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智慧묵상/[지혜묵상]신앙지혜

내 인생의 방향전환은

好學 2012. 10. 9. 18:18

 

내 인생의 방향전환은

요한복음 1:43~49

 

 

남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확신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 한 마디에 쉽게 우울해진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남이 나에게 박수로 환호하면 감격해한다.

특히 존경하는 사람이나 탁월한 전문가의 한 마디 평가는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크게 결정짓곤 한다.

우리는 신약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삶을 살아가가는 많은 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요1:43)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 만남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과학의 발달은 깊은 밤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조차도 가는 방향을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아무것도 기준점으로 삼을 것이 없는 높은 하늘 한가운데 떠있는 비행기도 어렵잖게 도착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일이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수많은 과학을 발전시킨 인간은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모순을 안고 있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조차도 알 길이 없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야 지나온 인생을 반추해보지만 그 때는 이미 방향전환이 의미없는 순간이다.

이처럼 의미 없이 하루살이처럼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갈릴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회적인 하층민들의 거주지이자 이방문화의 지배를 받고 있는 어업이나 목축업을 주된 직종으로 삼고 있는 소외지역이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를 함께할 제자들을 만나신다. 안드레를 통하여 베드로를, 베드로를 통하여 빌립을, 빌립을 통하여 나다나엘을 만난다. 하지만 단순히 친분관계를 통해 형성된 만남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헌신할 제자를 얻기 위해 고심하며 찾아 다니셨다.그리고 나다나엘을 보시는 순간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라고 말씀하신다. 이 표현은 상대방을 만나 대화조차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인성을 꿰뚫어보시는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것은 구약에 표현된 여호와의 종의 성품과도 일치한다(사53:9).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2)는 말씀과 같이 나다나엘을 평가하셨다.

나다나엘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그가 무흠하거나 무죄한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히 인정하며 참회자의 정신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당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방향전환은 나다나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남자들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정받으며 평가되고 있는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자 간사한 것이 없는 나다나엘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다나엘에게 주신 말씀을 기대한다면 나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삶의 습관을 새롭게 하며 예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가 될 수 있다.

남자들에게 꼭 필요한 인생의 방향전환은 예수님을 만나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