가 유대지방의 총독이 되어 민족을 이끌고 3 귀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포로귀환 활동하던 선지자들은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입니다.

 

바벨론제국이 B.C. 586년에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B.C. 538년에 바사에 의해 바벨론이 망하게 되는 사이에 인도지방에서는 불교의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중국에서는 유교의 공자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지배계급인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불만이 폭력으로 귀족정치를 타도하고 평민에 의한 독재정권을 세우는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독재자를 참주라고 부르며 그런 정치를 참주정이라고 부릅니다. 참주정은 민주주의의 시효로 알려지는 그리스의 B.C. 508년의 민주정치의 도입까지 이어졌습니다. 민주주의(Demokratial) 말은 민중(Demos) 권력(Kratos) 가지는 정치체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망하고 바사가 근동지역을 지배하던 때인 B.C. 509년에 유럽의 이탈리아반도에서는 로마의 공화정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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