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智慧묵상/[지혜묵상]신앙지혜

본질과 비본질의 차이

好學 2012. 10. 9. 18:26

 

본질과 비본질의 차이

요한복음 5:1~18

 

 

여러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아쉽고 안타까울 때가 있다.

취지와 목적은 사라지고 겉치레와 화려함만이 있는 경우들을 종종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자는 차원에서 가난한 아동들을 돕기로 결성된 후원모임에서 비싼 스테이크를 먹는 예가 바로 그것이다.. 본질이 사라지고 비본질이 더 중요한 모임에 참석했음을 뒤늦게 알고 난 후, 내가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고민했던 경험이 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동안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한 병자가 안식일에 예수님의 말씀으로 치료받고는 누워있던 자리를 들고 간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이 일에 대하여 안식일 논쟁이 벌어졌다. 병을 치료하는 일도, 환자가 누웠던 자리를 들고 가는 일도 율법이 말하는 형식주의와 외식주의의 기준에 위배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을 보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린시절 주일 날에는 과자를 사먹어서도 안되고,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사먹는 일도 안되었다. 주일에는 돈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누가 주일날 과자를 사먹거나 돈을 쓴 일이 있으면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고자질을 했고, 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주일성수를 하지 못했다고 꾸중하셨다. 강대상이 있는 교회 강단에 신발을 신고 올라갔다가는 집사님들께 경건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혼쭐나기 십상이었다.

물론 형식은 매우 중요하다.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형식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 형식이란 오직 하나님을 향해 진실하고도 간절한, 그리고 온전한 마음을 담기 위한 형식일 때 의미가 있다. 안타깝게도 유대인에게는 이러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형식을 지키기 위한 규칙들만 남아 외식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다. 다만 자신들의 만든 율법과 규례가 하나님의 관심보다 더 컸다. 죄 용서함을 받는 것과 병든 자가 예수님을 통해 치유 받은 일들 모두 안식일에 위배된다며 예수를 핍박하려 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바리새인들은 알 수 없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38년된 질병에서 벗어나 치유받은 것보다 누워있던 자리를 들고 움직였던 것이 더 중요한 논쟁거리가 된 것이다. 곧 비본질을 본질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셈이다. 헌금을 새 돈으로 준비하여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지켜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가 없는 헌금은 의미 없는 헌금에 불과하다. 안식일 논쟁을 보면서 주일성수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점검해보자. 예배를 일찍 드리는 이유가 이웃과 교회를 향한 섬김이 아닌 나의 편의와 안락함을 위한 것이라면 그날의 이른 예배는 형식이 된 것이다.

남자들이여,

주일날 나의 하루는 어떤 시간들로 채워져있는가?

예배 시간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시간들을 나의 여가에 쏟아 붓는 날이 주일은 아니다.

주일은 주님 안에서 예배와 섬김으로 생활하는 날이다.

그리고 평안한 쉼을 통해 일주일을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한 영적준비를 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