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智慧묵상/[지혜묵상]신앙지혜

우리가 배워야 할 신앙의 시소놀이

好學 2012. 10. 18. 06:40

우리가 배워야 할 신앙의 시소놀이

에스겔 17:22~24

 

 

놀이터에 가면 대표적인 놀이기구인 시소와 그네를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켠에 있던 시소를 타고 놀면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던 기억이 난다. 어린 아이들이 놀이터에 데리고 가 시소를 탈 때면 아빠의 엄청난 몸무게는 아이들의 몸을 공중에 마냥 띄어놓을 수 있었다. 시소에서 살짝 엉덩이를 떼 반대쪽에 앉은 아이가 바닥에 앉으면 다시 내 쪽에서 무게를 더해 아이를 올리기를 반복하며 즐겁게 놀던 기억이 난다.

몸무게가 비슷한 친구들 사이에 타는 시소는 서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일이 쉬웠다. 그러나 몸무게가 차이난 자녀들과의 시소는 아빠의 힘에 의해 무게 중심이 달라졌다. 어쩌면 하나님과 우리의 모습도 마치 시소에 마주 앉은 아버지와 자녀의 모습은 아닐까 한다.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기준을 하나님 편에서 낮추고 높이시는 것이다(겔17:24).

에스겔 선지자는 두 마리의 독수리와 백향목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겔17:1~10).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독수리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레바논은 유다의 예루살렘을, 백향목은 유다왕 여호야긴을, 장사하는 땅은 바벨론을, 포도나무가 된 종자는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가리킨다. 첫 번째 독수리는(겔17:3~6)는 일차적으로 바벨론 2차 침공 때 유다왕 여호야긴이 바벨론 땅으로 끌려가고 시드기야가 유다의 왕이 된 사건을 의미하다. 그리고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는 유다 왕국 남방에 위치한 애굽왕 바로를 가리킨다.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의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굽을 의지하지만 결국은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에스겔 선지자는 두 독수리 비유와 두 나무 비유를 통해 다른 나라를 의지하는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였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의 길로 나간 자는 지위고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예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유다백성들을 얼마 후 다시 본토로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해주시면서 회복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위로하고 격려하신다.

하나님의 회복은 단순한 본토로의 귀환을 뛰어넘어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그로 인해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하고 있다.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은 “낮추고 높이며, 말리고 무성하게”(겔17:24) 하시는 것이다. 광대함과 풍요로움을 회복시키시지만 그 기준은 한 나라가 아무리 강대하여도 하나님을 대적할 때에는 쳐서 멸망시키실 것이다, 반대로 이미 멸망하여 연약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은혜가운데 거하고자 하는 자들은 일으켜서 강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신 방법으로 회복시켜주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자들에게 공평한 방법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남자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낮추시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높인다. 하나님을 높이는 자에게는 무성한 풍요로움으로 회복시키신다. 나의 삶의 태도가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이 내 삶 가운데 들어오는 통로가 된다.

남자들이여,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이 스스로를 높일 수 있다고 아직도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낮아질 때 그분이 나를 높이신다고 믿고 살아가는가? 나의 삶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은 우리가 밀려난 삶의 자리보다 더 높게 올리실 것이며, 더 무성한 풍요로움으로 채워주신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음 가운데 사는 것이 하나님과 즐거운 인생시소를 타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